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78화 (178/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5)

    표적 치료

    사이비에 감화된 자들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무형무상의 ‘신적 존재’를 향해 믿음을 바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들이 삶의 방향성, 즉 항해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바람이 이끌어 주는 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바다 한복판의 미아가 되었다면 실체 없는 허상에 빠져들기 쉬울 테니까.

    사이비 교단의 교주란 놈들은 거기서 갑자기 등장하는 일종의 구조선 같은 놈들이다. 정확히는 구조선으로 위장한 해적선이지만, 어쨌든 바다 한복판의 미아를 자신의 배에 태워 줄 능력은 있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의 미아들은 자신들이 직접 선택해야 할 삶의 방향성을 교주에게 맡겨 버린다.

    교주가 시키는 대로 노도 젓고, 갑판도 청소하고, 다른 배도 약탈하고, 가끔씩 나눠 주는 술과 여자에 취해 행복을 느끼기도 하면서, 어느샌가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올바른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비는 언제나 허점이 있는 사람들만 노린다. 심적으로 크게 허점을 내보인 사람은 설령 돈이 많고 학식이 뛰어나도 사이비의 마수에 한 번 걸려들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허점을 내보인 시점에서 사이비는 상처 속을 파고드는 세균처럼 집요하게 그곳만 공략하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와 나이트워커의 습격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인천으로 몰려들면서 다들 마음의 병을 얻었을 것이다.

    흑연교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집단의 허점을 꿰뚫어서 그들 모두를 훌륭한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오직 교단을 위해 희생하고, 교단을 위해 움직이는 첨병이 되게끔.

    그렇게 수백만에 달했던 피난민들은 빠르게 수십만으로 줄어들고, 결국에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람도 아닌, 그저 사이비에 세뇌된 괴물들만 남아 버린 것이다.

    슈욱!

    “그러니까 한 번 본 건 안 당해 준다고!”

    내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채찍처럼 날아든 긴 팔을 역으로 잡아채서 힘껏 끌어당긴다.

    외골격 파츠 하나면 고릴라와의 근력 대결에서도 승기를 점칠 수 있는 것이 인간인데, 그것이 사지가 쭉쭉 늘어나는 괴물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순식간에 어둠 속에서 끌려 나온 괴물은 허공에서 날아드는 자세 그대로 내가 먹인 카운터펀치에 안면이 뭉개졌다.

    활짝 핀 꽃처럼 넓어진 안면에서 바스러진 뼛조각과 뇌수가 질질 흘러나왔다. 두개골이 수박처럼 터지지 않은 건 몸이 쭉쭉 늘어나는 기이한 탄력 덕분이겠지.

    그러니 놈의 머리통과 목덜미를 양손에 쥐고 걸레를 쥐어짜듯 비틀어 돌리자 마침내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찢어발긴 육체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온 검은 체액의 양을 보면, 이놈들이 얼마나 많은 흑연의 정수를 주입했는지 가늠케 했다.

    효율적으로 흑연의 정수를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인들을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놈들에게서 정수를 뽑아낸다. 그 사이클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수백만 인구를 희생시켜서 수십만 명을 정예 괴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역겨운 방식이라 괴물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놈들에게 이런 퍼포먼스를 선보이면 지레 겁먹거나 약간의 동요라도 느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놈들은 잘 훈련받은 요원처럼 침착하게 포위망을 형성했다.

    이 이상 앞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져서 헛웃음보다 짜증이 먼저 치밀 정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박한성을 상대로 앞길을 막겠다고?

    나 박한성은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가장 마지막에 나왔던 사람이다.

    비록 ‘희생’이 있었을지언정, 박한성 본인의 발걸음이 멈추거나 뒤로 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너흰 좋을 대로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갈 테니까.

    다시 한 번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가자 이번에는 좀 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다각도에서 날아든 팔과 다리가 내 몸을 거의 동시에 노렸다.

    놈들이 급하게 포위망을 형성한 시점에서 이런 공격이 날아들 것이란 사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너무 뻔해서 하품도 나오지 않는다.

    스컥! 콰앙!

    가장 먼저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팔은 대검으로 일격에 썰어 버리고, 가볍게 발을 구르며 점프해서 양손으로 또 다른 공격들을 쳐 냈다.

    세 개의 공격을 훌륭하게 방어하고 나니 내가 막힘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생로(生路)가 열렸다.

    하지만 그것은 페이크. 내가 뻔한 생로를 향해 달려 나가는 즉시 양옆에서 내 몸을 꿰뚫기 위해 한발 늦게 날아드는 촉수들이 보였다.

    적어도 나는 저걸 눈 뜨고 당해 주는 병신이 아니기 때문에 달려 나가는 척하면서 급제동을 걸어 코앞에서 맞부딪치는 촉수 두 개를 붙잡아 찢었다.

    답이 뻔한 퍼즐을 푸는 것처럼, 타이밍 맞게 버튼만 누르면 되는 리듬 게임을 하는 것처럼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거나, 찢거나, 역으로 쳐 내면서 막힘없이 나아갔다.

    결국 놈들의 포위망은 보기 좋게 뚫렸고, 강화 콘크리트 철근을 던져 대는 놈이 있는 고층 빌딩 앞에 도달했다.

    ‘이럴 줄 알고 K14 저격소총을 가져왔지.’

    일전에 삼각산동에서 우릴 배신했던 군인들로부터 노획했던 저격총을 등에서 뽑아 들고, 다른 건물을 열심히 뛰어 올라갔다. 최소한의 각이 나올 정도만 시야를 확보하면 충분하다.

    “여기면 되겠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고층 빌딩 옥상에서 대놓고 자랑하듯 자신의 몸을 훤히 노출시키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야에 들어온다는 건 저격 각이 나온다는 것.

    나는 삼각대를 펼쳐 건물의 창가에 저격총을 거치한 뒤, 조준경의 배율을 조정했다. 꽤 먼 거리에 목표물이 있다면 영점을 잡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겠지만, 다행히 목표물과 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순수하게 직선 거리만 따져 보면 200m 안팎. 소총으로 중거리 교전을 하기에 적합한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은 온갖 지랄 맞은 무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영국의 후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랄 맞은 게 막 튀어나온다니까.”

    군에 대한 처우 개선은 조금도 안 되면서 수상할 정도로 많은 무기 개발 사업에는 돈을 많이 쓰는 국방부.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금 K14 저격총의 탄창에 들어 있다.

    일명 ‘헌터 킬러’라고 불리는 이 특수한 탄환은 최전방 군부대에서도 저격수를 운용하는 소수의 부대에서만 테스트용으로 우선 보급된 것인데, 최진석이 최전방 부대 순회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입수했다며 내게 건네주었다.

    무식한 국방부는 일반적인 탄환으로는 인간의 급소를 저격하지 않는 한 일격에 사살하기 힘드니, 그냥 맞기만 하면 즉사시키는 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헌터 킬러, 상대에게 적중시키기만 하면 얇게 씌워 둔 탄두가 세라믹처럼 깨지면서 내부에 들어 있는 초소형 ‘독 캡슐’을 파편과 함께 흩뿌린다.

    인간이 아주 극소량의 청산가리만 먹어도 죽어 버리는 것처럼, 이 지독한 생화학탄 역시 생물의 연약한 신체 구조를 노리고 만든 것이다.

    독소를 머금은 탄두의 파편이 단 한 조각이라도 몸에 박히는 순간 상대는 허무하게 즉사해 버리고 만다.

    방탄 헬멧이나 두꺼운 중장갑판으로 막아 내는 것이 아닌 이상 거의 100% 확률로 즉사시킬 수 있어, 저격수의 부담을 크게 줄이면서 적의 부담은 크게 늘리는 흉악한 생화학탄이다.

    한국이란 나라는 ‘핵만 빼면 다 만들어도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미친 국가였기 때문에.

    타앙!

    내가 심혈을 기울여 쏜 한 방이 고층 빌딩 옥상에서 근육을 뽐내고 있던 괴물의 몸에 적중하자, 놈은 잠시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곧 몸을 비틀면서 쓰러졌다.

    몸 안에 피 대신 흑연의 정수가 흐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독한 독소는 세포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몸을 좀먹는 암세포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간 독소는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근육과 뼈를 괴사시킨다. 이윽고 복합적인 다발성 장기부전이 발생하면서 어떤 방법으로도 되살릴 수 없는 초고속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시제품이라서 몇 발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아까울 정도였다.

    “당황스러워하는군.”

    놈들은 시가전에서 유리하게 방어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전력 하나가 사라지자 크게 동요했다.

    전차와 장갑차를 집요하게 요격하는 고정 포대가 사라지자마자 방어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다시 숨통이 트인 전차는 아낌없이 포탄과 기관총을 퍼부었고, 장갑차는 비유도 로켓과 고속유탄발사기를 펑펑 쏴 대며 진군을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하고 울려 퍼지는 무한궤도 굴러가는 소리와 악에 받친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군홧발로 지면을 내딛는 소리는 나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걸 맨몸으로 방어해야 하는 입장인 사이비 놈들은 제아무리 괴물처럼 변했다고 한들, 적지 않은 부담과 공포를 느끼고 있겠지.

    바로 그거다.

    “너흰 좀 더 고통받고 두려워해야 해.”

    저격총을 갈무리한 나는 소총을 뽑아 들고 단거리 통신으로 로봇견 부대를 호출했다.

    놈들이 인천 안쪽으로 퇴각할 것 같은 낌새를 보이니, 한 놈도 놓치지 않고 추격해서 말살해야 했다.

    곧 시가지를 헤집으며 괴물을 사냥하고 있던 로봇견들이 내 호출을 받고 빠르게 모여들었다.

    100기 중에서 10기의 독립적인 지휘권을 보유하고 있는 나는 로봇견들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한 괴물들을 추격했다.

    이놈들이 성공적으로 퇴각해서 인천항의 괴물들과 합류한다면 뒷처리가 더 어려워진다. 지금쯤이면 인천항에 상륙한 신기동함대가 열심히 싸워 주고 있겠지만, 원래 이런 건 뒷일을 도모할 생각도 못 하게끔 확실히 뿌리 뽑는 게 정석이다.

    인천 땅에서 놈들을 완전히 말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수많은 군함과 배에 몸을 싣고서, 어정쩡하게 한강으로 진입 중인 놈들만 남는다.

    놈들은 육지를 밟아 보기도 전에 한강에서 수장될 것이다.

    “움직여!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놈들이 완전히 퇴각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혀라!”

    무전기로 호통을 치는 한편, 나는 로봇견들과 함께 몰이 사냥을 시작했다.

    괴물보다 빠르게, 집요하게, 교활하게 움직이는 로봇견이 총탄을 퍼부으면 또 다른 로봇견이 반대편에서 놈들을 압박한다.

    뒤처진 놈들은 내가 직접 처리하면서 놈들의 시체를 짓밟고 뛰어 나갔다.

    놈들이 제아무리 탁월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건물이나 벽을 타 넘는다고 한들, 실시간으로 주변 지형지물을 분석하고 최단거리 경로를 도출해 내는 인공지능 로봇견의 추적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 로봇견의 프로토타입인 도지의 인공지능 형성에 누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거냐?

    전술·전략이라면 질릴 정도로 달달 외우고 있는 내가 직접 데이터를 하나하나 채워 줬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적을 추적하고 말살할 수 있는지, 반대로 어떻게 하면 적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할 수 있는지, 응당 로봇견이 가져야 할 덕목을 모두 가르쳐 줬다.

    즉 이놈들은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움직이는 진짜배기 살인 기계들이라는 거다.

    나는 또 한 놈의 배후를 잡아 뒤통수에 구멍을 뚫어 주면서 말했다.

    “절대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한다, 당연한 ‘상식’이잖아?”

    그러니 부디 절대다수인 우리를 위해 너희가 희생해 다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