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99화 (199/211)

딥 인사이드 아웃 (206)

똑똑똑.

절도 있지만 조금은 급한 기색이 느껴지는 노크 소리에 일본 지저 도시 정부 수반이자 내각총리대신인 고로 타츠키는 눈을 치켜떴다.

“들어오게.”

“실례했습니다, 각하. 긴히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일본은 격식이 높은 자리일수록 지위가 낮거나 힘이 약한 상대가 극단적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어조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과거 전쟁으로 일본 전역이 혼란스러웠던 시절부터 내 편, 네 편을 확실히 정하고 상하관계를 철저히 했던 것이 쭉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풍조였다.

이런 풍조 탓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일본 군부는 천황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되어, 모든 전쟁반대론자들을 짓뭉개고 동아시아에서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리틀보이와 팻맨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암울한 시기를 겪고도 일본의 고리타분한 옛 풍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지, 나마지로 실장.”

“……실례했습니다. 몹시도 중요한 사안이라 잠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지저 도시 궤도 엘리베이터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육상자위대로부터 기밀 무선으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무슨 일로?”

“외부에서 침입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고로 총리는 벌떡 일어서며 책상을 내려쳤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곳도 아니고 지저 도시 궤도 엘리베이터로 외부 침입을 허용했다니?! 그 말은 격벽이 뚫렸다는 얘기 아닌가!”

“정말로 송구스럽습니다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침입자들은 약 10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들은 육상자위대 소속 경비 병력에게 각하와 미 태평양 7함대 사령관과의 회동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군. 자네는 지금 나더러 도쿄 한복판에 핵폭발이 일어나도 뚫리지 않을 거라던 지저 도시 격벽이 뚫렸다고 한 것도 모자라, 침입자들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저 도시에 내려올 때까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나마지로 실장은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쥐어짜 냈다.

“그것이…… 지저 도시와 외부가 완벽하게 격리된 것을 확인한 3개월 전부터는 경비 병력을 대폭 감축하고 지저 도시의 개발 및 노동 인력으로 전환 배치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현장의 일손이 부족하다는 점, 지상과 지저 도시 간의 완벽한 격리가 확인되었다는 점 때문에…….”

“지금 자네 얘기대로라면 지상과 지저 도시가 완벽하게 격리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크읍……!”

고로 총리가 재차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나마지로 실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래서 중간관리자는 언제나 괴로운 법이다. 아랫것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의 책임, 윗분들의 심기가 거슬리면 자신이 욕받이.

어느 쪽이든 손해만 보는 위치라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성 탈모가 심해지고 있었다.

“가, 각하…… 확실히 지저 도시 격벽은 도쿄 한복판에 핵폭발이 일어나도 안전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적절한 장비와 수단을 사용하면 공업적 처리가 가능합니다.”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게.”

“침입자들은 처음부터 지저 도시 격벽을 뚫을 수 있는 적절한 장비와 수단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난 지상에선 정상적인 장비를 구할 수 없을 테니, 아마도 외부 조력자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외부 조력자라 함은?”

“미 해군입니다.”

나마지로 실장의 대답에 고로 총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이미 미 7함대 사령관과의 합의를 통해 모든 주일 미군과 7함대 인원이 지저 도시로 들어오지 않았나? 그 외 다른 미 함대라면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지저 도시를 찾아갔을 것이고.”

“딱 하나, 미처 제시간에 지저 도시에 합류하지 못한 미 7함대 소속 군함이 있습니다.”

“커트 마르티니아 중장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대체 그게 뭔가?”

“줌왈트급 이지스 구축함인 USS 퍼니셔호입니다.”

“아!”

고로 총리는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커트 마르티니아 중장의 말에 의하면 그는 미 정부로부터 모든 주일 미군을 비롯한 7함대 소속 인원들은 ‘일본 지저 도시로 향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엄격하게 선별한 민간인들을 먼저 지저 도시로 소개하는 걸 도와 주면,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합의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모든 미 7함대 소속 군함이 도쿄 근처로 몰려들었지만, 유독 생김새가 특이했던 구축함 한 척이 보이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USS 퍼니셔호는 미 7함대 소속 요코스카 기지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군함이었다.

생김새가 워낙 미래지향적이기도 했거니와, 미국이 줌왈트급 이지스 구축함에 쏟아부은 기술력과 돈지랄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미 해군과 함께 도쿄에서 행사를 뛸 때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어 대고 감상했던 만큼, USS 퍼니셔호가 흑야 사태 당일에 빠졌다는 건 명백히 이상했다.

그땐 다들 정신이 없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을 뿐.

“USS 퍼니셔호는 한국으로 갔다가 제때 도쿄로 복귀해서 저희와 합류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합류하지 못했으니…… 아마도 군함을 통째로 어느 세력에게 탈취당했거나 혹은 그 세력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용케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군. 하지만 USS 퍼니셔호라면 가능할 법해. 일단 미 7함대 사령관과 부사령관을 내각으로 긴급히 호출하고, 침입자에 대한 소식이 지저 도시 내부에 퍼지지 않도록 그들을 ‘정중히’ 데려오도록. 나는 국무대신과 중의원, 참의원 의장들을 소집하도록 하지.”

저쪽에서 먼저 이쪽의 수뇌부들과의 만남을 요청하고 있다면 필시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요한 사안일 터.

단순히 살 곳을 찾기 위해, 혹은 약탈을 위해 지저 도시로 숨어 들어온 하찮은 쥐새끼일 리가 없다고 고로 총리는 판단했다.

“각하,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이번엔 또 뭔가?”

“그들이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답니다.”

“……무장을 했다고 한들 소수에 불과한데, 이쪽의 수적 우위를 보여 주면 그만 아닌가?”

“일반적인 무장이 아닙니다. 중장갑보병입니다.”

“……!”

중장갑보병.

일본은 공식적으로 군대를 만들 수 없는 데다, 주일 미군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어 굳이 도입을 고려하지 않은 엑소스켈레톤 운용 군대를 의미한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봇 산업의 선두주자였지만 정식 군대를 만들 수 없어, 차라리 AI를 이식한 안드로이드를 제작해 공업용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로봇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에게. 괜히 어중간하게 엑소스켈레톤 같은 것을 만들어서 공업 시장에 혼선을 주느니 철저하게 노선을 구분 짓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는 공업용 엑소스켈레톤 수요가 대단했지만, 정작 안드로이드 맹신 국가였던 일본은 엑소스켈레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과는 반대로 엑소스켈레톤에 진심인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웃 나라 한국이었다.

그들은 로봇으로 모든 것을 자동화하겠다는 높은 꿈 따윈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최대한 많은 엑소스켈레톤을 양산, 보급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도 사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하게 만들겠다는 한국 정부의 특성상, 엑소스켈레톤은 매우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결국 중장갑보병이라는 미친 군대를 만들어 내고 말았는데, 이때는 중국과 북한 그리고 자신들 일본조차도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전 세계가 지저 도시 프로젝트에 흠뻑 취해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지금, 왜 군비 감축이 아니라 군비 증강을 꾀하고 있느냐는 의도였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의 견제와 경고에도 한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중장갑보병들을 서울과 38선 최전방에 우선 배치했다.

이쪽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 중장갑보병들이라면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무조건 한국군 소속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고 보니 USS 퍼니셔호도 모종의 이유 때문에 한국으로 갔다가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지.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럼 그들의 무장을 유지하는 대신 감시병력을 최소 3배로 붙이도록. 적어도 허튼 생각은 품지 못하게 해야지.”

대화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한들, 일본 내각, 미 7함대 수뇌부의 안전을 지킬 보험 정도는 들어 놔야 할 것 아닌가.

나마지로 실장이 곧바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서자, 고로 총리는 서둘러 내선 전화를 돌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으니 이쪽도 준비할 게 많았다.

*    *    *

“최 뱀, 육상자위대 애들 머릿수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하니까 그러는 거야. 신경 꺼.”

지저 도시 격벽에 중장갑보병들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만 뚫은 뒤 그대로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강한 지 약 30분 정도 지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자신들과 마주친 초병들은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댔다. 보초 서는 게 워낙 따분했던 모양인지 그들은 헬멧도 제대로 쓰지 않고 방탄복도 다 풀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중장갑보병 중에서도 진짜배기 중장갑보병이 갑자기 등장했으니 혼비백산할 만했다.

최진석 일행은 일단 섣불리 그들을 자극하지 않고 잠자코 요구사항부터 밝혔다.

적대할 의사가 없으니 느긋하게 윗대가리에게 보고 넣어서 어서 빨리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정식 군대도 아니라 그런지 애들 군기가 참…….”

“군기가 아니라 기강이라고 해야지. 네 말마따나 ‘군대’가 아닌데.”

“참 한결같은 애들이긴 합니다. 다 늙은 민방위 아재들도 쟤들보단 빠릿빠릿하겠습니다.”

“우리 전용 엑소스켈레톤은 얼굴 가려 줄 바이저가 있어서 망정이지, 바이저 없었으면 표정 다 들켰겠다, 야.”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즈음, 육상자위대 병력이 최진석 일행을 충분히 포위하고도 남을 만큼 집결했다.

그중 장갑차에서 내린 한 중년 자위대 간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의 견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국 계급으로는 소령에 대응하는 삼등육좌였다(三等陸佐).

“그쪽이 내건 조건은 상층부에서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단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 대신 지저 도시 내에서 적대적인 제스처 및 돌발 행위는 일체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한다는 조건하에 윗분들과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이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호위’할 수 있게끔 경계 태세를 풀어 주십시오.”

“안 될 거 없지.”

최진석이 손을 흔들자 전 대원들이 총구를 내리고 무기의 안전장치를 걸었다.

역사관이니 뭐니 하면서 일본과 전쟁을 하거나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와 미 7함대의 적극적인 협조,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세상이 다시 원상복구 된다면 또 각국 정치인들끼리 으르렁거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그때 가서 저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최진석 일행은 호위라는 명목하에 육상자위대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도쿄 지저 도시 중심부로 향했다.

자신들이 48시간 이내로 지상에 복귀하지 않거나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존 함장이 직접 강습 병력을 이끌고 도쿄 지저 도시로 침공해도 좋다는 무전을 남기고 들어왔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뒷일은 존 함장이 대신해 줄 테니 최진석 일행은 딱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애초에 이런 일로 두려워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똥별들을 처형시키면서 자신들만의 세력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디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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