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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64화 (164/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71)

    “잘 돌아오셨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역 바깥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알파 대원들이 나를 마중해 주었다.

    그들 주변에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로 파괴되거나, 완전히 짓뭉개진 타르 덩어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역시 서울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는 모양이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 두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제만 해도 두 번, 오늘도 한 번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들어오는지 알 수 없어서 주변이 조금 난잡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야, 이 정도면 오히려 잘 지킨 거지. 너희가 정규군보다 낫다.”

    알파 대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준 나는 KTX 화물칸에 채워서 가져온 군수물자를 옮기게 했다.

    경상도는 군벌들이 열심히 공장을 돌린 데다 각 부대의 군수물자를 깡그리 긁어모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이트워커 청소는 거의 끝난 상태라 관할 지역 내에서 전투가 벌어질 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군수물자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한 서울에 필요할 것 같아서 제법 두둑하게 챙겨왔다.

    “마침 5.56mm 탄환과 수류탄 수급이 급했던 참인데 잘됐군요. 얼마나 가져오신 겁니까?”

    “탄약은 일단 5만 발 정도, 수류탄은 1천 개. 기타 장구류도 1개 대대에 보급할 정도는 챙겨왔으니까 가장 먼저 일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급해 줘.”

    “분류 작업이 끝나는 대로 바로 보급하겠습니다. 브라보 원이 이끄는 차도식파라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손이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곧 내 밑으로 들어올 사람들이긴 하지. 서로 출신이나 경력으로 쓸데없이 다투진 않았겠지?”

    “의외로 저쪽에서 먼저 고분고분하게 나오더군요. 브라보 원의 계획을 망치는 놈은 내부 배신자로 몰려서 추방당하거나 처리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박한성이 세운 계획은 완벽하다. 지금 당장은 무리인 것 같고 위험해 보여도 일단 성공하면 압도적인 보상이 따른다. 박한성의 계획을 망치는 건 자폭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이렇게 반쯤 세뇌를 해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흥가 밑바닥에서 술장사나 하던 조폭들이야. 항상 성공에 목말라 있고 부귀영화를 꿈꿔 왔던 사람들에게 연이은 대박을 터뜨려 줬는데, 당연히 날 신처럼 여기지 않겠어?”

    “브라보 원의 기획력은 현역 시절에도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최진석 병장님께서 아쉬워하실 만합니다. 알파로 들어오셨다면 세계의 그 어떤 특수부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엘리트 부대를 만드셨을 텐데요.”

    “성공이 보장된 편한 길을 걷는 건 최종적으로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야. 실패의 쓴맛, 희생의 슬픔, 한계의 절망을 모르고 어떻게 최정상에 설 수 있겠어?”

    그래, 나는 그래서 항상 아버지라는 작자를 혐오해 왔다.

    탄탄대로만 걸었던 주제에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한 태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건 진짜 최고가 아니야. 진짜는 밑바닥에서부터 악착같이 기어 올라가서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법이라고.

    물론 내가 어느 사이비 교주처럼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신 행세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도 저들과 같은 인간인데 어찌 사람을 한낱 도구로만 보겠는가.

    이미 박한성 신드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물과 햇빛 그리고 비료를 듬뿍 먹은 비옥한 토양이다. 그들은 성공이라는 작물을 재배하는 훌륭한 모판이다. 나는 그들을 열심히 가꾸고 보호하는 농부이고.

    온갖 병충해와 가뭄, 혹한, 흉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대신 성공을 거둬 가는 윈윈 관계.

    뭐든지 혼자 하고, 혼자 독차지하는 독재자 같은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을 생각은 없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상생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군용 험비를 택시로 개조했으니 이대로 반포동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지금쯤 민간인 거주 구역으로 크게 활성화되었으니 구경거리가 제법 많을 겁니다.”

    “역시 서울 거리의 치안을 완전히 확보하는 건 아직 힘든가?”

    “사람도, 화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군용 험비의 운전대를 잡은 알파 대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군용 험비의 상부 장갑 기관총대를 잡은 또 다른 대원이 추가 설명을 하듯 덧붙였다.

    “민간인을 벌써 10만 명 가까이 수용했지만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쁩니다. 군필자들을 징집해서 군인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걸 강행했다간 기껏 좋게 만든 여론도 다시 나빠질 겁니다.”

    “최진석 병장님께서 지난 한 달간 가장 많이 고민한 문제입니다. 안 그래도 브라보 원이 복귀하는 대로 그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좋아, 그건 일단 제쳐 두고. 인프라 복구와 식량 생산 계획은 얼마나 진행됐지?”

    “다행히 전력과 수도 공급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인프라 복구 자체는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정전이나 단수 걱정 없이 모든 가구가 인프라를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역시 원자력발전소를 겸한 정수 처리 시설을 확보한 덕이 컸다.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소형 모듈 원전이 생산하는 막대한 전력은 거대한 반포동 주거 구역의 어둠을 밝히기에 충분했고, 한강 물과 지하수도 차고 넘쳤기 때문에 정수 처리만 끝마치면 각 가정으로 공급되는 구조였다.

    인류에게 없어선 안 될 빛과 온기 그리고 깨끗한 물이 공급되기 시작했으니 민간인들도 적극적으로 사회 재건에 기여하고 있을 터.

    “그리고 말씀하신 식량 생산 계획도 순조롭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 차고 넘치는 게 아파트라서 남는 빈집의 벽을 허물고 실내 수경 재배 시설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덧붙여서 저희를 포함한 군대와 경찰은 동작역과 구반포역, 신반포역에 각각 거점을 마련해 두고 민간인 거주 구역을 보호 중입니다.”

    “지저 도시에서 가져온 슈퍼 작물이 잘 자라는 모양이네.”

    “예. 옮겨 심은 지 기껏해야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수확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말 다 했지요. 사람들도 따뜻하고 안전한 거주지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량을 보고 희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최진석을 대신해서 경상도에 내려가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듯이, 최진석은 나 대신 서울에 남아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차도식파도 더 이상 밀수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으니 지저 도시에서의 영향력은 한 달 전보다 훨씬 더 커졌을 게 분명하다.

    ‘최진석이 이끄는 알파와 표면적으로는 내가 이끄는 차도식파가 서로 물밑에서 경계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건 결국 나다.’

    지상에선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줄(발전소)을 쥐고 있는 권력자, 지하에선 지상에도 강력한 군대라는 백을 둔 숨은 실력가.

    양쪽 진영 모두를 상대로 발언력의 영향이 가장 크면서,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는 비선 실세가 바로 나였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벌써 내 계획이 거의 성공 직전에 이르렀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 이제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을 알아볼 차례다.

    “이제 우리가 새롭게 경계해야 할 문제들은?”

    “……지상에서는 최근 서울 서부권, 인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괴물과 사이비 종교 단체의 수상쩍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역시. 그 사이비 놈들이 원하는 건 가장 순수한 흑연의 정수야. 즉 유독 서울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타르 덩어리들이라는 거지. 놈들 입장에선 서울이 고급 뷔페처럼 보일 테니 넘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어.”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미쳤기로서니 저 괴물들을 원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미친 게 아니야. 오히려 그게 자신들의 올바른 순례길이자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제 몸에 암흑 물질을 박아 넣는 걸 주저하지 않는 놈들이야. 단순히 미친놈으로 치부하지 말고 위험한 사상을 가진 놈들이라고 생각해.”

    저것들과 비슷한 놈들이 인류 역사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 콧수염 또라이가 매우 위험한 사상과 광기로 전 국민을 이끌었던 나치 말이다.

    “정찰대에 따르면 놈들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김포공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또 스노우모빌이나 쇄빙선을 이용해 이따금 한강 중심부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모습도 몇 번 포착됐습니다.”

    “그 사이비 놈들에게 인간인 우리는 또 다른 경쟁자, 혹은 잠재적 신도들에 불과해. 제대로 된 준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가급적 교전을 피하고 좀 더 상황을 살피는 쪽으로 가야겠지.”

    어느덧 험비가 동작대교에 들어섰다. 동작대교에는 이전에 없던 경계 초소가 세워져 있었고, 사람 대신 무인 포탑이 작동하고 있었다.

    “저 무인 포탑은?”

    “차도식파 사람들이 지저 도시에서 미래그룹에게 지원받은 물건이라고 저렇게 대교 입구마다 설치해 뒀습니다. 저것도 브라보 원이 미래그룹에게 요구했던 오토터렛의 개량 버전이라던데요.”

    “아, 그랬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사무용 가방으로 휙 던지면 알아서 조립되어 적을 포착하고 탄환을 쏟아붓는 프로토타입이지만, 지난 한 달간 미래그룹은 훨씬 개량된 버전을 만들어서 나 대신 차도식파에게 넘겨준 것 같다.

    당연히 차도식파는 내가 미래그룹을 뒷배로 두고 있다는 걸 아니까 이것도 다 박한성의 계획 중 하나라며 얼씨구나 하고 받아 왔을 거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게 딱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성능은 어때?”

    “괴물이나 인간보다는 최근 서울에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는 타르 덩어리들을 공략하는 데 최적화된 물건입니다. 40mm 고속 산탄포를 발포하는데, 산탄의 순간적인 파괴력 때문에 총알이 크게 효과가 없는 타르 덩어리도 갈기갈기 찢겨 나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을 거야. 그렇지?”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상한 괴물들을 상대할 때는 수월했는데, 타르 덩어리들은 공략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흐물흐물해서 하수구나 좁은 구멍 어디든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주변 사물로 감쪽같이 위장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덮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교전 비율은 늘고, 사상자도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괜히 민간인 거주 구역의 안전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한 게 아니었다.

    타르 덩어리들은 이미 서울 곳곳에 퍼져서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보다 한층 더 까다로운 사냥꾼으로 변모한 상태였다.

    “그리고 부상자들 중 일부는 감염 상태가 극심해질 경우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일반인으로 구성된 징집군이나 경찰들은 전투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체내에 암흑 물질이 들어간 사람의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이지를 상실한 괴물처럼 변했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경상도에서 일을 처리하다가 비슷한 사례를 봤어. 부산을 장악하고 있던 참모차장이란 새끼가 암흑 물질을 연구해서 군인들에게 전투자극제로 보급을 했더라고.”

    “끔찍하군요. 참모차장이란 양반이 어떻게 자국 군인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역시 쿠데타를 일으킬 때 육본부터 털어 버릴 걸 그랬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됐어.”

    나는 공사 현장처럼 커다란 방수포로 아파트단지 외부를 덮은 반포동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위로 희미하게 반사광이 새어 나오고는 있었지만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캄캄한 밤에 달빛이 살짝 첨가된 수준이다.

    “외부에 빛이 새어 나가면 어떤 놈들이 꼬일지 모르니 일찌감치 민간인 거주 구역 외부를 방수포로 둘러싸고 나무판자를 덧대는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찬 바람도 막고, 불빛이 새어 나가는 것도 막고, 외부 침입도 막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 아닙니까?”

    “나쁘진 않네. 오히려 부족한 시간에 인력으로 저만큼이나 했으면 대단한 거야.”

    최진석의 수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흐뭇함을 느낄 때쯤, 택시로 바뀐 험비가 동작역을 넘어서 반포동으로 진입했다.

    사실상 서울 지상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구를 박박 긁어모아서 10만 명이라는 숫자를 간신히 채운 최후의 요새가 코앞이었다.

    경상도에는 수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아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수도권에서 얼마나 많은 학살이 벌어졌고, 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쌓였는지 짐작게 했다.

    “정지, 정지!”

    구반포역 인근에 설치된 게이트에서 달려 나온 군인들이 정지 신호를 보내며 손전등을 들고 다가왔다.

    같은 군용 차량을 타고 와도 이쪽 소속이 아닌 외부인일 수도 있으니 경계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신원 확인 부탁드립니다.”

    “알파 소속 32번 대원 이철진 상병, 김혜성 상병입니다. 서울역에서 막 복귀한 브라보 원을 이송 중입니다.”

    내 얼굴을 확인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 인물 프로필 사진과 나를 대조해 보더니 곧 통과를 외쳤다.

    “인천에서 건너온 사이비 놈들이 여길 노리고 있는 모양이지?”

    “예, 실제로 침입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민간인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빛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두꺼운 옷으로 신체를 꽁꽁 싸매고는 정체를 밝히지 않고 피난민 무리에 껴서 통과하려 했다고 합니다.”

    “잡은 놈들은 어떻게 처리했지?”

    “최진석 병장님이 심문한 뒤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물론 처형하기 전에 인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피를 뽑아서 확인 작업까지 거쳤습니다.”

    “잘했네.”

    내가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준비한 기회의 땅을 함부로 넘보면 쓰나.

    ‘경상도도 문제투성이였지만 서울은 한층 더하군. 진짜 편하게 쉬려면 아예 죽어서 쉬어야겠는데?’

    또 얼마나 많은 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워진 나머지 저도 모르게 다리를 떨어 댔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일만 하다가 죽을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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