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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4화 (14/379)
  • 14화

    * * *

    “후아아아! 오늘은 그만 해요! 내일! 내일 다시 올게요!”벌써 1,000번째다.

    1,000번은 죽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프스스스거리는 거대한 사마귀들의 사이에서 말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허허, 이제 최소 개수를 채웠단다. 다시 기계에 들어가서 마저 하시게나.”한 번에 15분만 잡아도 대충 10일은 잠도 안 잔 수준이다.

    하지만 뇌의 피로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오로지 1,000번이나 죽었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만 남아 있었다.

    적어도 실제로 죽을 일은 없다는 의미이기는 했으나 태운에게는 전혀 기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죽을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하르가 더 굴려 먹고 있으니까.

    아마 정신병에 걸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에라도 미칠 것 같았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시뮬레이션 파일을 만들 수는 있는데 더 디테일한 걸 만들고 싶어서 억지 부리는 거 같은데.’자하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네. 아마 그게 맞을 거야.”

    “으….”

    그의 표정을 보자니 자비를 바라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깨자. 깨야 한다.’

    창술을 제대로 배우고 난 후 적어도 한 달 후에나 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깨야만 했다.

    “마정석 흡수.”

    태운의 정신이 다시금 광활한 대지로 날아갔다.

    이곳에 날아오면 약 5분 동안의 준비 시간이 주어진다.

    5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았다.

    태운은 최대한 빨리 달려서 머리만 한 바위를 잔뜩 모아왔다.

    그러곤 창을 바닥에 꽂은 후 입고 있는 상의를 벗어 그 위에 걸어두었다.

    옷에는 철판이 덧대어져 있긴 했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었다.

    공격을 조금도 막아주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바위를 양손에 들면 준비는 끝이다.

    그때 5분이 지나,

    [살아남으십시오]

    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멀리서 흉포 사마귀들이 달려왔다.

    “근력 소(小) 강화.”

    그러자 양팔이 꿈틀거리며 적당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곤 그대로 바위를 던져 버렸다.

    빠각!

    가장 전방에 있던 흉포 사마귀의 머리에 바위가 적중했다.

    흉포 사마귀의 단단한 외골격이 깨지며 쓰러져 꿈틀거렸다.

    아마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으미, 징그러운 거!’

    그러면서도 동시에 왼손에 들고 있던 바위도 던져 버렸다.

    똑같이 머리에 적중한 바위가 이번에는 흉포 사마귀의 머리 일부를 날려 버렸다.

    이번에도 꿈틀거리는 했지만 아마 사후강직 비슷한 것이리라.

    두 마리의 흉포 사마귀를 처리했음에도 거리가 꽤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느낌이 좋았다.

    계속해서 바위를 던졌다.

    몇 개의 바위를 머리가 아닌 다리나 몸통을 맞추기는 했으나 그것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주춤하는 전열의 흉포 사마귀와 후열의 흉포 사마귀들이 부딪치며 다가오는 속도가 느려졌으니까.

    동료가 죽든 말든 계속해서 달려드는 흉포 사마귀들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자기들끼리 엉키면서 다리가 끊어져 엉금엉금 기어 오는 녀석도 있었다.

    다리의 연결 부위가 얇은 만큼 약한 모양이었다.

    흉포 사마귀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저 정도면 일반인이 힘껏 당겨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졌다.

    오른손에 들린 바위를 던지고 창대에 걸어두었던 옷을 집어 들었다.

    근거리에서 쏘아지는 바위를 맞은 사마귀의 대가리가 반쯤 터져 사라졌다.

    펄럭!

    이번엔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에서 옷을 던져 시야를 차단했다.

    이젠 너무 가까워서 던지는 게 큰 파괴력을 가져오지 못한다.

    빠각! 빠각!

    [프스스스스!!!!]

    그렇기에 이렇게 시야를 막은 후 직접 머리를 부수는 것이다.

    머리가 깨진 사마귀를 뒤로 밀면서 자신도 뒤로 크게 물러났다.

    동시에 창을 빼 들었고 왼손에 들려 있는 바위도 던져 버렸다.

    빠각!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운이 좋게도 던진 바위가 사마귀의 머리에 맞으면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곧 일어날 것 같긴 했지만, 이제는 근접전으로 진입해야 할 때였다.

    한 마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진입한다는 건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빠각!

    창을 휘둘러 흉포 사마귀의 머리를 강타했다.

    1,000번이나 싸우다 보니 무기에 마력을 담는 것에 대한 감이 생겼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무기가 부러지는 건 방지할 수 있었다.

    그 후 바로 자세를 다잡아 양손으로 창을 잡고 강하게 내질렀다.

    힘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몇 번 없던 느낌이었다.

    빠각!

    창이 흉포 사마귀의 머리를 꿰뚫는 순간 머리 파편이 총에 맞은 듯이 흩어졌다.

    덕분에 별 저항 없이 창을 회수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흉포 사마귀의 수는 9마리, 뒤에 쓰러져 전투 불능인 녀석들은 수에서 제외했다.

    “신체 소(小) 강화.”

    슬슬 신체 강화의 시간이 끝나가던 때라 다시 한번 걸어주었다.

    그러면서 뒤로 한 번 더 크게 물러났다.

    이번에도 쓰러진 흉포 사마귀에 걸려 다른 녀석들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흉포 사마귀를 이길 키워드는 바로 거리 조절이었다.

    공격 수단인 칼날이 6개나 있는 흉포 사마귀를 상대로 안으로 파고든다면 절대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공격 수단이 머리와 수직에 있는 신체 구조상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머리를 박살 내는 방식으로 처리하기 편했다.

    푸욱!

    이번엔 창이 그대로 머리에 박혀 버렸다.

    쉽사리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흐읍!”

    양다리로 축을 잡은 후 팔에 힘을 주어 사마귀의 사체와 함께 창을 옆으로 휘둘렀다.

    창에 마력을 둘러 쉽게 부러지진 않았다.

    다른 사마귀들은 휘두르는 창과 사마귀 사체에 휘말려 옆으로 굴렀고 창에 꽂힌 사체가 날아가면서 창에서 뽑혔다.

    사마귀의 체중을 이용해 뽑는 방법도 나름 편리했다.

    힘의 효율이 안 좋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기술이 부족하면 몸이 고생해야 한다.

    다시 뒤로 물러났다.

    남은 사마귀 수는 8, 거기에서 쓰러져 있던 녀석이 합류해 다시 9마리.

    태운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참 다행이다.

    흉포 사마귀 녀석들이 학습 능력이 없다는 것이.

    * * *

    “으아아아!!!”

    마지막 흉포 사마귀에게 창을 던져 죽였다.

    7번째 흉포 사마귀가 한 번에 죽지 않아 패턴이 망가져 개싸움이 되었었다.

    그 이후로는 오로지 자신의 감에 의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창을 아래로 휘둘러 사마귀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든가 창대를 반쯤 꺾어 한 번에 두 마리를 처리한다든가 하는 과감한 공격까지 했다.

    결국에는 마지막 녀석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바위로 마지막 녀석의 머리통을 부숴 확인 사살을 한 후 창을 뽑아 전투가 있던 곳에서 멀리 떨어졌다.

    멀리 떨어져 주저앉아 쉬기 시작했다.

    경계는 풀지 않은 채였다.

    또 어떤 녀석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상태로 몇 분 기다리니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의 생존 욕구’를 충족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꿈에서 깨어났다.

    “깼다….”

    깨어난 태운의 손등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스탯 ‘변이된 마나’가 ‘1’ 올랐습니다.]

    [스탯 ‘근력’이 ‘6’ 올랐습니다.]

    [스킬 ‘필사의 창술’을 획득합니다.]

    [스킬 ‘마정석 흡수’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태운의 손에 들려 있는 마정석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선 더는 특이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정석이 내어주는 미션에 성공하자 조금 투명도가 있는 평범한 돌이 되어 버렸다.

    마정석 흡수에 성공한 것이다.

    생존에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그동안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뭔가 허전하네.”

    생각해 보니 마정석을 흡수할 때와 같은 고통은 없었다.

    성공하면 성취감 때문에 기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니 그저 허전한 느낌만 들었다.

    별 감상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명 기쁘고 지금까지 견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저 차분할 뿐이었다.

    “성공했구먼. 마지막은 정말로 대단하더군. 어찌나 필사적인지….”자하르가 기계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자하르는 태운이 생존에 성공했다는 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영상으로 담는다고 해도 거의 100배속에 가깝다.

    원래 속도로 보려면 수십일 밤낮을 새워야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정보일 것이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내용을 보기는 무리가 있다.

    그때 자하르가 답을 주었다.

    “다른 기계에 들어가서 네 기계랑 연동했단다.”

    “그게 무슨 의미예요?”

    자하르가 어려운 단어를 주욱 늘여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태운이 알아듣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자 자하르가 한숨을 쉬었다.

    “이걸 학생이 이해할 순 없겠지. 뭐, 쉽게 말하면 1인칭으로 4D 체험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라. 그편이 정확하겠군.”

    “실시간으로요?”

    자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안 빠지고요?”

    “그건 아니다만. 자료 정리를 하려고 50번쯤 빠진 것 같군. 조수 놈들이 하고 있긴 했지만 영 속도가 안 나와서…. 쯔쯧”그러자 밖에서 억울함을 동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거라고요! 저 오히려 빠른 편인데….”“1분에 한 시간짜리 영상 정보를 정리하라는 게 무슨 사람이 할 짓이랍니까!”조수는 총 4명이었다.

    자하르 모로조프의 조수를 할 정도이니 세계에서 톱급 연구원일 것이다.

    그런 인력들이 엄청난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의 모발과 건강에 명복을….’

    태운은 조용히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 * *

    [강태운]

    LV:1

    마나 총량:10

    체력(21) 근력(26) 민첩(19) 유연성(17) 지력(32) 변이된 마나(2) 관찰력(19)

    특성

    변이된 마력(LV.M)

    스킬

    마정석 흡수(LV.4)[S]

    마정석 저장(LV.2)[S]

    상급 마법(LV.4)

    초급 검술(LV.9)

    필사의 창술(LV.1)[S]

    평생 오르지 않을 것 같던 변이된 마나 스탯이 어제 그 특별한 마정석을 흡수하자 올랐다.

    마정석이 보여준 허상에서 본 것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단순히 허상일 뿐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된 것인가.

    만약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나는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이 나오는 것은 없었다.

    이럴 땐 마법 수식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태운은 모아둔 최하급 마정석을 가지고 아지트로 향했다.

    아지트란 지하에 있는 훈련 시설을 의미한다.

    찬영과 상의한 끝에 그냥 아지트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편이 부르기도 편했으니까.

    아지트에 도착하니 이미 안에서는 찬영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 왔다.”

    “오늘은 좀 늦었네?”

    “심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와서 말이지.”“아, 그거냐? 자하르 모로조프? 그 사람 연구소 간다고 했잖아. 거기서 무슨 짓을 당한 거냐?”“몇 시간 만에 수백, 수천 시간 동안 싸우기만 했다면 이해가 되려나?”

    “그게 뭔 소리냐?”

    “그럼 몇 시간 만에 천 번 정도 죽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아니, 뭔 소리냐니까?”

    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튼 찬영아, 우리 대련 좀 해볼까?”

    “대련? 좋지. 뭐로 할 건데?”

    “창으로 해보자.”

    “창?”

    찬영은 최근 실기 연습을 대비해 창술을 상급까지 끌어올렸다.

    그 이후로 자신과 창으로만 싸워 1분 이상 버틴 사람은 익스퍼트 내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찬영에게 창술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과목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태운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또 그게 기대되기도 했다.

    “창은 나무면 되겠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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