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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89화 (18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96)

    그날 이후 내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한 이중성을 띄게 되었다.

    남부 지구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는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거주 구역까지 갈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집에 들러서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부를 확인하고, 두 사람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해 두었다. 가족에게도 지켜야만 하는 비밀이 있기에 전부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그리 머지않아 지저 도시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때가 되면 내가 사는 곳에 보급 물자를 가져다주는 차도식파 조직원들과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이미 오래전에 전역한 몸이지만 다시 ‘짬찌’들과 생활하면서 그들과 한층 더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다. 우선 모든 사제 보급이 끊어져 버린 그들에게 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조금씩이지만 그들이 말라 죽지 않을 정도로 사제 물품을 나눠 주었기에(담배나 술 빼고), 부대 내에서 한 번쯤 내게 손을 벌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내게 씹을 거리나 마실 것 등을 보급받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부대와 바깥을 드나드는 내 일탈 행위를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반대로 진짜 죽어 가는 것은 대놓고 병사들과 의기투합하기 힘든 장교들이었다.

    당장 넉살 좋은 대대장이 중부 지구에서 파견 나온 대테러대응반 현장지휘관에게 꼼짝을 못 했기 때문이다.

    계급만 따지면 당연히 대대장이 위였지만, 현장지휘관은 정부의 높으신 분들 명령으로 파견 나온 감독관 역할이라 대대장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권력을 뒷배로 두고 있는 사람 앞에서 막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인지 오히려 장교들이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제 보급의 기쁨을 포기해야 했다.

    병사나 부사관들이야 원래 두루두루 친하고 저들끼리 쉽게 모여서 작당 모의를 할 수 있다지만, 장교들은 예외 없이 모두 감독관의 요주의 감시 대상들이었다.

    밀수 조직과 연계, 혹은 내통한다면 당연히 병사가 아니라 장교일 것이라는 높으신 분들의 일차원적인 편견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밀수 조직이 처음 접선했던 것도 장교가 맞지만, 원래 조직 전체가 한통속이 되려면 아랫것들도 함께 포섭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만약 우리 밀수 조직이 장교들에게만 뇌물을 찔러 주고 사제 보급을 해 주었다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했을 것이다.

    아주 다 엿 먹어 봐라는 식으로 대놓고 상층부에 장교들의 비리를 찔러 넣는 병사들까지 나왔겠지. 그래서 우리가 처음 교섭할 당시에 병사들도 적극적으로 챙겨 줬던 것이다.

    일부만 공범이면 금방 배신당하겠지만, 모두가 공범이라면 누구도 서로를 배신할 리 없으니까. 윗물들과 놀기만 했던 윗대가리들은 그런 간단한 사실도 모르기 때문에 서로 쉽게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거다.

    지상에 있을 시절, 뉴스 채널만 돌리면 허구한 날 정치인들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비리를 저지를 거라면 한 명도 남김없이 다 함께! 수익 배분은 사이 좋게! 공평하게!

    그런 간단한 상식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입장에서 정치인들은 항상 더러워 보였던 것이다.

    다들 적당히 타협하고 작당 모의 하면 평생 꿀을 빨 수 있을 텐데, 그깟 욕심이나 정치 이념 때문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다.

    ‘내 장래 희망이 정치인이 아니어서 다행이군.’

    혹시라도 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떤 나라가 탄생했을 것 같은가? 분명 제대로 된 나라는 아니었겠지.

    차치하고, 나는 근래 중부 지구에서 파견 나온 중장갑보병 중대와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을 면밀히 주시해 왔다.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다른 병사나 부사관들에게 뇌물을 좀 찔러 주고 대신 감시를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수집한 정보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 투성이였는데, 우선 중부 지구 출신 중장갑보병들은 겉보기와 달리 굉장히 나태하고 군기가 해이하다는 것이었다.

    높으신 분들만 가끔 모시다 보니, 기본적으로 그분들이 안 보이는 자리에선 너절하게 풀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반면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은 항상 날이 선 것처럼 하나같이 예민한 성향을 보였는데,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히스테리가 심했다.

    괜히 지나가던 남부 지구 주둔군 병사들을 불러 세워서 기강 확립을 한다며 꼽을 주거나 얼차려를 시키기는 소꿉장난이었고, 자신의 근처에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대통령 경호 팀 못지않게 높으신 분들을 경호하느라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보유하고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고 한들, 인간의 정신은 지속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했다.

    스트레스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쌓이고 나면 온갖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자멸해 버리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방법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특정 약물을 써서 기억을 일시적으로 지우거나 하는 것이다. 내가 당했던 것처럼.

    하지만 저들은 그런 조치를 받지 못했을 테니 극도의 신경과민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본다. 아마 적지 않은 자들이 크고 작은 정신질환 증세를 겪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스트레스는 점점 더 쌓이고 있지.’

    ‘비교적’ 편했던 중부 지구에서 순식간에 변두리에 해당하는 남부 지구로 배치되었다.

    파견 내용 때문에 근무 자체는 좀 더 편해질지언정, 막상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점점 미쳐 가는 것이다.

    중부 지구에 있었다면 그래도 여가 시간을 보낼 적당한 시설이 있었을 테지만, 이곳에 배치된 저들은 부대를 함부로 벗어날 수 없었다.

    높으신 분들 명령을 받아 파견 나온 만큼 근무는 대충 하더라도 ‘감시역’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대적인 여유가 있었던 남부 주둔군들과 달리, 저들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총기 난사 사고가 터지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로.

    물론 그건 우리도 사돈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쪽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얻어맞고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던 모든 것을 저들 때문에 내려놔야 했으니까.

    처음부터 즐기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사제 보급의 맛을 낭낭하게 봤던 남부 주둔군의 불만이 나날이 커지는 건 필연적이었다.

    “이 뱀, 요즘 저 새끼들 존나 띠껍지 않습니까? 요전에도 옆 소대 애들이랑 시비 붙었답니다.”

    “허, 참. 씨발, ✕같은 새끼들이네. 지들은 중부 지구에서 편하게 꿀 빨다 쫓겨났으면서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제 말이 그 말임다. 반찬 투정은 또 어찌나 심한지 취사병 애들한테 밥 꼬라지가 이게 뭐냐고 대놓고 꼽 줬답니다. 그것도 장교님들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들. 대대장님이 일단 참으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않았어도 다 같이 몰려가서 존나 밟아 주는 건데.”

    “흐흐, 요즘 같은 시대에도 맨몸으로 총질하는 놈들이 우리 중장갑보병대랑 붙으면 바로 오줌 지릴 겁니다.”

    “애초에 저 새끼들은 있지도 않은 테러리스트나 잡는 놈들이잖아. 우린 북한군 넘어서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에 대응하려고 창설된 중장갑보병인데 감히 비빌 수나 있나?”

    “마음만 먹으면 제가 10 대 1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10 대 1? 난 100 대 1도 가능하겠다, 새꺄.”

    “그건 좀 에바 아닙니까?”

    “응, 아니야.”

    대테러대응반 대원들이 먼저 남부 주둔군 병사들을 상대로 패악질을 부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부 주둔군 병사들 역시 저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랬던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지려면 먼저 누군가를 끔찍할 정도로 혐오해야 한다고.

    무시, 경멸, 혐오, 증오가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만이 형성된다. 불만이라는 심지가 서서히 타들어 가면 머지않아 분노라는 폭탄이 터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같은 상황이 남부 지구뿐만 아니라 북부, 동부 지구에서도 자행되고 있음을 이미 보고받았다. 서부 지구는 물자 하나만큼은 풍족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서 신경을 껐다.

    봉기의 때가 머지않았음을 생각하면서 병사들과 함께 작업하는 척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정비반으로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를 발견했다.

    “이야, 이게 그 짬찌들이 타고 다닌다는 이족 보행 휠체어야?”

    “으흐흐흐! 미친 새끼, 이족 보행 휠체어래!”

    “내 말 틀렸냐? 막말로 멸치 새끼 한 마리 데려다 놔도 이거 입히면 어지간한 폐급보다 잘 싸우겠는데?”

    “인정. 솔직히 이런 거 타고 다니면서 자기들이 정예 군인인 줄 알고 착각하는 애들 보면 웃기다니까. 특전병도 얘들보단 낫겠다.”

    딱 봐도 대놓고 시비를 걸러 온 티가 난다.

    정비병들은 낄낄대며 비아냥대는 대테러대응반 대원 둘에게 적개심을 품었으나, 냅다 들이받지는 않았다.

    이미 군 생활에 정통한 애들이라 이런 상황에서 들이받아 봤자 자기들만 손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바로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상명하복도 중요하지만, 군인이 부조리한 대우와 불합리한 모욕을 당했다면 되갚아 주기도 해야지.’

    상대의 뒷배가 더 대단하니까, 계급이 더 높으니까, 더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하며 이유 없이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을 정당화하면 안 된다.

    필요하다면 존재 가치가 없는, 무늬만 군인일 뿐인 놈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을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 줘야 비로소 상호 존중 관계가 형성되는 거다.

    “야, 방금 뭐라고 씨부렸냐?”

    그래서 병사들을 대신해 내가 나섰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민간인이고, 모든 중장갑보병들의 대선배이며, 이 중에서 유일하게 ‘실전’을 겪어 본 사람이니까.

    일부러 내 용모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적당히 기름때 묻은 까무잡잡한 얼굴로 놈들 앞에 나섰다. 그러자 놈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니, 씨발! 와……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 이젠 하사 나부랭이 새끼가 우리한테 개기네?”

    “어후, 나는 무슨 주임원사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잖아. 내 팔에 소름 돋은 거 보이냐?”

    “야, 됐다, 됐어. 짬찌들 감싸 주려고 나섰나 본데 주제 파악하고 조용히 기어 들어가라. 그래도 부사관 가오가 있지 병사들 앞에서 깨지면 쪽팔릴 거 아냐? 이번 한 번만 봐줄게.”

    “크, 이 시대의 진정한 대협!”

    나는 군말 없이 낄낄대고 있던 놈의 어깨를 잡았다.

    대테러대응반답게 체술이 상당히 몸에 익었는지 자연스럽게 팔을 올려쳐서 내 잡기를 풀어냈지만, 대놓고 손을 내뻗은 건 페이크였다.

    놈에게 팔이 올려쳐진 반동을 이용해서 허리를 옆으로 비틀며 근접 니킥을 박아 넣었다.

    팔을 따라서 몸이 움직이는 방향 그대로 니킥이 따라가는, 소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기였기 때문에 상대는 가드나 회피 없이 그대로 니킥에 얻어맞았다.

    “억?! 크흡!”

    옆에서 잘 웃고 있던 놈이 복부에 니킥이 박혀 비틀거리자 재빨리 옆에 있던 놈이 자세를 잡았다. 반응 속도가 제법 빠른 걸 보니 역시 썩어도 몸으로 움직이는 놈들다웠다.

    “이 씨발 새끼가, 사람이 봐준다고 했으면 곱게 말을 들어 처먹어야지…….”

    “느금마.”

    놈이 자세를 잡으며 수비 태세를 취한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옆에서 비틀거리고 있던 놈에게 발차기를 먹여 저 뒤로 날려 보냈다.

    제아무리 단련한 놈들이라도 기습적으로 배를 두 번이나 얻어맞으면 내장이 버티질 못한다. 두개골이 아무리 튼튼해도 뭔가에 잘못 부딪치면 뇌진탕을 겪는 것과 비슷하다.

    “뭐 하냐? 난 엑소스켈레톤도 착용 안 했는데? ✕밥 짬찌한테 개털리는 병신이 꼴에 대테러대응반이라고 가오 잡고 있었냐?”

    내가 자세도 제대로 잡지 않고 도발하자 놈의 눈에 살기가 깃드는 것이 보였다. 특공무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사람 죽이는 법을 터득했을 테니 자신감이 넘치겠지.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괜히 폼 잡지 말고 덤비기나 해. 너 같은 새끼는 배터리 바닥난 엑소스켈레톤 착용하고도 복날 개 패듯이 팰 수 있으니까.”

    “살려 달라고 빌지나 마라, 개새끼야!”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내 손에 대체 몇 명, 몇 마리가 죽었는지 알면 거품 물고 기절할 ✕밥 새끼가.

    그리고 슬슬 때가 무르익었다 싶어서 안 그래도 사건 하나 터뜨려 줄 생각이었는데, 차라리 잘됐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하면 서로 반목하기 마련. 끊임없이 서로를 충돌시켜서 어느 한쪽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내 앞에서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있는 놈이 이 원대한 계획의 산 제물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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