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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90화 (190/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97)

    원래 남자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건 어지간하면 큰 소문으로 변하지 않는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정네들 소굴에서 가끔씩 주먹질이 오가는 것쯤이야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니까.

    다만 사소한 다툼이 아닌, 명백하게 이벤트성이 있는 싸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A가 B의 뼈를 작살내 놨다든가.

    혹은 A가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던 B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다든가.

    누군가 들으면 한 번쯤 솔깃해질 만한 이벤트성이 첨가된 싸움이라면 남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그것에 열광한다.

    자신들은 철저하게 관전자 시점에서 싸움을 즐길 수 있을뿐더러, 그 결과로 형성되는 묘한 분위기와 상황까지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남자들 간의 피 튀는 싸움에서 진영 논리가 걸려 있다면?

    A가 1그룹 소속이고, B가 1그룹과 적대하는 2그룹 소속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A가 소속된 1그룹은 열광할 것이고, B가 소속된 2그룹은 분노할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개개인의 싸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영 간의 분쟁으로 번지게 된다.

    내가 대테러대응반 소속 대원 둘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 산불처럼 순식간에 부대 내에 퍼지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나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이었다.

    평소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히 단련되어 있으며, 고도의 훈련을 받아 온 자신들이 기껏해야 엑소스켈레톤만 믿고 나대는 일반 군인에게 졌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활관에서 병사들과 함께 노가리를 까고 있던 와중에 대뜸 문짝이 박살 났다.

    바깥에서 서슬 퍼런 얼굴로 걸어 들어온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이 나를 지목했다.

    “너, 따라 나와.”

    “같은 부대 소속도 아니고 계급도 다른 새끼가 왜 명령질이지?”

    “뒈지기 싫으면 따라 나오라고. 세 번 말 안 한다.”

    “꼬우면 세 번 말해. 그 새끼들처럼 너도 피떡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대원 하나가 생활관을 가로질러 내게 달려들었다. 놈은 부대 내에서 절대로 뽑으면 안 되는 대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처음부터 상대가 도발에 넘어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병사 관물대에 숨겨 두었던 내 대검을 꺼내 들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대검과 대검의 칼날이 맞부딪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합이 오갔다.

    “이 씨발 새끼가 처음부터……!”

    “먼저 칼 뽑은 주제에 주둥이 털지 말자. 혓바닥이 길수록 추해 보이잖아.”

    쓰윽! 쉬익! 훅!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옛 기사들의 대결과는 다르게, 실제로 현대식에 맞춰 개량된 근접전투(Close Quarters Combat)는 오직 실용성만 추구한다.

    빠르고, 치명적이고, 확실하게 제압하는 것이 현대식 CQC의 목적인지라 서로 대검을 뽑아 들었다면 유치하게 챙챙거리면서 칼싸움을 하진 않는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그 시간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 넘기면서 반격을 가하고, 반대로 상대의 방어 자세에서 빈틈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공격을 쑤셔 박는 것이 CQC의 핵심이다.

    우리는 생활관 한복판에서 서로 간의 거리와 공격 범위(간격)를 재고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호흡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CQC는 수 싸움이기도 하고, 동시에 기 싸움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의 다음 수를 예측하면서 움직이고, 그러면서도 기세에 짓눌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 엇 하는 순간에 목덜미나 옆구리에 칼침이 박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안 남부 주둔군이 우르르 생활관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쪽수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였기 때문에 나는 저들이 당황하는 틈을 노려 먼저 치고 들어갔다.

    칼을 찔러 넣는 척하다가 상대가 고개를 쓰윽 빼는 순간을 노려 로우킥을 갈겼다. 고개가 뒤로 빠지면 일시적으로 몸의 균형이 뒤로 넘어가기 때문에 앞으로 뻗은 다리를 쉽게 뺄 수 없다.

    상대가 주변의 소란을 듣고 당황한 틈을 노리기도 했기 때문에 의외로 공격은 매끄럽게 들어갔다.

    물론 상대가 성대하게 뒤로 넘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놈의 발목을 잡아채서 대검으로 슥슥 그어 주었다.

    그래플링으로 들어가면 발을 이용해서 저항하는 놈들도 있기 때문에 아예 발을 쓰지 못하도록 인대를 끊어 버렸다.

    “끄으으으윽?!”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는 비명과 핏물이 동시에 터져 나오자 주변 분위기가 빠르게 식어 들어갔다.

    같은 부대 내에서, 서로 협동해도 모자랄 사람들이 서로에게 칼질을 한 것도 모자라 기어코 피를 봐 버렸다. 단순히 주먹질을 해서 코피를 터뜨린 것과 무기를 이용해서 출혈을 유발한 건 그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놈의 발목을 콱 짓밟아 확인 사살을 하듯 부러뜨렸다. 고통에 익숙한 인간이라도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는지 자지러지는 비명을 흘렸다. 대검은 떨어뜨린 지 오래였다.

    지금부터다. 바로 지금부터가 핵심이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

    “뭣들 하고 있어! 이 새끼들이 먼저 칼 들고 들어와서 우릴 죽이려고 했는데! 너희들도 밤에 자다가 모가지 따이고 싶어?! 이 새끼들 다 밟아!”

    “바, 박 하사님 말이 맞아! 우린 그냥 여기서 쉬고 있었는데 이 새끼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칼 들고 설친 거야!”

    “저 새끼들 다 허리에 칼 차고 있어!”

    “이런 개새끼들이, 지금까지 다른 부대라고 참아 줬더니만!”

    “죽여!”

    다행히 내 선동 반 연기 반에 넘어간 병사들이 순식간에 분노를 표출하자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생활관으로 훅 치고 들어와서 날 족칠 생각이었던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은 당연히 사람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위협과 경고 목적으로 권총 대신 대검을 차고 들어왔다.

    그러다 내 도발에 넘어간 놈이 쓸데없는 명분을 만들어 버린 탓에, 단체로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역적이 되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병사들을 선동했다. 가장 먼저 내가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대원을 짓밟는 것으로 폭력의 방아쇠를 당기자 순식간에 집단 폭력이 가해졌다.

    저들이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나, 쪽수가 부족한 데다 권총도 없었다.

    중장갑보병들도 한 명 한 명이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었고, 주변 관물대에서 무기가 될 만한 건 다 집어 든 상황. 그 잘난 특공무술을 펼쳐 볼 새도 없이 무자비한 폭력 앞에 진압당했다.

    “확실하게 밟아! 이 새끼들은 지금 같은 군인들을 죽이려 한 배신자 새끼들이야!”

    “중부 지구에서 꿀만 빨다 온 새끼들이 꺼드럭거릴 때부터 알아봤다, 씨발 새끼들아!”

    “칼 못 휘두르게 의자나 베개로 막아! 그리고 손모가지 뽀개 버려!”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기에, 머리에 피가 쏠린 어느 멍청이가 대뜸 총을 발포하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총을 쏘지 못하는 대신 확실하고 꼼꼼한 폭력으로 놈들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군대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것이 바로 개인 감정에 의한 고의적 아군 사살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지휘관이 내리는 부조리한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프래깅을 했다면 모를까, ‘난 저놈이 그냥 싫으니까 죽여 버릴 거야!’ 이런 건 전시 상황이었다면 즉결처분감이었다.

    ‘사실 지금도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그렇게 100명이 넘는 중대원들에게 완전히 뭉개진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의 수가 총 12명이었다. 대테러대응반은 2개 소대만 이곳에 파견되었으니, 머릿수만 따지면 결코 적지 않은 피해였다.

    우리는 얼굴이 퉁퉁 붓고 어디 한 군데 부러지고, 피 칠갑을 한 놈들을 질질 끌어서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이 따로 사용하고 있는 생활관 앞에 던져 두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번에는 완전무장 한 중장갑보병들이 우리를 호위해 주었다.

    자신들이 한창 근무 중일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보고받고 달려온 중대장은 여자아이 같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중대장은 실망한 단계를 넘어서 절망해 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수록 주변은 시장통처럼 시끌시끌해졌고, 당연히 중환자 12명을 돌려받게 된 대테러대응반 측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이 씨발 새끼들이 우리 애들을 이 지랄로 만들어 놔?! 진짜 한번 붙어 보자는 거야!”

    “꼬우면 떠, ✕밥 새끼들아! 애초에 그 새끼들이 먼저 우리 생활관에 와서 칼질했다고!”

    “우리가 꾹 참고만 있었더니 ✕밥으로 보였나 본데, 우리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대야, 씨발 새끼들아! 중장갑보병대 하나만 있어도 평양 문짝 부수고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 못 들었어?!”

    “무기 들어, 씨발! 지금 여기서 다 갈아 줄 테니까!”

    “가서 내 엑소스켈레톤 가져와! 이 새끼들 오늘 대가리 하나씩 뽑아서 연병장에 심어 줘야겠다!”

    “떠, 개새끼들아! 떠!”

    급기야 서로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도달했을 즈음, 다행히 적절한 중재자가 시간 맞춰서 도착했다.

    “이게 뭣들 하는 짓이야!”

    평소에 사람 좋게 실실 웃고 곧잘 너스레를 떨던 대대장이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부관들과 함께 달려왔다. 이 부대의 책임자가 나서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열어 주었다.

    대대장 뒤에는 대테러대응반 현장지휘관(감독관)도 함께 있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소대원들을 보더니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애들끼리 쌈박질을 한 것도 아니고 단체로 이렇게 반 죽여 놓다니…… 이거 명백한 쿠데타입니다!”

    “쿠데타라니! 당신도 말조심하쇼! 평소에 당신네들이 우리 부대 애들한테 어떤 패악질을 벌이는지 내가 다 지켜봤는데! 내가 오죽하면 애들 몇 명 뽑아서 부대 내 CCTV로 녹화까지 다 따 놓으라고 했겠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사람으로서 할 행동입니까?! 이에 대한 일은 즉시 상층부에 보고하겠습니다!”

    “보고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해야지! 어이, 최 중사, 우리 애들 생활관에 설치해 둔 CCTV로 사건 경위 확인해 봤어?”

    “예, 조금 전에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영상도 전부 따 놨습니다. 대테러대응반 소속 대원들이 먼저 우리 애들 생활관에 침입해서 박 하사를 상대로 칼을 휘둘렀습니다. 명백하게 저쪽 과실입니다.”

    “들었지? 원한다면 증거도 보여 주지! 그쪽 애들이 먼저 우르르 몰려가서 우리 애들 죽이려 했으니 누가 진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는지 한번 가려 보자고!”

    “아니, 그건……!”

    명백한 증거까지 있으니 대대장은 굽신거리던 지난날의 자신은 싹 잊고 감독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쿠데타? 쿠데타?! 내가, 씨발……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대 이끌고 언젠가는 북진통일 이루겠다고 벼르고 있던 놈이야! 그런 나한테 감히 쿠데타 모의라고?!”

    “이, 일단 진정 좀 하시고…… 애들이 지금 많이 다치지 않았습니까. 사건 경위를 따지기 전에 애들 치료부터 해 줘야지요.”

    “치료? 당연히 해 줘야지. 근데 우리 애들이 받은 피해는?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이 대뜸 남의 생활관에 칼 들고 들어오는 미친놈들이란 걸 알았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근무하고 쉴 수 있겠냐고! 막말로 그쪽 애들이 미쳐서 총기 난사 일으키지 말란 법 있어?!”

    “그건 내가 확실하게……!”

    “이 세상에 확실히가 어딨어! 뻑하면 사람 뒈지고 미쳐 나가는 게 군대라는 곳인데, 먼저 칼 들고 아군 습격한 새끼들을 어떻게 믿냐고!”

    “아니, 후우……!”

    할 말이 없어진 감독관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숨을 푹 쉬더니, 자신의 부하들에게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일단 의무실로 옮기라고 했다.

    “이번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아! 사과받을 대상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애들이지! 내가 생활관에서 쉬고 있다가 습격받았어? 습격받은 건 우리 애들이야!”

    “…….”

    “다 필요 없고, 그쪽 애들 미쳐 날뛰지 말란 법 없으니까 우리 애들은 모든 근무 조 상시 완전무장 상태로 당신네들 감시할 거요. 불만 있으면 상층부에 찌르시던가. 그럼 나야 일이 편하게 풀려서 더 좋지.”

    “으드득……. 알겠습니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요.”

    고개를 숙이는 감독관을 말없이 지나친 대대장은 내게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이제 저들의 전력을 깎아 먹고, 우리는 부대 내에서 근무 중일 때도 상시 완전군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로 순식간에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한 셈이다.

    이것으로 남부 지구는 쿠데타 준비를 끝마쳤다.

    대략 한달 내로 북부 지구와 동부 지구 주둔군들도 쿠데타 준비가 끝나면 때를 봐서 일제히 들고일어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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