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67화 (16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74)

    “드디어 너한테 사회 공부를 제대로 시켜 줄 날이 오는구나.”

    “뭐래.”

    아침 일찍부터 무인 셔틀버스를 타고 동부 지구로 향한 우리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네가 지난날 동안 차도식파와 함께하면서 배운 것과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을 거야. 거기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도 눈치챘을 거고.”

    “음, 그건 그래. 차도식파에서 박한성은 없으면 안 되는 존재, 이른바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더라고. 사실상 조직 이름만 차도식파지, 정작 보스인 차도식이나 2인자인 김명호도 모두 네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로봇 같더라.”

    “그럴 수밖에.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내가 없으면 조직이 굴러가지도 못할 만큼 아주 미세하게, 하나하나 정성 들여서 조정해 놨어. 내가 다음 계획을 알려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불안해져서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그래, 차도식파는 내가 일방적으로 떠먹여 주면서 키운 조직처럼 보이겠지만 진실은 다르다.

    저들은 내게 내외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고, 나와 함께 움직이는 여동생에게 자산 관리 권한까지 일부 넘기면서 사실상 족쇄로 묶인 상태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저들을 위해 일하는 개처럼 보였다면, 이젠 내가 저들에게 짖거나 앉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정작 나는 차도식파 내에서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정치질로 끌어내린 적이 없음에도.

    차도식파 조직원들은 물론이고 보스인 차도식조차 은연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차도식파는 이제 박한성으로부터 앞으로의 계획 일정을 공유받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박한성에게서 독립하여 자주적으로 살아 나가려고 하면 금세 말라비틀어질 풀 한 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가 굳이 차도식이나 김명호를 제거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 제거하면 이유야 어찌 됐든 내게 반감을 품거나 의심하는 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그러면 안 되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100% 신뢰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야.”

    “우와, 너 지금 존나 사이비 교주 같은 거 알아?”

    “사이비 교주 놈들은 하나같이 무능하잖아. 나랑 비교하기엔 급이 너무 떨어지지.”

    무능한 놈들이 약자들의 아픈 상처나 허술한 심리의 틈을 파고들어서 적당히 사기 치는 게 사이비 교주고.

    나는 모두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유능한 데다 내게 협조한 것의 배 이상을 돌려주는 대인배다.

    “하지만 차도식파는 내가 지난 한 달간 봐 온 결과, 근본부터 의리를 중요시여기는 양아치 조폭 집단이야. 지금은 네 계획대로 얌전히 따르고 있어서 이미지가 좋지만, 근본이 그 모양이라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

    “그래서 더 강한 힘으로 짓누르고 있잖아.”

    1차적으로 능력을 선보여서 나를 신뢰하게 만들고, 2차적으로는 내게 거대한 뒷배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게 차도식파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나다는 걸 보여 주면 끝.

    차도식파가 내게 반기를 들 수도, 내게서 벗어나 독립하려고 할 수도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설계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차도식파는 사실상 박한성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차도식은 이제 바지사장이나 다름없고.

    “그동안 부족한 인력을 메꾸느라 차도식파를 썼을 뿐이지, 바깥에서 기반을 다진 지금은 차도식파가 통째로 증발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어.”

    내가 차도식파의 수뇌부를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이유는, 그들이 내게 지금까지 잘 협조해 줬고, 또 마지막까지 충실한 오른팔 역할을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차도식파는 박한성의 비호 아래 언제나 안정적으로 조직을 유지할 수 있고, 나는 나 대로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수족을 굳이 잘라 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위에 선다는 건 무조건 폭정과 억압으로 누군가를 짓밟는다는 게 아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과 끝없이 상부상조하면서도 마지막에는 항상 내가 너보다는 위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이유도, 반목할 필요도 없는 황금 비율의 피라미드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던 미래그룹과 ‘상부상조’ 하기 위해 동부 지구로 향하고 있다. 여동생에겐 귀중한 사회 공부가 될 것 같아서 데려가는 것이고.

    동부 지구는 더 이상 디그러쉬의 드론들이 날아다니지 않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가득 메울 듯이 날아다니던 드론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고,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미래그룹의 로봇견이었다.

    “도지 프로젝트가 결국 성공했나 보네.”

    “아, 저거. 유명하지. 차도식파에서도 시제품으로 납품된 거 본 적 있어. 원래 너 주려고 납품했다는데, 정작 네가 자리를 오래 비워서 차도식파가 경비견으로 쓰고 있어.”

    “차도식파의 성장은 곧 내 성장인데 뭘. 그리고 이제 와서 시제품으로 만족하기엔 내 몸값이 너무 올랐지.”

    “네가 내 오빠만 아니었어도 진짜 먼지 나도록 팼을 텐데. 대체 뭘 먹고 크면 그렇게 띠껍냐?”

    “너랑 똑같은 거.”

    도저히 평범한 20대 남매가 할 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원래 남매란 동물들은 허초와 실초 사이에 무수한 살초를 섞어 서로를 찌르는 법이다.

    간밤에 내 연락을 받은 미래그룹 본사 입구 경비는 별다른 제지 없이 나와 여동생을 들여보내 주었다.

    미래그룹 본사 입구에선 정식으로 모델명이 붙은 D-G1 로봇견이 등에 올라온 자동감시형 터렛을 윙윙 돌리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자체적인 금속, 화약 탐지 센서도 탑재되어 있는지 나와 여동생 앞에서 빨간 경고등을 점멸했다.

    하지만 내 신원이 이미 미래그룹 서버에 VIP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경고등이 잠깐 번쩍거리다가 사그라들었다. 보안 요원이 우릴 통과시켰다면 로봇견이 나설 차례는 없었다.

    “그거 알아?”

    “뭐.”

    “디그러쉬 본사 싹 철수하고 직원들이랑 감시 드론이 하룻밤 만에 증발해 버린 거.”

    “몰랐지만 안 봐도 뻔하지.”

    아마도 아버지가 무한 동력 기관을 입수한 디그러쉬에 완전히 융화되길 선택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디그러쉬의 감시 드론 대신 미래그룹의 로봇견이 지상을 배회하고 있지.

    VIP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십 층을 빠르게 올라간 우리는 미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안 요원들에게 에스코트를 받았다.

    미래테크 본부장인 이진혁을 만날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보안 요원과 로봇견까지 함께했다. 우리가 무장을 했든 하지 않았든 아마 똑같은 에스코트를 받았을 것 같다.

    “안에서 총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휘유.”

    비서실장으로 추측되는 한 노쇠한 남성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풍스러운 문에 노크를 했다.

    솔직히 아직 지상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미래그룹이라면 아직도 내 상대로 이진혁을 내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진호 총수가 직접 나설 것이라곤 예상 못 했다.

    그렇다는 건 미래그룹도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는 의미다.

    “들이도록.”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비서실장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안내받은 우리는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대한민국 재벌계의 살아 있는 전설 이진호 총수,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부인 성혜정과 아들인 이진혁을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박한성입니다.”

    “동생인 박하나입니다.”

    먼저 인사를 하고 들어간 우리는 미리 마련된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이진호 총수는 거물답게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눈빛으로 한동안 우리를 바라보더니,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거 걸작이군! 배짱이 롯데타워보다 큰 친구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설마설마하던 진짜배기 호랑이가 내 앞에 앉는 광경을 살아서 보게 될 줄이야!”

    다소 과할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이진호 총수의 눈빛 속에는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나 당혹감이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재벌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나를 직접 호랑이라고 표현했으나, 그 호랑이와 마주 앉아 있는 자신 또한 밀릴 게 없다는 눈치였다.

    “그래, 그동안 아들이나 아랫사람들로부터 올라온 자네에 대한 보고는 수도 없이 받아 봤네. 역시 호부견자 없다더니, 그 박한화의 아들 아니랄까 봐 아주 대단한 실적들을 냈더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의외로 담백한 칭찬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사실 대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처음에는 일개 밀수꾼이 밀수 조직과 함께 어찌어찌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 줄 알았더니, 북부 지구와 남부 지구를 통합한 것도 모자라 서북부 지구에 땅굴까지 파서 슈퍼 곡식 종자들을 한가득 빼돌렸다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식량이 무능한 정부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만큼이나 최악인 상황은 없으니까요.”

    “흐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일세. 내 아들도 어디 가서 밀리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네는 아예 방향성부터가 다르군. 그 시야로 대체 얼마나 넓게,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있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정상……이라고 대답한다면 마음에 드십니까? 아니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쪽도 아니야. 오히려 기대하고 있지. 자네가 지상에 나가서 서울에 새로운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파악했네. 듣자 하니 지난날에 정부가 어거지로 서울 한강 중심부에 박아 두었던 원전과 정수 처리 시설을 확보했다지? 그걸 이용해서 대규모 거주 구역에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지저 도시에서 빼낸 슈퍼 곡식 종자를 수경 재배로 키우고 있다고. 이미 개인이 성공시킬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초월했지만, 그걸 해낸 자네의 성과나 능력은 확실해. 인정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갑자기 분위기를 확 바꾼 이진호 총수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우리 남매를 노려보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자네나 여동생이 그 박한화의 아래에서 나온 걸물들이라고 해도 결국 개인의 힘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야. 당장 서울에서 기반을 다진다고 한들, 그 세력이 지저 도시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나? 듣자 하니 서울에서 간신히 긁어모은 생존자는 10만 명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라지? 그마저도 군수물자가 턱없이 부족해서 숨어 지내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하기가 힘들 정도로 세력이 약하고.”

    “지상에서 일하는 저희 차도식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이것저것 주워들으신 게 많은 모양입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통제하지 않았으니 차도식파 조직원들 중 일부가 허술하게 정보를 흘렸을 거란 사실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지금 미래그룹의 총수라는 양반이 눈을 감은 채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 보고서 코끼리의 실체에 대해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진호 총수는 내가 서울에서 기반을 확실히 다지려면 미래그룹의 지원과 협력이 필수적일 거라는 식으로 압박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고, 당연한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서울 지상에 자리 잡은 기반은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타르 덩어리들이 시시각각 위험을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한, 내가 엉성하게 만든 기반으로 각종 위기를 헤쳐 나가기엔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을 터.

    그러니까 이진호 총수는 지금 내게 ‘필요 이상으로 과욕을 부리지 말고 미래그룹의 사업 파트너 선에서 타협해라’라고 돌려서 말하고 있는 거다.

    그의 심리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자신이 이끄는 미래그룹이 본청, 박한성이 이끄는 엉성한 세력은 하청 업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

    위험 요소도 없고 기반도 완벽하게 다져진 지저 도시를 굳이 뛰어넘으려 하지 말고 적당히 기생충처럼 빌붙어서 살아가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말한다.

    그러니까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을 수밖에.

    슬슬 여동생에게 공부를 시켜 줄 차례가 온 것 같아서 나는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 담긴 USB 하나를 테이블 위로 쓱 밀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자격 없는 자들이 학연, 지연, 혈연으로 누군가의 위에 서는 걸 끔찍하게도 혐오하니까요. 총수님의 말씀대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USB를 대신 받아 든 비서실장은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된 전용 랩탑에 연결해서 이진호 총수에게 건네주었다.

    USB 안에는 내가 경상도에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 들어 있다. 물론 과거의 경상도가 아니라 지금의 경상도.

    거의 완벽하게 복구된 인프라와 빵빵하게 돌아가는 수많은 공장들, 조선소에서 군함으로 개조되고 있는 선박들, 완전무장된 수만 명 단위의 군대와 아직 멀쩡하게 굴러가는 기갑차량들까지.

    마지막으로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해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는 내 모습.

    “이건……!”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원하는 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정상의 자리라고. 그건 대한민국 재벌 부동의 1위인 미래그룹 총수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도박했습니다. 경상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군벌을 제 손으로 직접 쳐 죽이고, 그들에게 억압당한 채 고통받고 있던 수백만 시민들을 구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임시 지도자가 되어 지상의 복구와 사회 재건 작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오기 전까지도 말입니다.”

    조작된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듯한 검은 하늘. 그리고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상도의 현실을 과장 없이 그대로 담아냈으니까.

    “자, 이제 수백만 시민들과 2개 기동 군단 1개 중장갑보병대대 그리고 머지않아 완성될 대한민국의 신생 기동 함대와 줌왈트급 미 구축함을 이끄는 사람과 일개 지저 도시의 대기업 총수. 어느 쪽이 더 위인 것 같습니까?”

    너흰 더 이상 나와 동등한 사업 파트너 같은 게 아니야. 이제부턴 내가 본청이고 너희가 하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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