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77화 (17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4)

    USS 퍼니셔호는 힘차게 바다를 가로지르며 북진했다.

    정확히는 남해에서부터 연안을 따라 서해에 진입한 뒤, 단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미친 듯이 나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GPS의 도움을 받지 못해도 내륙 연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호수를 빙글빙글 도는 산책 같은 개념이니까.

    덕분에 USS 퍼니셔호가 기함으로 있는 신 기동함대는 어느 배도 낙오되는 일 없이 무사히 서해 인천항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관측 보고! 적 함상 포착! 부산항에서 모습을 감춘 대한민국 해군 기동함대로 추정!”

    바깥의 관측병으로부터 넘어온 보고를 함교의 오퍼레이터가 다시 큰 목소리로 전달해 준다.

    “당황하지 마라. 저쪽은 한강으로 진입하기 위해 이동에만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다. 전투 준비 따윈 되지 않았어!”

    이것은 USS 퍼니셔호의 함장으로서 확신하는 부분이기도 했으나, 이 모든 판을 설계한 박한성이라는 인물이 내어 준 정보에 부합하기도 했다.

    적들은 수많은 군함과 크고 작은 배들로 구성된 떠다니는 해상 도시를 서울 한복판(한강 중심지)에 들여놓을 속셈이다.

    그걸 위해서 좁은 한강에 순차적으로 배를 들여보내려 아주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진행 중일 테니, 바로 그 시점에서 USS 퍼니셔호가 이끄는 신기동함대가 기습 공격을 가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함장 예상과 박한성의 정보는 그대로 적중했고, 남은 것은 이제 무방비한 적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 주는 것뿐이다.

    “함 내의 모든 인원, 전투태세(battlestation)!”

    땡땡땡땡땡!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함내의 모든 스피커를 통해 전투태세를 알리는 상황이 전파되었다.

    지난 휴식기 동안 군함을 수리하는 한편, 새로운 인원을 보충해서 끝없이 훈련을 해 왔다. 한국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조국을 구할 수 있다는 박한성의 말을 믿었기에.

    “함포 조준 완료! GPS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협차사격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상관없다. 사통 장치를 이용해 최대한 빨리 탄착군을 보정하고 적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도록.”

    퉁! 퉁! 퉁!

    줌왈트급 구축함에 155mm 2문은 언뜻 군함치고 화력이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줌왈트급 구축함과 직접적으로 화력전을 벌인 상대가 없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미국에서 개발한 줌왈트급 전용 155mm 포탄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관통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스마트포탄 특성상 포격 범위 내에 가장 가까운 목표물이 있다면 자동으로 궤도를 수정, 접근해서 폭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해전에서 군함들이 힘겹게 협차사격을 만들어 냈던 것과 달리, 줌왈트급은 GPS의 도움 없이도 최소 세 발 정도의 사격이면 충분히 탄착군을 보정할 수 있었다.

    “유효타!”

    인천항 인근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는 적 군함 한 척이 해상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의 단련된 바다사나이(해군)들은 어렵지 않게 구시대식 함상포격에 금방 적응했으며, USS 퍼니셔호가 최초의 1척을 가라앉히기가 무섭게 자신들도 협차를 내기 시작했다.

    USS 퍼니셔호가 탄착 계산이 끝난 좌표를 다른 군함들에게 단거리 무선통신으로 쏴 주었기 때문이다.

    콰앙! 퉁퉁! 투하아앙!

    커다란 화물선 위에 자주포를 올려서 고정 포탑 형태로 개조한 드레드노트급 군함(현대 버전)이 일제사격을 토한다. 그럴 때마다 엄청난 포연과 포성이 칠흑 같은 바다를 가로지르고 또 한 척의 희생양을 바다 깊숙한 곳으로 처박았다.

    서해 바다는 물길이 거칠고 바람이 많이 분다. 동해만큼 물길이 깊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배 몇 척 정도는 손쉽게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적 함선에서 포격 확인!”

    “충격 대비!”

    “충격 대비!”

    만약 현대에서 해상 전투가 벌어진다면 치열한 수 싸움으로 상대와 미사일이나 어뢰를 주고받는 지루한 시간이나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설마 100년 전에나 벌어졌을 법한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드잡이질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온 포격은 다행히 줌왈트급에 명중하지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탄착군을 형성했다. 저쪽의 수병들도 숙련도가 높다면 금세 협차를 만들어 낼 것이다.

    ‘서해의 바다는 바람이 너무 거세고 하늘은 아직 어둡다. GPS는 간간이 신호가 들어올 듯 말 듯 하면서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먹통인 건 변함없다. 해상 공격 헬기를 띄우기는 아직 섣부른 판단이겠군.’

    줌왈트급 구축함은 해상 수송 헬기나 공격 헬기를 보유하고, 직접 이착륙 시킬 수도 있는 후미 갑판이 별도로 존재한다.

    마음 같아서는 오랫동안 입맛을 다셔 온 파일럿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명령을 하달했다.

    “함대 미속 전진! 적들에게 협차를 허용하지 말고 이쪽이 먼저 화력으로 뭉개야 한다! 수송 선단이 강습부대를 무사히 인천항에 내릴 수 있게끔 길을 터 줘라!”

    적들은 한강으로 진입하기 위해 대부분 영종도와 월미도 사이, 좁은 수로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USS 퍼니셔호가 이끄는 신기동함대와 수송 선단은 이미 영흥도를 지나 빠르게 연수구로 접근 중이다.

    적들 입장에선 신기동함대를 막지 못하면 인천항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것인데, 이제 와서 신기동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군함들을 회군시킨다고 한들 너무 늦었다.

    월미도와 영종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통해 한강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던 그들이 회군한다는 것은 함대 전체의 움직임이 꼬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피해만 더 늘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저들이 저토록 바쁘게 한강으로 침투하고 있었던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서울에서 들고일어난 박한성이 본격적으로 인천을 침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강의 중심지에 자리 잡아 서울 전체를 자신들의 영역하에 두기만 하면 어쨌든 자신들의 승리라 생각하고 있던 놈들이, 갑자기 인천 앞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기동함대에 의해 발목을 단단히 잡혔다.

    “적 군함 굉침을 확인!”

    바쁜 전투 상황 속에서도 들려오는 승전보는 존 함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게 했다.

    대비되지 않은 적들을 불시에 기습해서 완벽하게 괴멸시킨다. 군대가 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공훈 중 하나가 아닌가?

    비록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 줄 함대의 제독이나 그보다 더 높으신 사령부의 늙은이들, 나아가서 미합중국 대통령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일지라도.

    그 젊은 청년이 일말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줬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다.

    아주 작아서, 너무나도 초라해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불빛이라도 온 세상을 집어삼킨 어둠을 밝혀 줄 태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은 망설임 없이 거기에 걸어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적 함대 물러납니다!”

    “이미 앞바다에 가라앉은 배가 수척인 데다 좁은 수로에서 되돌아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항에 남아 있을 적들에게 함포 사격을 가한 뒤 수송 선단을 앞세워 강습부대를 내려라!”

    콰앙! 퉁! 퉁!

    구경이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함포나 전차포, 자주포들이 불을 뿜을 때마다 인천항의 거추장스러운 건축물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갔다.

    대규모 지상 병력이 상륙해야 할 지점에는 언제나 적이 숨어 있음을 가정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선제 포격으로 한번 청소를 해 주는 게 보편적이다.

    이 또한 100년 전에나 쓰였을 법한 구시대적인 상륙작전의 일환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USS 퍼니셔호의 함장인 존 해럴드는 약 80년 전에 미군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인천상륙작전을 다시 한 번 재현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오직 지상 병력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장갑을 떡칠한 수송 선단이 거침없이 바다를 가로지르고 나아가, 이미 쑥대밭이 된 인천항 앞에 차례차례 도달했다.

    장갑으로 떡칠된 도개교 같은 화물 갑판이 ‘쿵!’ 하고 육지와 바다를 이어 주자, 수송선 안에서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던 수만 명의 병력들이 육지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양산형 엑소스켈레톤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괴물들을 철저하게 찢어 죽이기 위해 수많은 연구원과 군인들이 고심해서 만든 흉흉한 무기들을 쥐고 있었다.

    예상대로 인천항에 바짝 붙은 수송 선단이 지상 병력을 토해 내자 인천항 안쪽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지상 병력과 수송 선단이 바짝 붙어 있는 상황에선 군함도 함포 지원을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데인저클로즈), 적들은 순수하게 지상 병력 간의 전투라면 자신들이 유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 결과는 참담했다.

    경상도에서 쌓인 것이 많았던 민간인들은 오갈 곳 없는 분노를 풀기 위해 기꺼이 예비군이 되었고, 공장에서 따끈따끈하게 찍어 낸 양산형 엑소스켈레톤과 무기를 장착했다.

    남해에서 서해를 거쳐 올라오며, 자신들이 빼앗긴 인천과 서울 땅을 다시 한 번 밟아 보겠노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합법적으로 살육 행위가 허가된 지금, 그들이 가리킨 수만 개의 총구는 역겨운 괴물들을 향하고 있었다. 방아쇠가 당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육지에 발을 내디딘 해병대 전우회가 용감하게 치고 나가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켰으며, 또한 효율적인 일점돌파로 적들의 방어 진형을 깨부쉈다.

    그 뒤를 따라 우르르 내린 양산형 중장갑보병대가 거침없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가 적들의 측면을 후려쳤다. 망치와 모루 작전 같은 겉멋만 가득 찬 계획은 필요 없었다.

    가장 먼저 치고 나온 사람이 가장 먼저 적을 깨부쉈고, 설령 아군이 당한다고 해도 빈 자리를 또 다른 아군이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쌓인 분노를 해소할 곳이 필요했고, 때마침 눈앞에 역겨운 샌드백이 존재하니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사이비에 심취한 괴물들이라니!

    정부가 지상에서 모습을 감춘 이래에 이토록 합법적으로 쳐 죽여도 무방할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던가?

    단언컨대 없다!

    자신들을 핍박했던 그 똥별들이야 죄다 처형시켜 버렸기 때문에 입맛만 다시고 있었건만, 마침 눈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어, 개새끼야!”

    “너희 같은 종자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이 개새끼들! 너희가 기동함대를 인천으로 끌고 가지만 않았어도!”

    “역겨운 새끼들! 죽어! 죽어!”

    힘과 힘이 맞부딪치면서 터져 나온 것은 피로 얼룩진 광기뿐이었다.

    사이비에 심취한 괴물들은 자신들의 터전이자 주인인 ‘흑천’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을 막아섰고, 이미 머리끝까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인간들은 합법적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적들을 향해 서슴없이 몸을 내던졌다.

    어느 사회학자가 이렇게 말했었다.

    현대 사회인들은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와 감정을 자신의 안에 담아 두고만 산다고.

    도덕성과 윤리, 법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족쇄와 입마개를 차고 있기 때문에 미개했던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정신병이 생기는 것이라고.

    현대 사회인들 중 상당수가 불면증이나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건 쌓이고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리면, 그때야말로 현대에서 암흑기의 중세 못지않은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과연 그 말대로였다.

    인천에 상륙한 병력들은 알량한 애국심 같은 걸 위해 몸을 내던지는 게 아니었다.

    개개인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본인이 먼저 만족한 다음에 국가를 위해 일해도 늦지 않다는 심정으로, 적에게 일말의 자비도 없이 총과 칼을 들이밀었다.

    인천항에서 번지기 시작한 이 자그마한 불길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인천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