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95화 (195/211)

딥 인사이드 아웃 (202)

보통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거대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고도로 훈련받은 군, 경이 투입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는데, 이는 군, 경의 전투 교리와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 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풍토가 국제사회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전투에 휩쓸리면 자동적으로 공세가 누그러든다.

죄 없는 민간인과 민간인으로 위장한 범죄자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고, 또 민간인이 우발적으로 태도를 돌변해서 호전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귀찮은 문제를 따지지 않는 건 귀중한 인력 손실보다 민간인 손실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러시아 정도나 가능한 일이지, 대부분의 국가에선 이유 없는 민간인 발포를 엄히 금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선공권을 빼앗기는 형태의 전투 교리 때문에 공격자 입장인 진압팀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여기서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 부족하다는 이유까지 연결되면서 피해 사례도 대폭 증가한다.

그런 점에서 군용 엑소스켈레톤은 허술한 방탄복이나 헬멧에만 안전을 맡겨야 하는 땅개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로 등극했다.

소총탄 따위로는 흠집 정도밖에 나지 않는 두터운 중장갑.

튼튼한 콘크리트 건물 벽을 주먹 한 방으로 박살 내거나, 잠긴 금속 문을 통째로 뜯어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출력.

설령 상대가 무장을 했다고 한들, 육안으로 확인하는 순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외관.

요리조리 숨어 다니면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범죄자들을 단숨에 추격할 수 있는 미친 기동력.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진짜 어지간한 규모의 군부대와 맞먹는 화력이 없다면,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운용하는 집단에게 이길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미 육군 군용 엑소스켈레톤 부대를 처리하기 위해 중동 지역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대규모 기습 작전을 감행했지만, 미군 사상자는 전체의 1할도 되지 않았다. 일반 부대였다면 무조건 전멸이었을 텐데 역으로 적들을 갈아 버린 것이다.

심지어 미 육군이 야전에서 사용하는 군용 엑소스켈레톤 모델은 최소한의 소총탄과 폭탄 파편 방어 정도만 가능한 기동형 모델이다. 중장갑보다는 경장갑에 가까운 모델이었음에도 적들의 기습을 역으로 꺾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중장갑 모델이 군 경험도 전무한 범죄 조직들을 상대로 기습을 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쏴, 쏴라! 놈들을 저지해!”

“기관총! 기관총 사수는 뭘 하고 있는 거얏!”

“아아아아악! 내 다리!”

으적!

다리에 총을 맞고 엎어진 야쿠자 말단 조직원의 머리통을 단숨에 짓밟아 수박처럼 터뜨린 존재가 있었으니, 기관총으로 갈겨도 꿈쩍하지 않는 알파 부대 전용 엑소스켈레톤이었다.

한국군이 양산형으로 잘 쓰고 있는 일반적인 군용 엑소스켈레톤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장갑 두께와 출력 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뽐내는 물건이다.

고릴라를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처럼 쉽게 제압할 수 있고, 길 앞을 막는 차량이나 콘크리트 잔해물 따윈 스티로폼 박스처럼 들어서 치워 낼 수 있다.

게다가 무장도 경기관총과 유탄발사기 같은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했기에, 몸을 보호할 수단이 매우 제한적인 범죄자들을 상대로 이보다 더한 괴물은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군용 엑소스켈레톤은 냉각 및 기계 오작동 사고 방지를 위해 신체 노출 부위가 제법 많지만, 중장갑 목적으로 개발된 알파 부대 전용 엑소스켈레톤은 거의 전신 슈트나 다름없었다.

총알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 없다는 뜻이다.

퉁!

역 공동을 가로지르는 바람 빠진 소리에 누군가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기관총을 설치해 둔 얄팍한 진지가 폭발하면서 파편과 육편을 흩뿌렸다.

“뭐, 뭐냐! 저놈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야! 설마 미군인 건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한 놈들이라 도저히……!”

“후퇴, 후퇴해! 자위대 기지에서 가져온 무기들 있잖아! 박격포든 대전차미사일이든 쏴서 없애 버리라고!”

“놈들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럼 노예 새끼들을 고기 방패로 써! 우릴 건드릴 정도면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까지 막 족치진 않을 거다!”

실제로 범죄 조직이 진압 부대를 상대로 매우 빈번하게, 오랫동안 잘 써먹고 있는 전술이었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혹은 비무장 상태로 보이는 민간인처럼 위장한 특공대원을 배치시켜서 진압 부대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

실제로 오랫동안 일본 곳곳에서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들이면서, 경찰들과 꾸준히 몸싸움을 해 왔던 거대 범죄 조직인 만큼 그런 전술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문제는 상대가 그런 것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2m가 넘는 크기의 금속 거구가 총을 쏘고 있는 마당에 앞길을 막을 민간인은 없었고, 혼란에 빠진 민간인인 척 위장해서 접근해 기습을 가하려던 놈들은 예외 없이 제거당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들은 정말로 인간을 말살하는 데 특화된 프로처럼 보였다.

치밀한 AI를 적용시킨 군용 드론도 저렇게까지는 못할 터.

행동대장인 타츠이다라 요이치는 거침없이 진군해 오는 살인 기계들을 보고 전신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이건 꿈이야. 지상의 괴물 놈들도 이렇게까진 할 수 없을 텐데…….”

상대가 엄청난 대규모 군부대였다면 이해한다. 범죄 조직의 규모가 아무리 커도 군대를 이길 만큼 막강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상대는 기껏해야 열 명 남짓이었다. 편제 단위로 치면 2개 분대 정도.

보통은 절대다수가 극소수를 압도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극소수인 적들에게 절대다수인 자신들이 압살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흘리다가, 때마침 적의 주먹 한 방에 척추뼈가 확 꺾이며 옆으로 날아든 부하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자위대는 저런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운용하지 않는다. 주일 미군도 마찬가지다. 그럼 답은?

중국 아니면 한국이다.

‘중국이 주변 나라들을 내버려 두고 굳이 먼 바다를 건너서 일본까지 올 이유가 없다. 무조건 한국이야!’

제대로 된 군대도 가지지 못한 일본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웃 나라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인들은 자국보다 타국 상황을 더 잘 알고 있다.

타츠이다라 요이치가 저 살인 기계들을 한국군이라고 추정한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전 세계에서 이상할 정도로 육군 화력 증강에 광적인 집착과 진심을 보이는 동양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당장 주변 나라인 러, 중, 일에 비하면 해군력이나 공군력이 다소 후달리는 편이지만 육군력만큼은 자신 있게 뽐낼 수 있는 국가다.

그 조막만 한 땅덩어리에 무슨 전차가 1천 대는 가볍게 넘질 않나, 자주포와 미사일 포대는 도배를 하듯이 깔아 놨고, 병사들이 좀 약해 보이니까 아예 부대 단위로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양산, 보급했다.

장담컨대 중국과 러시아도 감히 육군력으로는 쉽게 건드리지 못할 무시무시한 고슴도치가 바로 한국이었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이래저래 얽힌 일이 많지 않은가. 국민 정서가 서로 극과 극인 데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웃’일지언정 ‘우방’은 아니었다.

“이 시국에 침공 따위를 하다니…… 저놈들은 제정신인 건가?”

세상이 망했으면 자기네 나라에 처박혀서 적당히 아포칼립스 시대를 즐기든가 할 것이지, 왜 멀쩡한 남의 나라에 와서 깽판이란 말인가?

당연하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대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조직원들을 말살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치 해충 구제업자가 집안의 벌레를 싹 잡아 죽이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총성과 폭음에 구석으로 밀려난 민간인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마침내 도쿄역에서 총성이 잦아들었다. 저들은 이제 경우 1차 청소가 끝났다는 듯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며 타츠이다라 요이치가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이놈은 차림새나 무장 상태를 보니 최소 행동대장쯤 돼 보이는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를 정도로 잘 먹고 잘 지내는 놈이라면 무조건 조직의 간부라고 봐야겠지요. 처리합니까?”

총알도 아깝다는 듯이 주먹을 들어 올려 보이는 한 살인 기계를, 다른 살인 기계가 제지했다.

“아직 도쿄역 전체에 숨어 있는 잔당의 대략적인 규모나 물자가 보관된 장소 같은 걸 먼저 털어놓게 해. 오야붕(야쿠자 두목)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아는 건 같은 야쿠자 간부급들 뿐일 테니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그들을 보고 타츠이다라 요이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이라도 허리춤의 총을 뽑아서 야쿠자답게 맞서 싸우다 명예롭게 죽을까? 아니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면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하나씩 뽑아 준 다음, 팔과 다리를 마지막에 뽑아서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 주지. 그렇게 죽기 싫다면 네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털어놔야 할 거다.”

조금 어눌하긴 하지만 일본어를 배운 경험이 있는 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대놓고 협박을 해 오니, 더 이상 그에게 야쿠자의 의와 협 그리고 명예 같은 건 쥐뿔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다면 지저 도시로 제2의 부흥을 맞이할 일본은 야쿠자 조직들을 완전히 없애 버렸을 터.

세상이 망해 버렸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자신들이 이 흉악한 살인 기계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나.

“저, 전부 털어놓겠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정보가 유용하다면 살려 주지. 대신 쓸데없는 정보나, 딱 봐도 거짓말 같은 정보가 나오면 손가락부터 뽑겠다.”

보통은 손톱부터 뽑는다고 협박하는데, 손가락 자체를 뽑아 버린다는 흉흉한 협박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껏해야 일하는 노예와 부하들을 관리하는 행동대장에 불과한 그이지만, 썩어도 간부급이기에 유용한 정보들은 제법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 후퇴한 조직원들이 어디로 집결했을지, 오야붕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물자가 축적되어 있는지 등등.

“저, 정말로 다 말하면 살려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우린 누구처럼 그때그때 말을 바꾸진 않거든.”

설령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저 금속 덩어리에 산 채로 으깨지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게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

물론 타츠이다라 요이치는 자신이 모든 정보를 털어놓은 뒤에 일어날 일을 모르고 있었다.

정보를 모두 털어놓고 이들의 마수로부터 무사히 풀려난다고 한들, 그다음은 분노로 가득한 노예들의 집단 구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선택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이 세상은 능력과 배짱이 있는 사람들만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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