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75화 (175/211)

딥 인사이드 아웃 (182)

“아아아아아아악! 내 팔! 파아아아아알!”

“메딕! 메딕!”

“전차 뭐 해, 씨발! 쏘라고! 건물에서 저격이 날아오잖아, 지금!”

양천구와 신정동과 영등포구의 문래동을 정확히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서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하늘 위로 치솟는 조명탄과 허공을 레이저처럼 가로지르는 예광탄 세례, 그 틈새를 파고드는 거대한 작살과 쇠뇌는 인간들의 광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장갑차나 전차가 도하를 위해 조금이라도 전진한다 싶으면 어디선가 날아든 콘크리트 덩어리나 통짜 철근이 난데없이 떨어져 내렸다.

운이 좋으면 대전차포탄이나 미사일에도 일부 방호 능력을 자랑하는 3.5세대 전차지만, 1톤을 가볍게 넘나드는 순수한 질량체를 얻어맞으면 내부 부품이나 시스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들어왔다.

특히 콘크리트 덩어리가 정확히 전차 포탑을 직격했을 때는 포탑링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면서, 일시적으로 포격과 적 포착 능력에 타격을 입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군부대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대한 건물과 기갑차량을 엄폐물 삼아 총과 박격포, 유탄발사기라는 효율적인 원거리 살상 무기를 적극 사용했다.

적들이 숨어 있을 것 같다 싶은 장소에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무전으로 일제사격 지원을 요청하면 족히 수백 발이 넘는 탄환이 단 1초 만에 집중되었다.

강이 얼어붙은 상태라 굳이 다리를 넘지 않고도 강을 건널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엄폐물 하나 없는 강 위를 알보병들에게 건너게 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해서, 작전 능력이 풍부한 예비군과 경찰들이 적절하게 현장 지휘관 노릇을 하며 강가를 따라 병력을 길게 분산 배치 시켰다. 그러다 어느 한쪽이 뚫릴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면 순식간에 쐐기처럼 파고드는 것이 노림수였다.

압도적인 성능의 장비와 물량을 자랑하는 군대와 달리,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괴물들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았다.

놈들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던지기만 해도 인간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지만, 목숨 걸고 전장에 나선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부상자는 후방으로 이송시켜! 전장에 부상자가 있으면 걸리적거린다!”

“거기 5소대 개새끼들아! 화력 집중시키라고! 집중! 저 괴물 새끼들이 겁대가리 없이 대놓고 철근 던지는 거 안 보이냐아아아!”

―여기는 도림천로 신정교에서 현재 교전 중인 7중대 오 상사입니다! 현재 적들이 교각을 해체하려는 듯한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포격 지원 요망……!

“쏴! 더 쏴! 저 새끼들이 다리에 손가락 하나 못 건드리게 해! 전차랑 장갑차 넘어가려면 다리는 무조건 살려야 돼!”

“최 중위님! 로봇견들은 아직 풀지 않는 겁니까?!”

“로봇견들은 우리가 양천구에 진입하면 시가전용으로 쓴다! 강을 건너기 전에 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더라!”

병장 계급의 남자가 후방에서 전투 대기 중인 로봇견을 아쉬운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다시 소총을 들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총알과 같은 속도로 날아드는 것은 정말 다양했다.

방탄헬멧을 착용한 인간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돌멩이부터, 아예 인간의 몸뚱어리를 꿰뚫고 벽에 꽂아 버리는 작살, 인간을 산산조각 분해시키는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까지.

이쪽이 총탄과 포탄을 쏟아붓는 만큼 저쪽에서도 넘쳐날 정도로 많은 건설자재를 미친 듯이 집어던지고 있었다. 이쪽이 포탄으로 건물을 무너뜨려 주면 좋다구나 하고 더 열심히 잔해를 집어던지는 미친놈들이었다.

“진짜, 씨발! 슈퍼 솔저도 아니고 왜 총을 맞고도 멀쩡하게 뛰어다니는데……!”

나름 군에 있을 적에 특등사수 취급을 받았던 그가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고속철갑탄에 꿰뚫린 상대가 피와 내장을 질질 흘리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진절머리가 났다.

놈들을 확실하게 쓰러뜨리려면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철저하게 걸레짝으로 만들던가, 아니면 강력한 폭발력으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날려 버려야 했다.

아마 지휘관 계급들이 차고 있는 권총 정도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 필시 자결용으로 지급된 것이리라.

병장은 자신이 적을 직접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움직임을 묶어서 전우들이 한 발이라도 더 많이 쏠 수 있게끔 유도했다.

집요하게 사이비 괴물의 다리를 쏴서 행동 불능 상태로 빠뜨리자, 놈의 위로 귀신같이 박격포탄이 떨어져 내리면서 육편과 흙먼지를 흩날렸다.

이따금 전차가 ‘투카아앙!’ 하고 발포한 포탄이 건물을 두들기면, 건물 안에 있던 놈들과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 대참사를 빚어냈다. 그 위로 재차 박격포탄이나 유탄이 떨어졌기 때문에 한 번 잔해에 파묻힌 놈들은 절대로 살아 나올 수 없었다.

“으악! 씨발!”

“뭐야, 왜 그…… 이런, 씹!”

자신의 옆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욕지기에 병장은 옆을 돌아보았다가 기겁했다.

자신의 옆에서 총을 쥔 자세 그대로 머리통이 작살에 꽂혀 뜯겨 나간 목 없는 시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대체 언제부터 옆에 있던 군인이 죽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 깜짝하면 수백 미터 거리를 뛰어넘고 날아든 작살이나 돌멩이에 맞아 이승 하직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오금이 저리다가도, 지금 놈들을 더 열심히 죽여 두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시가전에 돌입했을 때 고생하는 건 결국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사람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동물이다.

그렇게 해야만 1분 1초라도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기에, 전쟁통에서 미친 듯이 분출되는 아드레날린이 평범한 인간을 냉혹한 살인 기계로 바꾸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새끼들! ✕같은 새끼들! ✕같이 생겨서 더 ✕같은 새끼들!”

그놈의 나이트워커인지 나이트워치인지 하는 놈들을 상대할 때도 생리적인 혐오감과 본능적인 공포감이 앞섰는데, 하물며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명백히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는 저것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탄환 세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이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을 즐거운 노래라도 되는 양 듣고 있는 놈들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그러니 모두 죽여야 한다.

저것들을 죽여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버틸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오금교가 뚫렸다! 놈들을 더 압박해! 3대대와 26중대가 들어가서 자리 잡을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줘야 한다!”

현재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남쪽의 오금교에서부터 신정교, 오목교 그리고 목동교였다.

커다란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4개의 다리를 뺏고 뺏으려는 거대한 게임에서 지금 막 아군이 거점 하나를 손에 넣은 것이다.

오금교에서 밀고 올라온 병력이 신정교의 적들을 밀어내면 이번엔 신정교에서 합류한 병력들이 단숨에 오목교와 목동교까지 밀어 버릴 수 있었다.

임시 참호 뒤쪽에 앉아 있는 통신병이 바쁘게 무전 내용을 현장 지휘관에게 전달하는 한편, 현장 지휘관으부터 전해 받은 내용을 다시 타 부대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지원 요청과 포격 요청이 쇄도했는지, 지금 이곳이 전장 한복판인지 도떼기시장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어나! 우리 부대도 지원한다! 오금교에서 치고 올라오는 부대와 타이밍을 맞춰서 단숨에 신정교를 점거해야 해!”

현장 지휘관의 닦달에 꽤 오랫동안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군인들이 굳어 있던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전장의 공포와 압박감 때문에 혈관이 크게 수축되자 피가 통하지 않은 다리가 많이 뻣뻣했지만, 그만큼 심장 박동도 빨랐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가 전신을 돌았다.

군인이란 일어났으면 뛰어야 하고, 멈춰선다면 총을 쏴야 한다. 때로는 달리면서 총을 쏘거나, 멈춘 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것은 알보병이니, 결국 이들 중 누군가가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리를 점거하면서 로봇견도 투입한다! 놈들이 시가지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해! 다른 부대가 진입하기 쉽도록 철저하게 화력으로 밀어붙인다!”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베테랑 밀수범들이 선두에 서고, 이렇다 할만한 보호 장구가 없는 알보병들은 장갑차 뒤에 숨어 조금씩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피이이잉! 하고 날아든 작살이 장갑차의 측면 장갑을 세게 후려치면서 빗겨나가자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군인이 몇 명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이어지는 지휘관과 전우의 호통에 금세 일어서서 대열에 복귀했다.

전장에서 뛰든 숨든 멈추든 다 용납될 수 있지만 딱 하나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뒤처지는 것이다.

혼자 충격을 먹어서 털썩 주저앉거나, 부대와 동떨어진 채 낙오된다면 곧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럴 땐 뺨을 때리든 개머리판으로 턱주가리를 돌려 버리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복귀시켜야 한다. 군인이 마지막까지 있어야 할 곳은 부대 안이지 바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리 절반 넘었습니다. 오금교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병력들이 강둑 너머 육안으로 포착됩니다. 적들의 시선이 확실하게 분산됐습니다!”

“좋아, 로봇견 풀어!”

군인들의 뒤에서 졸졸 따라오고 있던 로봇견 10대가 능동 전투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붉은 경고등을 번쩍였다.

직후, 쏜살같이 튀어나간 로봇견들이 열 감지와 모션 감지 센서로 포착한 적들을 향해 탄환을 흩뿌렸다.

인간보다 빠르고 다양한 기동을 선보이는 로봇견이 시가지에 뛰어들자 적들도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작살로 맞추려 하니 인간보다 재빨라서 회피 기동으로 가볍게 피하는 건 기본이었고, 인간처럼 번거롭게 재장전이나 호흡을 가다듬기 위한 전투 휴식도 필요 없었다.

적이 포착되면 주변 지형 데이터를 토대로 능숙하게 움직였으며, 특유의 날렵한 기동과 뛰어난 오토터렛의 화력으로 적들의 허를 마구 찔러 댔다.

“진입! 진입해! 놈들이 전우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갚아 줘라!”

로봇견들이 복잡한 시가지 내부를 뛰어다니며 열심히 놈들을 구석으로 몰면, 군인과 밀수범들이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형태로 전술 교리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화력과 물량에서 압도하는 인간들이 놈들을 역으로 사냥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오금교와 신정교를 타고 넘어온 군부대가 확실하게 양천구 남부를 집어삼키자, 북부에 자리 잡고 있던 사이비 놈들의 움직임도 크게 둔해졌다.

갑자기 아래에서 치고 들어오는 적들을 막아야 하지, 눈앞에서 또 다른 적들이 다리를 건너오는 것도 막아야 하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뒤처지거나, 반대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흑천과 흑연을 위해 제 한 몸 불사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눈앞의 동료가 죽으면 바로 다음 차례에 자신이 빈자리를 메꾸는 식으로 군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양천구와 영등포구 사이에서 벌어진 1차 시가전은 양측 모두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며, 결국 인간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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