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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202화 (202/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09)

    격돌

    인간은 뛰어난 지능을 얻게 되면서 너무나도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바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짐승처럼 편하게 본능대로만 살아간다면 선택의 책임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인간답게 이성적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고작 맛없는 반찬 하나를 눈앞에 두고도 건강을 생각해서 먹어야 할지, 내 신념에 따라 절대 입에 대지도 않을지를 결정해야 하니까. 심지어 그런 사소한 선택이 어머니의 등짝스매싱 같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면 더더욱.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반찬 투정을 하듯이 지독한 아버지 밑에서 벗어나 나다운 인생을 살고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작은 나비의 날갯짓(선택)이 이러한 폭풍을 만들어 냈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너무 모독적이다.

    필연적이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그러니 나는 이 현상을 끝내 ‘좋은’ 선택을 하지 않은 자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말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순 없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사회 구성원들 역시 평등하지 않고.

    내가 엘리트 대기업 직원으로 성장하는 대신 평범한 경비업체 직원이 되려 했으나, 결국 쿠데타를 계획한 밀수범이 되어야 했던 것처럼.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철없는 50대 남자 역시 현실을 깨달을 때가 됐다.

    대단한 발견을 한 것도 사실이고, 대단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 같습니다.”

    한 중장갑보병 대원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경기관총 총신을 어깨에 걸쳤다.

    “사이렌이라도 먼저 울리면 이미 들켰다고 생각한 우리가 주눅 들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윗대가리들 생각은 항상 똑같다니까.”

    내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계획을 검토하고, 최후의 최후까지 교차 검증을 하면서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는데.

    고작 이 정도의 임기응변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열심히 준비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미래그룹과는 이미 얘기가 끝났다. 경비업체 직원 및 로봇견들은 전부 우리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남은 건 놈들의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병들뿐이야.”

    사병이라고 해 봤자 VIP들을 밀착 경호하는, 소위 끗발이 좀 쩌는 경호원들이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인 건 당연하고 온갖 무술 자격증과 다재다능한 무기 활용술부터 서바이벌 능력까지 두루 갖춘 괴물들.

    하지만 그런 괴물들조차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인간 전차들이 상대라면 어떨까?

    티잉!

    “중부 지구에서 저격수를 확인했습니다. 탄도 측정을 위해 시험 삼아 쏴 본 것 같습니다.”

    군용 엑소스켈레톤의 두꺼운 중장갑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 저격탄이 지면을 파고들었다.

    중장갑보병들은 중장갑타격대처럼 완벽한 중장갑으로 보호받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핀포인트 사격이나 폭발에 의한 파편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만 그런 문제들을 상쇄할 만큼 우리는 수가 많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길게 시간 끌 필요는 없지. 지금쯤이면 후방 인원들의 안내를 받아 민간인들이 대거 탈출하고 있을 거다. 민간인 피해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때려 부수는 것에만 집중해.”

    “다들 연장 들고 움직이랍신다.”

    “오랜만에 진지 공사 좀 합니까?”

    “우리 물주님께서 저 중부 지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니 없애 드려야지.”

    우스갯소리로 옛날에는 장성의 손가락 한 번이면 군인들만으로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남부 지구와 북부 지구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오는 1천 명가량의 중장갑보병대가 멋들어진 중부 지구를 덮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물 옥상에서 발악하듯 저격총과 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이쪽이 유탄발사기와 폭탄 드론으로 대응하자 적들은 유리한 고지대에 자리 잡고도 힘을 못 썼다.

    “대피시킬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대피시켰다. 지금 중부 지구에는 공식적으로 우리가 보호하고 충성을 바쳐야 할 ‘국민’은 없다. 물론 너희를 손가락질이나 턱짓으로 부려 먹는 똥별들도, 황금 배지 달고 있으면서 국가의 발전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인들도, 무능한 대통령도 없다. 똑같이 소각해야 할 쓰레기들뿐이다.”

    쿠데타는 절반이 현실적인 사유이고, 나머지 절반은 적당한 프로파간다가 섞인 감정 과잉이다.

    ‘썩어 빠진 국가를 우리가 개혁해야 돼!’라는 확실한 목표에 ‘이 나라를 썩어 빠지게 한 쓰레기들을 함께 처리하자!’라는 감정적인 이유가 더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쿠데타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묘한 희열을 느끼고, 군중심리에 자극받아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마음껏 분출한다.

    다 함께 함성을 내지르면서 총을 쏘고, 적지를 향해 달려들기만 해도 벌써 자신들의 세상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쿠데타의 진면목이다.

    물론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 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쿠데타를 기획한 사람이라고 해도 나가리가 될 수 있는 법.

    나는 아군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그들과 함께 돌격하고, 그들과 함께 쓰레기들을 소각했다. 내 기쁨, 내 슬픔, 내 후회, 내 열망을 모든 동료들과 함께 공유했다.

    “자, 잠깐! 전 그냥 의원님의 보좌관일 뿐인……!”

    트타타타타!

    쓰레기 옆에 붙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 먹었다면 장차 커서 파리가 될 구더기일 뿐이다.

    나는 몰랐어요, 나는 그런 일에 동참한 적 없어요, 나는 억울해요, 같은 말을 해도 통제력을 상실한 쿠데타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멀쩡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반대로 쿠데타를 준비하는 놈들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는 것뿐이다.

    이곳에 있는 쓰레기들은 전자도, 후자도 조건을 성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무참히 짓밟히고, 소각당하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같은 진부한 대사는 내뱉지 않는다. 처음부터 잘할걸, 하고 후회할 정도의 인간성이 남아 있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저 스스로 인간성을 포기하고 더러운 권력의 즙을 빨아 먹으면서, 떨어진 콩고물을 주워 먹길 선택한 것 아닌가.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이들은 선택을 한 대가로 책임을 지게 된 것뿐이다. 지극히 당연한 자연 생태계의 섭리 같은 것이다.

    타타타! 쾅! 퍼어어엉!

    총성이 끊이질 않고, 휘황찬란하게 세워진 VIP 전용 거주지와 정부 기관 청사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반격을 하기 위해 버선발로 달려 나온 소수의 멍청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총 한번 제대로 쏴 보기도 전에 수천 발의 탄환 세례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인간 형태를 한 아이스크림이 너무나도 강렬한 열기에 주르륵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료, 혹은 정부와 모종의 커넥션이 있던 사람들이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자신은 국회의원이라며, 한낱 군바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며 되레 호통을 치다가 벌집이 되는 놈들은 양반이었다.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는 놈부터 가족을 버리고 혼자 달아나려는 놈,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며 저주를 퍼붓는 놈들까지.

    이 좁은 구역에서 한 번도 물갈이된 적 없는 더러운 놈들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재미없는 놈들뿐이었다. 하다못해 진부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는 놈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타앙!

    자신이 헌법재판소장이니 뭐니 하고 떠들던 노인네의 머리통에 총을 갈겨 버리고 돌아섰다. 국회의장이나 국무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방부장관? 군인들이 직접 놈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 너 같은 놈은 신성한 국방을 담당하는 장관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다며 온갖 모욕을 안겨 주고, 공개 처형을 했다.

    그렇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국가의 삼권을 담당하는 모든 부서를 개박살 내면서 멈추지 않고 진격했다.

    항복하는 자, 항복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체념한 자, 악착같이 도망치려는 자. 예외 없이 총탄과 폭탄으로 쓸어버리며 현대 사회의 쿠데타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과거의 쿠데타는 윗대가리들이 잘 대처만 한다면 쉽게 막을 수 있었다. 민란 같은 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거라 적당히 성에 틀어박혀서 농성하거나, 정규군을 보내서 학살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현대 사회는 외부에서의 공격에는 강할지언정, 내부에서의 공격에는 매우 취약한 시스템을 자랑한다.

    막말로 꼭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론상 군용 무기를 잘 활용한다면 VIP를 암살하고 소수정예로 국회를 장악하고 청와대를 집어삼킬 수 있다.

    지상에서도 그랬을진대, 하물며 지저 도시라면 어떨까?

    “우릴 개✕밥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목줄도 잘 채우고, 벽도 높게 쌓았어야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결국 우릴 개✕밥으로 봤다는 증거 아니겠나.

    나는 핏물로 질척거리는 군홧발로 삽시간에 폐허가 된 중부 지구 광장을 가로질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소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 일부 그리고 청와대 경호 병력이 농성하고 있을 제2의 청와대였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가타부타 떠들어 대는 것도 귀찮았고, 이제 와서 윗대가리와 설전을 벌일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쿠데타를 일으킨 놈이 뭐가 여유롭다고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눈단 말인가?

    “내부에 진입할 필요도 없다. 전차랑 장갑차로 개박살 내 버려.”

    드드드드드드!

    중장갑보병대보다 한층 늦게 도착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일렬로 도열했다. 지상에서 들여온 수량이 얼마 없지만, 그래도 청와대 하나쯤은 거뜬히 박살 낼 수 있었다.

    직후, 무수한 포탄과 비유도 미사일이 청와대를 향해 퍼부어졌다.

    너무 손쉽게 끝난 것 아니냐고? 손쉽게 끝내기 위해 그동안 악착같이 준비해 온 거다. 쿠데타는 속도와 정확성이 생명이니까.

    “수색팀은 중부 지구 내부 순찰하면서 생존자 있으면 싹 정리하고, 동부 지구에선 아직 연락 없나?”

    “지금 막 동부 지구 탈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곧 그쪽에서 착굴기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통신병의 보고에 나는 다음 목표물을 지정해 주었다.

    “원자력발전소 점거하고 중부 지구 한정으로 전력 공급 차단해.”

    다른 지구는 궤도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하니 전력을 계속 공급해 줘야 한다. 하지만 중부 지구 전력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지하’에 숨어 있을 놈들에게 엿을 먹이기엔 충분하겠지.

    이번 쿠데타의 진짜 목표는 중부 지구에서 한가로이 늘어져 있는 돼지들이 아니다. 이 아래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수작질을 부릴지 알 수 없는 디그러쉬가 진짜 목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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