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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76화 (176/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3)

    나는 김포공항을 완전히 점거한 뒤 시가전을 끝낸 B 팀과 함께 양천구에 진입해서 본대와 합류했다.

    중장갑보병들 사이에서도 엘리트 취급 받는 알파 대원들 중 몇몇이 불운하게도 숨지거나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선에서 끝난 자들은 후방 보급기지로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눈을 감아 버린 자들은 조금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나중에 전후 처리가 끝나고 나면 합동 장례식을 치른 뒤에 현충원에 묻힐 예정이었다.

    내 앞을 ‘드드드드드드드!’ 하고 큰 소음과 진동을 자아내며 움직이는 수십 톤짜리 금속 덩어리가 지나갔다.

    전차라는 이름이 붙은 저 육중한 금속 덩어리를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품들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그것도 동시에 움직여야 할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부품들이 마모되고 있을까?

    ‘전쟁도 똑같아.’

    모든 군인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마치 한 몸이라도 되는 양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쓰러지는 군인들은 저 전차의 마모되어 가는 부품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전쟁을 끝내려면, 새로운 부품이 마모된 부품을 대체하듯 쓰러진 군인의 자리에 새로운 군인이 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보고드립니다! 현재 강서구, 양천구 일대를 확보했으며, 본대 병력 일부가 남하하여 구로구를 점령할 예정입니다.”

    “남은 인원은 모두 부천시로 진입하고?”

    “그렇습니다! 또한 김포대교에서 한강 서쪽을 감시 중인 정찰조의 최신 보고에 따르면 쇄빙선과 군함을 필두로 한 적 해군 전력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대략 6시간 이내에 강서구 한강 둑에 진입할 것으로 추정되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아 서울 중심부까지 나아갈 것으로 사료된다고 합니다.”

    “놈들이 서울 중심부까지 들어올 일은 없어. 강서구에 진입할 즈음에 발목이 묶일 테니까.”

    정확히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될 거다.

    계속 한강 중심부로 밀고 들어가자니 후방이 터져 나갈 것이고, 후방으로 되돌아 나가자니 한강은 너무 좁은 데다 아직 빙판이 다 깨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쯤 인천항에 거의 다 접근했을 신기동함대를 떠올리며 전차에 탑승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이미 적들과 우리는 한 차례 교전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전투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느낀 바 있다! 놈들은 흩어져서 게릴라 작전을 펼칠수록 강하고, 우리는 뭉쳐서 일점돌파를 할수록 강하다! 그 장점을 살려서 놈들이 흩어질 틈을 주지 말고 단숨에 구석으로 몰아붙여서 전멸시켜라! 쓸모도 없는 개인의 전공에 목숨 걸지 말고, 전우와 함께 끝까지 살아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워라!”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 공훈 같은 것 따위보다 가족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군인은 전쟁 이후의 평화를 생각하며 싸워야 하는 법이다.

    이미 한 차례 교전에서 승기를 취한 군인들은 사기가 조금 높아졌는지, 여기저기서 주먹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나는 저들이 방심하거나 오만해지길 바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감 없이 겁에 질린 상태로 전쟁을 지속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뿐.

    전차 포탑 위에 거치된 기관총을 잡은 나는 해치 아래에 있는 전차장에게 전차 지휘를 계속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탑승하는 것으로 이 전차는 자연스럽게 선임 전차가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차는 그저 움직여야 할 곳으로 움직이고, 제거해야 할 목표를 제거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양천구 신월동을 주파한 기갑부대는 보병의 엄호를 받으며 부천시에 진입했다.

    실제 교전을 거치면서 기합이 팍 들어간 군인들은 수송 차량과 장갑차에서 신속히 내려, 부천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콘크리트 밀림을 경계했다.

    시가전은 방어하는 입장이든 공격하는 입장이든 똑같이 두려움을 느낀다.

    방어하는 입장은 언제 자신이 숨어 있는 건물 위로 포탄과 미사일이 쏟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반면, 공격하는 입장은 대체 어디서 적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심장을 보이지 않는 칼날로 푹푹 찔러 대면서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보면…….

    타타타타타타!

    “적이다! 매복이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뚝 끊어진다.

    “휴대용 엄폐물 가져와서 설치해! 휴대용 엄폐물이 없으면 폐차 뒤에 숨어!”

    “폭탄!”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터진 급조폭발물(IED)에 의해 도로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들이 하늘 위로 치솟고, 근처에 있던 군인들은 폭압과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산화했다.

    아마 놈들은 우리가 부천시 어느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든 매복이나 폭발물 함정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끔 설계해 뒀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놈들이 여객기에 폭약을 잔뜩 싣고 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쓴소리를 내뱉으면서 기관총의 총구를 건물 위로 돌렸다.

    투타타타타!

    12.7mm 구경의 강력한 K6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두꺼운 탄피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적들의 시체도 과수원의 잘 익은 열매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4시 방향 XX빌딩 12층에 적 발견!”

    “쏴! 제압사격 해서 놈이 대가리도 못 내밀게 해!”

    “개새끼들아, 공병들부터 엄호해 줘! 공병들이 건물 기둥에 폭약 설치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란 말이야!”

    “내부 제압이 힘든 건물 위주로 폭파시켜! 아군에 피해 없도록 폭약량과 건물 붕괴 범위 잘 계산해! 대충하는 새끼는 나한테 먼저 죽는다!”

    “엄폐! 엄폐! 개새끼야, 엄폐하라고! 대가리 내밀고 있다가 수박주스 만들지 말고!”

    “수류탄 투척!”

    총성과 비명, 폭음과 비명, 파육음과 비명.

    어떤 행동이 이어지면 그 뒤에 반드시 들려오는 것은 사람 아니면 괴물의 비명 소리였다.

    나는 청력 보호용 헤드셋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천지에서 들려오는 전장의 소음을 마냥 흘려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은 적들을 기관총으로 시원하게 갈아 버렸고, 때로는 전차장에게 직접 포격 지원을 요청해서 놈들의 주요 방어 거점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도 했다.

    비산하는 흙먼지와 돌가루,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누군가의 살점과 뼛조각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저 또 한 명의 군인이 죽었고, 또 한 마리의 괴물이 곧 내 손에 죽을 예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는 확인 절차일 뿐이었다.

    감수성이 메말랐다거나, 정신이 죽어 버렸다거나, 하다못해 미쳐 버린 것도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전쟁이 이런 것이라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렇게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켜 버린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전에, 더 많은 적들을 죽여야 한다.

    전장에서 아군보다 적들이 먼저 사라지고 나면 그만큼 슬퍼할 사람도 적어질 테니까.

    까아아아아앙!

    콘크리트로 겉을 감싼 강화 철근이 어디선가 날아들어 전차의 측면 장갑을 후려쳤다. 엄청난 충격에 수십 톤짜리 전차가 옆으로 기우뚱하고 넘어갈 뻔하다가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전차 옆에서 대응 사격을 하고 있던 군인 서넛이 순식간에 갈려 나갔으며, 전차의 무한궤도 한쪽이 이탈하고 측면 장갑이 크게 찢어졌다.

    순식간에 기동 불능 상태에 빠진 전차는 내부 서스펜션과 엔진에도 적잖은 데미지를 입었는지, 꽤 요란한 비상 알람을 내뿜었다.

    “전차 기동 불능! 충격으로 내부 부품 일부가 망가진 것 같지만 긴급 수리 후에 재가동하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탈한 궤도도 다시 맞춰야……!”

    “알았으니까 야전 수리가 가능한 공병부터 호출해! 가능하면 수동 조작으로 포탑만 움직여서 지원하는 것도 잊지 말고!”

    전차장의 다급한 보고를 건네받은 나는 그대로 대응책을 알려 준 뒤, 큐폴라에서 몸을 빼냈다.

    조금 전 거대한 강화 콘크리트 철근이 날아온 방향은 내 기준으로 10시 방향, 높이는 대략 50m 위였다.

    ‘고층 빌딩에서 커다란 철근을 들고 던질 정도면 분명 한눈에 들어왔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뜨고 야투경으로 빌딩들을 확인해 봤지만 좀처럼 눈에 띄는 적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야투경의 해상도로는 확인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저격’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기야 강화 콘크리트 철근을 던져서 일격에 전차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힘이 대단하다면 처음부터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겠지.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서, 느긋하게 폭격을 쏟아붓는 것처럼 던져 대고 있을 것이다.

    놈들도 전차 못지않은 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통감하면서, 나는 외골격 파츠의 내구도를 점검했다.

    다행히 격전을 거쳐 온 것치곤 상태가 멀쩡해서 부품을 교체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경기관총 전용 드럼 탄창을 몇 개 더 챙겨서 군낭에 쑤셔 박고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누군가의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진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을 거침없이 내달리자, 예상대로 지금까지 쥐 죽은 듯이 건물 속에 숨어 있던 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나 같은 요주의 인물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확인되면 나서게끔 설계된 척살 조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즉시 최진석을 비롯한 여러 지휘관급 인물들에게 무전을 날렸다. 절대로 단독행동을 하지 말고 부대원들과 함께 신중하게 움직이며 적들을 요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정작 그 말을 한 본인은 이렇게 단독행동을 하고 계시는 중이지만, 이게 원래 내 일이었다.

    가장 위험한 장소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서 아군에게 전달하는 일.

    중장갑수색대이자 브라보의 일원이었던 내가 매 작전마다 목숨을 걸고 해 왔던,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군과 열심히 교전 중인 작살꾼들과 다르게 어둠 속에서 스스스스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들은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우선 놈들은 작살꾼들처럼 비대한 체구나 기괴할 정도로 두꺼운 근육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극한의 유연성과 민첩함 그리고 은밀성을 추구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슬림한 체격을 자랑했다.

    ‘암살에 특화된 척살 조라. 흑연교가 날 상대하면서 배운 게 딱 하나 있기는 하군.’

    일전에 내가 인천항에 잠입해서 크게 들쑤신 덕분에 놈들은 단체가 아니라 ‘개인’을 상대하는 법을 열심히 강구했을 터.

    그 결과가 바로 저것이다.

    거미처럼 비정상적으로 팔다리가 길고, 네발짐승처럼 땅을 헤집듯이 뛰어다니는 괴물의 양산.

    일전에 기형적인 거미 형태의 나이트워치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놈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 봤자 눈이 따끔거리지만 않는다면 나이트워치의 하위 호환에 불과하다.

    쉬이이익!

    불시에 골목 틈새에서 치고 나온 긴 팔이 창처럼 찔러 들어왔지만, 나는 재빨리 앞으로 덤블링을 하며 품속에서 미리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을 던졌다.

    골목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 수류탄이 폭발을 일으키자 파편으로 사지가 분해된 시체가 나뒹굴었다.

    자세를 바로잡아 뛰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 창 같은 손을 피하다 보니 똥개처럼 미친 듯이 굴러야 했다. 물론 적들의 공격이 실패할수록 내 턴은 빠르게 돌아왔다.

    드르르르륵!

    한 손으로 경기관총을 들어 쏘면서, 다른 한 손으로 폐차의 문짝을 뜯어내서 방패처럼 들었다.

    내 복부를 노리고 날아든 손이 차량 문짝을 뚫지 못해 튕겨 나가고, 나는 팔이 뻗어 나온 방향으로 총탄을 퍼부어 주었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됐다 싶으면 귀신같이 건물 내부나 골목 틈새로 숨어 버렸지만, 놈들이 내게서 시선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없도록 계속 전진했다.

    강화 콘크리트 철근을 던진 놈을 향해 내가 접근할수록 급해지는 건 놈들이지 내가 아니니까.

    너희는 사냥하는 입장이 아니라 사냥당하는 입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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