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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61화 (16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8)

    수많은 대기업들 입장에서 공장이란 물건은 굉장히 소중한 보물이다. 조금 과장하면 공장은 애기니까 지켜 줘야 해, 같은 느낌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최신예 기술, 중요한 원자재, 최고급 인력들이 모두 존재하는 공장이 가장 취약한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화재. 특히 화학 분야는 유독성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훨씬 더 취약하다.

    그런 사건·사고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발랐는지, 또 얼마나 기똥찬 대책을 세웠는지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공단에 있는 공장 대부분은 화재, 정전, 유독성 물질 유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을 거다. 보병 화력으로는 건물에 큰 타격을 입힐 걱정이 없으니 바깥에 돌아다니고 있는 놈들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해!”

    USS 퍼니셔호의 무차별 포격이라면 또 모를까, 기관총에 유탄 좀 난사한다고 해서 거대한 공단에 흠집이 생길 걱정은 없다.

    실제로 화재와 유독성 물질을 감지한 공장 센서들이 저마다 시끄러운 경보음을 터뜨리며 공장의 출입구와 창문을 격벽으로 폐쇄하기 시작했다.

    공장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출입구를 개방, 반대로 외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과 기업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출입구를 폐쇄하는 자동 격리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다.

    검은 비 살포기는 어차피 외부에 있는 인원들에게만 영향을 주었을 테니, 차라리 지금처럼 공장 내부와 외부가 격리되는 게 나았다.

    “으, 우우우, 아.”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지금도 실시간으로 부풀어 오르는 검은 기포를 자랑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불에 탄 것처럼 검게 변해 버린 피부 위로는 공기 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크고 작은 고름이 생겼다가 빠르게 터졌다. 고름 속에서 흘러나온 검은 체액이 피부를 덮고, 그 피부 위에 다시 고름이 생겼다.

    검은 체액은 지표면에 떨어지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면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잠시 머물더니 어느 순간 휘발성 물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생명체에게만 반응하는, 침식, 감염, 세포 단위의 분열을 미친 듯이 반복하는 유독성 물질인 것 같았다.

    탕!

    저놈들도 원형은 인간이니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처럼 머리를 날려 버리면 한 방에 죽는지 궁금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미간에 정통으로 탄환이 박힌 놈은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검은 체액을 쏟아 내며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소총탄이 분명 머리를 꿰뚫었는데 죽지 않는다고?’

    서울 상공에서 쏟아져 내린 검은 비로 인해 탄생한 타르 덩어리들에게도 ‘헤드샷’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인간을 기반으로 탄생한 저 변종도 똑같은 현상을 보인 건 상당히 의외였다.

    ‘검은 비라는 물질에 아무런 방비 없이 노출될 경우, 침식 레벨에서부터 생명체의 근간이 뒤틀린다는 건가?’

    나는 생명공학 전문가도 아니고 그쪽 분야를 깊게 파 보지도 않은 문외한이지만, 썩어도 인서울 출신이라 지금껏 보고 들은 것으로 대략적인 추론은 가능했다.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는 헤드샷이 존재한다. 매우 특이한 성질과 능력을 가졌지만 궁극적으로 ‘인간답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를 하나의 개체로써 인정했다. 사람이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듯, 놈들에게도 짐승 정도의 구분법을 위해 최소한의 분류 단위를 정해 놓았다는 거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르다.’

    개체로 분류하기엔 개체에 걸맞은 특성이 없다.

    자주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개체의 특성상 의지를 컨트롤하는 뇌가 존재하고, 뇌가 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 지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나이트워커와 나이트워치에게는 지성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서울에서 마주친 타르 덩어리들도 지성은 느껴졌었다. 놈들도 넓고 복잡한 도심 속에서 정확히 인간만 찾아내서 골라 죽이는 솜씨나, 자신들이 가진 특성을 잘 활용해 압박해 오기도 했지. 그런데 저건…….’

    나는 그야말로 무지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눈앞의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보았다.

    자주적으로 독립된 개체도 아니고, 지성이 보이지도 않으며, 생명체의 근간마저 뒤흔들어 버린 것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존재.

    굳이 설명하고자 한다면 인간 사이즈로 살아 움직이는 군체를 보는 느낌이다.

    개미는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면 깔끔하게 사망하지만 버섯은 조금 찢어도 죽거나 하진 않는 것처럼.

    즉 내가 총을 쏴서 파괴한 것은 인간형 변종의 머리가 아니라, 머리 형태를 갖춘 군체의 일부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신이 불에 타면서도 한 줌의 재가 되기 직전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거군.’

    일반적인 생명체라면 쇼크, 장기 부전, 산소 공급 차단 등 다양한 이유로 불에 타다가 픽 쓰러져 죽겠지만 이놈은 아니었다. 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군체가 화염 속에서 모조리 사멸할 때까지 최후의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그제야 검은 비 살포기와 끔찍한 몰골로 재탄생한 인간형 군체들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세한 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진 검은 비 약물이 군체를 형성하는 균사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균사체가 풍부한 열량과 영양분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았다면.

    ‘제대로 안전 검증도 하지 않은 금단의 실험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한 결과군.’

    소총으로 쏴 죽이는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소대원 전체에게 퍼졌는지, 각자의 방식으로 놈들을 처리하고 있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누군가는 거대한 가로등 기둥을 뽑아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다졌다고 하며, 누군가는 아예 유탄이나 수류탄으로 폭발시켰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조금 전 포격으로 놈들을 싹 쓸어버렸던 것처럼 불을 이용한 제압 방식이었다.

    ‘어차피 인간의 몸뚱어리라는 영양분이 없으면 알아서 죽는 놈들이다. 세계가 멸망하면서 최하위 피식자인 벌레나 작은 들짐승도 도심에서 모습을 감춘 지 오래야.’

    나무는 진즉에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고, 정겨운 풀벌레 소리나 다짜고짜 비명을 질러 대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지상에선 인간만이 유일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기에, 이것들은 인간과 접촉하지 못하면 바스러질 변종에 불과했다.

    도시 바깥으로 새어 나가 민간인 거주 구역을 침범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의 팬데믹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다들 필사적으로 놈들을 처리했다.

    나 역시 박살 난 차량의 문짝을 잡아 뜯어 놈의 몸뚱이를 두들겨서 형태를 불안정하게 만든 다음, 아직도 불타고 있는 차량의 구덩이 속으로 날려 버렸다.

    터엉!

    큼지막한 쇠방망이에 얻어맞고 날아가는 공처럼 불길 속으로 던져진 놈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허우적거렸다.

    군체를 이루고 있는 균사체가 하나하나 타들어 가는 것이니, 몸을 뒤덮고 있는 균사체들의 수 만큼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옥도에 일반인으로 구성된 군인들을 데려왔더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을 터. 군체 변종이 한 줌의 재로 타들어 가는 순간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타르 덩어리들은 불에 타 죽기는커녕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는 이렇게까지 다르구나 싶었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공기 중에 흘러나온 온갖 역겨움의 집합체를 느끼고서 구역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군체 변종들의 목적은 결국 번식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박멸해. 혹시나 생존자를 발견하면 절대로 이놈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줘.”

    ―검은 비 살포기로 추정되는 설비는 저격수들이 모두 파괴했습니다. 연결된 관으로 더 이상 검은 물질이 흐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애초에 물량도 없는 것 같습니다마는.

    “검은 비 살포기가 발견된 공장들의 좌표를 공단 전체 구조와 대조해 봐. 분명 검은 비 살포기가 설치된 공장들의 중심부에 검은 비 살포기가 설치되지 않은 공장이 하나 있을 거다.”

    ―……좌표 대조 결과 제법 규모가 큰 군수공장 하나를 특정했습니다. 해당 공장 역시 자동 격리 시스템에 의해 격벽이 내려간 상태입니다만, 다른 공장과는 다르게 경비 초소나 진지 공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거기가 김선후 중장이 숨어 있는 곳이다. 거리 청소가 끝나는 대로 해당 지점에 집결하도록. 또한 오버로드 1, 2, 3은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며 공단 내에서 아군이 놓친 변종 군체를 최대한 처리한다. 앞서 말했듯이 한 놈도 살려 두면 안돼.”

    문득 북한 땅굴에서 몇 번이고 동료 분대원들에게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모두 태워 버려야 한다고.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것들이라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몇 명, 아니…….

    “몇 마리의 북한군들을 태워서 묻었었지?”

    땅굴에 들어갈 때마다 언제나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과 사투를 벌여 왔다.

    나라가 가난해서 제대로 된 열상 장비는 고사하고 성능 좋은 손전등도 없는 놈들이 어둠 속에서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선보이질 않나.

    피죽도 못 먹어서 앙상하게 마른 놈들이 맨몸으로 달려들면 군용 엑소스켈레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맨몸의 인간을 상대로 엑소스켈레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니, 어처구니없지만 사실이었다.

    죽이고, 찢고, 부수고, 태우고, 묻고, 다시 죽이고, 찢고, 부수고, 태우고, 묻고.

    대체 뭘 위해서, 누구의 뜻으로, 어떤 보상을 바라고 그런 일을 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건 나 한 명이 전부였는데.

    콰직!

    “후욱, 후욱, 후욱.”

    파괴된 콘크리트 덩어리를 집어 앞길을 막고 있던 변종 군체를 짓뭉개서 으깨 버리고 나니, 마침내 매캐한 연기와 불씨가 흩날리는 거리 너머로 군수공장이 보였다.

    힘든 일은 언제나 우리 같은 아랫것들의 몫이었지.

    고통을 분담하는 것도, 책임을 지는 것도, 약물로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끔찍한 기억의 쓰나미에 휩쓸려 절규하는 것도.

    내가 태어나서부터 반골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무능하고 무책임한, 무지하기까지 한 윗대가리들을 쳐 내고 직접 그 자리에 앉으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항상 잘난 척하던 아버지가 우리 남매를 향해 침이 마르도록 1등과 최고를 강조했던 것에 반발심을 느꼈던 것도, 사실은 우스웠기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정작 그 아버지조차 진정한 1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면서 자기 자식들을 상대로 훈수를 두고 계셨으니까.

    ‘나는 그 사람과는 달라.’

    그 사람은 기껏해야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는 틀 속에서 능구렁이처럼 교묘하게 이득을 취했을 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사람이 진정 모든 것을 걸고 최정상의 자리에 등극했다면 애초에 우리 남매가 태어나는 일조차 없었겠지.

    그러니까 나는 다르다.

    “후욱, 후욱, 후욱.”

    1등(자유).

    최고(자유).

    최정상(자유).

    언제나 그것을 갈망해 왔기에,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지한 놈들이 그 자리를 쓸데없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반발심을 느껴 왔기에.

    나는 기꺼이 모든 걸 걸었다. 이 목숨조차도 하나의 패로 쓸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판돈을 밀어 넣었다.

    즉 내겐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거머쥐고, 이 역겨운 사회의 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격이!

    “…….”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을 품던 놈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해서 일시적인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뒤에 막판에는 결국 비명횡사하는 게 대부분이었지.

    설령 절대권력을 차지했다고 해도 자신이 원했던 세상보다는, 심하게 뒤틀려 있을 뿐인 망가진 세상을 마주한 채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인생 선배님들의 선례가 버젓이 있는데 내가 그 길을 또다시 걸을 필요는 없지.

    “인원 상 1개 소대 정도가 먼저 집결했습니다. 나머지 1개 소대는 저격수들과 함께 공단 내에 남아 있는 잔당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군수공장 인근에서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총과 칼들이 충성스럽게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이나 채우기 위한 같잖은 유사권력이 아니다.

    “이제 끝내자.”

    콰앙!

    공장 입구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주먹 한 방으로 쳐 낸 다음 공장을 향해 척척 걸어 나갔다. 내 뒤로 총과 칼들이 따라나선다.

    오히려 권력이 가진 악순환을 끊어 내야 한다. 제2의 박한성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나보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지한 놈이 감히 내 위에 올라서는 일이 없도록, 서열 정리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내 안의 반골 성향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겠지.

    그 첫걸음이 김선후 중장의 처형으로 완성된다.

    “진입.”

    내 한마디에 공장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하고 있는 격벽들이 터져 나갔다.

    드다다다다다다다다!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총을 미친 듯이 쏴 댔지만, 중장갑보병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금속의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친절하게도 놈들의 목을 하나하나 베어 주었으며, 아직도 저항 의사가 남아 있는 놈들 앞에 잘린 목을 내던지며 조소했다.

    너희가 지금껏 그토록 믿고 따랐던 절대권력이 아랫것들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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