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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210화 (210/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17)

    ―여기는 폭스트롯 1, 폭격 지점 좌표를 할당받았다. 데인저 클로즈에 주의하라.

    쐐애애애애애애액!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자아내며 미군이 자랑하는 폭격기가 서울 상공을 관통하자 곧이어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폭격기가 휩쓸고 지나간 방면은 서대문구였다. 종로구와 중구에서부터 몰려드는 적들의 진입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한편, 마포구에서 강서구 방면으로 빠져나가려는 우리의 주변을 싹 쓸어버리는 것으로 잠깐 시간을 벌어 주었다.

    나는 무전을 보내 전차의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고, 곧 귀찮은 떨거지들을 어찌어찌 떨쳐 낸 전차가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폭격으로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반드시 한강을 넘어야 한다. 한강을 꽉 채우고 있던 빙판도 반쯤 녹아 버렸기 때문에 대교를 건너지 못하면 놈들에게 다시 발목을 잡힐 게 분명했다.

    수륙양용 기능이 있는 장갑차라면 한강도 둥둥 떠서 건널 수 있겠지만, 문제는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는 놈들이 물속에서도 득시글거린다는 점이다.

    ―여기는 폭스트롯 1, 랑데부 포인트로 터닝하며 한 번 더 폭격할 수 있다. 현장에서 수동으로 폭격 지점 좌표를 할당해 줄 수 있는지.

    “불가능하다! 반복한다, 불가능하다!”

    신경질적으로 무전기에 대고 외친 나는 다시금 기관총좌를 잡고 총구를 돌렸다.

    지상에서 폭격 좌표를 수동으로 할당하려면 특수 레이저 포인터나 연막탄을 사용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쪽에서 수동으로 폭격 지점 좌표를 할당했다간 매우 높은 확률로 데인저 클로즈다. 미사일이든 통짜 항공폭탄이든 한 발 한 발이 운동장 하나쯤은 가볍게 삭제해 버릴 정도의 위력과 폭발 범위를 자랑했으니까.

    결국 최초 1회 폭격 후 별다른 소득 없이 폭격기가 되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미군 측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좀 더 제대로 된 지원을 해 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군이 자랑하는 순항 미사일을 백 발이든 천 발이든 있는 대로 막 쏟아붓는다든가.

    ‘물론 그랬다간 서울이 문자 그대로 불바다가 되겠지만, 지금은 그게 급한 게 아니지.’

    폭격기는 이미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미 7함대 측에서도 선봉대 느낌으로 보낸 폭격기가 각종 현장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면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지원 체계를 구축할 터.

    지금은 최대한 빨리 김포공항으로 가서 수송기에 화물을 싣는 것이 우선이었다.

    무엇보다 하늘의 먹구름 같은 것이 점점 사라지면서 기존의 푸르디 푸른 하늘이 나타날수록 놈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한번 지상에 떨어진 놈들이 다시 하늘 위로 솟아오르려면 아무리 못해도 어떤 제약 같은 것이 있겠지.

    놈들이 그렇게나 에너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당연히 에너지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지구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고, 또 그렇게 축적한 에너지로 지상에 떨어지며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것이다.

    놈들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모하게 만들면서도, 결국 이 무한 동력 기관이라는 미끼에 낚여 지구를 벗어날 수밖에 없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느 쪽이든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마침내 가양대교로 진입한 우리는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검은 타르 덩어리들을 제거하며 강서구 방면으로 나아갔다.

    한강 위로 자유낙하한 놈들이 대교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타고 기어 올라와 우리를 노리는 건 기본이었고, 아예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놈들도 있었다.

    대공차량의 발칸포가 열심히 일해 주고는 있었지만, 차량 한 대로 넓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놈들의 접근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꽈아아아앙!

    결국 예비 물자를 실어 두었던 차량 위로 커다란 타르 덩어리가 떨어지면서 차량이 전복되었다. 운전수와 차량 주변에서 호위하고 있던 몇몇 병사들이 부상을 입긴 했으나,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부상자 빠르게 구출하고 이쪽으로 따라붙어!”

    탄약 보급 차량이 엎어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당황하는 알파 대원들의 정신을 다시 한데 묶은 나는 도로 위에 쏟아진 예비 물자 같은 건 내버려 두게끔 했다.

    이렇게나 급박한 상황에서 쉴 새 없이 총을 쏘다 보면 총구가 과열되거나 해서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그걸 위해서 챙겨 왔던 예비 물자들이다.

    이 아슬아슬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자들이기도 했으나, 바꿔 말하면 우리가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 주면 사용할 일이 없는 물자이기도 했다.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된 순간, 우리는 뒤가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택했다.

    알파 대원들이 직접 나서서 대교 위를 가로막고 있는 폐차량들을 양옆으로 치워 내고, 전차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장애물을 문자 그대로 짓뭉개며 길을 열었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가양대교를 넘는 데만 제법 시간을 소모한 우리는 사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가양동에 들어섰다.

    이제 강서구 땅을 밟았으니 도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김포공항에도 미리 배치해 둔 방위 병력들이 제법 있으니, 그쪽의 지원을 받는다면……!

    “지원군입니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저 앞에서 등장한 기갑차량과 군인들이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는 타르 덩어리들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서울 남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강서구까지 올라온 듯했다.

    대공차량의 탄약은 거의 다 떨어졌지, 알파 대원들의 피로도 역시 매우 높은 상황이지, 이 상태로 김포공항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던 찰나에 이루어진 지원이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는 새로운 호위대의 도움을 받아 포화 속을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확인해 보니, 저들은 한때 롯데호텔에서 여단장의 휘하에 있던 군인들이었다. 내가 시민들과 함께 서울 남부로 이주시켰던 사람들이다.

    ‘선행과 악행은 다 되돌아오는 법이라더니.’

    이제 와서 운명론이라도 믿고 싶어지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후방을 대신 맡아 주기로 한 저들을 지나쳐 김포공항으로 달렸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희생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있어야 하는 법.

    다들 끝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모든 이들에 대한 희생은 오로지 내 책임이며, 그들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도, 경의를 표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내가 저들을 희생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운다고 한들, 희생하는 자들과 그들의 유족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희생을 강요해 온 것이다.

    ‘윗대가리 노릇도 쉬운 게 아니네.’

    내가 윗대가리가 되면 어떤 일이든 기존의 윗대가리보단 훨씬 더 잘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쳤던 것 같은데.

    막상 윗대가리의 위치에 서 보니 그렇게 쉬운 것만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누군가의 일생을 책임진다는 것, 나아가서 사회의 통합과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몹시도 지난하고 힘든 일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갉아 먹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내뱉을 수 없고, 매 순간 그냥 다 때려치우고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이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알량한 사명감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모두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평화를 원하고, 누군가는 헛되지 않은 희생을 원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모든 일을 책임져 줄 리더를 원한다.

    나만이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다, 같은 오만한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능력만 된다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

    나 역시 ‘모두’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고.

    어디에나 있는 흔하디 흔한 사회인이 되고 싶다.

    내 생물학적 아버지처럼 대단한 야망 같은 것도 없고, 자신의 위대함을 세상 만인에게 알리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모든 악연을 끊어 내야만 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는 것이다.

    나답게 살 자유를.

    “공항이다!”

    “공항이 보입니다!”

    “긴장 늦추지 마! 놈들은 절대로 무한 동력 기관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않듯이, 놈들 또한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빛이 필요하다면 놈들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인류가 영원한 번영을 꿈꾼다면 놈들은 영생을 꿈꾼다.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지 않는 상극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극약 처방뿐.

    놈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지, 검은 타르 덩어리가 하나둘씩 합쳐지면서 거인 같은 형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커지면 피탄면적도 그만큼 증가하지만, 그것보다 걸리적거리는 방해 요소들을 무시하면서 우리를 붙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GPS가 복구되지 않은 시점에서 저런 놈이 등장했다면 절망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쒸이이이이,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날아든 미사일이 집채만한 놈과 충돌해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수송기를 호위하기 위해 나타난 미군 전투기 편대가 놈에게 유도 미사일을 처박은 것이다.

    극약 처방을 가진 것은 놈들만이 아니었다.

    “어서 공항으로 들어가! 수송기에 화물을 실어!”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방공대를 비롯한 방위 병력까지 가세하면서 놈들의 접근이 어려워졌다.

    그 틈에 나와 최진석은 이미 연료 주입과 정비까지 끝마친 수송기 화물칸에 무사히 무한 동력 기관을 실어 넣었다.

    수송기에 탑승하는 인원은 나와 최진석을 포함한 알파 대원 몇 명뿐. 나머지는 모두 서울에 남아야 한다.

    “최 뱀! 실패하면 다 같이 뒈지는 겁니다!”

    “브라보 원도 조심하십쇼! 실패하면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겠습니다!”

    “더러워서 실패 안 해, 이 새끼들아!”

    그렇게 빽 소리친 최진석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한 화물칸 너머로 마지막까지 교전하는 군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시동이 걸린 수송기는 완전히 복구가 끝난 활주로를 내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무한 동력 기관이 실린 수송기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가 무섭게 지상에서 바퀴벌레처럼 바글거리던 놈들 역시 일제히 하늘 위로 솟구치는 진풍경을.

    전투기 편대도 마치 벌레떼, 혹은 박쥐 떼처럼 보이는 검은 무리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기겁하는 듯했다.

    하늘 위에서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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