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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화 (2/379)
  • 2화

    * * *

    태운은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집은 나름 잘 지어진 아파트 2층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이 제법 많았다.

    “오빠, 왔어?”

    집에 들어온 그를 맞이하는 건 태운의 2살 아래 동생인 강윤아였다.

    “응, 저녁은?”

    “오빠랑 같이 먹으려고 안 먹었는데.”

    참 마음씨가 고운 여동생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하나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혹시… 네가 만든 거?”

    “응!”

    “해맑은 표정 짓고 독약을 먹이려고 하다니… 독사 같은 것.”

    “뭐라고?”

    윤아는 오빠인 태운이 봐도 훌륭한 여자였다.

    외모도 그만하면 또래 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을 법했고 공부도 잘했다.

    태운을 보고 배웠는지 그 나이대의 아이들치곤 경제 관념도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하지만 아주 큰 결점이 하나 있었다.

    “네가 만든 음식을 볼 때마다 경이로워.”

    집에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 그리고 소금, 설탕 정도의 재료들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파란색의 국물을 만들어 내는지….

    혹시 몰래 연금술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 물어봤더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너는 요리 잘하는 남자랑 결혼해라. 그리고 결혼 생활이 잘되길 바란다면 요리는 절대 하지 마.”

    “왜?”

    “알잖냐. 요리는 남자가 해도 돼. 굳이 네가 할 필요 없다.”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은 집에서 차려주는 밥은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음식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차라리 안 먹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평 없이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동생의 음식을 맛보고 그걸 암살 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암튼 오늘 저녁은 너 혼자 먹어야 할 것 같아.”

    “갑자기 왜?”

    “나는 지금 밖에 나가야 할 것 같아서.”

    태운은 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의 방으로 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 중 50만 원을 챙겼다.

    현관으로 나오니 여동생이 물었다.

    “돈은 왜? 헐, 50만 원씩이나?!”

    평소에 돈을 그렇게 아껴 쓰던 오빠가 갑자기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그동안 태운과 같이 지내온 동생인 윤아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겨서 말이야.”

    “뭔 일인데? 확실하게 필요한 데 쓰는 거 맞지?”평소 태운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엄한 데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오빠는 뭔가 좀 달랐다.

    “응, 확실히 필요한 곳에 쓰는 거 맞아.”

    “흠… 오케이, 대신 올 때 내가 먹고 싶은 거 사와.”“뭐, 네가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냐. 관상을 보아하니 딱 봐도 오늘은 기묘 떡볶이 순한 맛을 먹고 싶어 하는구나.”

    “헉, 어케 알음?”

    “다 방법이 있지. 그럼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가려는 찰나,

    “참, 윤아야. 내 오른 손등에 이거 흉하게 생겼나?”손등의 문신이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이나 궁금했다.

    그의 눈에는 참 멋있어 보였다.

    “왜? 상처라도 났어? 멀쩡한데?”

    “어? 여기 문신 안 보여?”

    “문신은 무슨, 그냥 평소랑 똑같은 손등인데.”

    “그, 그러냐?”

    “뭔 일 있어?”

    “아냐. 그냥 어떤가 해서.”

    “뭐라는 거야. 빨리 떡볶이 사 가지고 돌아오기나 해.”태운은 현관 앞에서 마중하는 윤아에게 손을 흔들며 집 밖으로 나갔다.

    “이게 다른 사람한테는 안 보일 줄은 몰랐네.”태운은 의아해하며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요 근처에 있는 마정석 창고 있죠? 거기로 가주세요.”

    “이 늦은 밤에? 학생이 참 부지런하네.”

    마정석 창고는 마정석을 파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십만 개의 마정석이 쌓여 있다.

    그것을 분류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아… 예, 감사합니다.”

    “하여간 인생이 쉽지만은 않더라고… 우리 아들놈은….”하며 택시 기사는 자신의 한탄을 쏟아냈다.

    그 말에 태운은 적당히 대꾸해 주며 기다리자 곧 마정석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8시.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창고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늦게까지 남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가장들 때문이었다.

    태운은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창고 사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안에서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사람이 딱딱한 말투로 말하며 나타났다.

    “마정석을 사려고 왔는데요.”

    “손님이네. 뭐 줄까?”

    창고의 소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태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교복을 보니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그 때문에 소장은 별 의심 없이 넘어갔다.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마정석으로 실험을 하기 위해 사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하급, 하급 마정석은 그리 위험한 물건이 아니었다.

    위험성으로 따지자면 부탄가스 쪽이 더 높았다.

    마정석은 폭발하기 쉬운 물건도 아니었고 안에 담긴 힘이 특별하거나 강한 것도 아니어서 가격도 매우 쌌다.

    “최하급 마정석 한 박스에 얼마인가요?”

    “한 상자 100개에 10만 원이란다.”

    “5박스 주세요.”

    “막내야! 최하급 5박스!”

    소장이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네” 하는 젊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정석 5박스를 들고 나타난 남자는 태운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혹시… 구찬영…?”

    이런 곳에서 같은 아카데미의 학생을 만나다니.

    게다가 구찬영은 스타지에르 과정을 수석으로 마무리하고 이수하는 데 평균 2~3년은 걸린다는 챌린저 과정을 1년 만에 패스했다.

    현재 그는 익스퍼트 골드 A반 3위를 유지 중인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혹시 강태운이니? 여기서 다 만나네.”

    “나 기억해?”

    태운은 구찬영이 자신을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찬영은 2년 만에 익스퍼트 등급으로 승급한 초엘리트로 유명했지만 태운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음…. 아닌가, 열등생으로 유명하려나.’

    그때 구찬영이 태운에게 말했다.

    “재작년에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아, 그랬지.”

    구찬영의 능력 탓에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구찬영이 입학 당시만 해도 브론즈 C반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장이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개화해 마나량이 늘어나고 신체능력을 강화하기 전까진 별로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 많은 마정석은 어디에 쓰려고?”

    “아, 실험하는 데 필요해서.”

    “오호, 무슨 실험인데?”

    “뭐… 그냥 여러 가지.”

    그러면서 급하게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실험을 떠올렸다.

    핑계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5박스”

    다행히도 찬영은 더 캐묻진 않았다.

    “50만 원이지?”

    “어, 팔아줘서 고맙다. 혼자 들고 갈 수 있어?”

    “택시 타고 가면 돼.”

    “아, 오케이. 잘 들어가고.”

    태운은 재빨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밤은 엄청나게 바쁠 것이었다.

    500개에 달하는 마정석들을 전부 흡수해야 하니까.

    * * *

    “아아악!”

    “오빠 무슨 일이야!”

    비명을 들은 윤아가 태운이 사 온 기묘 떡볶이를 먹다 말고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허억… 허억!”

    기대감에 차서 깜빡했었다.

    보건실에서 마정석을 흡수했을 때 느껴지던 엄청난 고통을 말이다.

    그때보다는 고통이 덜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고통임은 분명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뼈가 한두 군데 빠졌다가 붙는 느낌.

    “겁나 아프네….”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여전히 윤아는 태운의 방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침대 밑으로 마정석들을 숨겨놓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소리는 왜 지르고 그래. 어디 아픈 거야?”“멀쩡해. 침대 모서리에 발등 찍혀서 그런 거야.”“하여간 멍때리고 다니니까 맨날 어따 박고 다니지.”

    “너는 어디 안 부딪히냐….”

    “암튼 난 이제 잘 거니까 어디 부딪힐 거면 입에 수건이나 물고 부딪혀. 소리 질러서 나 깨우지 말고.”그녀는 그러고는 넌지시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서 연고를 주고 다시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는 떡볶이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하여튼….”

    태운은 그녀가 주는 연고를 받아들고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뭐야, 이거 화상 연고잖아. 침대 모서리에 찧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태운은 연고를 책상 위에 두고 다시 마정석을 꺼냈다.

    “후… 진정하자. 어차피 진짜 다치는 것도 아니고, 참을 수 있… 아니, 안 아프다… 안 아프다….”태운은 마정석을 한 움큼 쥐었다.

    대충 10~13개 정도의 마정석이 손에 들어왔다.

    긴장을 풀기 위해 몇 번이나 심호흡하고 옆에 걸려 있던 수건을 둘둘 말아 자신의 입에 끼워 넣었다.

    ‘후… 마정석 흡수’

    “우으으으웁!!!”

    ‘마정석 흡수!’

    “우으으읍!!”

    “마정석 흡수!”

    태운은 그렇게 3번 마정석을 흡수했을 때,

    [체력이 1 증가합니다.]

    [근력이 1 증가합니다.]

    “좋았어!”

    태운은 바로 상태창을 불러왔다.

    3이었던 근력과 체력이 정말로 1씩 올라서 4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고통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뿌듯함만이 남아 있었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서 전부 가자!”

    “오빠, 시끄럽다고!!!”

    “좋아… 가자…!”

    윤아도 그렇고 슬슬 윗집 아랫집에서 찾아올 때가 된 것 같기에 태운은 다시 입에 수건을 물었다.

    * * *

    “오늘은 전투 훈련이다. 각자 준비운동을 확실히 하고 20분 뒤에 이곳으로 모이거라.”

    “전투 훈련….”

    오늘은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전투 훈련이 있는 날이다.

    태운을 제외한 학생들은 전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곧 닥쳐올 고통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시작은 고립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와 만났을 때의 대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교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태운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느 참고서든 적혀 있는 내용일 텐데….’이것만으로도 왜 C반 학생들이 C반에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1년 만에 깨달은 바로는 재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C반이었다.

    전투 과목 교사인 허덕륜이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태운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강태운, 뭐지?”

    “최대한 부상을 피하는 동작으로 움직이며 몬스터의 움직임이나 시야를 봉쇄할 방법을 찾아서 최대한 빨리 도망칩니다.”

    “정답이다.”

    허덕륜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는 태운이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서 가장 신뢰하는 교사였다.

    중년인 그는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지만 젊은 교사들보다 훨씬 열정이 넘쳤다.

    전직이 헌터여서 그런지 5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근육이 우락부락한 그는 태운에게 항상 근력을 키우라는 말을 했었다.

    맞기도 엄청나게 맞았었다.

    ‘처음에는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나 싶었지….’하지만 태운은 곧 알 수 있었다.

    그가 정말로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을.

    아카데미의 교장이 태운을 퇴학시키려는 것을 그가 막아주었고 언젠가는 성과를 낼 거라며 다른 교사들을 설득하고 다닌 것까지.

    모두가 포기하라는 말을 던질 때 그만큼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해보라며 등을 떠밀어주었다.

    태운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건 그의 조력 덕분이기도 했다.

    허덕륜이 미소를 감추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 무엇이지?”

    “라이트 그레네이드 마법입니다.”

    학생 중 한 명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라이트 그레네이드는 빛의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으로, 몬스터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봉쇄하는 데 사용된다.

    틀린 대답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답도 아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동굴형 던전 같은 어두운 던전에서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라이트 그레네이드는 초급 마법 중에서 가장 상위 마법에 속한다. 그만큼 마나도 상당히 많이 들지. 혼자 고립된 상황에서 쓰기 적합한 마법이 아니다. 강태운?”“가장 많이 쓰이는 법은 그로우 마법입니다.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중 ‘광란의 씨앗’을 몬스터의 근처에 던진 후 그로우 마법을 사용하면 광란의 씨앗에서 나무줄기가 자라나면서 몬스터의 움직임을 봉쇄합니다. 참고로 광란의 씨앗 가격은 300만 원입니다.”작은 콩알 하나에 300만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 비싸다고 생각되겠지만 목숨값으로는 싸게 먹히는 편이다.

    “정답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든 쓰려면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첫 공격에 머리통이 날아가면 다 부질없는 짓이지. 그런 의미로 시작은 야구공 피하기다.”

    “야구공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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