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206화 (206/211)

딥 인사이드 아웃 (213)

디그러쉬는 군수 기업도, 민간 용병 기업도, 하다못해 경비, 경호 전문 기업도 아니다.

디그러쉬가 지상에서 군림하고 있던 시절에는 그들의 자본과 마수가 침투한 여러 국가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그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굳이 스스로 보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미래그룹조차 산하에 경비업체를 둔 것은 사업의 일환이었지, 그 경비업체로 미래그룹을 보호하려던 것이 당초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디그러쉬를 지켜 줄 든든한 뒷배들이 없다.

그들을 위해 방귀 좀 뀌어 줄 국가도 없고, 군대도 없으며 하다못해 돈 받고 일해 주는 용병들도 없다.

그나마 유일한 아군이라고 할 수 있었던 한국 정부마저 모래성처럼 박살이 나 버린 지금, 디그러쉬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해 줄 세력은 전무하다.

바로 그게 돈놀음하는 기업인과 전장에서 직접 구르는 군인과의 차이점이다.

기업인들은 모든 것을 수치와 통계로 판단하고 돈만 쓰면 어지간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완전히 다른 개성과 성격, 가치관, 사상, 신념, 문화, 종교를 가진 인간들만 수십억이 넘게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주류인 현대 사회에서 그들 대부분에게 돈은 상당히 매력적인 교섭 재료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돈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금을 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걷어차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돈으로 자신을 모욕하려 했다며 발작하듯 달려드는 인간도 있다.

실제로 디그러쉬는 돈으로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계획을 완성시키려 했지만, 돈이 먹히지 않았던 나 같은 존재들이 그들의 계획을 고꾸라뜨렸던 사례도 있지 않은가.

관점의 차이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바닥에선 그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놈부터 죽는다.

“너희가 앞에서 먼저 시선을 끌어라. 내가 환풍구를 타고 진입해서 놈들의 뒤를 칠 테니까.”

“혼자 가시는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중에 엑소스켈레톤 착용 안 한 건 나뿐이잖아. 당연히 혼자 가야지.”

“하긴, 여기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 한 명 꼽으라면 전 선배님을 꼽을 겁니다.”

“입발림 소리는 일 다 끝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움직여!”

어떻게든 중앙 연구실로 이어지는 격벽을 닫기 위해 사람과 장비를 갈아 넣어 가며 필사적으로 항전하고 있는 디그러쉬.

놈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소수의 별동대로는 정면 돌파하기가 힘들었다. 놈들이 수동으로 격벽을 닫지 못하도록 시간을 끄는 것만이 가능한 정도.

거기서 유일하게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지 않은 내가 환풍구로 기어 들어가 놈들의 등 뒤를 노리기로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양동작전이지만, 디그러쉬는 그런 간단한 것조차 예상하지 못한 듯, 눈앞의 적에만 집중하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저들 역시 군필자라고 해도 실전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꽤 오랫동안 펜대만 쥐고 있던 터라 그런 전술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싶어 괜히 미안해진다.

한 군인의 도움으로 천장 합판을 뜯어내고 환풍구에 침투한 나는 고장이 나서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환풍구를 더듬더듬 짚어 가며 움직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시계 상황에서 활동하는 건 익숙했다. 북한의 땅굴을 헤집고 다닐 때,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서울의 어둠 속을 돌아다닐 때, 믿을 수 있는 건 언제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앞길을 막는 장애물은 외골격 파츠로 적당히 뜯어내면서 한참을 엉금엉금 기어 움직였을까. 마침내 디그러쉬 직원들이 내는 소음 덕분에 내가 그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기 때문에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환풍구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배선이 깔리는 공간과 공기가 순환되는 공간은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어.’

환풍구의 합판을 살짝 뜯어내고, 아래로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적이 던진 것도 아니고 머리 위에서 뚝 떨어진 섬광탄을 적들이 반응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디그러쉬 직원들을 든든하게 지켜 주고 있는 자동포탑조차 요격하지 못한 절묘한 노림수였다.

퍼어어어엉!

갑작스러운 섬광탄에 정신을 못 차리는 디그러쉬 직원들이 눈과 귀에 고통을 호소하며 방독면을 벗고 바닥을 뒹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취약한 부위, 특히 이목구비를 공격당하면 그곳을 손으로 감싸 쥐고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다. 눈에 조금만 먼지가 들어가도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비비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생화학탄을 까 넣었다. 최루탄과는 다르게 진짜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살상형 생화학탄이었다. 본래 지상에서 흑연교를 처리할 때 사용하려고 했다가, 놈들의 이동속도가 너무 빨라서 사용하지 못한 재고였다.

“커헉! 그륵, 으으으으윽?!”

“컥! 케헥! 최, 최루탄?!”

“아니야! 최루탄 같은 게 아니야! 뭔가 이상해! 빨리 방독면 도로 써!”

“눈이 안 보여……!”

중장갑보병들이 쏘는 유탄이나 투척 무기들은 자동포탑이 알아서 요격해 주지만, 정작 디그러쉬 직원들 사이에 떨어진 살상 무기를 대응하지 못한 상황.

당연히 비살상 무기와 살상 무기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지독한 전술에 익숙지 않은 디그러쉬 직원들은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이 전술은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쓰인 유명한 전술이다. 당시 비살상 무기인 구토 유발제를 사용해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던 군인들의 방독면을 먼저 벗긴 다음, 겨자 가스로 몰살시켜 버린 유명한 사례가 있다.

나는 그 방식을 현대 버전으로 살짝 비틀었을 뿐,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은 똑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따지기엔 너무나도 멀리 와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까지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렸다.

마지막까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던 소수의 디그러쉬 직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가 게거품을 문 채 죽어 버렸다.

중추신경에 타격을 입히고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신경독의 일종이라 한 번 호흡기로 흡입하면 거기서 끝이다. 전문 의료 기기와 의사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생화학탄이었다.

어째서 이런 것이 국내에 있는가 하면, 대한민국은 핵을 제외하면 온갖 무기를 보유한 미친 국가였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전 세계가 지저 도시에 미쳐서 돈을 퍼붓던 와중에도 유일하게 군비 증강을 꾀한 미친 국가였으니 오죽할까.

결국 방어 인력이 급감한 디그러쉬 직원 측은 제대로 격벽을 방어하지 못해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자동포탑은 일제사격을 받아 순식간에 망가졌고,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 했던 소수의 디그러쉬 직원들도 차례차례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적을 죽이고 아군을 지키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군인들을 일개 기업 직원들이 당해 낼 재간은 없었다.

하지만 디그러쉬도 중앙 연구실로 이어지는 경로만큼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는지, 안쪽에서 추가 증원군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소수의 전투용 드론까지 대동한 그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아군의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든 격벽을 폐쇄하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바보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천재가 신념을 가졌을 때다.’

바보가 어떤 신념을 가지든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천재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디그러쉬에 발탁될 만큼 하나하나가 유능한 놈들이 지금은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어떤 신념을 지키려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가진 신념의 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어떤 미래가 그려지고 있을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끝’을 보고 싶은 것이다.

무한과 영원이라는 끝을.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으며, 최후의 영역이라 불리는 신의 영역에 도달해야만 간신히 볼 수 있다는 끝.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겠지.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인류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한들 저들과는 하등 관계없는 일일 것이다.

천장 합판을 완전히 뜯어내고 복도에 착지한 나는 전방을 향해 경기관총을 난사했다.

갑작스럽게 천장을 뚫고 내려온 인간이 경기관총을 난사할 거라곤 누구도 예상 못 했기 때문일까, 우르르 달려오고 있던 디그러쉬 직원들이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졌다.

반응 속도가 제법 빠른 전투용 드론이 즉각 대응 사격을 펼쳤지만, 나는 이미 숨이 끊어진 디그러쉬 직원의 시체를 고기 방패로 삼았다.

퍼버버벅! 탄환이 박혀서 걸레짝이 된 고기 방패를 밀어내고, 새로운 고기 방패를 집어 든다.

쉴 틈 없이 발포된 탄환은 엄폐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적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도륙했다.

드다다다! 다다다다다! 철컥철컥!

또 한 번 탄약이 거덜 나자 경기관총을 집어던지고, 단축형 기관단총을 뽑아 들었다.

뒤따라 밀고 들어온 아군의 도움을 받아 확실하게 적들을 밀어 버리는 것으로 격벽 폐쇄를 저지했다.

저 뒤쪽에서 우리를 따라 들어온 것은 비단 다른 중장갑보병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상황 정리를 끝낸 로봇견들이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우리와 합류했다.

“진입해! 중앙 연구실에 무한 동력 기관이 있을 거다! 놈들이 빼돌리기 전에 우리가 탈취해야 한다!”

“밀어붙여!”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개인 연구실이나 창고 안쪽에서 숨어 있던 디그러쉬 직원들이 매복병처럼 튀어나왔지만 우리의 일점돌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튀어나오는 족족 분쇄되었기 때문에 방아쇠 한 번 당겨 보지 못한 놈들 투성이였다.

“전방에 중앙 연구실 격벽이다! 닫히기 전에 막아!”

기동성이 뛰어난 로봇견들이 먼저 득달같이 튀어나가 격벽을 폐쇄하고 있던 디그러쉬 직원들에게 달려들었다.

로봇견의 중량과 근력은 어지간한 맹수 수준이었기 때문에 연약한 인간의 몸으론 버틸 수 없었다. 들이박고, 앞발로 두들기고, 입으로 물어뜯기만 해도 인간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격벽이 닫히고 있다! 가서 받쳐!”

“다 같이 들어와!”

“받쳐어어어어어!”

위에서 내려오던 격벽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중장갑보병 대여섯 명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육중한 격벽을 받쳐 들었다.

순수한 무게와 닫히는 힘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십수톤은 넘게 나갈 텐데, 그걸 중장갑보병들이 계속 들러붙어서 필사적으로 받쳐 들었다.

“들어 올려!”

자신들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려 열 명이 넘는 중장갑보병들이 격벽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기어 들어가 대응 사격을 했다. 예상대로 중앙 연구실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통유리관이 있었고, 놈들은 그곳에 들어 있던 무한 동력 기관을 막 빼내던 참이었다.

나는 다시 레버를 당겨 격벽을 올린 뒤, 중장갑보병들과 함께 밀고 들어갔다. 저걸 빼앗기거나 파괴당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다.

우리가 포화를 뚫고 무한 동력 기관을 탈취하려던 찰나, 적 진영에서도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이들이 등장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본래 디그러쉬에서 지저 세계 탐사 및 채굴 목적으로 사용하는 산업용 엑소스켈레톤과 상당히 흡사한 모델이었다. 감시용 드론을 전투용으로 개조한 것처럼, 저것들 역시 몇 차례 개조를 거친 듯했다.

중요한 것은 놈들이 장벽이 되어 준 덕분에 무한 동력 기관을 확보한 놈들이 우리 눈앞에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개 같은 상황에 우리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만한 새끼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어떤 신호가 울려 퍼지지 않았음에도 육중한 금속 덩어리들이 일제히 격돌했다.

그 안에는 유일하게 맨몸으로 참전한 나도 있었다.

엑소스켈레톤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프로 중의 프로인 우리 앞에 그딴 장난감을 들고 나선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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