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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66화 (166/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73)

    “우리 집 남자들은 잠시도 집에 붙어 있는 모습을 못 보겠구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머니.”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넘어서야 귀가한 불효자는 넓은 거실 한복판에 ‘그랜절’을 하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어머니? 이 그랜절은 아주 특별한 그랜절입니다!

    “그에 비해 하나는 항상 엄마랑 같이 산책하고 밥도 먹고 쇼핑도 하는데, 남편이나 아들이나 가정에 너무 무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저의 진심이 느껴지실 때까지 그랜절을 풀지 않겠습니다.”

    “이만 됐으니 양팔의 힘만으로 물구나무서는 건 그만두렴.”

    롯데타워처럼 거꾸로 곧게 뻗은 내 몸은 간신히 원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혼신을 바친 그랜절을 꼴좋다는 표정으로 흘겨보고 있던 여동생을 때리고 싶어졌다. 여동생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까?

    “하나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단다. 네가 가족을 위해서, 또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필요한 일이었어요. 제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이었고, 또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거든요. 그보다 어머니, 제가 여동생을 좀 교육해도 괜찮겠습니까?”

    “하나도 지난 한 달간 고생 많이 했으니 이번은 오빠인 네가 너그럽게 봐주렴.”

    내가 낮게 이를 빠드득 갈자 여동생이 키득키득 웃었다. 지금 보니 홍차와 함께 곁들이고 있는 고급 쿠키도 내 쿠키였다. 역시 여동생과 오빠는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관계란 말인가…….

    “그보다 네가 돌아오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단다. 혹시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랜절을 하느라 뻐근한 팔 근육을 풀면서 맞은편 소파에 앉으니, 어머니께서 내 몫의 홍차를 건네주셨다.

    어머니는 요리부터 가사까지 못하는 게 없는 전업주부계의 달인이셨지만, 상류층 집안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다도 문화에도 눈부신 재능을 싹틔우셨다.

    오죽하면 아파트 부녀회원들이 어머니가 타 주신 홍차에 내가 구해 온 고급 쿠키를 입에 대 보려고 열심히 꼬리를 치신다고 한다.

    미약한 단맛 뒤에 찾아오는 쌉싸름한 맛과 부드러운 홍차의 향이 따뜻한 기운처럼 입안 전체로 스며들었다.

    잠시 홍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으려니, 어머니께서 드디어 본론을 꺼내셨다.

    “네 아버지가 벌써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두 달 가까이 됐단다.”

    “…….”

    탁.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대략적인 날짜 계산을 해 보았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거의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그 시기라면……!’

    디그러쉬가 외부 지역에 대규모 탐사대를 파견해서 무한 동력 기관을 입수한 시기와 겹친다. 그리고 아버지는 디그러쉬 대한민국 지부의 중책이다.

    “하나는 한 달 전쯤에 회사를 그만둬서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 혹시 너라면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물어본 거란다.”

    “……짐작 가는 게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애초에 아버지는 집에서도 일 얘기는 일절 안 하시잖아요.”

    회사의 기밀이 가족들에게 유추될 것을 염려해서 일거리를 집으로도 가져오지 않을 만큼 디그러쉬에 진심인 남자가 아버지라는 사람이었다.

    마치 가족을 성공한 남자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하나의 부속품이나 트로피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이 가족보다 회사를 우선시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만큼은 시기가 굉장히 미묘한 데다 정황상 무조건 무한 동력 기관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 신경 쓰였다.

    “혹시 연락도 없었나요? 너무 바빠서 당분간 집에 돌아오기 힘들겠다, 같은 거요.”

    “없었단다. 혹시 몰라서 디그러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이웃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아무도 모르겠다고 하더구나. 혹시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그건 아닐 거예요. 어머니도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아시잖아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도 뭣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 세간의 인정 욕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위험한 일에 굳이 관여한다?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런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오히려 목숨 거는 일에는 절대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와 아버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굳이 추측을 해 보자면 자신은 위험하지 않지만 아랫사람들이 위험해지는, 하지만 외부에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일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큰 리스크 없이 이득만 취하려는 아버지에게 딱 어울리는 일 아닌가?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도 근 두 달간 연락을 취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면…….

    ‘여긴 지상이 아니라 지저 도시다. 해외 출장이나 장기간 부임을 할 이유도, 그럴 장소도 없어. 그리고 아버지는 ‘관리’에 특화된 사람이지 연구나 개발이 특기 분야는 아니야.’

    아버지는 어느 쪽이냐면, 사람과 돈을 적재적소에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영과 관리의 마술사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디그러쉬 내에서 탁월한 직원 관리 능력과 전체 부서 업무 효율 향상 능력을 인정받아 중책으로 오른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중요한 연구나 개발에 끼게 되어 부득이하게 연락이나 귀가를 제한당했을 리가 없다. 예술가가 생명공학 연구 때문에 바빠서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도저히 어머니 앞에서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일단 아버지에 대한 건은 내가 수소문해서라도 알아보겠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어머니는 심성이 고운 탓에 잔걱정이 많은 타입이니, 그 부분은 자식들인 우리 남매가 나중에 짐을 덜어 드리면 된다.

    나와 여동생은 무언중에 시선을 교환하고 오랜만의 티타임을 묵묵히 즐겼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내 방에서 제854회차 남매 회담을 가졌다.

    “나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냐?”

    “엄마랑 같이 지내는 시간 외에는 네가 시킨 대로 차도식파 사람들이랑 같이 움직이면서 현장 업무랑 전투 기술 배웠어. 한 달 만에 군필 여고생이 됐다니까?”

    여동생은 건방지게도 내 앞에서 잭나이프를 휘리릭 돌려 보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기야 예전부터 박한성 열화 버전이라고 불린 녀석답게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못하는 게 없었으니 그 정도는 금방 숙달했겠지. 지금은 총기 수입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배웠냐?”

    “엑소스켈레톤 조작은 너무 어렵고 여성 전용 모델이 지저 도시에 없어서 아직 못 배웠고, 그 외에 어지간한 건 대부분?”

    “잘했다. 그 정도면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죽진 않겠네.”

    비록 얄미운 여동생이라도 생존 기술 하나둘쯤은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이다.

    여차하면 내가 부재중일 때 여동생이 어머니를 대신 챙겨야 한다. 험한 세상일수록 여성의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넌 밖에서 뭐 하다 왔는데? 생각보다 일이 좀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을 줄은 몰랐지. 엄마도 별말 안 하셨지만 걱정 많이 하셨어.”

    “일이 좀 있었어. 아직 많은 사람들과 인프라가 살아 있는 경상도까지 내려갔었는데, 썩어 빠진 똥별들이 자기 세력으로 군벌을 만들어서 도시들을 점거했더라고. 그거 다 깨부수고 경상도랑 서울을 잇는 교두보 만드느라 애 좀 먹었지.”

    지저 도시에서 현장 업무를 돕거나 생존 기술을 터득하며 시간을 보냈던 여동생은 스케일이 다른 내 이야기에 입을 쩍 벌렸다. 이제야 이 오빠를 좀 우러러보는 건가?

    “구라 치고 있네.”

    “내가 너보다 못난 게 없는데 왜 구라를 치겠냐?”

    부자는 거지 상대로 ‘나 돈 없어요’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잠시 눈을 치켜뜨고 있던 여동생은 곧 흥미를 잃은 듯 익숙하게 과자를 꺼냈다. 그렇게 먹고도 뭐가 부족해서 자꾸 입에 넣는 건지 모르겠다. 진지하게 여자들은 소처럼 밥배 따로 디저트배 따로가 존재하나?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뭐가?”

    “엄마가 아빠에 대해 물으셨잖아. 나도 지난 한 달간 지저 도시에서 차도식파 아저씨들이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이래저래 알아봤는데, 아빠에 대한 정보만큼은 못 찾겠더라고.”

    “이젠 찾을 필요 없어.”

    “……?”

    내 단호한 대답이 의외였는지 여동생이 과자를 집어 먹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찾을 필요가 없다니?”

    “너도 20년 동안 봐 왔으면 알 거 아냐.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물론 아빠가 가정보다 일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내가 지저 도시에 운 좋게 입주하자마자 미래를 대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사람의 근본은 바뀌지 않아. 너도, 나도, 아버지도.”

    우리 남매는 타고난 반골 성향을, 아버지는 성공에 대한 무한한 탐욕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불변의 진리였다.

    “……그럼 뭐야. 설마 아빠가 멀쩡한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직장에 몸을 던졌다는 거야?”

    “아까 어머니 앞에선 차마 말하지 못했는데,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랬을 거라고 본다. 디그러쉬에서 인류 역사상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손에 넣었는데, 아버지가 거기에 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무한한 성공과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가족 따윈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

    “…….”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하는 나조차도 이런 말을 하는 데 회의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가장 순수했던 아이의 눈으로 꿰뚫어 봤던 아버지의 본모습은 머리가 굵은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한결같아서 대쪽같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그럼 엄마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도 않았는데 싱글 맘이 되신 거네. 우린 졸지에 아빠 없는 자식들이 된 거고. 무슨 가족이 이래?”

    여동생이 나이에 맞지 않게 한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20세.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파릇파릇한 대학생 새내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때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알아선 안 되는 것까지.

    “그래서 계속 주눅 들어 있을 거냐? 그런 아버지가 가족을 내팽개쳤다고 해서 우리 집안이 당장 풍비박산 날 것 같고, 화목했던 가정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아서 걱정돼?”

    “…….”

    “내가 이제 갓 스물인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건, 과거와는 다르게 공동체로서의 책임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야. 1인 1가구가 유행했던 과거는 잊어버려. 이제는 사업 파트너도, 직장 동료도, 너랑 같이 총 들고 싸우는 전우도 모두 가족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 이는 한 우리 가정이 풍비박산 날 일도 없고, 어머니가 웃음을 잃을 일도 없어. 잠깐의 고통과 슬픔은 있겠지만 우리가 빈자리를 메꿔 주고 부족한 힘을 보태 주면 돼.”

    “웬일로 장남다운 말을 하네. 킁! 존나 오글거려…….”

    “그냥 책임감 넘치고 능력 있는 오빠가 부럽다고 해. 지금이라면 자필 사인도 쌉가능이야.”

    “지랄.”

    코를 훔친 여동생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과자를 먹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시달리다가, 이제 막 어른이 되고 나니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으로 버림을 받은 여동생을 챙겨야 하는 건 결국 같은 핏줄을 타고 나온 나의 몫이었다.

    아무리 듬직한 장남이 제2의 가장이라고는 하지만, 무책임하게 자신의 의무를 내던지고 떠나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한층 더 깊어졌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 주지.’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 기약하며, 지금은 여동생과 함께 지난 한 달 동안 서로가 겪었던 일과 각자 수집한 정보를 교류하는 것에 집중했다.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내일부터 우리의 사업체(차도식파)와 협력 업체(미래그룹)를 돌아다니며 사전 준비에 들어갈 생각이다.

    우선 지상의 사이비 놈들을 말소시키고, 지저 도시와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다음이다.

    이 모든 사태를 끝내고 나면 나는 독보적인 자유를 누리며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으리라.

    지독한 아버지도, 엿 같은 사회 구조도, 빌어먹을 종말도 끝끝내 나를 억압하고 속박할 수 없었다고.

    모든 것의 ‘끝’을 알리는 시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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