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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205화 (205/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12)

    처음으로 살인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군대에서 적을 죽이는 법과 내가 살아남는 법, 아군을 지키는 법 등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역시 적을 죽이는 법이었다.

    군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결국 모든 적을 죽여서 내가 죽을 일도, 아군이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합리적인 살인이다.

    폭행조차도 정당화되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 합리적인 살인이라니, 다들 아이러니하면서도 결국 가르쳐 주는 것을 묵묵히 배운다. 그것이 군대라는 집단이니까.

    사실은 자신이 군인으로 있는 동안 실제로 가상의 적과 조우해서 치열한 사투를 벌일 확률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배워도 쓸 일은 없겠지’ 하고 은연중에 안심해 버리는 덕분이다.

    하지만 나(우리)는 아니었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지독한 훈련과 정신 교육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윤리나 도덕성 따위를 일부러 의식의 수면 아래까지 침전시켜서 복잡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우리)는 실전을 겪기도 전에 기계처럼 가상의 적을 죽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기억 소거제를 맞았다. 어쩌면 나도 몇 번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기억 소거제를 맞으면서 기계적으로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운 결과 정말로 사람 죽이는 기계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모두 기억 소거제로 날려 버리고, 어떻게 해야 적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지를 강구하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그 뒤에는 곧장 실전이었다.

    누가 다치든, 몇 명이나 죽든, 상층부에서 나(우리)에게 내린 목표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완벽한 ‘섬멸’.

    중장갑수색대가 먼저 침투해서 적을 몰살시키고, 중장갑타격대가 뒷처리를 한다. 이 과정에서 복귀가 불가능한 사상자들은 모두 실종 및 사고 처리되었으며, 새로운 인원이 나(우리)와 같은 방식을 거쳐서 빈자리를 채웠다.

    모두가 똑같은 살인 기계로 활동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우리)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을지언정, 첫 살인에 대한 기억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그 기억만큼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기억 소거제를 맞아도 잊히지가 않았으니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전장에서만 적용되는 당연한 논리에 나(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고, 효율적인 첫 살인을 저질렀다.

    나(우리)와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북한군의 미간을 망설임 없이 꿰뚫어 버린 것이다.

    그는 나(우리)를 보자마자 당황했고, 나(우리)는 그를 보자마자 냉혹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이 서로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드르르르르르르륵!

    레펠을 타고 지하 연구 시설로 강습을 감행하면서 경기관총을 쏘고 있는 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반면 디그러쉬 소속인 연구원들은 전투용으로 개조된 드론이 그렇게나 빨리 당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와 똑같다.

    누군가는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군가는 당황하기만 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각자의 생사가 걸려 있다.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준비를 하지 않는 거지?

    어째서 대응책을 마련해 두지 않은 거지?

    그렇게나 죽고 싶은 건가?

    탁!

    레펠에서 내려 연구소 지면에 착륙한 나는 경기관총의 빈 탄창 박스를 뽑아 버리고, 새로운 탄창 박스를 끼워 넣었다.

    뒤이어 방독면과 열상감지렌즈를 착용한 중장갑보병들이 차례차례 착지했다. 레펠을 타고 내려온 나와 다르게, 튼튼한 중장갑보병들은 수십 미터 정도는 그냥 뛰어내려도 버틸 수 있었다.

    후욱후욱후욱.

    방독면 너머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써 보는 방독면 특유의 고무와 약품 냄새는 내 집 안방처럼 익숙한 냄새였고, 방사능 오염 지역에 들어가도 버틸 수 있는 최신예 정화 필터는 다소 갑갑했지만 이불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안심이 된다.

    “다 죽여!”

    내가 그리 외치기가 무섭게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게 깔린 전방을 향해 경기관총과 유탄발사기들이 불을 뿜었다. 중부 지구를 고작 몇 시간 만에 휩쓸어 버린 화력이 저 디그러쉬 샌님들을 향해 자비 없이 쏟아졌다.

    “아아아아악!”

    “팔, 팔이……!”

    “뭐 해! 어서 놈들을 막아! 무기랑 장비는 다 준비해 뒀잖아!”

    “하지만 이 중에 전투 같은 걸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바로 그게 너희들의 치명적인 문제다.

    디그러쉬에서 인재랍시고 긁어모은 놈들 중에 우리 같은 전투의 프로가 있을 리가 없다. 이유는? 물리적인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글로벌 대기업이니까!

    누가 디그러쉬를 찍어 누를 수 있었겠으며, 누가 디그러쉬를 무식하게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하려 하겠으며, 대체 누가 디그러쉬와 맞서 싸울 생각 같은 걸 한단 말인가.

    지상에 있을 때나 지저 세계에 있을 때나 디그러쉬에 대한 위상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나도 한결같아서 디그러쉬라는 고유의 컨셉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배짱을 부려도 이런 똥배짱을 부렸으니 당연히 지레 겁먹은 국내 기업들과 한국 정부는 디그러쉬 앞에서 설설 기었을 것이고, 디그러쉬는 누구도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하며 계획대로 일을 진행한 것뿐이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경제, 경영, 교섭, 연구, 개발, 관리 같은 펜대만 굴려야 하는 직책들이 수두룩한 디그러쉬 내에서 싸움꾼이 존재할 리가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 정도는 당연히 있겠지. 남자 비율이 제법 높은 기업이라고 들었으니, 디그러쉬 한국 지사 정도면 군필자가 대략 6~70%는 넘는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그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애초에 준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펜대를 굴리고 머리를 쓰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총 하나 던져 주면 어렵지 않게 총기 수입을 하고, 알아서 영점까지 맞추고 쏠 사람들이 제법 많겠지만,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까지 배우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대뜸 탄환 세례와 폭발물을 한가득 퍼부어 준다고 생각해 봐라.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고 해도 충분히 오줌 지리면서 벌벌 떨 자신이 있다.

    물론 상대라고 해서 마냥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소 내부 곳곳에서 자동요격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화를 좋아하는 디그러쉬답게 숨겨진 트랩이나 자동포탑 같은 것은 CCTV보다 훨씬 더 많았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자동요격장치들의 위력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했는데, 전차포와 맞먹는 질량탄을 쏘는 포탑이 특히 거슬렸다.

    “아군 부상! 아군 부상!”

    “후방으로 빼!”

    “크레인 이용해서 들것 내려보내라고 해!”

    “의무병!”

    질량탄은 거짓말처럼 중장갑보병의 중장갑을 꿰뚫었다. 그 위력이 지상에서 상대했던 흑연교의 작살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했다.

    ‘그래, 지상의 상황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게 아니었다는 거지.’

    중장갑보병조차 능히 상대할 수 있는 흑연교 사이비들을 정보에 민감한 디그러쉬가 몰랐을 리가 없다.

    중장갑보병은 분명 대인전에서 전차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반대로 전차만큼 튼튼하지는 않아서 공략법만 알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폭발물로 한꺼번에 날려 버리든가, 화염방사기로 내부의 인간을 태워 버리든가, 아니면 차량에도 데미지를 줄 만큼 강력한 질량탄으로 중장갑 속에 숨겨진 인간의 몸을 박살 내 버리든가.

    엑소스켈레톤의 다리나 팔 관절부는 충격 완화 시스템이 이중으로 걸려 있어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은 없지만, 상반신을 보호하는 장갑은 문자 그대로 통짜 금속이다. 대인전에서 절대로 지지 않도록 모든 탄환과 파편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장갑.

    문제는 엑소스켈레톤을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질량탄이다. 그런 것에 적중당하면 설령 관통당하지 않더라도 충격량이 어마어마해서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 없다.

    ‘그렇게까지 강력한 화력’에 당하면 어차피 충격 완화 시스템을 넣어도 죽는 건 똑같으니까, 차라리 장갑의 두께만 늘린 케이스인데, 그게 악수로 작용한 것이다.

    “포탑부터 제거해! 놈들이 재정비할 틈을 주지 말고 몰아붙여라! 진입! 진입!”

    콰아앙!

    유탄발사기로 포탑 하나를 날려 버리고서 연구실 복도를 가로지른다. 중간중간 숨어 있던 연구원들의 미간에는 예외 없이 탄환을 박아 주었고, 뒤늦게 무기고를 열어 대응하려던 놈들은 좀 더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다.

    근접전에 익숙하지 않은 샌님이 무기를 들기 전에 빠르게 접근해서 복부에 주먹을 때려 박아 내장을 터뜨린다. 각혈하는 놈의 목을 잡고 그대로 뽑아서 피 분수를 내뿜는 시체와 함께 집어던진다.

    외골격 파츠가 이럴 때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나는 연구원이 무기고에서 꺼내 쓰려 했던 프로토타입 무기를 슬쩍 살펴보았다. 초소형으로 압축시킨 고용량 전고체 배터리를 카트리지 형태로 바꿔서 탄환처럼 사용하는 열병기였다.

    쉽게 말하면 화염방사기를 순간적으로 일점분사할 수 있는 유사 레이저 무기 같은 것이다. 아마 이것으로 중장갑보병이든 ‘괴물’이든 싹 녹여서 없앨 생각이었겠지.

    확실히 이거라면 화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반동도 없다시피 할 것이고, 초보자도 쉽게 사용법을 익힐 수 있을 터. 샌님들만 잔뜩 데리고 있는 디그러쉬가 선택할 만한 무기였다.

    확실히 준비성은 좋다. 똑똑한 놈들만 모인 집단 아니랄까 봐 어떤 적을 상대하더라도 올라운더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 낸 건 대단한 공적이다.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준비를 하려면 이것보다 곱절은 더 준비를 했어야지.’

    오늘은 내 노력과 준비성의 반조차 따라오지 못한 너희의 오만함이 추락하는 날이다.

    나는 뒤따라온 중장갑보병들에게 놈들의 무기를 챙기게끔 한 뒤, 즉석에서 별동대를 만들어 연구소의 폐쇄 격벽을 우회했다.

    우리가 침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가 무섭게 놈들은 일부 구역에 폐쇄 격벽을 내려서 진입로를 차단했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어서 재정비를 하고, 우리와 대적하거나 도망칠 생각이겠지.

    안 봐도 뻔하다.

    ‘무한 동력 기관만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다. 도망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둬야겠어.’

    모든 지저 세계는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지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중국 베이징 지저 도시로 대피하려고 해도 애 좀 먹을 거다.

    그래도 거기에 희망이 있다면 주저 없이 실행할 놈들인 건 사실이니, 허튼짓을 하기 전에 다리부터 분질러 놔야 한다.

    “포탑 주의!”

    “파괴!”

    퉁! 퉁!

    유탄발사기가 유탄을 토해 낼 때마다 폭발과 파편 폭풍이 터져 나오고, 깜짝상자처럼 튀어나오던 포탑들이 제거되었다.

    연구소 내부 시스템이 파괴에 의한 여파로 일부가 기능이 정지했거나 고장 난 지금이 적기다. 놈들이 시스템을 손보기 전에 우회해서 아직 격벽으로 막히지 않은 길을 뚫어야 한다.

    “11시 방향! 놈들이 수동으로 격벽을 폐쇄하려 합니다!”

    “날려 버려!”

    대전차미사일 한 발이 긴 복도를 가로질러 반쯤 닫히려던 격벽과 충돌했다.

    40mm 고폭유탄과는 차원이 다른 폭발력에 수동으로 격벽을 폐쇄하려던 연구원들이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격벽 시스템도 망가졌는지 반쯤 닫히다 말고 정지했다.

    “열어!”

    나보다 먼저 쿵쿵쿵쿵 뛰어나간 중장갑보병 두 명이 반쯤 닫히다 만 격벽을 양쪽에서 잡고 힘껏 열어젖혔다. 고릴라보다 강력한 근력을 자랑하는 군용 엑소스켈레톤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놈들이 B-32 구역에 침투했다! 추가 격벽 폐쇄를 진행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놈들을 막아라! 중앙 연구소로 놈들을 보내면 안 된다!”

    “쏴!”

    후방에서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던 놈들은 이미 복도 중앙에 엄폐물을 쌓아 두고 예의 유사 레이저 총을 거치해 둔 상태였다.

    나는 중장갑보병의 등에 달려 있는 보급 박스에서 섬광탄을 꺼내 들고 복도 코너 너머로 던졌다.

    “수류탄!”

    그게 수류탄처럼 보였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클러스터플래시뱅(집속섬광탄)이다, 병신 새끼야.’

    복도 중앙에서 폭죽처럼 퍼버벙 튀어오른 구슬만 한 크기의 소형 섬광탄들이 복도와 벽, 천장에 마구 튕기며 강렬한 섬광을 토해 냈다.

    상대가 좁은 구역에서 엄폐물을 쌓아 두고 농성을 벌이면 주로 사용하는 한국군 고유의 비살상 무기였다. 중장갑수색대는 저걸 북한 땅굴에서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엄폐물 뒤에 적이 숨어 있더라도 구슬만 한 크기의 섬광탄 수십 개가 와르르 터져 나오면서 빈틈없이 섬광과 폭음을 때려 박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폭죽 섬광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입.”

    “진입!”

    “진입!”

    우리는 복도에 쌓인 엄폐물들을 걷어 내고, 섬광탄에 눈과 귀가 멀어 버린 병신들을 처형했다.

    목표물(끝)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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