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79화 (17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6)

    “부평 진입 성공했습니다. 추적조를 풀어 시가지 내에 남아 있는 잔당을 쓸어버리기만 하면 인천은 사실상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알파 대원의 보고에 나는 가쁜 숨을 정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처럼 사고하고, 나처럼 적을 기만하고, 나처럼 적을 말살하는 능력이 있는 로봇견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템포가 다소 빠른 감이 있었다.

    인간의 체력으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기계의 템포를 따라가려 하다 보니 나답지 않게 조금 무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단거리 통신으로 인천항에서 성공적으로 상륙한 기동부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병대와 양산형 중장갑보병대가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싸운 덕분에 적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지…….”

    “사상자가 제법 있었겠지.”

    “예. 제아무리 용감하고 악에 받친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여 줬다고 한들, 그 사이비 놈들과의 근본적인 신체 능력 차이는 쉽게 좁힐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전사자의 유해는 ‘감염’을 유발하지 않도록 모두 한데 모아 태웠다고 하며, 부상자들은 수송선에 실어 다시 후방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에 로망 따윈 없다.

    누군가는 돈과 명예 그리고 공훈을 찾고자 전쟁에 뛰어들지만, 막상 전쟁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나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병사들은 장교나 장성들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장에서 온갖 참상을 겪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크게 다쳐서 돌아오는 건 항상 병사들의 몫이었으니까.

    그들이 전역한 뒤에도 PTSD에 시달리며 괴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을 때, 뒤에서 손짓 발짓으로 되지도 않는 지휘만 전달하고 있던 놈들이 온갖 명예와 공훈은 다 가져간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내가 가장 앞에 서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날 따라올 수 있겠으며,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냐는 논리 때문에.

    ‘하지만 사상자 보고를 들을 때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

    툭 까놓고 말해서 힘들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저들을 위해 희생한 자들의 최후를 떠올릴 때마다 입안이 씁쓸해진다.

    “사상자들의 유족들에겐 확실히 보상해 줘. 고작 그 정도로 위로가 될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사람들이 삶을 이어 나갈 명분은 만들어 줘야지.”

    “이미 후방에 잘 얘기해 뒀으니 그 점에 대해선 일 처리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혹시 그런 자가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가 처형해 버릴 것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

    최소한 부상자의 가족이나 전사자의 유족들 가슴에 대못을 두 번 박지는 말아야 하는 법이다. 그건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일이니까.

    배낭에서 미네랄워터를 꺼내 순식간에 한 병을 비워 버리고, 에너지 바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우리 군은 일시적으로 전선을 유지하며 재정비에 들어간 참이다.

    부평과 남구, 남동구의 잔당 소탕이 끝나는 대로 김포시로 북진할 계획이다.

    신기동함대에게 제대로 박살 난 적들의 후방 함대는 꼬리를 말면서 다급히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의 좁은 수로로 기어 들어갔다고 한다.

    즉 놈들은 매우 어정쩡하게 김포시 주변 한강 수역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 놈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병력도 대부분 그쪽에 몰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보고입니다만, 신기동함대 중 좁은 수로로 이동하기 편한 소수의 참수리 고속정과 구축함만 강화도 사이의 좁은 수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배들은 크기가 너무 크고 굼떠서 좁은 수로로 따라 들어가면 오히려 역효과라고…….”

    “그럼 나머지는 인천항을 사수하면서 베이스캠프를 치라고 해. 사이비 잔당들을 확실하게 처리하는 건 그쪽에 맡기자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강습 병력 중 일부를 인천항에 남겨 두고 가면 베이스캠프를 치고 소탕 작전에 나서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나는 꽤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본대의 재정비 현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질문했다.

    “전차의 3할 정도가 기동 및 전투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놈들의 저항이 제법 거셌던 것도 있고, 무식하게 콘크리트나 철근을 내던져서 맞출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야전수리반을 따로 호출해서 어떻게든 수리하려고 했지만, 부품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장갑차는?”

    “장갑차는 전차보다 피해가 더 심각합니다. 보병들의 엄폐물로 이용되면서 천천히 진군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약한 장갑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단순 기동 불능은 4할이고, 완파는 1할입니다.”

    사실상 장갑차의 절반을 잃었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 시가전이 고통스러운 거다. 적들은 복잡한 시가지를 휘젓고 다니며 게릴라 작전을 펼치기만 해도 피해를 꾸준히 누적시킬 수 있는데, 이쪽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어떻게든 적을 찾아내 말살해야 하는 입장이다.

    인천에서 적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로봇견을 풀어서 놈들의 시가전 능력을 크게 떨구고, 중장갑보병을 최대한 최전선에 투입시켰음에도 이만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비록 내 작전이 완벽했을지언정, 전장 환경과 적들의 전투 능력이 내 작전을 씹어 먹을 만큼 대단했다고 볼 수 있겠다. 굉장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이다.

    “우리가 김포시로 진격하는 순간 놈들도 최후의 발악을 할 겁니다. 한강 수역에 어중간하게 대놓은 군함들이 무차별 포격을 할 것이고, 남아 있는 사이비도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겠지요.”

    “그렇겠지. 그렇게 되게끔 유도했으니까.”

    놈들에게 후일을 도모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 주면 안 된다.

    그랬다간 또 어딘가로 도망쳐서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힘을 키운 다음, 인류가 열어 갈 새로운 시대를 방해하겠지.

    이건 사이비 교단이나 우리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다. 그걸 아군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입장인 내가 가장 먼저 최전방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과 중압감에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으니까.

    “재정비가 끝나는 대로 부대를 재편하고, 인천 서구로 북진한다. 계양구로 들어갔다간 한강에 진입한 놈들의 포격을 받을 우려가 있어.”

    “존 함장이 이끄는 줌왈트급 구축함과 개조된 고속정들은 이미 영종도를 지나 세어도 방면으로 북진 중이라고 합니다. 저쪽에서 먼저 적들의 후방 함대를 공격해서 시선을 끌어 주겠다는군요.”

    “줌왈트급 구축함은 둘째치고 고속정만으로 놈들의 시선을 끄는 건 굉장히 위험할 텐데.”

    “경상도에 있던 수많은 인재들이 공들여서 개조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고속정보다 훨씬 더 빠르고, 무장을 늘렸다는군요. 둔중한 군함을 상대로 빙글빙글 돌면서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니……저들에게 걸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적 함대의 시선을 끌어 주지 않으면 지상 병력인 우리가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니, 저쪽에서도 필사의 각오로 양동작전을 펼쳐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남아 있는 전차와 장갑차, 험비로 최대한 보병을 보호하면서 진군한다. 혹시 적 함대가 포격 사거리에 들어오면 전차들은 적 함대를 우선적으로 노리라고 해.”

    지상의 전차가 물 위의 군함을 잡는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국 군함들은 대부분 배수량이 낮은 것들뿐이라 장갑이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다.

    그나마 주의할 만한 것은 이지스 구축함 정도인데,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금 이지스 구축함은 함포만 달린 깡통일 뿐이다. 그 좋은 미사일을 시원하게 퍼부을 수 없으니까.

    ‘애초에 GPS가 작동하는 순간 그 이지스 구축함도 줌왈트급 구축함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늘을 뒤덮은 암흑 물질이 한층 더 옅어지고, 운 좋게 GPS가 작동하게 된다고 해도 선수를 치는 건 줌왈트급 구축함일 것이다.

    지금껏 쓸 수 없었던 최신예 미사일과 레일건, 공격 헬기를 한 번에 띄워서 마음껏 농락할 테니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구도가 상한 장비의 부품을 교체하고, 재정비를 끝마쳤다.

    경기관총은 너무 많이 쏴서 총열이 미친 듯이 달아올랐는데, 지금 교체해 두지 않으면 김포에서 적을 상대하다 말고 총열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탄약은 보급 차량들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보급해 주었지만, 그것도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면 다시 힘들어질 것이다.

    “보급이 부족하지 않게 전 부대에 탄약, 폭발물, 교체용 부품 넉넉하게 지급해 줘. 어차피 사이비 놈들만 처리하고 나면…… 아니, 됐다.”

    철컥!

    경기관총에 드럼 탄창을 끼우고 날이 잘 선 대검을 허리에 찼다. 저격총에 건물 폭파용 C4, 수류탄과 예비 탄약, 야투경과 방독면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챙겨서 일어나자 순찰 모드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로봇견 10채가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아직 놈들이 최후의 한 수를 아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기롭게 한강까지 기어 들어와 단숨에 서울에 장악하려 했던 놈들인데 이렇게 홀라당 인천을 내주고 자신들의 원대한 꿈을 포기하려 들까?

    ‘절대 그럴 리 없지.’

    사이비든 사이비가 아니든, 고문이나 약물로도 꺾을 수 없을 만큼 신념이 강한 것들은 포기하는 법을 모른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옳았다면서 우직하게 믿고 나가는 놈들이야말로 미친 세상에 올바르게 적응하는 미친놈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임시 막사에서 무전기 앞에 앉아 있던 통신병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김포시 방면에서 관측 보고! 변종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로 추정되는 다수의 괴수 무리 출현을 확인! 사이비 무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니까.”

    나는 즉시 나이트워커, 나이트워치를 전문적으로 사살해 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 밀수 조직들을 전방으로 배치시켰다. 또한 나이트워치 사살조에게 전원 야투경을 지급하고 전 부대의 조명 사용을 제한시켰다.

    믿을 건 열상 감지 장비와 예광탄 사격으로 표적을 확인시켜 준 뒤 일제사격을 퍼붓는 것뿐.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를 전장에서 최대한 빨리 배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놈들이 어째서 집요할 정도로 흑연의 정수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흑연의 정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타르 덩어리들이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를 조종하는 놈들이었으니, 사이비 놈들도 그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히든카드는 아껴 두면 똥 된다는 사실을 저쪽 대가리도 알았는지 마지막 일전에서 모든 패를 꺼내 드는 모습이 퍽 우습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놈들이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전 부대에 전달한다. 나이트워치는 빛을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경우 즉시 눈이 가려워지고, 스스로 눈을 파내고 싶어지는 광증이 도진다. 아군에게 피해 주기 싫은 놈들은 적당히 예광탄 궤적만 따라서 일제사격을 퍼부어라. 조명 사용은 금한다.”

    예광탄으로 표적의 대략적인 위치를 잡아 주는 건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베테랑 밀수 조직을 비롯한 저격수들의 몫이다.

    나머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최대한 방어적으로 대응 사격을 하면 된다. 사실 그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고.

    “로봇견을 일선에 배치해라. 설치형 오토 터렛은 전부 전차나 장갑차 위에 설치해!”

    내가 사용했던 시제품 형태의 사무 가방 오토 터렛이 전차와 장갑차 위에 던져지고, 트랜스포머처럼 착착 알아서 조립된 오토 터렛이 ‘삐빅!’ 하고 전자음을 내뱉었다.

    이러면 전차나 장갑차 위의 오토 터렛이 알아서 적을 감지하고 요격하는, 이동식 오토 터렛으로 변한다. 마지막까지 시제품 재고를 아껴 둔 보람이 있었다.

    그때 빌딩 옥상에서 들려온 대물저격총의 묵직한 총성이 적들의 등장을 알렸다.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를 상대하기엔 경험이 부족한 인원들이 뒤로 물러나고, 반대로 질릴 정도로 놈들을 잡아 본 베테랑 밀수범들이 앞으로 나섰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였다.

    우리는 일부러 야투경의 해상도를 조절해서 한 번에 다수의 나이트워치를 보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각자 포착한 나이트워치를 우선적으로 요격할 준비를 했다.

    아직 내 야투경 시야로 나이트워치가 포착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이 간질거리는 느낌이다.

    투카아앙! 투다다다다다다! 탕! 탕!

    인간의 시야보다 뛰어난 열상 감지 장비로 먼저 적들을 포착한 전차와 장갑차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솜씨가 뛰어난 알파 소속 저격수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대물저격총을 연달아 쏴 댔다.

    처음에는 포성, 그다음에는 유탄발사기, 기관포,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무기가 점점 늘어날수록 적들의 접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보다 조금 더 앞에서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로봇견들이 전투 모드로 들어간 순간, 우리는 화력을 퍼부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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