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190)
흑천은 확고한 기반을 다지기에 앞서 신도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물론 자신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신도들을 제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신도들과 24시간 붙어 다니며 그들을 고무시키고 열광하게 만들기엔 너무나도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자 두 명을 선발했다. 한쪽에 치우쳐지지 않게끔 서로 다른 성별, 다른 성향 그리고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로 뽑았다.
당시 흑연교 내에서 회계와 총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발이 넓은 여성은 모든 신도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만을 꼽아 대모(大母)로 만들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우거나 신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때 조직의 큰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을 말끔히 처리했다.
신도들에게는 한없이 상냥했으며, 적과 아군을 구분할 줄 알았고,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잡음이나 불신, 불만 같은 것을 매의 눈으로 잘 잡아냈다.
그러자 모든 신도들이 자신을 알현하기에 앞서, 반드시 한 번쯤은 대모를 거쳐야 한다는 프로세스를 스스로 구축했다. 자연스럽게 위계질서가 생긴 것이다.
또 한 명은 일머리가 좋은 건장한 남성이었다. 충성심이 높고 행동력이 강하며 결단을 하는 것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직관적인 타입이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직함을 내리지 않았지만 ‘힘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조직 내에서 순수하게 힘으로만 따지면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구성한 행동팀은 교단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려는 외부인이나, 교단에 해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을 물리적으로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덕분에 2030년에 이르기까지 흑연교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많은 신도들이 그를 교단의 참일꾼이나 행동대장, 전사 등으로 부르곤 했다.
203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함께 교단을 꾸려 나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의 자신들에게는 여전히 꿈과 이상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믿음을 가진 자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신앙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제까지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어느 순간 완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격동의 시기는 매우 거칠었고 빨랐다.
“그런가. 내가 바스러질 운명이었는가…….”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어 왔건만, 저 바깥에서 들려오는 포성과 총성이 소중한 형제자매들에게 잔혹한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수천, 수만 개의 군홧발이 진군을 멈추지 않고 커다란 철 덩어리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
자신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신도들이, 형제자매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평생 흘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눈물이 흘렀다.
이것은 잘못된 길을 올바른 길이라며 걸었던 자가 맞이해야 할 합당한 최후다.
잘못된 길을 올바른 길이라고 속이며 모두를 사지로 밀어 넣은 자에게 부과된 책임이다.
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성좌에서 일어난 그는 치명적인 타격으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던 독도함의 갑판 밖으로 나왔다.
함대의 후미에 바짝 달라붙은 미국 군함이 포격을 갈겨 댄 탓에 수많은 배들이 침몰하고 있었다. 범고래처럼 매섭게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고속정들이 어뢰나 대포를 발사할 때마다 폭발과 연기가 솟구쳤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내다보이는 육지의 전장을 바라보니, 그곳에서 빛을 갈구하는 자들이 흉광(凶光)을 흩뿌리며 형제자매들을 하나하나, 짐승처럼 도축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박한성이라는 저주스러운 이름을 가진 존재였다.
약 4년 전에 완벽했을 터인 자신과 노신사의 계획에 어깃장을 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녀사냥을 앞장서서 지휘하고 있었다.
이 무슨 악연인가.
“너를 죽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건만, 목숨이 고래 심줄보다 질기구나.”
노신사의 도움으로 지저 도시에 숨겨 넣은 형제자매들을 이용해 저놈을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노신사가 정부를 닦달해서 국정원을 움직이게 해 놈을 처리하려 했지만 그 또한 실패했다. 놈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힘을 축적해 온 자신들을 농락했다.
저것은 검은 물감으로 덧칠한다고 해서 색이 바래지는 존재가 아니요, 검은 천막으로 덮는다고 해서 찬란함이 사그라드는 반딧불 따위도 아니었다.
지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태양처럼, 자신이 중심에 서서 주변을 환하게 밝히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유능함’이 집약된 괴물이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저것은 처음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그들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도 저렇게 위선 한 점 없는 리더십을 자랑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제 아비를 빼다 박았군.”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그의 아비인 박한화는 누군가에게 충성한다는 것이고, 저 박한성은 누구에게도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흑천은 마지막까지 무의미한 저항을 이어 나가던 대모와 행동대장이 전차들의 집중 포격 속에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직접 육지에 발을 디뎠다.
자신 역시 그들과 함께하리라.
* * *
“조명탄 쏴 올리고, 다들 물러서라.”
나는 서서히 침몰해 가는 독도함에서 내려온 사이비 교단의 교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총을 바닥에 내려 두고 외골격 파츠의 출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그만큼 배터리와 내구도가 빨리 소모되겠지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명령을 전달받은 군대가 우르르 물러나서 커다란 포위진을 형성했다. 전차와 장갑차의 밝은 헤드라이트가 포위진의 중앙을 비추고, 쏘아 올린 조명탄이 하늘을 대낮처럼 밝게 비춰 주었다.
더 이상 인천에서 빛을 보고 모여드는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는 없었다. 그런 놈들은 이미 우리가 다 죽여 버렸으니까.
걸리적거리는 야투경까지 벗어던진 나는 서늘한 냉기와 혈향이 서린 전장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익숙한 공기였다.
나는 사이비 놈들이 죽어 가기 직전까지 울부짖었던 ‘흑천’이라는 존재를 수십 미터 앞에 두고 멈춰섰다.
일전에 인천에 침투하면서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했던 존재.
이 거대한 사이비 종교가 나라를, 나아가서 세계를 집어삼키기 전까지 세력을 키울 수 있게 했던 존재.
스스로 인간의 탈을 벗고 괴물이 되어, 나약함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고 싶어 했던 존재가 바로 흑천이었다.
그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젊었다. 어쩌면 괴물이 되면서 노화가 멈췄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인간이 가진 나약함의 족쇄에서 풀려나기까지 앞으로 조금을 남겨 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어째서 그가 그토록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 이해가 간다.
인간들은 각기 다른 삶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형태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재능이 없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너무 가혹한 환경을 타고나서, 아예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약해서 벽에 막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중요한 것은 한계라는 벽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물론 극복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순응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꼼수를 써서 빙 돌아가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길이 만큼이나,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이념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펼쳐져 있다.
눈앞의 존재는 벽에 부딪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사이비 종교라는 수단을 택했고, 괴물이라는 길을 걸었을 뿐이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 이해하지는 않겠지만.”
상호 존중은 문명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양.
나는 눈앞의 존재가 자신이 거느렸던 사이비 종교를 멸망시킨 나를 존중할 의사가 있는지 물은 것이나 다름없다.
“30년. 올해까지 치면 무려 31년이나 걸린 숙원이었다. 끝내 이루지 못해 평생 이루어질 리 없는 숙원으로 남았으니, 누구라도 내 입장이었다면 너 같은 저주스러운 놈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미래보다는 밝은 미래가 나았으니까. 평생의 꿈이 박살 난 정도로 어린애처럼 징징대지 말자고. 네놈들 때문에 꿈을 꿀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온 세상에 널려 있으니까.”
나도 포함해서.
인간이란 자신이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걷는 존재다.
망했으니까 끝, 고작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다들 깔끔하게 자살해 버렸다면 70억이 넘는 인간들이 지구를 가득 채울 일은 없었겠지.
행복은 공평하지 않지만 불행은 한없이 평등한 세상 아닌가. 누구나 한 번쯤 실패와 절망을 겪기 마련이다.
거기서 죽지 못해 사는 자와 완전히 포기한 자 그리고 아득바득 기어 올라오는 자들로 다양하게 나뉘니까 인간성이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꿈을 누릴 자유를 박탈당해선 안 된다.
내가 눈앞의 존재의 선택을 존중했을지언정 이해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포기하면 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시시한 자기만족감? 남들보다 우월해졌다는 착각?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 내 가면서 고작 그런 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온전히 한 명의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인생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들은 당연한 일상의 소중함을 몰라.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질 않나, 저들끼리 죽이고 빼앗질 않나, 스스로 ‘종말’을 앞당기질 않나. 나 같은 소시민 입장에선 지긋지긋할 정도야.”
누구도 스펙터클한 인생 따위 즐기지 않는다.
피와 화약 냄새로 점철된 인생을 자진해서 걷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일이 해결되는 문제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잘난 집안에서 똑똑한 놈으로 태어난 내 꿈은 정말 별것 아니었어.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하고, 결혼하고, 말년까지 잘 먹고 잘 살다 기분 좋게 가는 인생을 원했지.”
군대를 나와서 한다는 생각이 대충 대기업 산하 경비업체에 취직해서 적당히 먹고 살자는 것이었으니, 내 인생 계획이 얼마나 형편없으면서 평범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난, 씨발…… 너희처럼 인간을 초월하겠답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땅에 구멍을 뚫어 대지도 않고, 인간성을 벗어던지면서 괴물이 되길 원하지도 않았어. 문명의 편의성을 버리고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고. 세상 사람들 다 불러모아서 물어봤어도 백이면 백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일걸.”
나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육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찢어발기고, 으깰 수 있는지 계산하면서 울분을 토했다.
“내가 고대의 깊은 땅굴 속에서 기어 나온 괴물들을 전우들과 목숨 바쳐서 막아 냈던 이유는 누구도 바뀌길 원하지 않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였어! 꼴에 군인이라고 ✕만 한 애국심을 가져서 그랬던 게 아니라고!”
너희가 저지른 짓을 봐라.
너희가 망친 세상을 봐라.
너희가 부순 일상을 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하게 자신의 인생과 일상을 잃었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느낄 지경이 되었는가.
평범하게 일상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느꼈지만,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행복을 찾아내며 또 다른 내일을 꿈꿨다.
하지만 이제는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만 남았으니,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자들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너 같은 놈들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대단하고 유능한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나섰다. 잘난 집안과 잘난 아버지가 싫어서 평범하게 살아 보려 했던 내가 피와 화약을 뒤집어쓰고 바로 여기에 섰다.”
나는 온전히 나다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
“그러니 부디 죽어 다오. 수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의 일상을 멋대로 부수고, 존중받아 마땅한 그들의 삶에 침을 뱉은 너는 죽어 마땅하다.”
“그 또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
나는 말없이 검은 점액이 피부의 반 이상을 덮은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세상을 망쳐 버린 2개의 암 덩어리 중 하나를 완전히 적출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자유를 갈망하는 내가 이 대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