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69화 (16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76)

    전쟁, 전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어느 유명한 게임 속 주인공이 말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전쟁이란 결국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집어삼키고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사람 한 명을 죽이는 데 필요한 건 총알 한 발. 사람 한 명이 줄어들면 사람 한 명이 지키고 있던 땅을 차지할 수 있고, 그 땅으로 비집고 들어가 또 다른 사람들을 총알로 죽인다.

    때론 포탄 한 발을 쏴서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죽이기도 하고, 독가스를 흩뿌려 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들어오는 이득이다.

    마치 게임에서 승리할 때마다 1포인트를 가져오는 것처럼, 전장에 선 인간들도 포인트에 불과하다.

    많이 빼앗기면 패배, 많이 빼앗으면 승리. 너무나도 심플해서 종종 포인트를 굴릴 권한이 있는 높으신 분들은 이런 착각을 해 버린다.

    ―어차피 국가의 재정과 인구 현황 및 소집령에 따라 포인트는 금방 복구되니까 좀 더 과감하게, 막 써도 되는 게 아닐까?

    도박에 성공해서 많은 포인트를 따 오면 진급과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으며, 설령 도박에 실패한다고 해도 잃어버린 포인트는 국가가 알아서 복구해 준다.

    언제까지? 국가가 파탄 나거나 항복하기 전까지. 혹은 적대국이 먼저 파탄 나거나 항복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전쟁은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유일무이한 인간 도축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우리도 지상으로 진출할 준비를 해야죠.”

    나와 여동생이 가장 먼저 차도식파 본거지에 방문해서 꺼낸 첫마디였다.

    “동생,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긴 한데…… 우린 지금도 충분히 지상에 진출한 상태 아니었어? 그 뭐냐, 반포동에 대규모 거주 구역이랑 지하철역까지 확보했잖아. 원전이랑 정수 처리 시설도 손에 넣었고.”

    “그게 얼마나 갈 것 같은데요?”

    “어, 우리가 잘 지키면…… 꽤 오래가지 않을까?”

    “1년도 못 가요.”

    나는 지저 도시로 복귀하기 전에 지상에서 서울 곳곳을 촬영한 기록물을 차도식에게 보여 주었다.

    주기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검은 비는 이윽고 한데 모여 타르 덩어리가 되고, 그 타르 덩어리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서울 곳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놈들이 주로 뒤지는 장소는 건물 지하, 혹은 지하철 내부였다. 아예 하수구나 싱크홀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놈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 타르 덩어리 같은 놈들이 뭔가에 정신이 팔려서 서울 밑바닥으로 파고들고 있지만, 점점 그 수가 불어나겠죠.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요? 하늘이 검게 물드는 게 아니라 서울 전체가 검게 물들 정도로 놈들이 떨어진다면?”

    “…….”

    “지상에서 민간인 거주 구역을 관리하고 있는 최진석에게 검은 비가 내리는 주기를 보고 받았어요. 하루에 한 번은 꼭 내린다더군요. 그리고 검은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대략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타르 덩어리들이 만들어지고, 놈들은 또 두더지처럼 미친 듯이 땅굴을 파헤치거나 아래로 향하고 있어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1년도 채 되지 않아 놈들이 서울 전체를 뒤덮겠죠. 우리가 확보한 모든 걸 잃기엔 충분한 시간이에요.”

    “확실히…… 우리가 확보한 거점에 접근하는 놈들만 적당히 처리하다 보니 이런 사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어. 어쩐지 놈들이 거리를 배회하다 말고 모습을 감춘다 싶더니만.”

    나는 왜 놈들이 서울에만 집중적으로 몰리는지, 또 어째서 서울의 지하로 파고들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동족들과 나눠 먹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태양 빛. 언젠가는 그 태양조차 완전히 사그라들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을 놈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영원불멸할 무한 동력 기관의 에너지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반영구적인 무한 동력 기관.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 온 인공적인 동력원이다. 에너지에 미친 저들이 어찌 군침을 흘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저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동생. 우린 숫자도 적고, 화력도 부족해. 애초에 하늘을 검게 물들일 정도로 많다면 승산은 없는 거 아냐?”

    “전 타르 덩어리들과 싸우자고 한 적 없는데요. 놈들을 처리할 방법은 따로 있어요. 제 머릿속에.”

    내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타르 덩어리를 처리하기에 앞서 선행 과제가 남아 있다.

    “일단 타르 덩어리를 처리할 수 있는 계획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놀랍지만, 전혀 다른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놀랍네. 우리가 본격적으로 지상에 진출해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데?”

    “생존자들의 통합, 나아가서 우리 같은 생존자 집단과 적대하는 세력의 말살. 지금 지상에 있는 적대 세력이라고 하면 딱 하나밖에 없죠?”

    차도식도 롯데호텔에서 벌어진 흑연교와의 전투를 보고받았을 테니 흑연교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을 터.

    더불어 그의 충직한 오른팔인 김명호가 내게서 직접 제공받은 정보를 꾸준히 차도식에게 전달해 주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흑연교…… 그 사이비 놈들 말하는 거지? 우리 애들이랑 종종 부딪친다고 보고를 받긴 했어.”

    “지금까지야 부딪치는 선에서 끝났죠. 하지만 조만간 서울에 자리 잡은 우릴 밀어내고 저 타르 덩어리에 더러운 욕망을 숨김없이 표출할걸요.”

    “메스꺼우니까 필터 거쳐서 말해.”

    여동생이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인천에 잠깐 잠입했었던 제가 장담하는 건데, 사이비 놈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정수니 뭐니 하는 것에 미쳐서 인간이길 포기하고, 나이트워커처럼 추위와 어둠 속을 배회하면서 먹잇감을 찾고 있거든요. 그런 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결국 서울을 완전히 집어삼키면? 게임 끝나는 거죠. 인간의 시대는 끝나고, 괴물들만 남는 거예요.”

    “으음…….”

    타르 덩어리들이 지금껏 서울 곳곳에 숨어 있던 인간들을 발견할 때마다 가차 없이 죽여 버린 건, 순전히 지하로 파고드는 과정에서 숨어 있던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놈들은 우리와 심각하게 패권을 다투지 않는데, 그 또한 귀찮게 인간을 상대하는 것보다 무한 동력 기관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놈들이 작정하고 인간을 말살하려 든다면, 우리는 아무리 많은 군대와 강력한 현대 화기를 준비해도 당해 내지 못하고 몰살당할 것이다.

    하늘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검은 비와, 어지간한 총화기로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타르 덩어리 군단이 밑도 끝도 없이 몰려든다고 상상해 보라.

    산전수전 다 겪은 나조차도 전면전으로 놈들을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지구상의 모든 핵폭탄을 터뜨린다고 해도 인류가 먼저 멸망할 게 뻔하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그 문제 사이에 사이비 놈들까지 비집고 들어오려는 게 현재 상황이다.

    그나마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이비 놈들이라도 먼저 치워 두지 않으면 이 땅에 미래는 없다.

    ‘아니, 나아가서 인류의 미래도 없겠지.’

    나는 식사 대용으로 집어 든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삼키면서 차도식과 김명호 그리고 몇몇 조직 간부들을 돌아보았다.

    넓은 회의실 안에 모여 있는 차도식파 핵심 인원들은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은연중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결국 어찌 됐든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는 곤란하다.

    그 출발선을 가장 먼저 끊은 건 예상대로 차도식이었다.

    “그럼 우리가 본격적으로 지상에 진출하는 이유가 사이비 놈들을 처리하고, 수도권 지역 전체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냐?”

    “아니죠. 더 큰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걸리적거리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작업일 뿐이에요. 수도권의 지역 안정화? 전 세계 군대를 긁어모아도 불가능할걸요.”

    “더 큰 계획이라면 역시 타르 덩어리들을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걸 의미하겠지?”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도식은 턱 막혀 있던 숨을 토해 냈다.

    “내가 이래서 동생이랑 얘기하면 수명이 쭉쭉 빠지는 것 같다니까. 결국 이렇다 저렇다 해도 계획이 다 준비되어 있잖아. 사람 놀래지 말라고.”

    “계획은 준비되어 있지만 사람은 준비가 안 되어 있잖아요.”

    “그게 무슨…….”

    “이 중에 죽을 준비가 된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나의 담담한 질문에 장내는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으로 뒤덮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나와 함께 목숨을 걸어 왔다는 것은 인정한다. 초창기의 우리는 빈약한 장비와 부족한 경험을 가지고, 힘들게 쥐어짜 낸 용기 하나만 믿고서 지상의 어둠과 추위에 맞섰으니까.

    그때 목숨을 걸었던 자들 중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신이 파괴되어 살아 있는 송장 신세가 되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영구적인 장애를 가진 자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걸고 지상을 개척했기 때문에 차도식파는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밀수 조직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고, 가장 월등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조직들 사이에서 1순위 발언권을 가진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지금 ‘정말로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재차 묻는 것이다.

    “솔직하게 까놓고 얘기하죠.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를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겁니다. 사이비 놈들과 잠깐 어울려 본 제가 말하는 건데, 놈들은 이미 완벽한 사냥꾼이 되었어요. 인간과 같은 지능, 인간을 초월하는 신체 능력 그리고 인간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혹한 성격을 가졌죠. 사람을 썰고 꿰뚫고 쳐 죽이길 주저하지 않는 살인 기계들이 됐다는 거예요.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는 대응법만 알면 어떻게든 싸울 수 있었지만, 이놈들에겐 대응법이랄 것도 없어요. 그냥 서로가 서로를 먼저 말살할 때까지 쉬지 않고 피를 흘려야 끝날 거예요.”

    전쟁으로 치면 총력전이다.

    평화 협정이고 지랄이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양측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남은 것은 모든 포인트를 꼬라박는 무지성 총력전.

    거기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든, 얼마나 많은 절망과 공포가 흩뿌려지든, 끝이 나기 전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 도축장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휘관으로서, 또 한 명의 병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전술·전략을 아낌없이 사용할 것이고, 내가 가장 선두에 서서 지휘하며 싸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해진 결과였으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몇 번이고 들어도 백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거예요. 저와 함께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지상으로 나가고, 도저히 그게 안 될 것 같은 사람은 지저 도시에 남아서 물자와 장비 운반 같은 후방 지원을 해 줘야 한다는 거죠. 그게 우리가 본격적으로 지상에 진출한다는 계획의 1단계예요.”

    여기까지 함께했으니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난다고 한들 겁쟁이로 치부하며 비난할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날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인데, 발목만 잡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존중해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불편한 진실을 굳이 꺼낸 이유는, 내가 마침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수많은 밀수범들 중 한 명인 박한성이었다면, 이제는 많은 이들이 믿고 따르는 박한성이 됐다.

    이 사회는 권리와 혜택, 의무가 항상 균등하게 공존해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20대 초반에 몸소 겪었다. 권리도, 혜택도 주지 않으면서 의무만 강요하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저 차갑고 어두운 북쪽 땅에서 쓰러져 간 이름 없고 연고 없는 내 전우들을 진정 위한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확률은 50 대 50. 성공하면 무궁한 영광과 번영 그리고 막대한 이권이 손에 들어옵니다. 실패하면 다 같이 죽는 거고. 동전 뒤집기로 러시안룰렛 한다고 생각하시면 편하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동전 하나를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덧붙여서 차도식파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은 전부 제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어요.”

    지저 도시의 남부 지구와 북부 지구 군부대, 미래그룹, 서울 생존자 집단, 경상도 생존자 집단. 모두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해 주기로 약조했다.

    “가능하면 다 함께 21세기 최후의 마녀사냥을 즐겼으면 하네요.”

    안타깝게도 2031년의 첫 해돋이는 다 함께 보지 못했지만, 2032년의 첫 해돋이는 분명 모두가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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