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211화 (21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마지막 회)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리가 하늘로 도망친다고 해서 놈들이 뒤쫓지 못할 거라는 어설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놈들은 흑야 사태 당일에 12km 지저 세계에서부터 싱크홀을 뚫고 지구의 대기권까지 날아오른 놈들 아닌가.

    오히려 끈적한 타르 덩어리 같은 형태로 불편하게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물속이나 공기 중을 헤엄치듯 비행하는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게다가 놈들은 지상에서 고위력의 물리적인 파괴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고고도 특유의 낮은 기압과 영하 기온에서 버틸 수 있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지상과 달리 고고도로 올라갈수록 태양 에너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즉시 순도 높은 고에너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야말로 놈들이 가진 생명력의 원천이요, 광기 어린 집착의 원흉이니.

    마치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장작을 태워 원시적인 열에너지를 얻고, 석탄을 태워 증기 에너지를 얻고, 핵분열을 통해 막대한 양의 전기 에너지를 얻으며 끝없이 발전해 왔던 인류와 비슷하다.

    인류도 에너지의 효율과 위대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발전을 꾀하였으며, 마침내 신의 영역을 넘보기에 이르렀으니까.

    어쩌면 우리와 저들의 차이점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내세우는 평화라는 대의명분도, 놈들이 내세우는 평화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우리는 놈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평화를 얻고, 놈들은 우리를 배제하고 무한 동력 기관을 취하는 것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서로 방식만 다를 뿐이지 추구하는 방향성 자체는 비슷한 셈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이란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생존을 추구한다.

    태양조차도 수십억 년 후에는 사라질 운명일진대, 무한 동력 기관은 문자 그대로 무한하며 영원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삶의 한계가 정해진 생물이 삶의 한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자유.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단어.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은 추구하는 자유도 다르고, 때로는 자신들의 자유가 상대의 자유를 위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은 푸른 행성에서도 싸움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지독한 생존 경쟁을 반복해 왔고, 그 결과가 지금에 이른 것뿐이다.

    우리는 지금 생존 경쟁의 결승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여기는 이글 1, 지금부터 항공 호위 작전을 전개하겠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전투기 편대장의 목소리에는 약간이지만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가볍게 음속을 돌파하는 최신예 전투기를 타고 상공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그들이지만, 거의 벌레 떼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머릿수를 자랑하는 타르 덩어리들의 기세는 무심코 겁을 먹을 만했다.

    수송기는 성공적으로 이륙해서 안정적인 비행 궤도에 들어섰지만, 수송기 특성상 속도가 느린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 타르 덩어리들이 수송기를 맹렬하게 추격하고, 수송기는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최단 루트로 남하했다.

    남해까지만 나가면 된다.

    남해까지만 나간다면…….

    꽈아아아앙!

    드드드드드드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기가 쏜 미사일이 폭발을 일으키고, 타르 덩어리들이 폭압에 완전히 분해되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수송기 내부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기 때문에 데인저 클로즈에 주의하라고 연신 경고를 날렸다. 물론 이런 얘기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상황이라는 건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당장 수송기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을 떨쳐 내려면 버드 스트라이크처럼 미사일을 정면으로 박아 넣어서 폭압으로 떨쳐 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전투기가 어지럽게 수송기 주위를 휙휙 지나가며 추적자들에게 20mm 기관포를 발사한다.

    최신예 전투기일수록 기관포보다는 추적 미사일과 JDAM(GPS 유도 폭탄)을 사용하는 경향이 더 많다고 들었는데, 파일럿들은 지금쯤 2차 세계대전 한복판으로 회귀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으리라.

    그만큼 하늘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은 진흙탕처럼 느껴질 만큼 치열했다.

    미사일을 진즉에 다 소모한 전투기들은 후속 편대가 도달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추적을 늦추기 위해 기관포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물러섰다.

    하늘에서 쉴 새 없이 고기동을 펼치느라 준비 시간이 2개월밖에 없었던 파일럿들의 육체적 피로도가 상당했을뿐더러, 안 그래도 부족한 연료가 급속도로 소모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이라크를 신나게 두들겨 팰 때처럼 한가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미사일을 쏘고, 항공폭탄을 떨구는 시대가 아니다.

    하늘을 제집 안방처럼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놈들로부터 수송기를 보호하기 위해 베테랑 파일럿들이 고기동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놈들이 무한 동력 기관을 손에 넣는 순간 인류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걸 다들 아는 거다.

    하다못해 인류가 지난 10년간 지저 도시 프로젝트가 아니라 달이나 화성 진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떠난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무조건 놈들을 지구로부터 내쫓아야 한다. 에너지는 무한하지만 내구도는 아마도 무한하지 않을 이 애물단지를 태양에 던져서 없애야 한다.

    곧 할 일을 끝낸 선행 편대가 복귀하고, 후속 편대가 자연스럽게 수송기의 호위로 합류했다. 남해에서부터 등장한 호위기들은 지금껏 이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는 듯, 처음부터 거칠게 도그파이팅을 시작했다.

    놈들에게 정면으로 달려들며 기관포를 미친 듯이 흩뿌리고, 추가로 놈들의 무리 한복판에 미사일을 꽂아 넣으면서 아슬아슬한 궤도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개중에는 운이 없는 기체도 있었다.

    우리가 수송기 내부에서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때, 무전기로 호위기 중 1기가 놈들과 충돌해 파괴, 다른 1기는 기관포와 맞먹는 위력을 자랑하는 검은 가시에 날개가 파괴당해 추락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최신예 전투기가 하늘에서 ‘생물’에게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법도 하건만, 호위기 파일럿들은 별다른 불평불만이나 패닉에 빠지는 일 없이 묵묵히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속행했다.

    저 타르 덩어리들의 비행 속도가 전투기에 비견될 정도로 빠른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느려 터진 수송기를 간신히 쫓아올 수 있을 정도.

    문제는 놈들의 수가 워낙 많은 데다, 놈들이 쏴 대는 검은 가시의 위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강했다는 점이다.

    텅! 텅! 텅!

    두꺼운 수송기 동체를 거칠게 두드리는 진동음이 느껴진다. 기어이 전투기들의 화망을 뚫고 수송기에 유효한 타격을 입히는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수송기 동체가 조금씩이지만 타격을 받고 있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착륙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최악의 경우 수송기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공중에서 화물을 들고 낙하하면 돼.”

    만일의 만일에 대비해서 이미 무한 동력 기관이 보관되어 있는 특수 케이스에 화물용 낙하산까지 설치해 두었다.

    물론 상황이 거기까지 내몰리면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는 실패하겠지만, 이렇게 대비라도 해 두지 않으면 마지막에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다행히 수송기는 남해를 통과해 일본 영공에 진입, 구마모토의 서쪽 방면에서 곧장 남하했다. 그 말인즉슨 드디어 호위기들뿐만이 아니라, ‘진짜’ 호위를 받을 수 있는 영역까지 진입했다는 뜻이다.

    “수송기 고도가 낮아지고 있어.”

    “미 7함대의 방공 호위를 받아야 하니까.”

    우리는 한층 더 굳은 얼굴로 특수 케이스에 바짝 붙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반드시 화물만은 챙겨서 낙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온다.’

    퍼퍼퍼퍼퍼퍼퍼펑!

    수송기가 고도를 낮추자 자연스럽게 타르 덩어리들 역시 고도를 낮췄고, 구마모토와 다네가시마 앞바다에서 매복 중이던 미 7함대가 모든 방공 전력을 동원했다.

    가장 앞서 나가는 수송기에 적중당하지 않도록 GPS와 AI의 동시 연산을 통해 탄도와 착탄 좌표를 계산하고, 타르 덩어리들에게만 가장 확실하게 피해를 입힐 수 있게끔 거미줄 같은 화망이 형성되었다.

    바다에서부터 쏘아져 올라온 무수한 기관포와 크루즈 미사일들이 놈들의 추적을 저지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푸른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만큼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긴급 착륙에 대비해 주십시오.

    내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기장의 긴장된 목소리에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네가시마우주센터 활주로가 코앞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수송기의 고도를 일찍 낮춘 이유는 미 7함대의 방공 엄호를 받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착륙을 좀 더 빠르고 스무스하게 하기 위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이미 다네가시마우주센터와 활주로 인근에도 배치된 병력들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모두 이 작전을 위해 동원된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미국인들이니까.

    최진석도 작전 당일 서울까지 직접 돌아와서 나를 호위하기 위해 다네가시마우주센터 복구와 방공망 형성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안색을 살펴보면 두려움 반, 자신감 반이었다.

    그만큼 지난 2개월간 악착같이 준비했다는 뜻이겠지.

    “인상 펴. 자신 있으니까 너도 날 호위하러 온 거 아냐.”

    “……솔직히 여기까지 작전이 진행된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적이면 뭐 어때.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다면 다 좋은 거지.”

    미 7함대의 방공 호위가 끈덕지게 따라붙고, 다네가시마에 배치된 병력들의 호위도 자연스럽게 바통을 넘겨받듯 이어졌다.

    수송기가 착륙하는 것을 느낀 우리는 최종적으로 점검을 끝마친 엑소스켈레톤에 탑승했다. 이번에는 나도 외골격 파츠를 집어던지고, 내 전용으로 개발된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했다.

    실로 오랜만에 착용하는 군용 엑소스켈레톤의 느낌에, 나는 3년 전 그날, 중장갑수색대의 일원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소 덜컹거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착륙에 성공한 수송기의 화물칸 입구가 열렸다.

    수송기가 착륙할 때부터 이미 따라붙고 있었던 수송 차량이 곧장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화물부터 실어! 사람보다 화물이 더 중요해!”

    미군들이 수송 차량의 덮개를 열어 주자 알파 대원들이 특수 케이스를 들어서 통째로 실어 옮겼다.

    잠깐 살펴본 활주로는 이미 난장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수송기를 따라 하늘에서 낙하한 타르 덩어리들이 군인들과 정면에서 맞붙기 시작했고, 군인들 역시 사력을 다해 놈들을 밀어붙였다.

    강 대 강으로 맞붙는 상황 속에서 폭음과 비명 그리고 하늘로 비산하는 붉은 피와 검은 점액질.

    지금 이곳에서 두 종족이 생존의 권리를 걸고 맞붙고 있었다.

    “최 뱀, 브라보 원! 먼저 가십시오!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미 7함대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놈들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활주로를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는 놈들의 기세가 좀처럼 죽을 생각을 안 한다.

    나와 최진석은 수송 차량 위에 올라타서 혹시 모를 놈들의 접근에 대비했다. 남은 군인들은 모두 후방에 남아, 로켓이 발사되기 직전까지 놈들을 저지하기로 이미 합의를 끝마친 듯했다.

    또 누군가가 희생을 자처하고, 내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희생자 명단에 올라가는 이름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설픈 감수성에 빠져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기 때문이다.

    “출발해!”

    탕탕! 내가 차량 지붕을 두들기며 외치자 수송 차량이 급발진을 했다.

    저 앞, 활주로 끝에 보이는 로켓 발사대에는 이미 최종 발사 시퀀스를 앞둔 로켓이 대기 중이었다.

    연료 주입은 진즉에 끝났을 것이고, 최종적으로 시스템 점검과 로켓의 비행 궤도 계산 같은 것을 하고 있겠지.

    우주센터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의 잔뜩 굳은 표정들이 이쪽에서도 훤히 보일 지경이다.

    “위쪽 8시 방향!”

    최진석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엑소스켈레톤을 움직여 총구를 겨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일 정도로 엑소스켈레톤이 나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며, 경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수송 차량을 향해 운석처럼 곧장 떨어지고 있던 놈이 경기관총의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허공에서 박살 났다.

    이곳은 지옥이다.

    하늘에서 불벼락처럼 떨어지는 타르 덩어리들과 그걸 막기 위해 총열이 녹아내릴 정도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군인들.

    거대한 해일이나 폭풍 같은 규모로 몸집을 키운 타르 덩어리가 한 번 지상을 휩쓸면, 그곳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군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간혹 무리를 이룬 놈들 속에서 터져 나온 폭발은 집어삼켜진 군인들이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수류탄이었을 것이다.

    “전방! 전방에도 놈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내가 처리할 테니 넌 후방이나 신경 써!”

    최진석에게 후방을 맡긴 나는 차량보다 한발 앞서서 전방에 낙하한 놈들을 처리했다.

    한 손에는 유탄발사기, 다른 한 손에는 경기관총을 들고서 미친 듯이 총구와 눈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유탄에 맞아 폭사한 놈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놈들이 간혹 있었지만, 놈들은 튼튼한 차체와 두꺼운 장갑을 자랑하는 수송 차량의 돌진력을 버텨 낼 힘이 없었다.

    차량에 바짝 들러붙어 무임승차를 시도하려는 놈이 있으면, 코끼리도 한 방에 때려죽이는 강력한 주먹으로 두들겨서 떨쳐 냈다. 확실히 외골격 파츠만 착용하는 것과는 급이 달랐다.

    엑소스켈레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라, 마치 부모의 품속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어쩌면 이걸 위해서 그토록 많은 피를 묻히고, 전우들의 시신을 밟으며, 숱한 전장을 헤쳐 나왔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로 옆에 있는 최진석이 뭐라고 외치는지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수송 차량이 로켓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 그만큼 적들의 추적도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외적 정보였다.

    “H-III(3) Heavy 로켓은 이론상 10톤 이상의 화물을 여유롭게 적재해서 달 탐사기지까지 실어 보낼 수 있지만, 무한 동력 기관 하나만 실어서 쭉 날리는 것이라면 스윙바이(swingby)를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태양까지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ISS(국제우주정거장)의 생존자 그룹에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비상시 원격 제어를 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이미 그쪽으로 시스템을 연결……!”

    누군가가 정신없이 설명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수송 차량이 로켓 근처에 도착하고 난 이후에도 나와 최진석은 우주센터 방위 부대에 합류해 적들의 진입을 최대한 막느라 애를 썼기 때문이다.

    우주센터 직원들에 의해 무사히 무한 동력 기관이 로켓에 적재되는 것을 확인하고, 무전기와 스피커를 통해 로켓 발사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을 들었다.

    타타타타타!

    10.

    쾅! 쾅! 드르르르르륵!

    9.

    놈들이 우주선에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해!

    8.

    막아! 몸으로라도 놈들의 접근을 막아!

    7.

    먼저 간 사람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면 안 된다.

    6.

    내가 뭘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잊어서도 안 된다.

    5.

    내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끝없이 떠올려야 한다.

    4.

    우리가 생존 경쟁에서 패배하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3.

    그러니 부디 나를 위해 죽어 다오.

    2.

    내게 자유를 다오.

    1.

    이 모든 사태가 그저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게 해 다오.

    0.

    이제 날아오르기 시작한 로켓을 따라 너희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어라.

    ―발사.

    나는 이 역사의 한 장면을 ‘딥 인사이드 아웃’이라고 부를 테니.

    “…….”

    나는 순식간에 하늘 위로 솟구치는 초대형 로켓과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검은 타르 덩어리들을 올려다보았다.

    지구 전역의 하늘을 뒤덮을 만큼 어마어마한 군체를 자랑했던 놈들이 로켓 하나를 따라 우주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만한 광경이었다.

    “그대로 날아가라.”

    가서 너희 스스로 모든 것을 끝내라.

    너희가 그토록 좋아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태양 중심으로 뛰어들어라.

    그렇게 공허하고 차가운 우주에서, 뜨겁게 고통받으며 죽어라.

    “그게 너희가 인류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죄다.”

    나는 이 마지막 녹음 기록을 디그러쉬제 녹음기에 담아냈다.

    에필로그

    솔직히 흑야 사태가 벌어질 때만 해도 우리가 다시 밝은 태양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또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때로는 함께 슬퍼하며 고통을 나누었던 옆 사람이 복구된 현충원에 묻히고, 미래의 내가 그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한단 말인가.

    사람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들 필사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지 않고, 오답투성이인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충실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노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로운 현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미래를 포기했을까.

    그들이 포기했던 미래를 무사히 넘겨받아 어렵사리 현재에 안착시킨 것은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이 끝난 시점에서 세상은 너무 많이 망가져 있었고, 70억 인구 중 살아남은 인류는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니까.

    사회 안정화에 참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자본이 동원되었다.

    불필요한 찌꺼기는 걷어 내고, 새 시대를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흐름을 주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프라를 복구하고 사회 시스템을 재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인류는 지난 사태로 서로의 빈 자리를 뼈저리게 느끼고, 더욱 가깝게, 더욱 친밀하게 뭉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총성 한 번 없이 인류 대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총성이 터진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희생자가 나오긴 했지만.

    나는 오랜 시간 끝에 명예를 되찾은 1천 명가량의 중장갑수색대 전우들 그리고 다네가시마우주센터 공방전에 참전했던 국군 장병들이 묻힌 현충원에서 조용히 묵념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군인들에 대한 예우나 처우가 언제나 개차반이었던 것은 인정한다.

    부끄럽게도 수많은 권력자들이 너희와 우리 같은 군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일이 끝나면 입을 싹 닫곤 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부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약속할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잊지 않았고, 사회가 너희를 잊지 않았기에 올바른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누구도 너희들의 숭고한 희생을 욕보이거나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 찾아올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서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득을 챙기기 위해 형식적으로만 현충원에 방문하는 이들을 말한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동안은, 그 이후에도 너희의 노고와 헌신이 배신당하는 일은 없으리라 약조한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비석에서 돌아선 나는 조용히 자리를 지켜 주었던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여동생은 고등학생 시절의 앳된 티를 벗어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어머니는 가정 내 근심 걱정을 덜어 내 한층 더 푸근해지셨다.

    나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빳빳한 제복의 옷깃을 매만지며, 어색한 미소로 가족들과 마주했다.

    가족들은 내게 제복 차림이 썩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었지만, 반쯤 농담조로 들려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제복을 입어야 하는 인간이 제복 차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에 비하면 훨씬 낫다.

    기억소거제를 주입당하고, 수많은 전우들을 잃고, 세상이 썩어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분명 나아졌다.

    마침내 나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깊고 깊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빛 아래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나는 깊은 자유를 만끽하며 가족들과 함께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딥 인사이드 아웃.

    자서전 제목으로는 꽤 괜찮을 것 같다.

    THE END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작가G입니다.

    《딥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완결에 이르렀네요. 새삼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습니다.

    각설하고, 딥 인사이드 아웃은 완결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된 제목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깊은 수렁 속을 기어 다니는 듯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인공이 마침내 그곳에서 벗어나 최종적으로 자유를 얻는 것.

    중장갑수색대 일원으로서 전우들과 함께 깊은 땅굴 속으로 들어가 미지의 적들과 싸우고, 마침내 지상으로 탈출하는 것.

    오랜 시간 동안 12km 아래 지저 세계에 갇혀 있던 존재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빠져나오게 되어 지구 전역을 인위적으로 지저 세계처럼 만들어 버린 것.

    무한 동력 기관이 실린 로켓을 따라 지저 세계에서 비롯된 존재들이 끝내 우주 바깥까지 방출되는 것.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결국 모든 떡밥과 숨은 의미들을 극한으로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는 ‘딥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제목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나타내는 장르도 꽤 많이 섞이게 된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포칼립스, 공포, SF 그리고 휴먼 드라마까지.

    저는 스토리나 떡밥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스토리 전개에만 집중한 글을 쓰는 타입이라, 어떻게든 200화 남짓 되는 분량으로 많은 이야기를 밀도 높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작품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던 모든 독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지금까지 《딥 인사이드 아웃》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G 올림.

    인타임은 재미와 감동으로 엄선된

    장르 소설 출판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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