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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62화 (162/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9)

    “난 틀리지 않았어! 난 틀리지 않았어! 난 틀리지 않았어!”

    군수공장의 가장 안쪽, 패닉룸에서 고작 10명도 되지 않는 군인들의 호위를 받는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바닥을 멋들어진 구두로 마구 짓밟아 댔다.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중령이나, 그의 휘하에 있는 소수의 병사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의 시대에 끝이 도래했음을 알았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인간의 본능이란 성공보다 실패를 예견하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다.

    고대 생태계에서 가장 나약한 생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언제나 실패를 염두에 두고 행동했던 감각이 DNA 레벨로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온 덕분이다.

    실패를 직감한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얌전히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체념형.

    혹은 끝까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오기와 아집으로 스스로를 불태우는 현실도피형.

    물론 극히 일부는 실패를 멋지게 뒤집어 역전승을 거두기도 한다. 성공에 대한 성취감은 그 어떤 마약보다도 감미롭고 중독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나도 극소수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보란 듯이 멋지게 역전승을 해 보이겠다며 도박판 위에 전 재산을 배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이란 놈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손에 넣기 힘든 놈이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 재산을 배팅한 것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그런 현실의 벽에 부딪쳐, 얼마나 많은 성공 중독자들이 박살 났던가.

    그야말로 생명을 불태우고, 인생을 내던지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과 기술을 쏟아부어 단 하나의 미래를 만들 각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전승은 언제나 극소수의 일부만 쟁취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타타타! ……쾅! ……드르르르륵! ……그가가가각!

    패닉룸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무자비한 학살과 파괴의 행진곡.

    본인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고, 지휘까지 하는 괴물이 ‘고작’ 전 재산을 배팅했을 뿐인 머저리에게 현실의 벽이란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어째서냐, 대체 내가 어떤 실수를 했길래! 내 계획은 완벽했다, 난 틀리지 않았다고!”

    김선후 중장은 실수하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이론상 완벽했다.

    누구보다 먼저 가장 많은 피난민이 몰린 경상도 일대에서 최중요 거점을 확보했으며, 가장 강력한 군벌로 성장해 미래를 대비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총과 칼로 권력의 기반을 다지고,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현시키기에 이르렀다.

    공장이 돌아갈수록 그의 힘은 매 순간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결국 이 망해 버린 세상에서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국민들은 저항을 멈추고 고개를 조아렸을 터.

    너무 서두르지도 않았고 너무 늦지도 않았다. 너무 과하지도 않았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주변 환경 요인을 적재적소로 활용하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제 몇 시간 후면 2030년의 어둠이 저물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로 새롭게 빛날 2031년을 맞이할 수 있었는데.

    찬란한 꿈과 불타는 야망이 얼마 전에 경상도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하나둘씩 함락당했다.

    자신이 자연스럽게 집어삼키려 했던 군벌들이 하나씩 흡수되고, 군벌에게 철저하게 지배당하고 있던 수많은 민간인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미 군함과 결탁하여 자신의 가장 아픈 곳을 불시에 찔러 들어왔다. 최후의 요새나 다름없는 이곳에 적들이 들이닥치기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자신이 어떻게 쌓은 성인데.

    그의 인생에서 참모차장이라는 직위를 얻는 데에 걸린 수십 년보다 훨씬 더 심혈을 기울인 2개월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적의 성이 한낱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콰아아아아앙!

    “지금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폭압으로 패닉룸에 충격을 입힌 뒤, 군용 엑소스켈레톤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무식하게 뜯어낸 패닉룸 문짝 너머에는 파도를 일으킨 장본인이 서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 이건 말도 안 된다며 현실 부정을 하고 있겠지?”

    “……!”

    자욱한 먼지 커튼을 손짓 한 번에 열어젖힌 사람은 기껏해야 자신의 아들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양팔에는 엑소스켈레톤에서 떼어 낸 것으로 추측되는 외골격 파츠를 장착하고 있고, 양손에는 피 묻은 대검과 총열이 달아오른 소총을 들고 있었다.

    저 대검 앞에 쓰러진 자신의 부하들이 원통하다는 듯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총열이 달아오른 소총은 얼마나 많은 표적에게 탄환을 박아 넣었는지 상상하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성공 가도를 달리기만 했던 너 같은 버러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편하게 턱짓으로 부하들을 부려먹을 게 아니라, 때로는 자신이 직접 목숨까지 내던져 가며 발로 뛰어야 한다는 사실을.”

    “……네놈은 누구냐.”

    “육본 참모차장 출신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겠지. 중장갑수색대에 대해서.”

    “……!”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타 권총을 뽑으려 했던 김선후 중장의 움직임이 전원이 끊어진 기계처럼 덜컥 멈췄다.

    어차피 권총을 뽑았다고 한들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중장갑보병들에게 걸레짝이 됐겠지만, 설령 그들이 없다고 해도 권총을 뽑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중장갑수색대라는 단어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네놈이……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라고?”

    “공식적인 북한 파견 횟수는 17회.”

    모두 유력 후보지로 올랐던 북한 땅굴에 파견된 작전 횟수였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북한 파견 횟수는 51회.”

    청년은 피 묻은 대검을 휘리릭 돌려 핏물을 털어 내며 말을 이었다.

    “집무실에서 펜대나 굴리고 턱짓으로 사람을 부려먹기만 했던 무능한 버러지와는 인생 경험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다.”

    *    *    *

    유력 후보지인 땅굴을 찾기 위해 ‘수색’ 임무를 맡은 브라보가 파견되었다.

    땅굴을 찾고, 땅굴에 들어가고, 땅굴에서 정보를 캐내 오는 것은 모두 우리 몫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흐릿하지만 땅굴이란 건 위성 감시나 무인기의 정찰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이 많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고저차나 복잡한 형태 때문에 상부에서 감시하는 것만으로는 개미굴처럼 북한 전역에 퍼져 있는 땅굴을 모두 알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전부 사람의 힘으로 직접 찾아야 한다.

    공식적인 작전 횟수는 고작 17회인데 어째서 중장갑수색대 소속 대원들만 유독 그렇게나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까?

    땅굴에 들어가기도 전에 수많은 격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작전에서 복귀한 우리는 약물로 기억이 지워지고, PTSD를 잠재운 뒤, 고작 며칠의 휴식만 취하게 한 다음 다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 그런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한 이유였다.

    중독자처럼 과다 투여받았던 약물이 지금은 단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단 현상에 따른 부작용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기억과 쇼크, PTSD의 부활이었다.

    내가 평범한 민간인의 삶에서 멀어질수록, 다시 총과 칼을 잡고 중장갑수색대 소속 대원처럼 행동할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기억을 되찾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 미치지 않고서야 멀쩡한 민간인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질 이유가 없는데.”

    흑야 사태가 발발하기 전, 나는 대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사귄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이나 퍼마시며, 웃기지도 않은 화성 탐사 얘기를 떠들던 놈이었다.

    진로 희망은 미래그룹 산하의 경비업체에 취직해서 달달한 대기업 돈맛 좀 보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일반인 그 자체였다.

    그랬어야 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내가 가장 열받는 사실은 무능한 놈들에게 무력하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이 아니야,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각오도 없으면서 한도 끝도 없이 권력을 탐하는 놈들이 내 위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열받는 거라고.”

    최선을 다했다고? 모든 걸 걸었다고? 웃기지도 않는다.

    “난 사람이 특정 지위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의사가 되기 위해 의사 면허를 따야 하는 것처럼, 단지 특정 직급에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적당히 타협할 줄 안다는 유한 성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권력을 날로 먹는 건 너무하잖아? 그건 나 같은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전쟁을 해 본 적도 없는 놈들이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고.

    실무 경험도 없는 놈들이 적당히 아랫것들을 쥐어짜 내서 같잖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막연하게 권력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는 안일함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무작정 지배하려 하고.

    “툭 까놓고 말해서 나는 자격 없는 놈이 위에 있는 걸 싫어한다. 혐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패륜아 소리를 들을지언정 내 아버지가 내 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할 정도야.”

    목숨을 판돈으로 걸어 본 적도 없는 놈들이 실실 웃는 낯짝으로 도박판에 마주 앉아 있는 꼴을 볼 때마다 어찌나 속이 뒤틀렸던지.

    너희가 도박판 위에 밀어 넣은 판돈이란 게 고작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오래 살았음을 의미하는 나이뿐이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판돈을 자신의 전부랍시고 들이미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거냐?

    “김선후 중장, 네 무능함으로 점철된 이 도시의 최후를 봐라. 일개 병사 소속의 예비군에게 탈탈 털려서 재기 불능에 빠진 네 알량한 소꿉놀이 현장을 좀 보라고.”

    “네깟 놈이 뭘 안다고……!”

    “알지. 잘 알고말고. 나는 수없이 쓰러져 간 분대원들을 이끈 유일한 분대장이었으니까. 오늘 5명이 죽으면 내일 5명이 보충된다. 오늘은 4명이 실종되고 1명이 부상을 당해도 5명이 보충된다. 누군가의 턱짓 한 번, 사인 한 번에 사람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껴 왔다.”

    “…….”

    “현장에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너는 모르겠지. 전쟁의 전 자도 모르면서 수많은 군인들의 위에 서 있는 자신의 중요성을 알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기껏해야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군인은 노예이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필요한 발판일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내가 자격없이 위에 서 있는 놈들을 싫어하는 거야.”

    사람의 도덕성이나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건 먼저 그 사람의 자격이 확인된 다음이어야 한다.

    반대로 무작정 도덕과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해서 자격 없는 자를 위에 앉히면 안 되는 것처럼.

    그 어떤 것보다 신중하게 검증해야 할 것을 다들 뒤로 미뤄 놓으면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얼버무린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꿈에도 모르면서.

    “이 모든 사태를 예견하고 있던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대비했더라면, 이 땅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었을까?”

    “같잖은 결과론을 들이밀기는……. 네놈도 결국 일개 반란군으로 전락한 이상 실패했다는 뜻 아니냐!”

    “자격 없는 자들이 중책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불합리한 사회의 피해자라고 해 줬으면 좋겠어. 나라면 이 나라 국민들의 반 이상은 살릴 자신이 있었거든.”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혼탁한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정보의 가치는 흑야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가장 높은 가치를 자랑했다.

    하다못해 자격 있는 유능한 자가 내가 가진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기만 했더라면,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종말에 대비하려는 척이라도 했더라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너희 같은 놈들이 내 중요한 기억을 약물로 묻어 버리고, 내 노력의 산물을 무시하고, 우리가 바친 희생으로부터 눈을 돌렸기 때문에 자초한 사태야. 반성까진 바라지도 않으니까 순순히 인정하라고.”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끝을 직감한 김선후 중장의 부하들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직 김선후 중장만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건 네 무능함으로 억울하게 피 흘린 자들의 대가라고 생각해.”

    하늘 높이 치켜든 내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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