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84화 (184/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91)

    존 함장은 매케한 매연과 비린내가 섞인 바닷바람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갑판 위로 나왔다.

    그는 관측병에게 건네받은 야간투시 망원경으로 육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자신의 조국 미합중국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장비와 강인한 군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최강국이었지만, 애국자인 존 함장의 기억 속에도 지금껏 ‘저런’ 인물은 없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살짝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제대로 된 군함도 없이 대충 소형 어선과 바지선을 동원해 USS 퍼니셔호와 접선한 것도 모자라, 허무맹랑한 계획들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에게 협조 요청을 해 왔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존 함장은 그를 믿기로 했다. 정확히는 은연중에 믿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실제로 그는 정신병자 같은 허무맹랑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지휘관에 해당하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전장의 포화 속으로 내던질 수 있는 진짜배기였다.

    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누가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를 전장 한복판에 나가도록 내버려 둔단 말인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허무맹랑하고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누구보다 확실한 남자였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군.’

    언제나 선봉.

    살아 숨 쉬는 생명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거부할 수 없는 억지력이요, 강력한 공포일진대 그는 이를 악물고 최전방으로 뛰어나갔다.

    튼튼한 엑소스켈레톤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것도 아니고, 장갑차나 전차의 뒤에 숨어서 말로만 떠들어 대는 겁쟁이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죽기 전에 적을 먼저 죽여 버리면 된다는 미친 논리로 무기를 휘두르고 적을 분쇄했다는 목격담이 줄을 이었다.

    거기서 존 함장은 확신했다.

    이 청년이 어떤 계획을 품고 있든, 어떤 이상으로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 나가든, 그를 위해 손 한 번 거드는 것만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존 함장은 야투경 너머로 보이는 ‘비인간적인’ 전투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면서, 본국의 그 어떤 군인들도 저렇게는 싸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로라하는 특수부대원들을 데려다 놓으면 분명 저 청년을 몇 수만에 제압해 버리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

    하지만 저 청년이 가진 기술은 비단 인간을 상대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누구도 익히지 못했던 ‘대 괴물’에 대한 전투 능력을 키워 온 것 같았다.

    말이 되는가?

    숙련된 조련사가 맹수의 움직임이나 습성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는 마당에, 지금껏 이 세상에 존재했던 적이 없을 터인 괴물을 상대로 익숙한 몸놀림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괴물에게 있어서 단순히 주먹이나 발을 내지른다는 1차원적인 동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먹이 대뜸 여러 갈래의 촉수로 돌변해서 사방팔방을 포위하듯이 뒤덮는가 하면, 치고 나온 다리가 뚝 분리되어 작살처럼 그대로 쏘아져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청년은 비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이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적에게 맞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잘.

    그가 예언자가 아닌 이상에야 답은 뻔하다.

    초강대국인 미국 군인들조차 상대해 본 적 없는 괴물을 저 청년은 오래전부터 상대해 왔다는 것.

    몸이 기억한다면 머리가 기억하고, 머리가 기억한다면 흐름을 타는 법이다.

    상대의 안면에 신호탄을 쏴서 순간적으로 강렬한 섬광을 흩뿌린 청년은 검은 체액 같은 것이 확 퍼지는 타이밍에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이미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외골격 파츠를 버리고 오직 인간의 양팔만으로 상대의 목을 짓누른 뒤, 대검을 머리에 박아 넣었다.

    하지만 적은 쉽게 쓰러져 주지 않았다. 대검이 박힌 부위에서 검은 체액이 줄줄 흘러내리면서도 포효하며 청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려 했다.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가듯 비산한 검은 파편들이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그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꽤 먼 거리에서도 폭음이 울려 퍼질 지경이었다.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던 군대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기장 한복판을 뒤덮고 있는 자욱한 흙먼지가 걷히자 곧 튼튼한 군낭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파편에 의해 걸레짝이 된 군낭마저 내던지고, 권총이나 대검도 없이 맨몸으로 일어섰다. 주먹을 말아 쥔 자세에선 여전히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살의가 담겨 있었다.

    하나 서로를 향한 이해만큼은 단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존 함장은 필경 그가 인간이 아닌 괴물을 상대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괴물 따위를 이해할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    *    *

    괴물을 상대하는 법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배웠다.

    처음에는 경비가 허술했고 군인들 개개인의 무력이 수준 이하였던 북한 땅굴을 몇 번이나 깨부수기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작전 중에’ 분대원을 잃고 실시간으로 새로운 분대원을 투입해 가며 땅굴을 깨부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땅굴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약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것에 푹 절여진 북한군들이었으며, 놈들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기본적인 무장과 더불어 비인간적인 전투 기술을 함께 사용했다.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던 북한군이 갑자기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광경을 본 적 있나?

    피부가 강철처럼 딱딱하게 경질화되어 총알마저 튕겨 내던 북한군은?

    어둠 속에서 벽과 천장을 거미처럼 자유자재로 기어 다니면서 분대원들을 하나씩 암살하던 북한군은?

    난 다 본 적 있다. 다 상대해 봤고, 다 죽여 봤다.

    지금의 박한성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경험들은 북한군과 전우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피와 살점의 금자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가 먼저 떠올리기 전에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해 버릴 만큼, 나는 이미 진득할 정도로 수많은 이들의 핏물에 절여진 상태였다.

    내가 저들의 피를 빨아먹고, 저들의 살점을 취하면서 얻은 기술들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역겹기도 하지.

    “후우.”

    망가진 외골격 파츠를 버리고 걸레짝이 된 군낭까지 내던지자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1초 만에 20kg 감량에 성공한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탁탁탁.

    가볍게 뛰어 보니 스텝이 훨씬 더 매끄럽다. 전형적인 아웃파이터의 날렵한 스텝이다.

    뻐근한 손목을 가볍게 풀면서 주먹을 쥐어 보니 기계의 도움 없이도 인간의 머리통 하나는 어렵지 않게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은 악력과 근력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고중량에 시달리고 있던 호흡이 안정되면서, 불완전하게 달아올랐던 몸이 서서히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기 싫었어.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면 너무 느려지고, 갑갑하고, 아차 하는 순간에 기계의 파편이 전신에 박혀 죽을 위험이 있으니까.

    제아무리 착용자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나는 걸어 다니는 관짝에 타고 싶지 않았던 거야.

    ‘왜냐하면 나 빼고 전부 죽었으니까.’

    엑소스켈레톤의 강력한 힘과 튼튼한 중장갑에 의지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움직임도 엑소스켈레톤의 굼뜬 움직임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서, 엑소스켈레톤에 익숙해진 몸이 한 템포 느리게 반응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우들이 죽었다.

    반면 나는 달랐다.

    매번 얼굴과 이름이 바뀌는 전우들에게 엑소스켈레톤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알려 주면서, 나 역시 그런 운용 방식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내 운용 방식은 심플했다. 엑소스켈레톤의 출력을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군 다음, 육체가 낼 수 있는 스피드와 힘에 엑소스켈레톤의 싱크로를 조정하는 것이다.

    무작정 출력을 높인 엑소스켈레톤의 스피드와 힘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전투 도중에 출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면 당사자의 전투력이 급감하는 사태가 심심찮게 터졌으니까.

    하지만 내 방식에 적응하기도 전에 어떤 전우들은 죽어 나갔고, 또 누군가는 그 방식을 거부했으며, 최종적으로 내 방식에 동참하고 함께 따라 주었던 사람들 역시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국가에서 주도한 사망 확률 100%의 맹독성 실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정상적인 돌연변이 실험체가 돼 버리고 만 것이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서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를 배우고, 적의 움직임을 보고서 ‘저건 저렇게 대처해야겠구나’를 배워 나갔다.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다운 사고방식을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성만큼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

    모든 인간들을 대변하듯 당당하게 맨몸으로 괴물 앞에 섰고, 지금껏 피비린내 나는 실전 속에서 쌓아 올린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괴물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다.

    이번에는 저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왔다.

    내가 맨몸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과감하고, 담대하며, 빗나갈 것이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공격.

    우리는 그것을 자만이라고 부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자세에서 고개만을 돌려 머리를 노린 공격을 피해 내고, 왼발로 지면을 박차서 옆으로 튕겨 나가듯 이동했다.

    “……!”

    “인간이 괴물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의 첫 번째 자만.”

    직후, 놈이 내뻗은 왼팔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던 내 몸을 붙들기 위해 그물처럼 촤르륵 펼쳐졌다. 튼튼하고 촘촘한 그물이다.

    하지만 형태의 특성상 공기저항 때문에 빠르게 사냥감을 포획할 수는 없다.

    “인간이 괴물의 수단을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의 두 번째 자만.”

    내가 얼마나 많은 죽음과 마주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얼마나 많은 역경을 뛰어넘어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 머리가 잠시 잊은 적은 있어도, 내 몸은 한사코 잊은 적이 없으니.

    그물이 내 몸을 집어삼키기 전에 태클을 걸듯 아래로 훅 치고 들어간 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어퍼컷을 날린 것은 본능 속에 각인된 깔끔한 연계였다.

    “한낱 인간의 힘이 괴물의 강인한 육체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의 마지막 자만이다.”

    전장에서 자만과 객기의 대가는 허망한 죽음뿐이니.

    나는 죽음으로 깨우친다는 게 무엇인지 놈에게 손수 알려 주기로 했다.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갈 때까지, 혹은 내 주먹이 먼저 박살 날 때까지.

    나는 어퍼컷을 맞고 뇌진탕을 느끼는 놈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검은 체액으로 자신을 감싸려는 순간, 검은 체액이 완전히 덮지 못하는 신체 부위를 찾아내서 발로 찍었다.

    미처 보호받지 못하던 놈의 정강이가 으스러지고, 안 그래도 불안불안하던 자세가 기어코 흐트러졌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시야도 흐트러지고, 시야가 흐트러지면 생각도 흐트러지는 법.

    ‘위험한 머리를 감싸서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본능적으로 ‘고통이 느껴진 부위를 보호해야겠다’ 하는 쪽으로 바뀌는 순간이 핵심이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로 넘치는 힘에 의존하다 보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전투 중에 머리에 타격을 입었다면 머리를 보호하거나 몸을 빼는 게 맞다.

    설령 팔이 잘려 나간다고 해도 머리만큼은 보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익숙지 않은 이 반쪽짜리 괴물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통을 느낀 부위를 보호하려 했다.

    그 결과, 머리를 보호하고 있던 체액이 순식간에 다시 빠져나가며 하반신을 덮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 꽤 기뻤을 것 같다. 그래, 확실히 기쁘다.

    순수하게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를, 오직 압도적인 경험과 기술만으로 유린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겁다는 사실을 일생 처음 깨달았으니까!

    으드드드득!

    내 어퍼컷이 다시 한 번 놈의 턱주가리를 튕겨 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