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97화 (19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04)

    나는 이런 일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런 일에 몸담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런 분야와는 영 안 맞는다는 거다.

    적성이 안 맞는다는 뜻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시민 A였으니까.

    사람을 이용하고, 사람의 관계를 박살 내고, 사람을 죽이면서 음모를 꾸미거나 대단한 계획을 꾸리는 건 정말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이미 몸소 체험한 바 있으니까.

    이용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 봤다, 기억소거제를 맞아서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을 봤다, 사람을 사망 처리 해서 흔적을 지우는 광경을 봤다.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 주는 국가와,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은가?

    ‘조용히 살자’.

    그래. 우습게도 나는 가슴속에 뜨거운 불꽃을 품고 내 인생을 모두 던져서 혁명에 투신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평범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기억소거제를 거부하지 않았다. 저항하고 대들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될 테니까. 기다리는 건 비참한 최후일 테니까.

    그래서 조용히 사회로 복귀해, 평범한 사람으로 인생을 끝마치려 했다.

    아마 흑야 사태가 발발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그룹 산하의 경비 업체에 취직하여 적당한 연봉이나 타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운 좋게 여자와 접점을 가지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집과 가정도 가져 보고, 나름대로 충실한 시민 A의 삶을 즐겼겠지.

    염병할 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만 않았어도 내 가슴에 같잖은 혁명의 불꽃이 타오를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혁명을 부르짖는 놈들 중에 제대로 된 놈들은 하나도 없지.”

    혁명의 대명사로 불리는 프랑스조차 제대로 체계가 잡히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툭하면 윗대가리 숙청, 툭하면 혁명, 그 풍조가 현대까지 이어져서 국민들의 정서에는 ‘잘난 놈은 다 끌어내려야지’ 같은 것이 박혀 있을 정도다.

    혁명의 국가라는 프랑스가 그러할진대, 부패한 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보잡시고 설치는 놈들은 어땠겠는가?

    그들도 다르지 않다.

    끝없는 부패, 흉악한 범죄, 서민의 삶은 생각하지 않는 격렬한 내전. 혁명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놈들이 하는 짓이 다 거기서 거기인 건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런 마당에 나만큼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 입장에서 보면 나도 수많은 꼴통 혁명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조직을 창설하고, 정부의 뜻에 반발하고, 끝내 쿠데타를 준비하기에 이르렀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은 빌어먹게도 모든 꼴통 혁명가들이 해 온 것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들과 나의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내게 욕심이 없다는 것 정도?

    “하, 병신인가 진짜.”

    쿠데타나 준비하는 새끼가 고작 욕심이 없다는 자기변호를 내세우다니. 내가 생각해도 그건 너무 병신 같았다.

    차라리 뼛속까지 무정부주의자인 반골 꼴통이니까, 하고 자기변호를 하는 게 더 낫겠다. 그러면 적어도 남들이 납득해 줄 명분은 생길 테니까.

    바꿔 말하면 그 어떤 인간도 꼴통 혁명가의 ‘나는 욕심이 없다’는 자기변호를 믿어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면 진지하게 나를 정신병자 취급 하지 않을까?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그런 부류들이었다.

    욕심 많은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권력 있는 사람들. 압축하면 ‘기득권’.

    미래그룹을 필두로 한 주요 기업 수뇌부들이 최종적으로 나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는 그들과 비로소 공동 회담을 가질 수 있었다.

    다들 오랜 세월 동안 돈과 권력 맛을 본, 그런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탐욕스러운 장사치들이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시민은 나뿐이었다.

    “공동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제 목을 걸고 약속 하나 드리겠습니다.”

    나는 상석에서 일어나 PPT 자료 하나를 꺼냈다.

    준비된 PPT 자료 속에는 과거의 ‘나’에 대한 정보들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여러분들이 지난날 그토록 궁금했을 ‘북한의 군사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인물’이 바로 여러분들 앞에 서 있습니다.”

    “……미친.”

    “10년 전까지만 해도 핵이니 서울 불바다니 하며 끝없이 한국을 도발했던 북한이 갑자기 위축된 이유가……!”

    “우린 다들 그게 미국의 소행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럴 리가.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대외적 문제에 일절 관심을 끊은 상태였다.

    그렇게나 난리를 피우던 우주 탐사도 유인 달 탐사 성공 이후 모든 프로젝트를 동결하거나 뒤로 미뤄 버릴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지저 도시 프로젝트는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한국에겐 기회가 있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도 미국을 뒤따라 자신들만의 지저 도시 타이쿤을 즐기는 동안, 자력으로 북한을 제거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을 키우고 검증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한국군 전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전히 북한의 비대칭 전력인 핵과 38선 너머에 쭉 배치된 방사포들이 눈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남들은 다 지저 도시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을 때, 한국은 지저 도시 프로젝트에 쓰일 돈마저 어떻게든 쪼개서 국방비에 투자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국방비 예산을 깎은 적 없는 미친 국가. 누구든 건드리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물어뜯어 주겠다는 또라이 군사 강국.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저 도시는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완성’ 상태였지만, 대신 국방비에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프로토타입 군용 엑소스켈레톤이 나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중장갑보병 부대가 신설되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중장갑수색대와 중장갑타격대라는 유령 부대도 창설되었다.

    오직 대통령 직속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며, 훈련을 제외한 모든 임무는 북한 현지에서 벌이는 실전.

    주요 임무 목표는 요인 암살, 잠입, 기밀 탈취, 파괴 공작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북한이 비밀리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전 세계가 지저 도시에 한눈 팔려서 사실상 국제적 왕따를 넘어 국제적 히키코모리가 된 북한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던 것이다.

    그러다 놈들이 땅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장갑수색대와 타격대가 꾸준히 파견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소리 소문 없이 바스러졌다.

    국정원 요원들은 죽으면 별 하나라도 남기는데, 그들은 실종, 탈영, 사고사로 기록되어 조용히 묻혔다. 그 기록마저 윗대가리들의 지시에 의해 지워졌음을 최진석이 내게 알려 주었다.

    그러다 내가 3년 전에 중장갑수색대로 활동하면서 모든 내막이 밝혀졌다.

    북한은 비밀리에 디그러쉬의 지원을 받아, 디그러쉬의 장비와 돈으로 땅굴을 파고 있었다.

    국제적 꼴통으로 감시를 당하고 있는 북한을 지원해서,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큰 땅굴을 파고 있었던 만큼 놈들이 조용해진 건 당연했다. 괜히 반응했다가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대신 우리가 가는 땅굴마다 북한군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나왔고, 마지막 땅굴에선 기어이 ‘초기형’ 나이트워커들이 기어 나온 것까지 확인했다.

    “중장갑수색대의 마지막 생존자가 여러분들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이 시간부터 이곳에서 오가는 정보를 한 줄이라도 타 세력에게 흘리는 것이 발각될 경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태 이상의 죽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붙어먹든, 어디에 숨든, 어떤 대책을 준비하든 제가 반드시 찾아갈 거라는 의미입니다.”

    내 손에 죽어 나간 인간들만 수천 명 단위이고, 내 손에 무너진 북한 땅굴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북한이 외국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은밀히 사주해서 초고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건 사람 죽이는 데 도가 튼 미친놈입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암살, 납치, 잠입, 공작 같은 걸 눈 감고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년 가까이 되는 군 생활 내내,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동안 그 짓거리만 해 왔으니까 못 하는 게 이상하지.

    “만약 못 믿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지금 나가셔도 되고, 아니면 이곳에서 공유받은 정보를 몰래 누설시켜도 됩니다. 그 뒤에 얼마나 살아 계실지는 장담 못 드립니다.”

    “……이 회장이 왜 자네를 지지하는지 알겠군.”

    방산업체이자 군수물자 생산 공단을 운영 중인 칼스텍의 최만근 회장이 침통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저는 미래그룹과 처음 접선할 때부터 제 몸에서 무기를 떼어 놓지 않았습니다. 미래그룹이 허용한 게 아니라, 미래그룹이 제 몸에서 무기를 떼어 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깟 사설 경호원이든 경비원이든 한 트럭을 꼬라박아도 내 몸에서 호신용 무기가 버려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거느리고 있는 사설 경호원들만 수백 명이고, 이 회장이 가진 군용 로봇견도 벌써 수백 대에 달하지 않나?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을 가지고…….”

    “저는 어지간하면 혼자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를 보시면 제가 굉장히 대단해 보이시겠지만, 사실은 모두 중장갑수색대 대원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럼 이제 다시 의문이 생길 겁니다. ‘그럼 생각보다 훨씬 더 별것 아닌 놈인데?’, 그렇죠. 중장갑수색대 대원들과 함께하지 않는 저는 별것 아니죠. 대신 다른 조직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는 PPT를 넘겨서 새로운 자료를 보여 주었다.

    “총력전까지 간다면 제가 최대 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이 대략 30만 정도 됩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미래그룹 총수님께서 여러분들께 설명해 드렸을 겁니다. 제가 지저 도시의 군대 일부와 밀수 조직 그리고 지상의 대규모 생존자 그룹을 모두 장악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이미 한 차례 대병력을 동원해서 사이비 놈들과 전쟁을 치른 경험도 있다.

    물론 그때는 10만 단위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군단’이라는 규모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 바 있다.

    당시 우리에게 로봇견을 대여해 준 미래그룹이 해당 데이터를 모두 확인하고 검증까지 끝마쳤을 테니, 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여러분이 지금 바깥에 있는 수백 명의 경호원과 로봇견을 동원해서 저 하나 족치면 뭐가 남을 것 같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바람이 불면 흩날릴 한 줌의 재 정도나 남겠죠.”

    “그래서 처음부터 이 회장을 통해 협조할 생각이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을 선별했던 거군.”

    “일개 밀수범의 주장과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총수의 말, 여러분들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더 신뢰성 있게 믿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외통수군.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허허. 우리야 사실 장사하는 놈들인데, 상품을 팔아먹을 장소와 손님들만 있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렇지. 그게 이 정체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지저 도시여야 한다는 법은 없고.”

    아무래도 향방이 결정된 것 같다. 드디어 엉덩이 무거운 장사치들이 선택을 내린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이 하나같이 전쟁의 참사를 겪으셨는데, 이 불초한 후손들이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총화기에 짓밟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냥 말년은 곱게 죽고 싶다고 하시구려, 허허.”

    “이 사람이 농담도 참, 허허허!”

    모두의 지지를 확인한 나는 드디어 본격적인 쿠데타 계획의 브리핑에 들어갔다.

    돈, 물자, 사람, 장비. 가진 거라곤 죄다 ‘상품’뿐인 이 장사치들로부터 적금을 깨게끔 유도해서 엄청난 투자를 받아야 한다.

    지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한 번 지상의 사람들에게 손해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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