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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5화 (15/379)
  • 15화

    창이라고 해봤자 나무로 된 것은 긴 막대기에 끝을 둥글게 만들고 천으로 덮어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검은 옷을 입고 막대기 끝에 있는 천 안에 밀가루를 넣어둔다.

    그리고 그 밀가루를 더 많이 맞은 사람이 패배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에는 밀가루는커녕 검은 옷도 없었다.

    찬영은 대련용 창을 꺼내 태운에게 던져주었다.

    “시작할까? 먼저 와.”

    태운은 필사의 창술의 설명을 상기했다.

    필사의 창술(LV.1): 위험이 닥칠 때나 싸움을 끝낼 수 있을 때 최적의 움직임을 알려준다.

    현재 중급 1레벨 수준의 창술을 구사할 수 있다.

    ‘고작 이걸로 찬영이를 이길 수는 없겠지.’이미 기본 스탯부터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달린다.

    마법을 쓴다면 승산이 2~30% 정도로 뛰겠지만, 마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자세를 잡고 신중히 창을 내질렀다.

    퍼억!

    “음?”

    “으윽…. 생각보단 아프네….”

    찬영은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복근으로 그대로 받아내었다.

    “야, 이 무식한…!”

    생각이 끝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자신의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것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니 아슬아슬하게 창을 피해낼 수 있었다.

    피해내자마자 또 머릿속으로 움직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창대를 오른쪽 위로 밀어내면서 몸은 왼쪽 아래로 움직이는 움직임이었다.

    또 그것을 따라 했다.

    타탁!

    찬영이 찔러오는 창을 밀어내 궤도를 살짝 틀어내고 몸을 움직여 창을 피해냈다.

    예상보다 엄청난 필사의 창술의 성능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좋아 이번엔 내가….’

    반격에 나서려고 몸을 움직였을 때 다시 머릿속에 이어지는 행동, 바로 뒤로 굴렀다.

    그러자 찬영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중단을 가르고 있었다.

    태운은 그때 깨달았다.

    필사의 창술은 위험한 공격이 닥칠 때만 움직임을 알려준다.

    즉, 지금까지 찬영의 공격 3번이 전부 상대를 단번에 기절시킬 수 있거나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공격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격차가 있었다니….’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다음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으니까.

    계속해서 움직임을 따랐다.

    그렇게 3분이 지났지만, 머릿속에서는 공격이라는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았다.

    퍼억!

    “쓰으….”

    드디어 첫 유효타가 나왔다.

    당연히 찬영의 것이었다.

    태운은 통증에 신음하며 타격 부위를 움켜쥐었지만, 이마저도 필사의 창술이 알려준 최선의 움직임에 따른 결과였다.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충격을 최대한 줄여주는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리라.

    지금까지는 오로지 필사의 창술이 보여준 움직임만을 따라 행동했다.

    분명 좋은 움직임을 알려준 것이 확실하지만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하고 패배한다.

    게다가 성장도 바랄 수 없다.

    필사의 창술이 알려주는 움직임에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움직임은 참고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

    한 번의 타격 이후 거리를 최대한 벌려 한번 쉴 타이밍을 만들어냈다.

    흉포 사마귀와 싸우며 경험했던 과감한 공격.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린 직후 창을 세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타격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움직이는데 아무 영향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고통에 익숙해진 덕분이리라.

    그러자 찬영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한 대 얻어맞더니 이놈이 갑자기 실성했나’ 싶은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게 실력의 차이도 명확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찬영이 훨씬 앞선다.

    그럼에도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건 싸움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찬영의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많았다.

    공격까지 기다렸다가 막거나 피한 후 후속타를 가할 수도 있다.

    혹은 상대적으로 긴 팔에서 나오는 리치를 이용해 먼저 타격을 가하는 방법도 있다.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변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때문에 찬영은 창을 길게 잡고 태운을 향해 내질렀다.

    그때 태운의 머릿속에서 최적의 행동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동작에도 마찬가지로 공격이라는 행위는 없었다.

    ‘따른다면 더 쉽게 피할 수 있겠지만…!’

    태운은 필사의 창술이 알려주는 회피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달리면서 내디딘 왼발에 힘을 주어 자신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무너지는 균형에 힘을 더하여 창을 피해냈다.

    그리고 후속타를 경계하여 찬영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오른발을 강하게 땅에 디뎌 균형을 맞춤과 동시에 그 힘을 상체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태운의 창은 어깨 위로 올라와 있었고 내리찍기 좋게 창의 윗부분을 역수로 잡고 있었다.

    퍼억!

    “읍…!”

    첫 타격 성공.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태운이 아니었다.

    창과 상체를 찬영에게 밀착하며 밀고, 하체로는 찬영의 무릎 뒤를 걸어 균형을 무너뜨렸다.

    완전히 붙어 있던 창을 조금 떼어냈다.

    넘어져 땅에 닿는 그 순간, 다시금 창을 찍어 버릴 것이다.

    ‘그럼 찬영이라 해도 데미지를 입을….’

    “흐읍!”

    쿠웅!

    “크헉!”

    위치상의 우세를 점하고 있던 태운이 어느새 벽에 날아가 박혀 있었다.

    “괜찮냐? 힘이 너무 들어갔다.”

    그제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찬영이 오로지 완력과 허릿심만으로 넘어지던 도중에 태운을 머리 뒤로 넘겨 버린 것이다.

    “와, 씨…. 진짜 괴물인가….”

    태운은 일어나서 몸을 움직여보았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다.

    “팩인 디바인 포스.”

    태운은 생겨난 구체 중 하나를 입에 넣어 삼켰다.

    “어? 원래 그거 입에 넣는 거였냐?”

    “아니, 상관없는데 향 좀 첨가해봤어. 방금 것은 복숭아 향이었음.”

    “나 하나만.”

    “딸기? 오렌지?”

    “딸기”

    “오키.”

    찬영은 받아든 구체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찬영은 죽상을 지었다.

    “으엑…. 이게 뭐냐.”

    “오케이, 딸기는 맛이 없구나.”

    “실험이었냐?”

    영문도 모른 채 실험의 모르모트(?)가 되어 버린 찬영은 창으로 애꿎은 땅만 두들겼다.

    “그래서 언제 올라오는데?”

    문장에 필요한 단어들이 중간에 빠져 있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게 문제가 생겼어. 익스퍼트 등급의 학생 3명을 연속으로 이기는 게 조건이라던데….”사실 이게 합당한 조치이긴 하다.

    특별 승급.

    그것도 무려 두 단계 승급이다.

    착실히 올라온 학생들의 반발이 안 나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사실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는 않거든. 이길 확률이 50%는 넘는다고 보는데…. 흠….”그때 찬영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래. 그거 모르고 하는 소리냐?”

    “?”

    “진짜 모르겠냐? 너 정도면 어느 정돈 다 씹어먹지.”“그래? 우리 아카데미 수준이 이렇게 낮았나?”

    “야, 그거 무슨 의미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이긴다니까 좀 놀라서.”전에 이동현과 대결을 했을 때와는 다르게 제약이 붙어 있는 전투가 아니다.

    스탯, 테크닉, 상황 판단력 등을 모두 요하는 전투이다.

    하지만 그것 중에서 태운이 크게 부족한 건 없었다.

    근력은 평균에서 조금 뒤떨어지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체력, 민첩, 유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지력 부분에서는 조금이지만 우위에 설 수도 있다.

    마법 테크닉은 A급 헌터가 보고 감탄할 정도니 할 말도 없고, 상황 판단은 교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누가 1,000번이나 치열하게 싸우다가 죽어봤을 것이냐.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

    왜 의아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 애매하면 두들겨서라도 알려줄까?”

    “야, 너 이렇게 열 내는 거 처음 본다….”

    “내가 너 익스퍼트로 올려 주려고 그런다. 약한 소리 하지 말고 맞기 싫으면 빨리 훈련이나 해라.”

    “예~. 알겠습니다~.”

    태운은 다시 창을 들고 창술 교본에서 본 움직임을 따라 했다.

    방금 전투에서 필사의 창술만으론 부족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현재 필사의 창술은 중급 창술 정도의 창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래도 창술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네.’앞으로 활, 방패, 극, 도, 검 등등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나니까.

    태운은 늦게 발을 들인 만큼 더 노력을 할 생각이었다.

    * * *

    “훈련할 장소? 있으면 좋지만… 아카데미 체육관이면 충분하지 않아?”훈련할 장소가 필요하냐는 태운의 질문을 들은 서혜연이 되물었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의 헌터 아카데미였고, 실적 또한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런 엄청난 아카데미의 시설은 당연히 탑 클래스였고, 특히 훈련 시설은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좋은 설비를 가지고 있다.

    한 종류의 시설당 최소 20개 이상 비치하고 있으며 2주에 한 번씩 시설 정비를 한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조건 없이 이 시설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당연히 돈도 내지 않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훈련 시설 쓰면서 불편한 점은 있었을 텐데?”물론 아무리 시설이 좋다고 하더라도 불편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건 같은 훈련 시설을 사용해 온 학생들이라면 전부 알만한 것들이었다.

    “뭐… 가끔 높은 등급 애들이 와서 갑질하는 건…. 불편하지.”시설이 아무리 좋고 수용 인원이 많다고 해도 무려 8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사용하는 시설이다.

    사람들 간의 마찰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 때문에 훈련에 방해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거야 어디든 있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지.”이제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있는데 혹시 관심 있어?”

    “진짜?”

    서혜연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자주 훈련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관심이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 체육관보단 조금 떨어지지만, 시설도 나름 좋은 편이야. 지금 쓰는 사람은 나 포함 두 명뿐이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태운은 그 외의 장점도 길게 늘어놓았다.

    “당연히 가고 싶지! 거기가 어딘데? 혹시… 돈 많이 필요해…?”“돈은 필요 없는데, 지켜줘야 할 게 있어.”

    “뭔데?”

    “그 훈련 공간에 대해 절대 비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서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진지하게 말했으니 제대로 알아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를 알게 되면 많은 사람과 같이 쓰고 싶다는 생각은 싹 사라질 것이다.

    “근데 너랑 같이 쓴다는 다른 한 명은 누구야?”

    “구찬영. 알아?”

    서혜연은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더니 생각이 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랑 같은 반이었다가 첫 시험 이후에 곧바로 골드로 올라간 애 말하는 거지?”“정답. 지금은 익스퍼트 골드 반에서 깽판 치고 있는 중이지.”깽판.

    정확한 표현이다.

    자신보다 2~3년은 더 많이 훈련한 학생들을 상대해서 전부 이기고 A반까지 올라가 3등을 여유롭게 유지 중이니까.

    “지금은 나랑 찬영이랑 둘이 그 시설을 쓰고 있어. 너도 오면 세 명이 되는 셈이지.”“정리하자면 그곳은 너희 둘의 비밀 공간이라는 거고 나를 거기에 끼워주겠다는 거야?”

    “그렇지.”

    “좋지! 그럼 언제 데려가 줄 건데?”

    “시간 되는 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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