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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73화 (173/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80)

    “플래시! 플래시 비춰!”

    “놈들은 빛에 약하다! 조명 아끼지 마!”

    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타!

    사람의 목소리와 괴물의 목소리 그리고 총성과 폭음이 끊이질 않는 어두컴컴한 전장에서 우리는 희생자를 딛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가 쓰러지면 곧바로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부상자는 스스로 움직일 여건이 된다면 타인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물러서야 했다.

    사상자와 전투 인원을 일일이 구분해 줄 만큼 전장은 상냥하지도, 배려심이 깊지도 않았다.

    오직 피의 투쟁만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것은 99%의 나약하고 쓸모없는 자와 1%의 운 없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숱한 전장을 거쳐 오면서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으니까.

    “어둠을 받아들여라! 복종하라! 순응하라! 동화하라!”

    “그 전에 네 아가리부터 닫는 게 더 빠르겠다, 씨발 새끼야!”

    부러진 작살 끝을 들고 코너에서 기습적으로 달려 나온 사이비 신도가 우락부락한 몸을 믿고 전신 태클을 걸어왔으나, 나는 가벼운 스텝으로 측면 회피를 한 뒤 놈의 빈 옆구리에 펀치를 먹였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뼈대가 튼튼해졌다고 한들 인간의 기본적인 급소 부위는 바뀌지 않는다. 전신이 돌처럼 단단한 격투기 선수나 헬스트레이너들도 똑같이 옆구리와 낭심, 턱주가리나 관자놀이가 약점이다.

    꽤 아프게 들어간 옆구리 펀치에 헛숨을 들이켠 상대는 그 비대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고꾸라졌다. 놈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종아리에 대검을 박아 넣자 익숙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괴물이든 아픈 곳을 찔리면 꼭 이런 비명을 흘리곤 했다.

    종아리에 박힌 대검 손잡이를 발로 걷어차서 순간적으로 상처를 찢듯이 벌리자 사이비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근육과 신경, 뼈가 한 번에 찢겨 나가는 고통은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겠지.

    일시적인 쇼크로 움직이지 못하는 놈의 뒤통수를 군홧발로 짓밟은 뒤, 심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등짝에 대고 경기관총을 사정없이 난사했다.

    가능하면 진득하게, 오랫동안 고통을 맛봐 줬으면 한다. 신경 세포가 하나하나 타들어 가는 느낌은 살아생전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귀한 경험일 테니까.

    나이트워커와 사이비 놈들의 궁극적인 차이는 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나이트워커는 반드시 머리를 파괴해야 죽는 반면, 이놈들은 극도의 치명상을 입히면 어떻게든 죽긴 죽는다.

    특히 흑연의 정수가 혈관을 쉴 새 없이 돌면서 이 돌연변이 같은 몸을 끝없이 활성화시켜 줘야 하는데, 심장이 펌프질을 멈추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흑연의 정수도 제 노릇을 다할 수 없다.

    그 결과로 보라, 심장이 터져 나간 사이비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대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고통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더 큰 고통이 다가올수록 죽음 또한 가까워지지만, 그것이 결코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아주 천천히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잠들듯이 죽는 것이다.

    더러운 종자 하나를 또 처리한 나는 근처의 보급병이 내던진 드럼 탄창을 재주 좋게 받아 들었다.

    텅 비어 버린 경기관총에 새로운 드럼 탄창을 끼워 넣자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놈들이 게이트를 막고 있습니다!”

    “유탄 사수 뭐 해, 씨발 놈아! 빨리 쏴!”

    내가 걸쭉한 욕설을 퍼붓기가 무섭게 한 알파 대원이 전방을 향해 40mm 고폭유탄을 쐈다.

    퉁 하고 가벼운 소음을 자아내며 날아간 고폭유탄은 게이트를 막고 있던 놈들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활주로로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급하게 움직일수록 손해였다. 그것이 적들이 노리는 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스! 가스! 가스!”

    퉁! 퉁! 퉁!

    박살 난 게이트 너머로 최루탄을 몇 개 까 넣은 다음 방독면을 착용하고 재차 진입한다.

    놈들은 그 흔한 방독면 하나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터진 최루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밤눈이 밝아져도 연막으로 가려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유리한 건 이쪽이었다.

    순식간에 소음을 줄인 우리는 열화상감지기를 통해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면서 신중하게 움직였다.

    적들이 갑작스러운 최루탄에 눈물과 콧물을 짜내며 허둥대는 사이, 연막 한복판으로 들어온 우리는 놈들을 각개격파하기 시작했다.

    타타타! 타타타타타타!

    아직도 무기를 들고 있을 만큼 정신력이 강한 놈에게는 먼저 탄환 세례를 흩뿌려 주었고, 무기까지 손에서 놓치고 어떻게든 최루가스로부터 벗어나려는 놈은 몸으로 직접 제압했다.

    푹! 푸시이이이이!

    적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려는 놈의 배후에서 목을 휘어 감은 뒤 어깻죽지 사이로 대검을 깊이 쑤셔 넣고 후벼 팠다.

    주요 혈관과 힘줄, 근육과 뼈에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어서 배후 기습 시에 목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찌르는 부위다.

    어설프게 옆구리나 등 같은 걸 베었다간 상대가 뒤돌아 반격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저항 의지를 짓밟아야 한다.

    “컥! 그르르…… 으윽!”

    “세계 평화를 위해 너 한 몸 희생한다고 생각해. 그럼 너 같은 암 덩어리 새끼도 이 세상을 위해 조금은 기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겠어?”

    후욱, 후욱, 후욱.

    방독면 너머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또 하나의 암 덩어리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나니 어느덧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이 사라졌다.

    솜씨 좋은 알파 대원들이 최루탄에 당황한 놈들을 순식간에 화력으로 쓸어버린 것이다.

    “활주로에 정지 중인 비행기의 화물칸이 닫히고 있습니다!”

    “세 대 중 두 대는 아직 준비가 덜 됐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한 대는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 같습니다!”

    “씨발! 보급병! M72!”

    “그게 무슨…… 아!”

    “빨리 줘, 씨발 놈아!”

    보급병이 한 손으로 가볍게 등에서 뽑아 던져 준 M72 LAW(Light Anti-armor Weapon)를 받아 들고 활주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실질적인 대전차(장갑) 화기 중에서 박격포보다 구경이 작은 LAW는 실관통력이 200mm도 간당간당한 수준이라 집채만 한 여객기에 치명타를 입히려면 최대한 접근해야 했다.

    단순히 동체를 맞췄다고 해서 여객기의 이륙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종석과 엔진, 날개만 멀쩡하다면 동체에 구멍이 뚫려서 연료를 뚝뚝 흘리더라도 서울 생존자 거점에 갖다 꼬라박기엔 충분하다. 아예 처음부터 날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일에 대비해서 고층 빌딩마다 대공포를 비롯한 대공 장비를 배치시켜 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여객기의 거체를 추락시킬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대공포로 걸레짝을 만든다고 해도 순수한 질량으로 갖다 박는 게 비행기 테러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아예 대공미사일로 공중분해를 시켜 버린다면 또 모를까, GPS가 먹통인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늦지 마라, 늦지 마라, 늦지 마라!’

    다른 비행기의 제압은 알파 대원들에게 맡겨 둔 채, 나는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활주로를 가로질러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따라잡았다.

    비행기를 움직이고 있는 놈들도 꽤나 급했는지 주유를 하던 도중에 주유기를 끊어 버리고 이륙할 지경이었다.

    63빌딩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이 여객기를 멈추려면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야 한다. 그냥 치명적인 타격으로는 부족하다.

    ‘어디를 노려야 이륙이 불가능하지? 날개? 엔진? 조종석?’

    조종석을 폭파시키면 확실하게 이륙을 막을 수 있지만, 비행기가 아슬아슬한 속도로 나를 앞질러 버렸기 때문에 불가능해졌다.

    남은 건 날개와 엔진뿐이다.

    ‘아니, 하나 더 있잖아.’

    이제 막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랜딩기어가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날개나 엔진보다 훨씬 더 맞추기 까다롭지만, 일단 랜딩기어를 맞추기만 하면 충분한 부양력을 얻지 못한 여객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륙할 수 없다.

    랜딩기어다. 랜딩기어를 박살 내야 한다.

    여객기가 더 빨리 움직이기 전에, 아차 하는 순간에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 전에.

    “후우! 후우! 후우!”

    심장이 1초에 몇 번이나 뛰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긴장감과 압박감이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여기서 내가 실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잃게 되지?

    “…….”

    고민할 필요 없다.

    난 강하고 유능하고 쓸모 있는 놈이다. 거기에 지독할 정도로 운이 좋아서 언제나 최후의 최후까지 홀로 살아남았다.

    나의 부족한 1%를 채워 주고 있는 운을 믿자.

    투하아아앙!

    어깨 위에서 발포된 M72 LAW 탄두가 차가운 공기를 가로지르며 앞서나가고 있던 여객기를 타깃으로 삼았다.

    조금 낮게 파고 들어간 66mm 탄두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지탱해 주고 있던 전방 랜딩기어의 축을 정확히 때려 맞췄다.

    퍼어어엉! 그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

    랜딩기어라는 거대한 축을 잃어버린 여객기는 끝내 하늘 위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주둥이부터 지면에 처박으며 미끄러지다가, 높은 마찰열과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동체가 부러졌다.

    콰아아아아앙!

    동체가 부러진 비행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어둠을 밝힐 만큼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꽤 먼 곳에서 일어난 폭발이었음에도 뜨거운 열풍이 여기까지 도달하는 걸 보니 여객기 내부에 폭약을 잔뜩 적재해 둔 것 같았다.

    비행기의 순수한 질량으로 생존자 거점을 완전히 파괴하기 힘들 것 같으니 폭약을 대량으로 채워 넣은 게 분명했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새끼들이네.”

    다행히 먼저 이륙할 뻔했던 앞의 여객기와는 달리, 두 번째와 세 번째 여객기는 이륙 준비를 제때 끝마치지 못해 알파 대원들의 내부 진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불빛 한점 없는 여객기 두 대에서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번쩍번쩍 총염이 새어 나왔다.

    대테러 부대 훈련에서 여객기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훈련 무대 중 하나다.

    하지만 알파 대원들은 무식할 정도로 기백이 담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두터운 군용 엑소스켈레톤의 성능 또한 대단했기 때문에 진압 작전은 한층 더 순조로워 보였다.

    내가 터덜터덜 활주로를 걸어 돌아올 즈음엔, 이미 내부 진압을 끝낸 알파 대원들이 여객기 밖으로 사이비들의 시체를 내던지고 있었다.

    놈들이 작정하고 자폭을 해 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폭약이 화물칸에 적재되기 전에 급습했는지라 자폭의 위험은 없었다고 한다.

    “후우, 씨발. 공항 내부 정리는 이걸로 끝났나?”

    “일단은 바깥의 오버로드도 공항 내부의 불온한 움직임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추가 수색조를 편성해서 공항 내부를 샅샅이 수색해 보겠습니다.”

    “B 팀은?”

    “예상했던 대로 외부에서 공항을 에워싸려 했던 놈들을 발견하고 저희와 비슷한 시간에 교전을 시작했는데, 지금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간다는 모양입니다.”

    “인원 파악해서 사상자와 실종자 확인하고 재정비해. 여객기는…… 격납고에 다시 집어넣어. 본대에 연락해서 이곳에 주둔 병력을 두고 공항을 지키게 한다.”

    “여객기를 파괴하지 않는 겁니까?”

    “……나중에 쓸 데가 있어. 원래는 평택 미군 기지에 있을 군용 수송기를 빌리기로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건 미군이 이미 썼거나 처분했을 것 같더라고. 이 귀중한 전략 자산을 아깝게 날려 버릴 수는 없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적 군함이 이 공항으로 무차별 포격을 가한다면…….”

    “너무 늦었어. 이곳에 있는 놈들의 병력은 다 죽었고, 우리가 이곳에 남아 있는지 계속 주둔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마당에 이제 와서 뒤늦게 힘을 낭비할 리가 없어. 그리고 유사시 북한의 선제 타격과 자연재해에 대비가 된 공항 대피소라면 포격 정도는 무난하게 버틸 수 있어.”

    GPS를 활용할 수 없는 건 놈들도 마찬가지.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여객기를 도로 격납고에 넣어 버리고 경계 병력을 공항 대피소에 주둔시켜 둔다면 문제없을 것이다.

    “공항 내부 정리 및 인원 파악과 재정비를 끝내기까지 1시간 주겠다. 움직여!”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고, 전략과 전술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휙휙 바뀌기 마련이다.

    나는 본대와의 합류를 대략 3시간 뒤로 상정해 두고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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