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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209화 (20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16)

    ”전원 철수한다! 신속하게 움직여라!”

    “움직여! 움직여!”

    “1시간 이내에 전원 지저 도시에서 나가야 한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디그러쉬의 지하 연구 시설을 끝장내기 위해 모인 수많은 병력과 공사 인부들이 일사불란하게 각 지구의 궤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중부 지구 궤도 엘리베이터는 사용할 수 없다. 지저 도시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사용해 봤자 중간에 쏟아져 내리는 토사물에 매장될 뿐이다.

    “이쪽입니다!”

    “화물과 VIP 회수 완료! 지금 지상으로 나갑니다!”

    나는 남부 지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과 만나서 궤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무한 동력 기관이 보관되어 있는 특수 케이스는 장갑차에 실어서 이중으로 보호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빨리 타, 이 새끼들아! 늑장 부리면 두고 간다!”

    또 한 번 거대한 진동음이 지저 도시 전체를 강타하자 군인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빨라졌다. 천장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있는 흙먼지와 크고 작은 암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폐허가 된 중부 지구를 집어삼키고, 중부 지구의 궤도 엘리베이터를 뭉개 버렸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우리 모두 저 아래에서 생매장되었을 것이다.

    남부 지구라고 해서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북한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궤도 엘리베이터인 만큼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파였을 거대한 구덩이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이상했다.

    “전원 탑승 확인! 궤도 엘리베이터 가동합니다!”

    하지만 이쪽이 가장 빠른 루트이기도 하다. 다른 입구로 나가 봤자 김포 공항으로 향하는 시간만 더 지체될 뿐이다.

    여기까지 몰렸는데 시간을 더 지체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도 최대한 당겨 쓴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우지지직, 쿠드드드드! 퍼엉!

    궤도 엘리베이터의 외벽 보호재가 조금씩 파괴되는 소리가 들린다.

    불길한 소음과 진동에 엘리베이터 탑승자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지저 도시 위쪽을 관통하는 거대한 구덩이 때문에 궤도 엘리베이터의 내구도도 빠르게 깎여 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쫄지 마라.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도 빛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지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우리는 빛을 갈구하는 생물이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에 잠겨도 반드시 빛 아래로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믿으며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 왔다.

    내가, 살아 있는 증인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지상 도착까지 30초 전!”

    엘리베이터 관리병이 실시간 고도계를 확인하며 외쳤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졌다. 이중, 삼중으로 설치된 안전장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지 듣기 힘든 비명을 내질렀다.

    “20초 전!”

    우득! 콰아아아아앙!

    안전장치 하나가 박살 났다. 12km 높이의 통로에 초대형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것에는 상당한 부하가 걸린다.

    당연히 안전장치도 이중, 삼중으로 설치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 막 안전장치 하나가 박살 났다. 궤도 엘리베이터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10초 전!”

    거의 다 왔다.

    무한한 에너지를 찾아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수많은 고대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상, 인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잃어버렸던 빛이 내리쬐고 있는 지상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조금이다.

    꽈아아아아앙!

    또 한 번 안전장치가 박살 나고, 크게 덜컹거린 엘리베이터가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 지상에 도착! 전원 빠르게 하차하십시오!”

    궤도 엘리베이터의 입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재빨리 안전벨트를 제거하고 신속하게 뛰어나갔다. 외부에서 고대인들이 침투해 올 것을 우려해서인지 격벽은 아직 닫아 둔 상태였다.

    격벽을 관리하는 군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시선을 던졌다.

    이제 우리 코앞에 닥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장갑차의 기관총좌 사수석에 올라탄 나는 당직사관에게 격벽의 개방을 요구했다.

    “외부 상황이 어떤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예정대로라면 박한성 씨를 호위하기 위해 상당수의 지원 병력들이 포진해 있을 겁니다. 이 앞으로는 그분들의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격벽이 개방되면 당직사관님을 포함한 이곳의 인원은 모두 서울 남부로 대피하십시오. 그곳에 생존자 거점이 있으니 몸을 의탁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더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상정하고 계획을 짰는데요, 뭘.”

    “그럼 건투를 빕니다. 격벽 개방!”

    격벽 개방 신호를 외치자 격벽 관리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레버를 당겼다.

    육중한 격벽이 드드드드드 하고 개방되자, 우리는 꽤 오랜만에 밝은 햇살이 격벽 틈새로 밀려 들어오는 광경을 마주했다.

    “빛……!”

    “햇빛이다!”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확인된 것은 빛이었으나, 그다음으로 확인된 것은 청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총성과 폭음이었다.

    바깥의 상황이 평화롭지는 않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수많은 군인들이 다시금 긴장의 끈을 확 당겼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나와서 지원해!”

    “이대로 길을 뚫어야 한다! 탄약 아끼지 말고 퍼부어!”

    격벽 앞에 포진하고 있는 병력은 내게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최진석이 이끄는 중장갑타격대와 경상도에서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군인들이었다. 서울에 자리 잡은 경찰과 군인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저들이 북한산에서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 주었기 때문에 지저 도시의 천장 붕괴가 조금 더 늦춰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브라보 원! 물건은?!”

    “확보했지.”

    “……!”

    “수송기는?”

    “이미 김포공항에 대기시켜 두었다! 하늘이 뚫려서 GPS도 복구되었어!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서도 로켓 발사 준비가 끝났다는 최종 보고가 들어온 참이다!”

    “완벽하네.”

    그야말로 1초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은 타이트한 스케줄을 우리는 어찌어찌 소화해 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럼에도 다들 절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건, 지금 우리를 향해 내리쬐는 밝은 햇빛 때문이리라.

    검은 하늘은 이제 더 이상 검지 않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로 변하긴 했지만, 구름 틈새로 햇빛이 밀고 들어오며 난장판이 된 지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많은 고대인들이 지구의 하늘에서 일광욕을 포기하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벌레 떼가 아닌가 싶을 만큼 무수한 암흑 물질들이 지상으로 비처럼 떨어지고 있다. 아니, 저건 비라기보단 거의 운석에 가깝다.

    하늘을 비우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이 직접 지상으로 내려와야 할 만큼 무한 동력 기관은 매력적인 미끼였다.

    “지금부터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기존 인원들은 지저 도시 생존자들을 이끌고 서울 남부로 대피하도록!”

    최진석의 외침에 군인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급해졌다. 귀찮게 일일이 보고를 받고 다시 명령을 하달하는 장교들이 없기 때문일까, 군인들 간의 의사소통은 굉장히 빠르고 간결했다.

    이는 각 분대의 분대장들이 현장에서 즉시 판단하고 움직이는 임무형 지휘 체계를 채용한 덕분이기도 했다. ‘후퇴’라는 간결한 답변만 돌아와도 다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진석이나 나 같은 유능한 분대장들이 자기 사람들을 직접 챙긴다면 소통에 혼선을 빚을 일도 없겠지. 우리는 더 이상 저들을 이끌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저들 몫이었다.

    최진석은 호송대 선두에 전차를 세우고 후방에는 대공장갑차와 탄약, 병사 수송 차량을 나란히 세웠다.

    대공장갑차는 실시간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놈들을 포착해 발칸포를 갈겨 댔다. 놈들은 열에너지 덩어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추적이 쉬운 모양이다.

    “머뭇거리지 마! 출발한다!”

    선두의 전차 사수석에 탑승한 최진석이 무전기로 출발 신호를 알리자 호송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북한산에서 김포공항까지 최단 거리로 달린다고 해도 대략 1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최진석은 처음부터 전차를 전방에 세우고,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전차로 밀어 버렸다.

    최단 거리를 최대한 좁히고, 그리 많지 않은 여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울에서 움직이는 것은 변함없었기에, 한반도 위로 집중호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놈들의 추적을 완전히 뿌리칠 방법은 없었다.

    나는 기관총의 총구를 돌렸다.

    하늘에서, 지상에서, 지하에서, 수많은 고대인들이 무한 동력 기관을 차지하기 위해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 떼처럼 달려들었다.

    “갈겨!”

    드다다다다다다다다! 퉁퉁퉁퉁!

    수많은 총구에서 총염이 터져 나오며 적들을 향해 자비 없이 탄환을 흩뿌렸다.

    대공차량은 더 이상 하늘을 향해 발칸포를 쏘지 않고, 지상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포구를 돌렸다. 차량마다 탑재된 고속유탄발사기와 기관총들도 쉬지 않았다.

    전차는 전방을 가로막는 놈들을 떨쳐 내기 위해 전차포를 쏴 대며 폭압을 토해 냈다.

    콰앙! 우지끈! 구르르르르르……!

    반쯤 무너진 건물을 향해 포탄이 박히자 와르르 무너지면서 놈들을 짓뭉갰다. 반면 놈들이 쏴 대는 날카로운 검은 가시는 튼튼한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끼익, 카가각 하고 불길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전방의 전차가 버텨 주고 있었다.

    “놈들이 화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타타타타타!

    반격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무한 동력 기관이 실린 차량으로 접근해 오는 놈들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놈들이 앞뒤를 분간하지 않고 달려들게 할 만큼 무한한 에너지에 대한 욕망은 무시무시했다. 마약 중독자들 눈앞에서 마약을 흔들어도 저것보단 참을성이 있을 것이다.

    “놈들의 신체 구조상 개인화기로는 접근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대구경을 사용해! 그러라고 중화기 잔뜩 챙겨 왔잖아!”

    “막아! 막아!”

    “이 ✕같은 똥 덩어리 새끼가……!”

    “아아아아아악! 내 팔!”

    중장갑수색대가 없는 지금, 중장갑타격대는 모든 중장갑보병들 중에서도 최정예에 해당한다. 숙련도나 전투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전투에 대한 트라우마 저항 능력도 특수부대원 못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진 육체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그나마 중장갑타격대가 착용한 군용 엑소스켈레톤이 진짜배기 중장갑이라서 적들의 공격을 버텨 내고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군용 엑소스켈레톤이었다면 벌써 넝마 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보고입니다! 김해공항을 경유한 남부 호위군에서 폭격기를 지금 막 보냈다고 합니다!”

    “데인저 클로즈 조심하라고 해!”

    지상을 집어삼키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하늘의 길이 열리자 드디어 항공 전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미 7함대 소속 폭격기겠지. 한국 공군은 사실상 유지보수도 못 해서 시원하게 말아먹었을 테니까.

    미군이 자랑하는 초음속 폭격기라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서울에 당도할 것이다. GPS도 복구되었다고 했으니 정밀 유도 타격쯤은 누워서 떡 먹기일 터.

    우리는 김포공항까지 이어지는 길을 뚫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은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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