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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208화 (208/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15)

    훗날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평가하겠지.

    제 아비를 죽인 희대의 패륜아라고.

    탕!

    불타는 차량 잔해 너머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티이이잉!’ 하고 탄환이 내 옆의 로봇견을 때리고 튕겨 나갔다.

    “후욱, 후욱, 후욱……!”

    화상과 연이은 충돌 탓에 반쯤 문드러진 얼굴을 하고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자, 고작 자신의 명예와 꿈을 위해 가족까지 내버린 남자였다.

    가족을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박한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족을 버린 이후에는 ‘무명’으로 불리고 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길에 푹 빠져서는, 그것이 옳은 것이라며 억척스럽게 고집을 부려 대는 50대 남자의 추한 발버둥이란,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인생이라는 게 참 재밌지 않아요? 당신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고,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자식의 인생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려 했던 사람인데. 그렇게 단 한 번도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던 당신이 여기서 보란 듯이 실패했잖아요. 그것도 당신 자식에게.”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실패예요. 누구랑은 다르게 제가 실컷 겪어 봐서 알거든요.”

    나는 권총을 겨누고 있는 박한화에게 눈길을 거두면서 옆으로 넘어진 커다란 수송 차량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수송 차량은 충격 때문에 전복되기만 했을 뿐, 폭발하지는 않았다.

    수송 차량의 수송 칸 내부에는 특수한 케이스에 보관된 무한 동력 기관이 들어 있었다. 미래그룹 임원들과 함께 확인했던 영상 속의 무한 동력 기관과 완전히 일치했다.

    푸른 빛을 은은하게 흩뿌리고 있는 상시 발광 상태, 피부로 느껴지는 체감 온도는 미약한 온기가 느껴지는 정도지만, 실제 온도 측정기를 가져다 대면 수치가 미쳐 날뛰는 열에너지 덩어리.

    이 기이하면서도 불가해한 것이 ‘무한’하게 에너지를 내뿜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만 없었다면 디그러쉬가 지저 세계로 파고들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고대인’들이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와 적대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타앙!

    또 한 번 탄환이 ‘티이이잉!’ 하고 무언가에 맞아 튕겨 나갔다. 권총탄 정도로는 수송 차량이나 로봇견에 흠집도 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남자는 여전히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절뚝절뚝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만용이다.

    실패란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냉혹하리만치 객관적인 것이다.

    A의 목표는 수능 올 1등급을 달성해서 재수 생활 없이 서울대 문짝을 박살 내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실제 성적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A가 재수를 해서 서울대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면 그건 실패하지 않은 것이 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재수를 하느라 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해야 하며, 남들보다 한 걸음이 더 늦어졌다. 본인의 의지가 확실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실패라고 불러야 마땅함이다.

    물론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다. 결과만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과정을 높게 쳐주는 것은 일종의 덕목처럼 여겨지니까.

    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라는 것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실패나 다름없다.

    열심히 했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예정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성공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은 실패로 취급받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히 인정할 수 없겠지.’

    50년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으니까.

    성공만을 가리키는 훌륭한 지표를 결과로 이끌어 냈고, 덕분에 저 높은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남자다. 그런 그가 ‘발 한 번 미끄러진 정도’로 실패를 인정할 리가 없다.

    실패가 아니라 실수였다고 적당히 포장하면서 다시 자신의 계획을 본 궤도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실수 역시 실패다.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성공만 하면 그만인 잔인한 결과 만능 주의 사회에서 실패를 해 버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타앙!

    조금 전부터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이유가 흔들리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을까.

    이번에는 탄환이 내 팔을 감싸고 있는 외골격 파츠의 장갑을 때리며 튕겨 나갔다.

    보라, 저 성공에 미친 아귀를.

    실패조차 귀중한 인생의 양식으로 삼아 성장하는 ‘우리’와는 달리, 오직 성공만을 먹고 살아가는 고급스러운 입맛을 가진 탓에 스스로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저 모습을.

    고집, 만용 그리고 뒤틀린 집념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기나 할까.

    타앙!

    이번에는 어깨를 스쳤다. 다음은 머리인 걸까?

    “온갖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은 쉬웠지만,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는 것은 퍽 어려웠던 모양이죠?”

    “……닥쳐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성공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면서, 단 한 번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는 건가요?”

    “닥쳐어어어어어!”

    타앙!

    내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자 예상대로 탄환이 외골격 파츠 장갑을 때리며 튕겨 나갔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자식 역시 부모의 거울이라는 뜻인데, 당신은 정작 저한테서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당신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는데.

    “저는 성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부한 이야기나 늘어놓을 생각은 없어요. 다만 성공이 존재한다면 실패 역시 존재한다는 걸 누군가도 알아 줬으면 했을 뿐이죠. 당신이 ‘성공’이었다면 저는 ‘실패’였으니까요. 내가 당신에게서 성공을 배웠듯이, 당신 역시 내게서 실패를 배우길 바랐어요.”

    철컥철컥. 탄창이 비어서 슬라이드가 젖혀진 권총이 허무한 소리를 흘렸다.

    “제가 당신 밑에 있기 싫었던 이유는 자식을 도구처럼 여겼다는 이유도 있지만, 당신이 성공에서 실패를 배우지 못하고, 실패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아래에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죠.”

    “네깟놈이 뭘 안다고……!”

    “많이 알죠. 적어도 당신과는 달리 저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숱한 사선을 넘나들면서 ‘목표’의 성공과 개인적인 ‘바람’의 실패를 겪었을 때, 궁극적으로는 성공과 실패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을 도구로 보지 않고, 실패를 상정하지 않는 성공 따위 없음을 알고, 스스로가 벌인 일에 책임을 질 줄 알고, 공존과 협력, 유대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까.

    적어도 자신의 생물학적 아들을 향해 마지막까지 악에 받쳐서 총질을 하는 남자에 비해 확실히 인간다웠다. 이 정도는 굳이 자기객관화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당신은 저를 부끄럽게 여겼죠.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처럼 성공 가도를 걷지도 않았으며,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제가 당신을 부끄럽게 여겼던 부분이라고요.”

    같은 핏줄이 같은 핏줄을 혐오하는 비정상적인 관계. 이것은 우리 부자에게 있어서 예정된 운명,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나 동생과는 달리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당신을 믿고 계셨어요. 그깟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욕망 때문에 가족마저 내팽개치는 형편없는 남자를 그래도 ‘가족’으로 여기고 있던 분이셨어요. 어머니가 당신과 함께 자식들을 죽이지 않아서 실망하셨나요? 그것도 실패라고 여기실 건가요?”

    “……”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요. 그건 실패가 아니죠. 지극히 인간다운 것이고, 또한 자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성애죠. 어머니는 당신과 달리 실패하지 않으셨어요.”

    인간답게, 부모답게, 어른답게 사랑으로 나와 여동생을 돌봐 주셨던 어머니다.

    그에 비해 눈앞의 남자는 어떤가.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워 내지는 못할망정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스로 손을 더럽히려 했던 버러지가 아닌가.

    그의 머릿속에는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모의 손에 죽어 줘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나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진동음에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눈앞에 성공만을 먹어 치우려는 아귀가 있듯이, 머리 위에서도 에너지만을 먹어 치우려는 피라냐 떼가 지저 도시로 내려오고 있다.

    문득 둘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정확히 두 발을 쐈다.

    탕! 탕!

    무미건조하게 울려 퍼지는 총성 두 번은 정확히 2개의 구멍을 뚫었다.

    “크으으으으아아아아아……!”

    양쪽 다리에 각각 한 발씩 총을 맞은 남자가 허수아비처럼 픽 쓰러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정확히는 이 남자의 본성과 추악한 욕망을 눈치챘을 때부터 더 이상 이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었던 존재가 작은 돌멩이처럼 보였을 때, 나는 노력해서 이 남자를 뛰어넘는다는 생각 자체가 바보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뛰어넘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소박한 삶을 꿈꾸었다.

    군을 전역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평범하게 경비업체에 취직해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 남자와 같은 길을 걸어서 더 대단한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고, 나 스스로를 먹칠하는 행위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보라, 결국 내 생각이 맞았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어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빛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빛을 포기해 버리면 한없이 추해질 뿐이다.

    “땅 밑, 어둠 속, 더러운 장소를 그렇게나 좋아하시니까 묫자리로는 여기가 딱이겠네요. 사정상 앞으로 성묘를 올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이해해 주세요. 성묘를 받으실 만큼 자랑스러운 분은 아니셨잖아요?”

    “크흐으으……!”

    “업보라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세상에는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멀쩡히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거든요.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패하셨다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본인의 실패는 인정할 수 없으실 테니까 그걸 제 탓으로 돌려도 상관없다는 뜻이에요.”

    나는 무한 동력 기관이 들어 있는 케이스를 꺼내서 뒤따라온 중장갑보병들에게 건넸다.

    이제 깊은 땅 밑에서 지상으로 빠져나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기 전, 나는 단 하나의 실패에 짓눌려 성공의 늪에 빠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저런 남자를 상대로 이제 와서 비아냥대거나 욕설을 퍼부을 만큼 나는 한가하지 않았다.

    그저 저런 인간은 저렇게 죽는 것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을 인생 경험으로 배웠을 뿐이다.

    지금 나의 가장 커다란 벽은 저런 인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우리 앞을 막을 고대인들이었으니까.

    그는 여기서 인간답게 죽고, 나는 바깥에서 인간답게 살 것이다.

    이것이 나의 ‘딥 인사이드 아웃(Deep Inside Out)’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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