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72화 (172/211)

딥 인사이드 아웃 (179)

“빛을 갈구하는 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받들어 모시듯 하고 있는 흑연교의 대모(大母)가 바닥을 기듯이 나와 말했다.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흑연의 정수를 음미하고 있던 남자는 이윽고 텅 비어 버린 앰플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고운 모래처럼 미세한 입자로 분해했다.

“끝내 놈을 처리하지 못했구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흑천(黑天)이시여. 저희들이 미흡한 탓에 거짓된 낙원을 통째로 파괴한다는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 끝내 그자를 막지 못하였나이다.”

“되었다. 흑연교의 비원을 무려 단신으로 3년이나 늦춘 놈이다. 비록 빛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열등한 종자이기는 하나, 결국 흑천 아래에서 바스러질 터. 신도들은 준비되었느냐?”

“모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명령만 내리신다면 즉시 저 불순한 이단아들을 처단하고 벌할 것입니다.”

“그리하라.”

흑연교의 교주가 손을 휘휘 내저어 미세한 입자 형태의 유리 가루를 흩뿌리자 대모는 바닥을 기는 상태로 조용히 물러났다.

교단 내에서도 교주를 직접 알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핵심 권력자 중 한 명인 대모는 곧장 독도함의 갑판으로 걸어 나왔다.

독도함은 인천항에 자리 잡은 대형 선단의 최중심지이자, 머지않아 한강의 얇은 빙판과 대교를 쳐부수고 들어갈 위대한 방주였다.

이미 쇄빙선을 필두로 한 몇몇 군함과 신도들을 태운 배가 한강으로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마침내 방주가 서울 한복판(한강)에 자리 잡는 그날, 자신들은 모든 흑연의 정수를 집어삼키고 영원불멸할 낙원의 주민들이 되리라.

그때, 거대한 철근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얼굴을 가리는 검은 면사포를 쓰고서 그녀 앞에 나타났다.

“대모님, 저 불경한 이단 놈들이 영등포구에 집결했다는 정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양천구에 배치해 둔 저희 신도들은 이미 오랫동안 참아 온 분노의 칼날을 갈고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성전을 허가하셨습니까?”

“허가하셨다.”

대모의 짧지만 확고부동한 한마디에 거구의 남자는 기쁘다는 듯이 근육을 꿈틀거렸다. 그가 들고 있는 철근은 다른 신도들이 가지고 다니는 작살 같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종자들입니다. 순순히 흑연을 받아들이고 어둠 속에서 평화와 안녕을 찾았으면 되었을 것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빛을 갈구하며 발버둥 치는 꼴이라니.”

“본래 3년 전에 이미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대역죄인이 그것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아아, 알고 있습니다. 빛을 갈구하는 자. 신성한 17개의 구멍을 죄다 닫아 버린 가증스러운 놈!”

“그래. 그자 때문에 우리는 국내에서 간간이 터져 나오는 구멍을 통해서만 흑연의 정수를 모아야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대모는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을 정돈하지도 않고 수많은 신자들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인천항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용맹하게 이단을 물리치고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섰을 때를 상상해 보아라. 그곳에 있는 모든 흑연의 정수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것이다. 오직 우리만이 가질 수 있고, 우리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인간의 범주에서 적잖이 벗어난 광신도들이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작살과 칼날을 높이 쳐들었다.

처음에는 물경 수백만에 달했던 사람들을 거름망으로 걸러내고, 흑연의 정수로 정제해서, 최고 정예의 신자들로 키워 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이곳에 어둠과 추위를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자는 없으며,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져 버리는 나약한 자 또한 없다.

한 명이 곧 군단이요, 군단이 곧 한 명이다.

흑천이 지배하는 낙원의 마지막 자손들이요, 우주의 모든 빛이 사그라들 때까지 살아남을 선택받은 자들이라.

대모는 양팔을 활짝 펼치며 형제 자매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흑천께서 성전을 허가하셨다!”

가라, 가서 이단을 찢어발기고 그들의 피륙과 공포를 집어삼켜라.

그들이 끝끝내 어둠 속으로 들어와 자신들과 동화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어라.

먹이사슬의 새로운 정점이 누구인지 만천하에 똑똑히 알려 주도록 하라!

“진군하라.”

흑연에 취한 광신도들이 동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    *    *

―여기는 오버로드 1. 배치 완료. 언제든지 발포 가능하다.

“대기하라.”

영등포 외곽에서 양천구로 곧장 이어지는 염창교를 건너온 우리는 현재 무사히 강서구에 우회 진입한 상태였다.

다만 가양동을 통해 곧바로 마곡동으로 진입하는 것은 곧바로 적들의 감시 체계에 포착당할 우려가 있어,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화동을 통해 위에서부터 치고 내려가기로 했다.

방화역에서부터 개화산역을 따라 쭉 남하한 우리는 중간에 차량에서 내려 도보로 움직였다. 놈들의 영역으로 들어온 시점에서 차량을 운행하는 건 대놓고 우릴 잡아 주세요, 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꽤 멀리서 망원경으로 살펴본 김포공항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소음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놈들이 비행기를 꺼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알파 대원에 추측에 나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 말대로 놈들이 공항에서 벌이고 있는 짓거리가 뭔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까. 지금까지 열심히 보수 작업을 해 왔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테러를 위해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거겠지.

“A팀이 우선 진입하고 B팀이 사주 경계를 맡는다. 저격수는 A팀이 작전 구역에 진입한 순간부터 발포를 허가한다.”

―확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포로는 없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늙은이든, 심지어 부상자나 병자라고 해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No Mercy.

지금이 아직 낭만과 인의가 살아 있는 시대였다면 모를까, 국제법은커녕 국가라는 개념마저 사라진 지금은 더 이상 웃기지도 않은 온갖 전쟁 협약에 따라 줄 의무가 없다.

제네바 협약은 이미 오래전에 뒈져 버린 것이다.

―전방에 순찰대 포착.

“이쪽에서 처리하겠다.”

내가 먼저 움직이자 뒤이어 알파 대원 1개 중대가 나를 따라나섰다. 나머지 1개 중대는 최진석 병장이 이끌고 있다.

한국군 편제에 따르면 중장갑보병은 최소 단위가 소대로 시작하는데, 중장갑보병 1개 중대를 일반 보병 1개 대대와 맞먹는 전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평범한 중장갑보병이 아닌, 악명높은 중장갑타격대였기 때문에 그 궤를 달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붙어. 놈들이 신호등을 지나칠 때 발포한다.”

2m에 가까운 거구로 커다란 작살과 피 묻은 정육도를 들고 다니는 광신도 순찰대가 저들끼리 무어라고 떠들어 대며 신호등을 넘어간 순간, 거의 동시에 발포된 초고속철갑탄이 놈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파파파파!

소음기를 뚫고 터져 나온 총성이 놈들의 고막에 닿기도 전에 탄환은 이미 두꺼운 두개골을 깨부수고, 질척거리는 뇌를 헤집으면서 반대편으로 뚫고 나간 지 오래였다.

“탱고 다운. 놈들이 공항 내부에서 작업하는 소음 덕분에 총성이 어느 정도 묻혀서 다행이군.”

철컹철컹, 순식간에 접근한 알파 대원들이 맨홀 뚜껑을 잡아 열어서 사체를 하수구로 던져 넣었다.

뒷처리를 끝낸 우리는 길게 이어진 도로를 빠르게 가로질러 공항으로 접근했다. 놈들을 상대로 어둠은 우리의 장막이 되어 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잽싸게 움직여야 했다.

―공항 내부에서 다수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현재 놈들이 여객기 3대에 급유를 진행 중이며, 폭약으로 추정되는 것을 화물칸에 싣고 있습니다.

저격수의 보고에 나는 수신호로 진입 명령을 전달했다.

바깥에 대기 중인 B팀은 혹시라도 도심 속에 모습을 감춘 채 우리가 공항으로 진입했을 때 기습적으로 포위해 올 적들을 경계했다.

“플래시뱅!”

공항 내부에 섬광탄을 몇 발 까 던지자 찰나의 순간에 엄청난 섬광과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인간보다 오감이 크게 증폭된 사이비 놈들은 갑작스러운 빛과 폭음에 정신을 못 차렸다. 일부는 괴성을 내지르며 작살을 들고 주변을 박살 내면서 난동을 부렸지만, 자비 없이 총탄이 박힐 뿐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놈들과의 근거리 교전 거리를 최소 10m 이상으로 상정해 두었기 때문에 멍청하게 당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입! 진입!”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A팀의 다른 소대가 엑소스켈레톤의 파워로 유리창을 깨부수며 출입구와 동시 진입을 강행하자, 적들은 순식간에 앞과 뒤를 잡혔다.

“오인사격에 주의! 쓰러진 놈은 확실하게 확인 사살해!”

파파파파! 탕! 탕!

연달아 터져 나오는 총성 속에서 사이비 놈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비정상적으로 강대해진 육체를 믿고 작살을 던지거나, 직접 달려드는 것이었다.

직접 달려드는 놈들은 무리해서라도 경기관총이나 산탄총으로 아예 벌집을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작살을 던지는 놈은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까앙! 콰직!

“으윽?!”

불시에 어둠 속에서 날아든 작살 하나가 알파 대원의 두꺼운 군용 엑소스켈레톤 장갑을 단번에 박살 내며 기능 손상을 일으켰다.

기능 손상이 일어난 정도라면 차라리 다행이지, 운 나쁘게 장갑이 얇은 부위에 작살이 꽂히면 얄짤 없이 치명상으로 이어졌다.

“으아아아아아! 내 팔!”

“메딕!”

“계속 쏴! 저항 못 하게 화력으로 밀어붙여!”

1개 중대가 거의 동시에 강행 진입을 시도하면서 놈들로부터 선공권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었건만, 지독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놈들은 아득바득 무거운 물건이나 작살을 집어던져 댔다.

아예 포화를 뚫고 들어와 육탄전을 시도하는 놈까지 있었다.

“이런 개새끼가!”

물론 알파 대원들이 보유한 군용 엑소스켈레톤은 출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에, 총탄에 걸레짝이 된 놈이 달려든다고 한들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놈의 팔을 역으로 붙잡아 꺾어 버리고, 두꺼운 다리로 정강이를 걷어차서 무릎 꿇린 뒤 주먹으로 머리통을 내려쳐 수박처럼 깨부쉈다.

질척거리는 검은 피가 튀어 오르고,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질 때마다 우리는 다음에 죽여야 할 대상을 찾고, 장전된 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야 했다.

“부상자는 뒤로 빠져서 B팀과 합류하고, 남은 인원은 계속 들어간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지 않은 내가 외골격 파츠의 힘으로 놈들이 닫아 버린 게이트 문을 박살 내며 외쳤다.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건만, 우리는 벌써부터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긴 복도 너머로 ‘후우웅!’ 하고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작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면서, 경기관총을 한 손으로 들어 대응 사격을 진하게 퍼부어 주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다 잡아 죽여!”

콰앙!

천장의 합판을 뚫고 기습적으로 떨어져 내린 놈의 머리통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바닥에 메다꽂았다.

발버둥 치는 놈의 목덜미를 생선처럼 콱 짓누른 뒤, 대검을 뽑아 눈구멍에 박아 넣어 주었다. 그러고도 발버둥을 멈추지 않는 놈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인정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이 개새끼야!”

드다다다다다다다다!

이건 너희가 초래하고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다.

어느 한쪽이 끝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전쟁이지.

그러니 부디 죽어 다오.

너희의 시체를 산처럼 쌓아 올리고, 너희에게서 흘러내린 검은 피로 이 메마른 대지를 적셔서 우리의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축하하고 싶으니.

부디 새로운 시대의 산 제물이 되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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