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204화 (204/211)

딥 인사이드 아웃 (211)

다네가시마우주센터와 미 7함대 복구는 이례적으로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류의 존망과는 별개로,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유일한 장점인 권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을 막힘없이 진행시킨 것이다.

기득권층을 가장 겁먹게 하는 것은 종말을 앞둔 세상도, 성난 군중도 아닌, 오직 예정된 권력의 상실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발목을 잡지는 않아서 다행이지.’

최진석은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 투입된 복구 인력과 중장비 그리고 대량의 자재와 부품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조금씩이지만 하늘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게 육안으로 확인이 된다. 다네가시마우주센터 복구 작업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미 다른 방법을 떠올리거나 대책을 강구할 여유도 없이, 자신들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넘어 버린 것이다. 그건 서울로 집결하기 시작한 암흑 물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한 동력 기관을 손에 넣어 문자 그대로 영생과 무한한 종의 번영을 누리느냐, 아니면 끝내 ‘생물’이라는 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냐.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와 암흑 물질 모두 똑같은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한 동력 기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그쪽만 고집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도 결국 무한 동력 기관의 힘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믿을 테니까.

실제로 디그러쉬가 그 길을 택했고, 박한성은 반대되는 길을 택했다.

무한 동력 기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 치의 미련 없이 무한 동력 기관을 포기하기로 했다.

인간이 그렇게 욕심이 없는 생물이던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박한성은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도 유독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고, 실제로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유능한 것이다. 유능하지 않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무한 동력 기관을 깔끔하게 포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무한 동력 기관을 고집해서 얻을 이익보다, 무한 동력 기관을 포기해서 얻을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논리지만, 박한성은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처음부터 무한 동력 기관도, 디그러쉬도, 암흑 물질도 없는 평범한 삶을 가지고 싶었다고 남몰래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 소박한 꿈이 무한 동력 기관이라는 우주급 스케일의 대단한 무언가보다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한 인간의 심성을 어찌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도량이 얼마나 크냐 작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량이 크든 작든 보통이라면 무한 동력 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맞으니까.

단지 박한성은 처음부터 보는 관점이 달랐을 뿐이다. 무한 동력 기관과 평온한 삶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더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가까운지를.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한 동력 기관이었다면 문자 그대로 무한 동력 기관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서 대단한 일이라도 벌였겠지.

하지만 추구하는 것이 그저 평온한 삶이었기 때문에, 그것과는 백만 광년 정도 거리가 먼 무한 동력 기관을 망설임 없이 포기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지 않은가? 손익을 면밀히 따져서 고심 끝에 결정한 게 아니라, 그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고 해서 그 무한한 가치를 지닌 물건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파괴하려고 하다니.

범재는 물론이고 천재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무한 동력 기관을 포기하는 게 인류와 세계의 관점에서 ‘옳은 것’이지만, 박한성은 옳고 그름을 따진 게 아니라 개인의 기호로 따졌을 뿐이야. 그 점이 더 소름 돋지.’

바로 그래서 그가 욕심이 많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제아무리 대단한 가치를 지닌 무한 동력 기관이라도 내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욕심과 집념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인류는 박한성에게 감사해야 한다.

무한 동력 기관을 이용해서 지구를 구해 낸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무한 동력 기관을 포기해 줘서 감사하다고. 무한 동력 기관이 아니라 다른 것에 욕심을 품어 줘서 감사하다고.

“나였으면 절대로 그렇게는 못 했겠지.”

꿈에서도 나오지 않는 그 무한 동력 기관 아닌가.

그런 대단한 걸 지금 복구 중인 다네가시마우주센터의 로켓에 실어서 우주 밖으로 날려 버려야 한다니. 자신이 설령 과학자가 아니라고 해도 아까워서 평생 이를 바득바득 갈 만한 일이다.

사실 암흑 물질들이 검은 비 형태로 지상에 쏟아져 내리면서 무한 동력 기관을 추적하지만 않았더라면, 최진석은 어쩌면 박한성을 배신하고 그것을 가로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의 일이긴 하지만, 인간이란 원래 열 길 물속보다 알기 힘든 생물이니까.

이 계획에 참여하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무한 동력 기관에 대한 미련이나 흑심을 품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분노한 박한성과 무한 동력 기관에 집착하는 암흑 물질 대군을 동시에 상대할 배짱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랑이 자식을 키워 낸 주제에 제대로 사육장에 가둬 두지 않은 그의 아버지와 정부가 나란히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누구도 그들과 나란히 파묻히고 싶지 않으니까, 겸사겸사 지구도 구하는 김에 말없이 따르는 거다.

인류의 존망을 건 최후의 계획에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최진석은 우주센터 지휘소에서 벌써 수십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있는 센터장을 불렀다.

“이치죠 센터장님, 보아하니 복구 작업 자체는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시험 발사 테스트는 언제부터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예정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사실 반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만 빼면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 큰 문제는 없지만, 문제는 반년씩이나 이 업계에 다들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술가는 창작 활동을 하루만 쉬어도 감이 무뎌진다고.”

“우주항공 분야처럼 엄청난 기술의 숙련도를 요구하는 분야도 드물긴 하죠. 즉 우주센터를 복구하는 시간보다 전문가들이 감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입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반년의 공백을 메우려면 다들 최선을 다해서 복습을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일’에는 약식으로 일을 진행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약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고, 또 굉장히 난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독 초정밀과 고난이도의 기술 숙련도를 요구하는 우주항공 분야라면 특히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

“그래도 해야 합니다. 우주정거장이나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화물을 실은 로켓을 지구 밖으로 보내 버리기만 하면 충분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실패한다면 인류의 운명이 그렇게 결정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해야겠지만,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체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물론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단지…….”

“단지?”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영화가 모두 허구인 건 아니잖습니까. 우리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자신들이 그 실화를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만들어 내는 거다, 그렇게 다짐한 최진석은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허무하게 죽기 싫어서라도 이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    *

“격벽 돌파! 지하 연구 시설 및 신원 불명자들을 다수 확인했습니다! 또한 내부에서 고에너지 반응 있음!”

“가스! 가스! 가스!”

무려 반나절에 걸친 처절한 작업 덕분에 우리는 암반층을 뚫고, 두꺼운 합금 격벽을 깨부수고, 마침내 그 아래에 숨어 있던 버러지들의 존재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지하 연구 시설 내부에 독한 최루탄을 까 넣었다. 최루탄이 날아드는 것과 동시에 내부에서 비상 경보음이 울려 퍼지며 버러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론! 전투용으로 개조된 드론입니다!”

“로봇견 투입해!”

감시용 드론까지 모두 지하 연구시설로 가지고 들어간 디그러쉬는 진즉에 그것들을 전투용이나 연구용으로 개조해 버린 듯했다.

벌집을 건드리자 우르르 튀어나온 벌 떼처럼 전투용 드론이 확 쏟아져 나오자, 이쪽에서도 미리 준비해 둔 로봇견 부대를 즉시 투입했다.

뛰어난 AI와 전투 능력 그리고 무기를 탑재한 기계 군단이 서로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한바탕 벌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군대가 대공포가 되어 전투용 드론을 향해 화력을 퍼부었으며, 이는 전투용 드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는 탄환과 파편의 세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늘 위로 총구를 들어 올리고,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기는 것뿐이었다.

트타타타타타타! 펑! 펑! 펑!

소총, 기관총, 유탄발사기, 대공포까지.

지상에 대기 중이던 모든 화력이 일제히 하늘로 쏘아져 올라가자 흡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혼란스러운 지대공전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그런 광경을 본 적은 없지만.

전투용 드론은 정말 더럽게 많았지만, 이쪽도 그걸 염두에 두고 지저 도시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긁어 왔다. 거기에 더해 내 전투 AI를 탑재시킨 로봇견 부대까지.

놈들이 벌 떼처럼 엄청난 쪽수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순수한 화력으로 맞불을 놓을 생각이었다.

피잉! 까아아앙! 펑!

음속을 돌파한 탄환과 파편이 어지럽게 전장을 돌아다니고, 단단한 무언가에 튄 도비탄이 무시무시한 소음을 자아낸다. 폭음 같은 건 오히려 식상해서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전장 한복판에서, 나는 장갑차의 기관총좌를 잡고 미친 듯이 탄피를 배출하고 있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기관총의 탄피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 때마다 하늘을 맴돌며 어지럽게 탄환과 파편을 흩뿌리고 있던 죽음의 기계도 하나둘씩 떨어져 내렸다.

모두가 공평하게 파괴와 혼돈 속에서 생과 사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중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거나 아예 전투를 포기한 자들은 없었다.

다들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정된 죽음이 있기 때문에 해탈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오히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죽음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엄청난 포화로 마지막 드론 한 기까지 격추시켰을 때, 우리는 폭약으로 지반을 확실히 무너뜨려서 지하 연구 시설에 토사물을 흘려 넣었다.

토사물과 최루탄 비를 맞은 탓에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지하 연구 시설에 가장 먼저 난입한 것은 중장갑보병들이었다.

“다 죽여!”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가장 선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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