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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94화 (194/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01)

    결국 최진석은 도쿄역 측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생존자 무리와 접선했다.

    그들은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서 군용 엑소스켈레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고, 심지어 자위대나 주일 미군이 아니라 한국군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호, 혹시…… 일본 정부가 자취를 감춘 틈을 타서 침략을 하러 온 것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침략을 할 예정이었다면 소규모 부대가 아니라 대군을 이끌고 왔겠죠.”

    말을 더듬는 중년 남성의 착각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 일본, 한국은 역사적으로 서로 물어뜯기 바쁜 관계였고 그런 풍토가 현대까지도 쭉 이어져 내려왔다. 친하지도 않은 타국 군대가 대놓고 지상을 활보하고 있다면 명백하게 의심스럽겠지.

    만약 한국인이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인민군과 마주쳤다면 마찬가지로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심지어 이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자체적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그럼…… 혹시 구조대 같은 겁니까? 유엔평화유지군이라든가?”

    “그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고, 곤란한데…… 그러면 곤란해……!”

    자위대나 주일 미군도 아니고, 유엔평화유지군도 아닌 완전 생판 남인 소규모 군인들. 하필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 한국군이라서 곤란한 건가 싶어 되물으려던 찰나.

    오버로드로부터 또 다른 보고가 흘러 들어왔다.

    ―도쿄역에서 더 많은 인간 무리가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고 있습니다.

    “무장했나?”

    ―극소수만 무장했고, 그 외에는 지금 최 병장님께서 접선 중인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일체 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극소수의 무장 인원들이 비무장 민간인을 부려 먹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확인했다. 이후 행동에 참고하도록 하지.”

    최진석은 어째서 눈앞의 남성들이 이런 추위에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건지, 어째서 불안에 떨고 있는 건지 대충 감이 잡혔다.

    “도쿄역에서 거점을 잡고 계신 것 같은데, 혹시 그곳의 생존자 그룹 대표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그걸 알아서 무엇하시려고?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나을 겁니다. 여긴 지옥이에요……!”

    “자위대나 주일 미군이 죄다 지저 도시로 도망쳐 들어갔다면 경찰들이 민간인들을 이끌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들과 정보 공유를 좀 하고 싶습니다만.”

    “겨, 경찰? 흐흐. 경찰 따윈 없습니다. 정확히는 경찰이었던 사람들 모두 더 이상 경찰이 아니게 됐지요. 해가 뜨지 않게 된 그날, 경찰은 부족한 인력으로 어떻게든 도쿄를 안정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난 그 사람들이 열심히 거리를 뛰어다니며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걸 봤어요.”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정부 놈들과 자위대, 주일 미군이 지저 도시로 처박히자마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던 야쿠자 놈들이 순식간에 불법 무기를 들고 나와서 경찰서나 자위대 기지를 털어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대부분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혀 버렸고, 더 이상 법과 질서가 남아 있지 않은 지상은 야쿠자 놈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놈들에게 있어서 언제든지 써먹고 버릴 수 있는 말입니다. 위험한 지상에 내보내서 물자를 찾아오게 하거나, 건설 인력으로 동원되거나 하지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으면 살펴보고 오는 역할이기도 하고. 제 말 맞습니까?”

    최진석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야쿠자들의 폭압 때문에 반쯤 폐인이 된 것 같았다.

    “놈들은 수가 많습니까?”

    “수가 많냐고? 흐흐, 어지간한 군대와도 맞먹을 거요. 경찰서나 자위대 기지를 털어서 무기를 확보한 덕분에 그놈들 대부분은 말단이라도 권총 하나쯤은 차고 있고, 수많은 야쿠자 조직들이 연합을 맺었으니 감히 대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 당신 말대로 대군을 이끌고 와서 침략이라도 하지 않는 한, 차라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나을 거요. 괜히 붙잡혀서 험한 꼴 당하기 싫다면……!”

    일본의 야쿠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폭력 조직으로 유명하다.

    북미에는 갱, 남미에는 카르텔, 유럽에는 마피아, 중국에는 삼합회가 있다면 일본에는 야쿠자가 있다고 할 정도니까.

    정확한 규모까지는 외부인들이 알 수 없으나, 순수하게 머릿수만 따지면 야쿠자들의 규모는 가볍게 10만 단위를 넘긴다고 한다. 그야 야쿠자와 연계되어 있는 모든 조직과 말단 조직원들까지 싹싹 긁어모으면 그 정도 규모는 나오겠지.

    비록 일본의 인구 고령화 문제가 심해지고 경찰의 압박도 커지면서 야쿠자들의 성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은 야쿠자들에게 있어서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야쿠자들은 총기 소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한국과는 달리 불법 무기를 제법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흑야 사태가 발발한 틈을 타 야쿠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찰들을 덮쳤다면 도쿄를 꿀꺽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터.

    최진석은 어째서 도쿄의 불빛과 소음이 사라져 버린 건지 납득할 수 있었다.

    도쿄를 접수한 야쿠자 놈들이 죄다 안전한 지하철역에 처박히고,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민간인들을 부려 먹으며 지상의 물자를 야금야금 털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무기를 소지한 야쿠자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괴물들의 세력이 커졌다. 지상에서 인간의 영역이 급속하게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듣자 하니 야쿠자 놈들이 도쿄를 접수한 것 같은데 어쩌실 겁니까, 최 병장님? 놈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면 지저 도시로 진입하는 시간이 훨씬 더 늦어질 겁니다.”

    “이미 스스로 무기를 들고 무법자가 된 대규모 생존자 그룹이다. 우리가 지저 도시에 진입해서 협력해 줄 인원들을 지상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과연 저것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지저 도시 입구가 개방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개미 떼처럼 달려들겠지요.”

    “바로 그게 문제야. 놈들에게 테러라도 당해서 귀중한 고급 인력을 중간에 잃기라도 하면? 다네가시마우주센터와 미 함대 복구 물자에 타격을 입기라도 하면? 계획 자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브라보 원을 볼 면목이 없어져.”

    “그럼 싹 쓸어버립니까?”

    알파 대원들이 흉흉한 살기를 흩뿌리며 되묻자 최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정부와 주일 미군이 지저 도시에 다시 나오면 민간인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우리가 미리 민심을 확보해 두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지난날 동안 야쿠자들에게 억압받아 왔던 만큼 더 격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 그렇게 될 바에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낫겠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런 계획을 진행하는 건 리스크가 크지만, 계획을 진행하지 않았을 때 얻게 될 리스크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신들은 이대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말하십시오.”

    “우, 우리 말을 믿어 주지 않을 텐데.”

    “총성에 이끌려서 뛰쳐나온 괴물들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수색할 수 없었다고 하면 될 겁니다.”

    “당신들은…… 어쩌려고?”

    “그건 당신들이 알 바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 대한 목격 정보를 흘리지만 않는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들을 죽여서 입막음하는 게 더 빠르겠지만, 최진석은 무능한 윗대가리를 처형할지언정 무고한 민간인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설령 최진석이 이끄는 분대의 정보가 샌다고 해서 곤란할 것도 없었다. 중장갑보병은 사실상 인간 전차나 다름없기 때문에 시가전에서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으니까.

    민간인들을 돌려보낸 최진석은 도쿄항에 정박 중인 USS 퍼니셔호에 무전을 보내서 현재 도쿄의 상황을 알렸다.

    존 함장은 야쿠자들이 민간인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불쾌해하며 지상 전력 지원 의향을 밝혔다.

    ―강습부대와 기갑차량을 동원한다면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것 정도는 쉬울 것 같네만.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야쿠자들의 규모가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만, 대부분은 군사적 지식이 전무한 삼류 양아치들에 불과합니다. 빠르게 진입해서 대가리를 쳐 내고 진압하겠습니다.”

    ―일본인들 대부분이 군사적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하다고는 하지만, 놈들이 경찰서와 자위대 기지를 털었다고 하지 않았나? 제법 위협적인 무장을 갖췄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한국에서 운용하는 중장갑보병이 타국의 중장갑보병과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타국 중장갑보병들은 대부분 기동성에 치중을 뒀지만 한국군은 방호력에 치중했다는 겁니다. 한국 중장갑보병은 어지간한 기갑 전력이 아니면 막지 못합니다.”

    문자 그대로 인간 전차니까.

    ―그중에서도 자네들은 진짜 ‘중장갑’을 걸친 알파 부대이니 더더욱 지원은 필요 없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야쿠자들의 처리는 자네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대신 치안 안정화를 위해 후속 부대를 보내 두겠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기들이 백날 천날 도쿄역에 머무르며 민간인들을 케어해 줄 것도 아니니, 최진석은 쿨하게 존 함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무전을 끝낸 최진석은 오버로드에게 도쿄역 외부로 나온 무장 인원들을 저격하게끔 지시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빠르게 들이쳐서 빠르게 솎아 낼 생각이었다.

    “민간인 사살은 금한다. 단 상대가 총을 들고 있으며 저항 의사를 보인다면 민간인이라고 해도 사살 및 제압을 우선시한다.”

    “야쿠자들의 규모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 같습니다. 도쿄를 순식간에 점거했다고 하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지요. 탄약 보급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 맨몸의 인간들 상대로 중장갑보병은 문제가 있어선 안 된다.

    하물며 일본은 육상자위대에의 규모 확대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많이 확보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지저 도시로 죄다 흘러 들어갔다면 지상에 남아 있는 건 정말 맨몸의 인간들뿐이다.

    “탄약이 다 떨어지면 근접전으로 짓뭉개 줘라. 오히려 그쪽이 더 놈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거다. 뭣하면 무기를 노획해서 사용해도 무방하다.”

    “확인했습니다.”

    간단한 브리핑을 끝낸 최진석은 다른 건물로 재배치를 끝낸 오버로드가 초탄을 발포하자마자 움직였다.

    도쿄역 입구에서 서성이던 야쿠자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지고, 뒤늦게 습격 사실을 깨달은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다른 야쿠자들은 어버버 하며 당황하다가 곧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총기를 발포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아 역시 군 경험이 전무한 인간이었다.

    철컹철컹철컹철컹!

    신속하게 기동하기 시작한 중장갑보병들이 순식간에 도쿄역 앞으로 들이닥치며 야쿠자들의 몸을 들이받아서 날려 버리거나, 주먹이나 발길질로 가볍게 으깨 버렸다.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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