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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91화 (19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98)

    선택의 시간

    최진석은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도쿄를 바라보며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현재 서울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사이비와 나이트워커 같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놈들을 수도권에서 완전히 정리해 버린 한국은 조금씩이지만 빛을 찾아 가고 있었다.

    특히 완전한 수복에 성공한 경상도는 중간 보급을 위해 김해와 부산을 거쳐 오면서 찬란한 불빛으로 가득한 것을 직접 봤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하고, 망가진 일상을 다시 복구하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으니 서로 싸우지도 않았고, 군기가 바짝 든 군인과 자경단은 혹시 모를 위협에 철저히 대응하고 있었다.

    만약 그 사이비 놈들이 건재했다고 한들 경상도만큼은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군함에 몸을 싣고 바로 옆 나라 일본으로 와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태가 심각했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군필 비율이 90%가 넘어가는 국가와 형식적인 자위대로 돌아가는 국가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군.”

    최진석의 곁으로 다가온 존 함장 역시 씁쓸한 어조로 불빛 한 점 없는 도쿄항을 바라보았다.

    도쿄항에는 수많은 선박들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주일 미군이나 해자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함들이 있었으나, 귀하디 귀한 군함들을 운용하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운용을 하지 않는 건 둘째치고, 제아무리 튼튼한 군함이라고 해도 반년 동안 별다른 조치 없이 해풍과 추위에 노출되었으니 선체 외부가 많이 상했으리라.

    “도쿄의 지저 도시는 치요다구(千代田区)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곳입니까?”

    “나도 주일 미군의 대외 행사 때문에 몇 번 가 본 게 전부지만, 일본 정부는 일반 서민들의 지저 도시에 대한 접근성을 최대한 낮추는 게 목표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군.”

    “서민들의 지저 도시 접근성을 최대한 낮추려 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치요다구는 사방이 전부 해자로 둘러싸여 있어서 정해진 루트가 아니면 진입할 수 없다네. 그곳에서 기존 땅을 싹 밀어 버리고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가동했으니, 당연히 서민들은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힘든 구조였지. 실제로 도쿄항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저 군함들을 보게. 자신들을 지지해 줄 국민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보호해 줄 자위대와 주일 미군을 가장 먼저 지저 도시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증거 아닌가?”

    “그래서 도쿄가 저렇게나 어두웠던 것이군요.”

    최진석은 바로 현 상황을 납득했다.

    대한민국은 남성의 현역 비율이 90%가 넘는다. 시골 동네에서도 총만 쥐여 주면 능숙하게 분해, 조립, 사격이 가능한 아저씨들을 제법 찾을 수 있으니 말 다 했다.

    즉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 중 최소 4분의 1 이상은 무기만 쥐여 주면 즉각 전투 인원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로 낙인찍혀 지금까지 엉성한 자위대를 운용하고 있다.

    2031년 현재 기준으로 일본 국민들 중 절대다수가 총을 다뤄 보기는커녕 구경을 해 본 적도 없을 정도이고, 전투 훈련조차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자위대와 주일 미군을 우선적으로, 그 뒤에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국민들을 적당히 지저 도시에 받아들였다면 지상은 어떤 꼴이 되었을 것 같은가?

    최진석은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비규환을 떠올렸다. 법과 질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온갖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을.

    군대와 경찰이 합심해서 국토와 국민의 일부를 지켜 냈던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굉장히 빠르게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미처 지저 도시에 입주하지 못한 자위대와 경찰들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응전했겠지만, 아마도 무의미한 발버둥이었겠지.

    “일본 땅에서 일본인이 아니라 괴물 놈들과 조우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로함이 느껴지는군. 알다시피 나는 해군 함장이라 지상군은 자네가 이끌게 될 텐데, 정말 괜찮겠나?”

    “익숙합니다.”

    “하긴. 자네가 일전의 전쟁에서 박한성 못지않게 활약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자네의 지휘나 계획에는 일절 간섭할 생각이 없으니 도쿄 지저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길만 뚫어 주게.”

    “도쿄와 서울이 비슷한 환경인 만큼 비슷한 유형의 적들이 존재한다면 어렵지 않겠습니다만…….”

    최진석은 도쿄항과 군함이 가까워질수록 야간투시망원경으로 더욱 면밀하게 육지를 살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적들이 등장한다면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기는 것은 감수해야 할 겁니다.”

    “실패할 거라고는 말하지 않는군.”

    “제가 아니라 브라보 원이었다면 계획에 약간의 차질조차 허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브라보 원이라. 자네들은 박한성을 항상 그렇게 부르던데, 그 코드네임에 어떤 의미가 있나?”

    “북한에 직접 침투하여 주요 땅굴 17개 파괴, 북한군을 최소 5천 명 이상 사살한 중장갑수색대의 유일한 지휘관이자 생존자입니다.”

    “……괴물이군.”

    최진석이 장성들을 족치고 기밀 데이터가 보관된 국정원 기지까지 털어 낸 후에야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정보였다. 그는 실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브라보는 항상 알파보다 앞서 나간다. 그 구호의 의미는 항상 먼저 목숨을 내던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악의 전장에 누구보다 먼저 발을 들여서 적지 정찰, 적군 사살, 파괴 공작 및 기밀 탈취 등등.

    안전하게 사후 뒷처리를 담당했던 알파와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 자살특공부대였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사회에 복귀했으니, 브라보 원이라는 코드네임은 오직 박한성만이 가질 수 있는 영구결번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후에 하선한다. 모든 정찰조와 강습타격대는 준비하도록.”

    최진석이 무전기를 통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자 각 조의 조장들이 대답을 해 왔다.

    알파 내에서도 숙련된 정예들만을 조장으로 뽑았고, 일반 중장갑보병들 중에서도 전투에 도가 튼 자들만 선별해서 데려왔다. 그들이라면 이곳에 있는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도쿄항은 얇은 빙판만으로 줌왈트급 구축함의 접근을 막아 내지 못했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검은 것들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지금, 평균 기온은 다시금 상승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보다 적도에 가까운 도쿄는 경상도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브라보 원의 추측대로 하늘을 덮고 있는 것들이 햇빛을 가린 것이 기온 저하의 원인이었군. 에너지를 탐하는 놈들이라서 지구 전역을 뒤덮어 햇빛을 최대한 흡수하고 있었다는 추측도 사실이었던 것 같고.’

    그런 놈들이 갑자기 서울로 모여들어 지반을 무너뜨리고, 12km나 되는 거대한 수직 구멍을 파고 있는 이유는 태양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대단한 에너지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박한성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을 우주로 쏴 올려서 지구를 망하게 할 원흉 2개를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어느 한쪽이 실수하는 순간 끝나는 게임이군.’

    A 그룹이 무한 동력 기관을 안전하게 빼내지 못해도, B 그룹인 자신들이 일본 정부의 협력을 얻어 다네가시마우주센터와 호위용 군함들을 복구하지 못해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의 말마따나 성공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미친 계획이지만, 자신들은 이미 배수진의 상황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성공시켜야 한다.

    최선을 다했고, 잘 싸웠고, 모두가 노력한 끝에 결국 패배했다는 감동적인 결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쳐도, 많은 것을 잃어도,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는 결과 하나만을 손에 넣어야 한다.

    “정박 완료했습니다!”

    한 승조원의 보고에 존 함장은 선내 스피커로 본 함이 일본 도쿄항에 정박했음을 알렸으며, 현 시간부로 상시 전투가 가능한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해상에서의 전투라면 군함을 운용하는 승조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으나, 이번에는 도쿄 지저 도시에 진입하기 위해 지상군이 나설 차례다.

    게다가 흑야 사태 이후 단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는 일본 땅에 발을 들였으니, 어떤 적들이 자신들을 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당연히 배를 지켜야 하는 인원들도 육지에 내려가야 하는 인원들만큼이나 긴장했다.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최진석은 자신을 포함해서 11명으로 구성된 정찰조의 현장지휘관으로 직접 나섰다.

    줌왈트급의 엄호를 받으며 뒤따라온 화물선 한 척에도 지상군과 기갑차량이 제법 많이 있으나, 아직 그들의 차례가 아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심 한복판에 무작정 병력을 밀어 넣을 만큼 자신들은 여유롭지도, 멍청하지도 않았으니까.

    “최 병장님, 정찰조 총원 10명 집결했습니다. 모든 장비에 이상이 없으며, 작전에 지장이 없을 만큼 컨디션은 아주 양호합니다.”

    “그래. 우린 지금부터 도쿄항을 거쳐 치요다구에 진입해서 도쿄 지저 도시에 진입할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도쿄에 생존자와 괴물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들이 각각 어떤 유형으로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질문 있나?”

    “생존자를 발견할 시 우선되는 대응은 무엇입니까?”

    “호전적인 대상일 경우 예외 없이 사살, 우리를 두려워하여 접근하지 못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일단 신병을 확보한 후 정보를 캐낸다.”

    “만약 동정심을 유발하는 민간인이 우리를 속여서 질 나쁜 무리의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사전에 눈치채고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버로드 1, 오버로드 2가 상시 고지대에서 주변을 정찰하며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무리의 움직임을 경계하도록 한다. 질 나쁜 무리의 노림수가 확인될 경우 마찬가지로 전원 사살한다.”

    “일본 자위대 혹은 경찰과 조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한다면 전원 사살하되, 협상 및 협력의 여지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그에 따른다. 우리는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으니 현지인의 도움과 정보가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선 우리가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

    최진석이 대략적인 방침이 정해 주자 정찰조 대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브리핑을 끝마친 최진석은 정찰조 대원들을 이끌고 도쿄항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서울과는 사뭇 다른 공기와 분위기에 백전연마의 정찰조 대원들도 적잖이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박한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아무도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하면,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허무한 패배뿐일 테니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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