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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60화 (160/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7)

    술은 가끔 즐기지만 담배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나의 미묘한 신념 때문에 가끔은 삶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이 너무나도 괴로울 때 술은 잠시 고통을 잊게 해 주는 반면, 인생이 너무나도 허무할 때는 담배의 씁쓸한 니코틴이 빈 공간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가끔 정말로 큰 상실을 맛보거나 무력함을 느꼈을 때 도저히 메꿀 수 없을 것 같은 허무감이 찾아오는데, 나는 아직 이것을 효과적으로 채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짙은 담배 냄새는 언제나 고압적이고 유능했으며, 세상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두고 있는 것 같은 아버지의 권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담배만큼은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어른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군.”

    김해에서 무사히 알파 대원들과 합류한 나는 강서구 공단에서 도망쳐 나온 몇몇 군인들의 ‘목격담’을 듣고서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대원이 슬쩍 자신의 담뱃갑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지만, 애써 마다했다.

    지난날 동안 수많은 친구, 전우 그리고 잠시 거쳐 가는 사람들이 뻑뻑 피워 대는 모습을 징하게 봐 왔지만 도저히 스스로 필 자신은 없었다.

    일시적으로 지친 정신을 일깨워 줄 거라는 니코틴, 텅 빈 폐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타르, 척 봐도 유해해 보이지만 흡입할 때만큼은 유익하게 느껴지는 온갖 발암물질 덩어리들.

    그런 흉악한 물건으로 작금의 상황에서 현실도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단에서 도망쳐 나온 군인과 몇몇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어떠한 기계에 의해 ‘검은 비’라는 물질이 공기 중에 대량 살포되었고, 그것에 과하게 노출된 사람들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는 건데…… 뭐, 안 봐도 비디오이긴 하네.”

    검은 비라는 건 아마도 내 품에 있는 검은색 앰플과 같은 물건일 것이다.

    김선후 중장 산하 군인들이 이것을 대놓고 사용하는 걸 봤으니, 김선후 중장이 그런 괴랄한 물건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말을 유념하고 최대한 빠르게 김선후 중장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뜻하지 않게 아군 사상자 비율이 늘어나면서 일시적 후퇴를 한 내 책임이 컸다.

    ‘후퇴하지 않고 확실하게 밀어붙여서 김선후 중장이 도망치기 전에 붙잡았다면 이런 일이 터지지 않았을까?’

    아마 반반일 거라고 생각한다.

    김선후 중장을 처리해도 그 아래에 있는 부하 놈들이 무조건 항복을 외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어쩌면 자신이 제2의 김선후 중장이 되겠다며 이와 같은 일을 그대로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작전을 수립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구성을 짜고, 최종적으로는 사상자가 생길 것을 감안하면서도 작전을 결행시킨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체제와 이념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기 마련이라고.

    암군이든 성군이든, 독재자든 민주대통령이든 그들에겐 주어진 지위와 권한에 따른 책임이 있다. 나 역시 경상도 일대의 민간인들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와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당연히 책임이 있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뭣하면 USS 퍼니셔호에 연락해서 무차별 포격을 가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USS 퍼니셔호는 보급을 막 끝마친 참이었기 때문에 적재된 포탄과 무장은 아직 건재하다고 밝혀 왔다. 여차하면 아껴 뒀다 나중에 쓰려고 했던 레이저 유도탄(Laser Guided Bomb)을 퍼부어 줄 의향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 경우엔 목적지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직접 무선으로 연결된 레이저 유도 장치를 이용해 포격 지점을 하나하나 지정해 줘야 한다.

    하지만 2030년대인 현대 기술에 비하면 꽤나 구닥다리 같은 무기 체계였기 때문에 수량이 적다는 게 문제였다. USS 퍼니셔호도 만일에 대비해서 구색만 갖춰 둔 재고 처리용 포탄이지, 아예 작정하고 적재해 둔 건 아닐 테니까.

    “해당 공단은 김선후 중장의 추악한 비밀과 미래에 대비한 안배가 숨겨진 보물섬 같은 곳이야. 무차별 포격 같은 걸 가했다간 기껏 공단을 확보해도 죄다 고철 덩어리 신세로 전락하겠지.”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사실은 내 안에서 빛의 박한성과 어둠의 박한성이 1대1 단두대매치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빛의 박한성은 모든 불순물은 깡그리 청소해야 하니 무차별 포격 후에 편하게 쳐들어가자는 의견이었고, 어둠의 박한성은 최소한의 레이저 유도 포격만을 한 뒤에 공단에 침투해서 적들을 각개격파하자는 의견이었다.

    “역시 김선후 중장이 틀을 잡아 둔 보급형 엑소스켈레톤 생산 라인과 군수물자 생산 라인이 신경 쓰이십니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잖아. 사람을 지키는 데는 역설적이게도 무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물자가 풍부해도 장비가 형편없는 군대를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

    그런 종이 호랑이 군대로는 치안조차 제대로 안정시킬 수 없다.

    극악무도한 군벌들이 어째서 지역마다 큰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겠나?

    민간인에게서 물자를 빼앗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아도 모든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흑야 사태가 벌어지기 전의 국제사회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장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먼 옛날에는 몽골이 그러했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이 그러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미국이 그러했다.

    그래도 세계에서 전쟁의 불씨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질서가 잡히긴 했었다.

    평화를 감당할 힘도 가지지 못한 주제에 평화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 나는 결국 어둠의 박한성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USS 퍼니셔호에 전달. 레이저 유도는 이쪽에서 진행할 테니 신호 잡히는 대로 레이저 유도탄을 쏘라고 해. 그 뒤에는 김해 앞바다로 무엇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바닷길을 지켜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전하는 것도 잊지 말고.”

    “브라보 원의 말씀 들었지? 다들 장비 챙겨.”

    알파 대원들은 일전에 서울에서 내가 충고해 준 대로 생화학전에 대비한 군용 방독면과 충분한 양의 정화통을 챙겼다.

    중장갑보병들은 모두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할 때 군복 아래에 특수한 재질의 전신 타이츠를 착용하기 때문에, 피부가 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었다.

    아무래도 열전도가 높은 금속 덩어리에 사람이 탑승하는 만큼, 우주복처럼 단열과 내열 성능이 모두 뛰어난 특수복을 착용하지 않으면 착용자가 위험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외골격 파츠 팔 부위만 뽑아서 쓰는 거다.

    기동성부터 신체의 자유, 안전까지 두루 챙길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했으니까.

    공단으로 진입하기 전, 나는 한 치의 불만도 없이 나를 따라 주는 알파 대원들을 기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알파는 언제나 외부의 적들을 소탕하고 현장의 뒷정리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브라보가 어떤 것들과 마주했는지, 어떤 식으로 싸워 왔는지는 잘 모를 거다.”

    이번에는 나도 방독면을 착용하고 손목과 발목, 목덜미에 군용 제독(除毒) 덮개를 착용하면서 말했다.

    수많은 땅굴에서 마주한 온갖 적들. 개중에는 ‘저런 것’들과 비슷한 적도 있었다.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북한은 훨씬 오래전부터 각지에 퍼져 있는 땅굴과 지하도시에서 이상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진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니 2개월 전에 흑야 사태가 발발하고 전 세게가 패닉에 빠졌을 때도 북한은 잠잠했던 것이다.

    그 죽음의 땅에는 더 이상 패닉에 빠질 만한 생명체가 없었으니까.

    후욱, 후욱, 후욱.

    거칠게 호흡하는 것으로 방독면의 상태를 체크한 나는 2개 소대의 알파를 이끌었다.

    한 알파 대원이 눈치 빠르게 군용 전파 증폭 장치를 설치했다. GPS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군부대 간의 무선 통신 범위를 조금이라도 더 넓히기 위한 장치였다. 내가 17번 땅굴에서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물건이다.

    “레이저 유도 장치.”

    “여기 있습니다.”

    공개 채널로 무전을 열어 두고 특정 신호를 퍼뜨렸다.

    해당 신호를 김해 앞바다에서 감지한 USS 퍼니셔호가 지금쯤 레이저 유도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전차와 장갑차가 밀집되어 있는 공단 대로를 향해 레이저 유도를 했다. 최신예 전차라면 당연히 적에게 락온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만, 정상적인 군인들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전차와 장갑차 사이에서 꿈틀대는 저것들은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으니, 기계가 미친 듯이 경고 알람을 내뱉어도 묵묵히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할 것이다.

    “쐈습니다.”

    강서구 공단은 김해 앞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함포사격이 이루어졌다는 걸 이쪽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 레이저 유도 포탄이 건물 틈새로 보이는 유도체를 포착하고 낙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착탄, 폭발, 밝은 섬광과 함께 뒤늦게 터져 나오는 폭음.

    이쪽에서도 충격파가 터져 나올 만큼 위력적인 폭발이었다.

    사실 155mm 포탄 한 발로 그 정도 위력을 낼 수는 없지만, 하필 착탄한 곳이 화약고나 다름없는 장갑차량 한복판이라 연쇄 유폭을 일으킨 까닭이 컸다.

    능동방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일격에 유폭해 버린 장갑차량들이, 괴물 같은 폭압에 이른 폭압의 연쇄 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우르르 터져 나갔다.

    원래 장갑차량들은 저렇게나 극단적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지만, 나는 폭발하고 녹아내리는 금속 덩어리들 사이에서 아직도 미약하게 꿈틀대는 무언가를 보고 깨달았다.

    인간이 떨어져선 안 될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기어코 이런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주요 위험 요소는 제거했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생명인 각개격파에 들어갈 텐데, 낙오자까지 일일이 챙겨 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너희가 지금껏 배운 전술 교리대로 편하게 화력을 퍼부을 만한 상황은 절대로 오지 않을 테니, 최대한 빨리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짓뭉개는 것만을 목표로 해라.”

    “브라보는 다들 그렇게 했었습니까?”

    “그렇게 안 하면 죽었거든.”

    나 빼고 전부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진입한다! 여기서 마지막 불순물을 걸러 내고 경상도 일대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는 너희 본대에도 미래가 생긴다고 생각해라!”

    이미 최전방 부대를 순회하면서 희대의 하극상을 저지른 알파 부대에겐 더 이상 뒤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알파 부대 입장에서도 앞으로 자신들의 신분과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내가 유일한 동아줄이었기 때문에, 나를 2개 소대와 함께 KTX에 실어서 경상도로 보낸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땅.

    그것은 즉 ‘자유’가 보장된 땅을 의미한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불길이 치솟는 공단 한복판에 진입한 중장갑보병 2개 소대는 시뻘건 안광을 희번덕이며 검게 꿈틀대는 존재들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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