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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93화 (193/211)
  • 딥 인사이드 아웃 (200)

    “경계 소홀히 하지 마. 놈들에게도 총화기가 먹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언제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전장은 언제나 변수투성이다. 기존의 수단이 잘 먹히는 것 같다가도 규격 외의 적이 등장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는 온전히 전장에 있는 군인들이 책임져야 한다. 지휘관 측에서 명령할 수 있는 건 끽해야 후퇴, 진지 사수, 우회기동, 폭격 지원 등이 전부.

    나머지는 현장의 군인들에게 ‘너 자신의 역량으로 적절하게 대응해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장에 있는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고 하니, 의외로 별 것 없다.

    더 엄중한 사주경계, 무전기로 정보를 업로드 하는 것 정도뿐. 나머지는 자신들의 위치, 남아 있는 탄약, 적의 규모, 전장의 상황을 고려할 뿐이다.

    자신들이 밀린다 싶으면 철저한 진지 사수나 후퇴, 자신들이 이기겠다 싶으면 우회기동이나 과감한 돌파.

    그때그때 발생하는 변수가 다르다고 해도 결론은 자신의 역량을 120%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숨소리까지 철저하게 죽인 알파 대원들은 암흑으로 물든 일본 대도심 한복판을 조심스럽게 가로질렀다.

    이곳은 아직도 인간이 사냥당하는 지역이다. 저런 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니, 필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을 터.

    반년이나 지났음에도 도시에서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오버로드, 뭐 좀 잡히나?”

    ―총성을 듣고 움직이는 놈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약 20초 후 좌측 9시 방향에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충돌에 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몇몇 눈치 빠른 대원들이 총구와 조명의 방향을 좌측으로 돌렸다.

    알파 전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고 있는 그들이 육탄전에서 쉽게 밀릴 거라 생각되지 않지만,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는 자세는 이제 본능처럼 자리 잡았다.

    “좌측 9시 방향 50m 너머에서 움직임 포착.”

    “수는 셋, 넷…… 다섯입니다.”

    건물의 외벽을 날카로운 낫 같은 팔로 찍으며 순식간에 접근 경로를 바꾼 두 마리도 놓치지 않고 불빛이 따라붙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치요다구와 가장 가깝고, 동시에 가장 규모가 큰 도쿄역으로 가는 것이 1차 목표다.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힐 순 없었기에 최진석은 신속하게 적들을 처리하도록 했다.

    투캉!

    저 멀리서 또 한 번 날아든 묵직한 대구경 탄환이 건물 외벽을 타오르던 놈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제 동료의 시체가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놈들이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사냥감이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샘플을 확보해야 한다. 한 마리 정도는 접근하게 내버려 둬.”

    드르르르르륵!

    경기관총이 토해 낸 탄환의 빗줄기를 뚫고 들어오는 놈들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벌레처럼 튼튼한 외피에 몸을 숨기듯 최대한 웅크리며 전진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외피가 얇은 다리에 집중포화가 쏟아지자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의도적으로 화망을 얕게 해서 흘려보낸 놈이 자신만만하게 뛰어들어온 순간, 접근전에 특화된 대원 두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놈의 낫 같은 양팔을 하나씩 잡아 뜯었다.

    키헤에에에에에에에에!

    엑소스켈레톤 사이에서도 출력이 가장 높은 알파 전용 엑소스켈레톤은 연약한 살점과 외피로 덮인 육체 정도로는 대응할 수 없었다.

    “샘플은 어느 부위를 채취하시겠습니까?”

    “서울에 있던 놈들과 똑같다. 이놈들에게도 뇌를 비롯한 주요 장기 그리고 검은색 타르 같은 혈액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그 말을 들은 의무병이 샘플 보관용 특수 용기와 전기톱을 들고 샘플 채취에 나섰다. 우선 두 대원에게 붙잡혀 무력화된 놈의 흉곽을 잘라 내고, 총탄에 손상되지 않은 내부 장기를 찾았다.

    “서울에 있는 인간형 괴물들과는 다르게 내부 장기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변이 과정이 워낙 극심한 케이스라 ‘정상적인’ 신진대사가 필요한 몸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 있던 인간형과 이놈들의 차이점은 역시 변이의 정도인가?”

    “정확히는 환경에 맞춰 정착한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던 놈들은 인간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인간을 찾았다면, 이놈들은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기다렸다가 사냥하는 형태로 변이한 것 같습니다.”

    외벽에 매달려 있을 만큼 튼튼하고 많은 다리, 사냥감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덮칠 수 있는 낫 같은 앞발 그리고 고층 건물 외벽에 고치를 만들어 생활하는 습성.

    확실히 사냥감을 직접 찾아 나선다기보다는 사냥감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타입이었다.

    “극심한 변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사냥감, 고층 건물 외벽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들 때문에 오히려 ‘생명체’에 가까운 몸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활동하지 않을 때에는 최대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방향으로 육체가 구성되어 있을 겁니다.”

    “연구 자료로는 오히려 그쪽이 더 괜찮겠군. 일본 정부, 혹은 주일 미군과 거래를 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몰라.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겨.”

    “지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걸 보니, 아마 그쪽에선 지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곱만큼도 모를 겁니다. 브라보 원이 이런 식으로 서울 지저 도시의 대기업과 거래를 했겠군요.”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녀석이니까.”

    브라보 원에게 한 수 배운 알파 대원들은 살아 있는 괴물의 몸에서 신선한 샘플들을 모조리 채취한 뒤, 마지막으로 머리통을 샷건으로 날려 버렸다.

    영악한 사냥꾼 스타일이라 이놈들이라면 인간과 비슷한 뇌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두개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검은 타르 같은 체액이었다. 이 육체를 조종하던 놈은 따로 있었다는 뜻이다.

    “뇌는 의외로 상당한 칼로리를 소모하는 기관입니다. 예를 들어 멍게는 특정 지역에 자리 잡으면 가장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뇌를 스스로 분해해서 먹어 버린다고 하더군요. 이놈들 역시 ‘사고 기관’을 아예 없애 버리고 육체의 컨트롤을 암흑 물질에게 맡겨 버린 것 같습니다. 생명체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체가 아닌 겁니다.”

    “기껏해야 물병 하나를 채울 만한 양의 암흑 물질이 뇌의 역할을 대신하고, 이 거대한 육체를 인형 탈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니. 브라보 원의 말대로 이런 놈들이 지구를 점령하면 생명체 따윈 흔적도 남지 않겠어.”

    이렇게 보면 암흑 물질을 스스로 몸에 받아들이고, 진화를 꿈꿨던 사이비 종교 집단이 얼마나 미친놈들이었는지 새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뇌를 대체당하면 더 이상 자신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도 않게 될 텐데, 그놈들은 대체 뭘 믿고 이런 걸 자신들의 몸에 거리낌 없이 주입했는지.

    그들이 한때나마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서울과는 다르게 놈들이 소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진 않는군. 서울에선 총성 한 번만 울려 퍼져도 괴물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는데.”

    “아마 대부분은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반쯤 동면 상태일 겁니다. 그마저도 건물 외벽에 자리 잡고 있던 놈들이나 우리에게 반응했지, 반응하지 않은 놈들은 대부분 건물 내부에 숨어 있을 겁니다.”

    의무병의 말에 최진석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 아닌가? 건물 외벽에 들러붙어 있어 봤자 지속적인 추위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커질 것이고, 상시 바깥을 돌아다니는 먹잇감들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동면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인간들이 물자 확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하는 건물 내부에 숨어 있다면? 동면 상태를 유지하다가 인간이 영역에 침범한 순간 사냥하면 그만이다.

    놈들에게도 학습이란 것이 있을 테니, 인간들이 가장 많이 접근하는 백화점이나 마트, 지하철역 내부에 주로 숨어 있으리라.

    “생각보다 훨씬 더 영악한 놈들입니다. 인간들이 추위와 굶주림, 목마름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안전하고 따뜻하며 물자가 많은 은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곳에 숨어 있으면 인간들이 알아서 굴러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도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사냥당했을 겁니다.”

    “도쿄는 청소하려면 한참 걸리겠어.”

    막말로 서울에선 소음과 불빛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괴물들을 허탕 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적당한 곳에서 신호탄을 터뜨린 뒤 몸을 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도쿄에 자리 잡은 놈들은 오히려 인간들에게 선택지를 강요하는 악랄한 타입이었다. 살고 싶으면 안전한 거점에 들어와서 물자를 챙겨 가라. 물론 죽을 각오를 하고.

    “자위대와 주일 미군이 죄다 지저 도시로 도망쳐 들어갔다면,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도가 이 지경이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이 나라의 윗대가리들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무능함의 끝을 보여 주는군.”

    아니, 오히려 최소 규모의 피난민만 받아들이고 외부에 대부분의 군대를 남겨 둔 한국에 비하면 더욱 악질이었다.

    한국은 대부분의 군대와 경찰이 지상에 남겨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경상도와 수도권 일부를 지켜 낼 수 있었지만, 일본은 아마도 전 국토를 상실했을 것이다. 도쿄가 이 모양인데 다른 지역이라고 오죽하겠는가.

    “현시점에서 생존자 수색은 더더욱 자제해야겠군. 섣불리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겠어.”

    “동감합니다. 규모가 제법 되는 생존자 그룹과 접선한다고 해도 그들이 지상에 남아 있을 정도라면, 지저 도시와 연결 고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즉 생존자 그룹과 접선해 봤자 현지 정보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이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현지 정보가 가장 시급한 그들이지만,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현지 정보에 목맬 이유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최 병장님. 도쿄역 방면에서 소수의 인간 무리를 포착했습니다. 그쪽으로 곧장 접근 중입니다.

    “인간이 확실한가?”

    ―서울에서 돌아다니던 인간형 괴물들과는 달리 제대로 방한 용구를 걸치고 있습니다. 불빛은 없지만 움직임을 봐선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총성을 듣고 거리로 나온 모양인데. 그렇다는 건 도쿄역에 생존자 그룹이 있다는 건가?”

    ―규모가 굉장히 큰 도쿄역이라면 처음부터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효과적으로 방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자도 충분히 쌓여 있을 테고, 무엇보다 다른 역과 연결되어 있으니 굳이 위험한 지상을 돌아다닐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겁니다.

    확실히 도쿄역 주변은 오피스텔(고층 건물)이 많아서, 생존자 입장에선 섣불리 지상에 나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인즉슨 자신들이 낸 총성이 저들에게 일종의 ‘구원군’처럼 비쳐졌을 거라는 의미다.

    아마도 꽤 오래전에 사라졌을 터인 총성이 다시금 적막한 도시의 정적을 깨부쉈으니,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하지.

    ―접선하실 겁니까?

    “……필요하다면.”

    필요 없다면 간단하게 현지 정보만 공유한 뒤 제 갈 길을 갈 생각이었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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