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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74화 (174/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1)

    “최 병장님. 예상대로 도심에서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버로드, 놈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겠나?”

    ―강서구 일대에 숨어 있던 놈들이라 규모가 제법 됩니다. 특히 신체 능력이 하나같이 뛰어난 놈들이라 어둠 속에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공항으로 집결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놈들에게 저격수의 존재가 들키면 안 된다. 우리가 먼저 시가전을 벌여서 시선을 끌 테니 오버로드는 전투가 시작되면 저격을 감행하도록.”

    ―라저.

    저 멀리서 ‘콰앙!’ 하고 공항 내부에서 폭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박한성이 이끄는 A 팀이 본격적인 공항 내부 소탕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최진석은 자신이 이끄는 B 팀 대원들을 훑어 보았다. 알파 대원들의 수가 부족해서 밀수 조직의 베테랑 인원들을 좀 빌려와서 머릿수를 채웠다. 괴물들과의 전투 경험은 오히려 알파 대원들보다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진석을 비롯한 알파 대원들 역시 밀릴 것은 없었다. 지독한 신체, 정신적 훈련을 통해 다양한 전술·전략과 전술 교리를 습득했고, 엑소스켈레톤은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을 만큼 능숙하게 다룬다.

    폭음과 총성이 고막을 찢을 듯이 덮쳐든다고 해서 패닉에 빠지는 애송이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항과의 거리 200. 이 이상 접근을 허용하면 우리가 넓은 대로에서 적들을 막게 됩니다. 적들이 시가지에 몸을 숨겨 버리면 이쪽이 불리합니다.

    “다들 들었지? 우린 좋든 싫든 시가전으로 놈들을 끌고 들어가야 한다. 박한성이 가져다준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수백 미터 거리에서도 작살을 던져서 사람을 꼬챙이 신세로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놈들이 시가지에 숨어서 편하게 저격하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만 손해다. 그러니까 다소 난잡하더라도 시가전으로 놈들의 장점을 단점으로 끌어내리고, 넓은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묶어서 전멸시킨다.”

    “포메이션은 어떻게 잡습니까?”

    “반드시 3인 1조 대형을 지켜라. 한 명이라도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면 즉시 뒤로 빠져서 다른 조와 합류해. 3인 1조를 지킬 수 없으면 절대로 앞서 나가지 마.”

    전투 시 방침을 정해 준 최진석은 방탄 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다른 이들과 달리 알파 대원들은 전용 헬멧에 달린 바이저가 야간투시경 역할을 대신한다.

    “오버로드의 지원을 받기 힘들 테니 최루탄은 쓰지 않는다. 폭발물 사용 시에는 적들에게 발각당할 것을 감안하더라도 반드시 크게 외쳐서 아군에게 주의를 줘라. 이제 움직여!”

    최진석이 가장 먼저 믿음직한 부하 둘을 데리고 앞장서서 달려 나가자, 다른 대원들 역시 3인 1조에 맞춰 시가지로 진입했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은 대체로 넓어서 일단 접근을 허용하면 공항 침투를 막을 수 없다. 이쪽이 총을 쏴서 저지하는 것보다 놈들이 무지성으로 돌격을 박아 버리면 금세 뚫릴 방어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라리 처음부터 시가지에서 놈들과 교전을 벌이는 게 A 팀의 후방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3조에서 보고! 적과 조우, 교전에 들어갑니다!

    다급한 보고와 함께 좌측 건물 틈새에서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금속 덩어리 군인들과 비정상적인 거구를 자랑하는 괴물들이 물리적으로 부딪쳤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구원을 찾을 수 있나니!”

    “그럼 그 어둠 속에서 뒈져라, 씨발 놈아!”

    트타타타타타타! 캉! 카앙! 끼이이이이이이!

    무수히 쏟아지는 탄피를 헤치고 나간 최진석은 두꺼운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고 화망을 돌파한 괴물과 맞닥뜨렸다.

    구멍이 송송 뚫린 콘크리트 덩어리를 내던진 괴물은 양손에 작살을 쥐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 왔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잡힌 두꺼운 작살은 덩치 큰 상어도 한 방에 꿰뚫어 죽일 것처럼 흉악했다.

    “너희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생물이다. 역시 죽어 마땅해.”

    박한성이 어째서 그토록 인천에 자리 잡은 사이비 놈들을 경계했는지, 최진석은 전장에서 놈들과 실제로 마주한 후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저런 건 생물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무차별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닥치는 대로 포식할 뿐인 종말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박한성이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라고 불렀던 것들은 단순히 인류 문명을 적대하는 놈들이었다면, 이것들은 온 세상을 도탄에 빠뜨리고도 남았다.

    교차하듯이 찔러 들어오는 작살을 주먹으로 후려쳐서 옆으로 튕겨 낸 최진석은 팔 아래로 경기관총의 총구를 들이밀었다.

    트타타타타타타!

    찰나의 순간에 수십 발이 넘는 탄환이 복부에 꽂혔지만 괴물은 검은 피를 울컥 토하면서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옆으로 빗겨 나간 작살을 힘으로 밀어붙여 최진석의 관자놀이에 꽂아 버릴 기세로 재차 팔을 휘둘렀다. 기계의 힘을 빌려 평범한 인간은 흉내 낼 수 없는 자세로 몸을 홱 젖히자 아슬아슬하게 작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깊게 밀어 넣었던 주먹을 회수하면서 몸을 회전시켜, 공격에 실패한 상대의 관자놀이를 향해 역으로 팔꿈치를 박았다.

    퍼걱!

    두터운 장갑 너머로도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신음을 흘리며 재빨리 허리춤의 대검을 뽑는다.

    상대가 뇌진탕 쇼크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작살을 찌르려 했기에, 한 번 더 몸을 회전시키면서 뽑아 든 대검을 목덜미에 쑤셔 넣었다.

    경동맥부터 경추까지 완벽하게 끊어진 상대가 정면으로 힘없이 고꾸라지자 뒤통수에 탄환을 몇 발 박아 주었다.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자신을 상대로 대범하게, 무식하게 육박전을 벌일 만큼 지독한 놈이었다. 이런 놈들이 서울 서부 지역부터 인천항까지 넓게 퍼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절로 소름이 돋았다.

    “놈이 우리 형제를 죽였다! 놈을 흑천께 바쳐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들려온 기괴한 외침과 함께 파공성을 자아내며 날아든 것은 커다란 작살이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긴 했지만, 두터운 정면 장갑이 작살에 긁히면서 통째로 뜯겨 나갔다. 조금만 더 늦게 몸을 틀었더라면 작살이 상체를 꿰뚫었으리라.

    “인정하지. 너흰 ✕같은 새끼들이 맞다.”

    한 손으로 든 경기관총으로 적당히 탄환을 흩뿌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파쇄수류탄을 꺼냈다.

    한 손으로 안전핀을 뽑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엑소스켈레톤의 강력한 힘은 그것을 가능케 해 주었다.

    놈들이 총성과 탄환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대략 2초를 샌 다음 수류탄을 하늘 높이 던졌다.

    지면으로 데구르르 굴러 들어간 수류탄은 신체 능력이 뛰어난 놈들이라면 충분히 보고 피하거나, 엄폐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하도록 공중폭발을 유도해야 한다. 애초에 그것이 사방에 파편을 흩뿌리는 파쇄수류탄의 적절한 사용 방법이기도 하다.

    꽈아아아앙!

    정확한 계산에 의해 허공에서 폭발한 수류탄은 어마어마한 파편을 흩뿌렸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놈들이 큰 피해를 입자 최진석이 재빨리 옆으로 빠져서 재장전을 했다.

    이때 그를 보조하고 있던 대원 두 명이 앞으로 나서서 다른 괴물들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했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에 얼마나 많은 탄피가 떨어졌을지, 또 얼마나 많은 괴물들을 처리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재장전을 끝마친 최진석은 전방에서 제압사격을 가하고 있던 대원의 어깨를 거칠게 두들겨서 뒤로 빠지게 했다.

    적들과의 교전 거리가 가까울수록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모두가 동시에 재장전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후방과 측면을 경계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

    최진석이 다시 선두로 나서자 두 대원이 자연스럽게 번갈아 가며 재장전을 하고, 무전기로 현장의 상황을 다른 조에게 전파했다.

    교전 중에도 끊임없이 아군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면 자칫 특정 인원들이 고립되거나, 반대로 전선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위험이 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실시간 전황만큼은 병사와 지휘관을 막론하고 모두가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곧 힘이니까.

    ―최 병장님 우측 조심하십시오.

    짤막한 무전과 함께 ‘터엉!’ 하는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오른쪽 골목에서 튀어나오려던 괴물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버렸다.

    오버로드라는 호칭을 달고 있는 알파 소속 저격수들은 모두 대물저격총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 방 한 방이 무서운 이들이었다. 최진석은 오른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걸음을 바삐 옮겼다.

    본래 중장갑타격대 대원 일부에게 대물저격총을 쥐여 준 목적이 러시아와 중국의 중장갑보병이 북한으로 남하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북한이 결단코 그들의 군 진입을 막으면서 직접 교전할 일은 없어졌지만, 대물저격총으로 무장한 저격수가 어지간한 장갑차보다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갑차는 대전차 장비로 조져 버리면 그만이지만, 저격수는 찾기도 힘들거니와, 알파 소속 오버로드의 저격 거리는 최소 2km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훈련받은 엘리트 저격수가 어둠 속에서 야간투시경을 쓴 채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조지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최소한 머리 위는 안전하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알파 대원들이 길을 열었다. 베테랑 밀수범들 역시 온갖 다양한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 괴물들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개중에는 대놓고 개조한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이도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추위는 참을 수 있어도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참을 수 없는지, 거대한 불덩어리로 전락한 괴물이 지면을 미친 듯이 뒹굴며 절규를 토해 냈다.

    이미 무력화된 적의 머리에 탄환을 박아 줄 만큼 상냥한 대원들은 없었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타들어 가며 고통받으라는 듯이 냉정하게 지나쳤다.

    거구를 이루고 있는 근육이 녹아내리고 뼈가 타들어 가면서 어느덧 절규가 잦아들면, 또 하나의 적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장의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알아서 울리는 모닝콜처럼.

    ―여기는 5조! 놈들이 대열을 갖춰서 일제 돌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의 화력만으로 놈들을 묶어 두기 힘들 것 같습니다!

    “폭발물의 사용을 허가한다. 남김없이 터뜨려.”

    ―예!

    잠시 후 저 멀리서 ‘콰가가가강!’ 하고 건물 한 채가 반쯤 무너져 내렸다. C4를 아낌없이 사용한 덕분에 건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기둥이 버티지 못하고 산사태처럼 비스듬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폭발과 건물 붕괴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괴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금세 5조와 합류한 다른 조들이 일제사격을 가해 놈들의 투지를 완전히 꺾어 버렸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가장 잔혹해지고 냉정해질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도주로를 차단하고 놈들을 한쪽으로 몰아넣어라. 불로 태우든 폭발시키든, 몸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든 철저하게 짓밟고 유린해라.”

    선택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최진석은 알파 대원이 역으로 작살을 이용해 괴물을 벽에 박은 다음, 밀수범의 화염방사기로 태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불타 죽는 너희가 마녀이자 괴물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의 발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는 놈의 머리통을 짓밟아 으깬 최진석은 차가운 밤공기에 뜨거운 숨결을 토해 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자신들이야말로 바로 승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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