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203)
결론부터 말하면 도쿄역 내부 진압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방어구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핏덩어리들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으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무기를 이용해 봤자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오합지졸은 철저하게 분쇄해서 광역 공포를 시전하거나, 아예 중요해 보이는 대가리 모가지만 과일 수확하듯 따 주면 알아서 잠잠해진다. 그러니까 오합지졸인 거다.
기껏해야 범죄 조직에 불과한 야쿠자들은 중장갑으로 무장한 철 덩어리들이 경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펑펑 쏴 재끼면서 돌입하는 것을 막을 능력이 전무했다.
괜히 조직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답시고 돌격 특공을 벌이거나, 중화기를 이용해서 덤비는 놈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었다.
결국 최진석 일행은 몇몇 간부급 조직원들을 다그쳐서 내부 정보를 털어 낸 한편, 그리 어렵지 않게 오야붕의 은신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만큼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는지 야쿠자들이 상당수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모두 부질없는 짓. 비록 그들의 계급은 천차만별이었겠지만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이 선고되었다.
패닉룸의 문짝을 통째로 뜯어내고 은신처 내부를 급습하자 조직의 오른팔과 왼팔 그리고 몇몇 경호원들을 비롯한 오야붕이 그곳에 있었다.
최진석은 항복하겠다느니 협상하겠다느니 같은 변명을 들어 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소꿉놀이나 하는 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악의 근원들을 모조리 쏴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도쿄역 한복판에 내걸었다. 민간인들에게 이제 만악의 근원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포했다.
극히 일부만 남은 야쿠자 잔당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분노한 군중들의 집단 린치에 절망했고, 자유를 되찾은 민간인들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물자 창고부터 털었다.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최진석 일행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USS 퍼니셔호에서 파견할 치안유지군이 이곳에 당도하면 알아서 혼란이 정리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정상적인 생존자 그룹으로 바뀌겠지.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군수물자 창고는 치안유지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진석 일행이 엄중하게 관리했다.
때마침 지저 도시 격벽을 파괴하기 위한 강력한 화력이 필요했던 참이고, 또 생각 없이 분노한 군중들에게 갑자기 무기를 풀어 버리면 어떤 소요 사태가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다.
민간인은 최악의 사태가 아니고서야 그냥 민간인 노동력으로 남아 주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이미 앞선 사레들처럼 자격 없는 자들에게 힘과 권력이 주어지면 대참사가 벌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니까.
“최 뱀, 말씀하신 무반동총과 폭약을 좀 찾았습니다. 이놈들 어차피 써먹지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아 둘 거면서 왜 이런 것들까지 가져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지. 멍청이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창고에 방치해 둔 덕분에 간단히 정비만 하면 새것처럼 쓸 수 있으니까.”
현대의 일본은 타국 침략보단 자국 방어 목적으로 자위대의 전력을 편성했기 때문에, 거점 방어에 특화된 군용 장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전역에 깔려 있는 철도로 쉽게 운송할 수 있는 전차나 곡사포, 해안포, 방공포 같은 것들 말이다.
알파 대원들은 무반동총과 탄두 그리고 폭약이 한가득 들어 있는 특수 케이스를 양손 가득 들고 나왔다.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는 포탄과 폭약이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현지에서 징발하는 건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 일본의 무기 체계는 현대화를 거치면서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똑같이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군 입장에서도 제법 익숙했다.
막말로 설치법만 알려 주면 어린아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만능 폭약 C4, 장전하고 조준한 다음 쏘기만 하면 되는 무반동총. 군인이면서 이걸 못 다루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런데 도쿄 지저 도시 격벽을 파괴하면 저쪽에서 곱게 나올 것 같진 않습니다.”
“달리 방법이 있어? 지저 도시 내부와 지상 간의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마당에, 하는 수 없으니 문 좀 열어 주십사 노크라도 해 봐야지.”
“흐흐, 그건 맞습니다.”
일본이 최대 규모 도시인 도쿄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뒀다는 건, 한국과는 다르게 지저 도시와 지상 간의 교류가 일절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안유지군이 도착한 것 같군. 빨리 인수인계하고 치요다구로 가자.”
도쿄역 입구에서 우르르 들이닥치는 대대급 병력에 일본인들은 또 한 번 놀랐다.
대부분 경상도에서 제작한 양산형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고 있지만, 무장 수준이나 행동 양식이 정규군 못지않았다.
게다가 이미 군용 엑소스켈레톤으로 알파 부대가 무엇을 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대대급 병력이 우르르 밀고 들어오는 것에 어떤 불만도 품을 수 없었다.
야쿠자 조직원들을 족쳐서 얻은 정보로 도쿄역의 내부 상황을 알려 준 최진석은 치안유지군에게 무사히 인수인계를 마친 뒤, 군수물자를 챙겨서 치요다구로 향했다.
치요다구는 기존에 일왕이 기거하는 황궁이 있었던 장소인 만큼 4면이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리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새롭게 쌓아 올린 현대 양식의 성벽과 성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흑야 사태가 터지자마자 받을 사람만 받고 외부인의 접근을 원천 봉쇄해 버린 것이다.
야쿠자들 입장에선 두 번 다시 기득권들이 지상으로 나오지 않을 테니, 굳이 치요다구를 점령하기보다는 도쿄역에서 소꿉놀이를 즐기는 것에나 집중했을 터.
최진석은 굳게 닫힌 성문을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찼다. 어느 나라든 국가적 재난 사태에 기득권층이 국민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살아남는 건 다 똑같구나 싶었다.
이러니 현대 사회에 무정부주의자들이나 테러리스트, 급진적 혁명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박살 내.”
미관을 생각해서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거대한 성문이라도 박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는 치요다구 중심부에 위치한 도쿄 지저 도시 격벽이었다.
북한산에 있는 서울 지저 도시 격벽만 해도 그 두께가 어마어마하고 크기도 장난 아닌 것을 확인한 적이 있다.
“내부는 멀쩡한 것 같습니다.”
흩날리는 성문 파편과 먼지를 헤집으면서 내부로 진입하자 삭막한 풍경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오버로드, 주변에 이상한 건 없나?”
―없습니다. 혹시 고층 빌딩 외벽에 들러붙어 있던 놈들이 치요다구 안에 숨어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 깔끔합니다.
“사람의 왕래가 아예 없는 곳이라 괴물들도 자리를 잡지 않았던 거군.”
애초에 괴물이 자리를 잡기에 좋은 장소도 아니다. 이곳에 숨어 지내면 일일이 높은 성벽을 타 넘고 다녀야 하는데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인 은신처에 노련한 사냥꾼이 자리 잡을 리가 없잖은가.
“지저 도시 격벽이 보입니다.”
“황궁이 있던 자리를 싹 밀고 고풍스러운 장식물로 격벽 주변을 꾸몄군요. 일본인들답습니다.”
“중국도 비슷할 거다.”
“거긴 아예 주석님 얼굴을 격벽에 대문짝만하게 걸어 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흐흐.”
“잡담은 그쯤하고 작업 시작하자.”
중장갑수색대는 잠입, 공작, 기밀 탈취 등이 목적이었다면 중장갑타격대는 북한 현지에서 목격자 말소 및 증거의 완벽한 인멸이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해 뭔가를 박살 내는 것에 특화된 부대라는 것이다.
격벽 앞에 들러붙은 알파 대원 중 한 명이 전문 기기를 이용해 격벽의 두께를 알아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여기도 두께가 만만찮습니다. 벙커버스터를 정통으로 때려 박지 않는 이상 힘들겠는데요.”
“우린 격벽을 박살 내는 게 아니라, 인간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만 뚫는 게 목적이다. 아니면 우리의 의도를 사전에 알아차리고 저쪽에서 먼저 격벽을 열어 주게끔 유도하거나.”
이번에는 공병이 앞으로 나서서, USS 퍼니셔호에서 가져온 전문 공구를 꺼내 들었다.
전문적인 금속 가공 공장에서나 사용할 법한 플라즈마 절단기를 이용해서 격벽을 절단하기 시작하니 폭약으로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격벽이 서서히 절단되기 시작했다.
단순 절단 작업이라고는 해도 거대한 격벽에서 작업을 하는 만큼 플라즈마 절단기는 다소 비효율적인 공업 장비였다.
하지만 이것도 USS 퍼니셔호에서 겨우 구해 온 전문 장비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중간쯤에 안 되겠다 싶으면 적당히 구멍을 낸 다음 격벽 내부에 폭약을 잔뜩 쑤셔 박고 터뜨리면 돼.’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폭약과 무반동총까지 잔뜩 챙겨 왔다.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까지 가면 내부에서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 알아서 격벽을 열어 주든가 하겠지.
알파 대원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격벽 절단 작업을 기다렸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도쿄 지저 도시에 있는 기득권층과 접선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다네가시마우주센터와 호위용 함대를 적어도 2개월 내에 복구해야 한다니.’
하다못해 호위용 함대는 불가능하더라도 이번 계획의 절대적 우선순위인 다네가시마우주센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복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임무처럼 보이지만, 2031년의 진보된 기술력과 고급 인재들을 총동원한다면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애초에 지구와 인류를 걸고 하는 도박인 만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도박을 해 보기도 전에 실패해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니, 하다못해 도박이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기획된 작전이니까.
“똥 싸는 놈 따로, 치우는 놈 따로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바뀌질 않는 불변의 법칙이군.”
만약 모든 일이 기적적으로 끝나게 되면 똥 싼 놈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 * *
쿠데타 준비에 한창인 서울 지저 도시는 반년 전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각을 재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계획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상대 세력끼리는 자존심이 걸린 눈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선 중부 지구 임시 정부와 동부 지구의 기업들은 사이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정부는 이렇다 할 만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경기부양책이니 자급자족 계획이니 하면서 하드한 프로젝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자신들에게만 리스크를 짊어지라고 자꾸만 요구해 대니 당연히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중부 지구에서 파견된 정부의 끄나풀이나 다름없는 군인들이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하자, 불만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고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 기업들이 찾는 대체재가 누구일까? 바로 우리다. 정확히는 나.
미래그룹을 통해서 이미 나의 유능함을 알게 된 몇몇 기업들이 비밀리에 접선을 요구하면서 ‘미래’에 대해 논하려 했다.
예를 들어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 두었는지, 그 계획으로 자신들의 향방이 어떻게 바뀔지, 지저 도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이 궁금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대규모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는 입장인 만큼 당연히 계획의 은밀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라,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업들의 지지와 지원을 요구했다.
등골에 빨대가 꼽힌 채로 골수까지 빨아 먹힐 것이냐, 아니면 뭔가 대단한 걸 준비하고 있는 우리와 함께해서 미래를 위한 도박을 해 보겠느냐. 이런 분위기로 대화가 진행되자 기업들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현실성이 없다느니, 내가 협조성이 부족하다느니 등의 이유를 들이밀면서 합류를 거부했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낸 것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없어도 쿠데타는 예정대로 진행할 생각이고, 진행 자체에 차질이 생기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은 기술과 자원 그리고 인력을 확보해 두려는 것뿐이지.
최근 요 몇 주간 음지에서 쿠데타 준비를 하면서 느낀 건데, 인간도 동물들처럼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걸 알았다.
어디서 정보가 새 나간 것도 아닌데 지저 도시 전체가 불편하면서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조차 분위기 파악을 한 것이다.
“선택의 시간이 머지않았군.”
나는 체력 단련과 장비 점검에 좀 더 자주 신경 쓰기 시작한 군인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동족상잔의 끝에 실낱같은 희망과 미래를 찾아야 하는 게 현 인류의 실정이라니. 아이러니해서 헛웃음도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