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59화 (15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6)

    “후욱…… 후욱…….”

    “괜찮으십니까, 중장님!”

    “지켜! 무조건 지켜! 여길 못 지키면 다 끝장나는 거야!”

    막 착륙한 헬기에서 미끄러지듯이 뛰어 내려온 김선후 중장은 자신을 맞이하러 온 중령을 향해 반쯤 실성한 얼굴로 윽박질렀다.

    그가 김해 외곽 접경지를 지키고 있던 기갑부대를 일부러 부산 강서구 송정동 공단 일대로 남하시킨 이유는 뻔했다.

    애초에 김해공항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외곽 경계를 해이하게 만드는 일 없이 알아서 처리했을 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헬기를 타고 공단까지 도망쳐 왔다.

    즉 접경지의 부대를 강서구 공단까지 빼낸 이유는 김해공항이 함락당할 것에 대비해 최후의 보루인 공단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곳만큼은…… 이곳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그가 김해·부산을 통합하고 수많은 군대와 민간인들을 자신 아래에 둘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부산항 인근에 피신해 있던 유능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을 대거 포섭했기 때문이다.

    육본 참모차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전시체제에 따라 그들을 국가 중요 인력 취급 하며 공단에 박아 넣고 갈아 넣었다.

    연구소에선 지금도 이상한 괴물들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단가를 최대한 낮춘 보급형 엑소스켈레톤이 대량 생산될 예정이었다.

    군용 엑소스켈레톤에 비해 출력과 내구도는 반도 미치지 못하지만, 단가가 매우 싼 데다 대량생산이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보급형이라고 해도 일반인의 신체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검은 비라고 명명한 약물과 보급형 엑소스켈레톤으로 전군을 무장시키면 게임 끝. 내년 초에 경상도를 완전히 통합하고 나면 전라도, 충청도, 수도권 순서로 자신의 왕국을 세울 계획이었다.

    거기까지 딱 한 걸음을 남겨 두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흥 세력의 침공이라니!

    ‘나 김선후는 죽지 않는다! 어차피 멀쩡한 시대였다면 육본 참모총장도 달아 보지 못하고 끝날 커리어였으니, 이런 시대에서 왕이라도 해 보고 죽어야지!’

    사회에 진출한 남성들 대부분은 강한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권력이란 탐하면 탐할수록 달콤한 것이고, 한 번 손에 쥔 권력은 좀처럼 내려놓기 싫은 법.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리며 신처럼 떠받드는 광경을 목도한 일반인이 어찌 권력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겠는가.

    권력에 미쳐 최후에는 끔찍한 독재자로 거듭나게 되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러했듯이,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연구소장! 그건 준비됐겠지?!”

    쾅!

    연구소장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김선후 중장은 씨근대는 얼굴로 그에게 외쳐 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연구소장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남자도 당황하다가, 곧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했다.

    김선후 중장이 저런 몰골로 대뜸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 전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 즉 그는 기계와 약물의 힘으로 또 한 번 이 난관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부산과 김해를 통합할 때 격렬하게 저항했던 김해 자경단을 대량 학살하던 그때처럼.

    “……혹시 검은 비 살포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거! 그것만 있으면 병사들이 일일이 주사를 할 필요도 없이 검은 비를 살포한 지역 내에서 육체적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시제품이 준비되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제대로 된 테스트도 거치지 못한 극초기 프로토타입입니다! 기상 상태나 이미 검은 비를 투여한 병사들의 컨디션, 또 개개인에 따른 약물의 흡수율에 따른 오차까지 계산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콰악!

    연구소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최대한 김선후 중장의 뻘짓을 막아 보려 했지만, 오히려 김선후 중장은 두툼한 손으로 연구소장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지금 그딴 게 뭔 대수야! 내가 지금까지 당신네들 의식주 보장하고 안전까지 책임져 준 이유가 뭐였는데?! 현장에서 실제로 써먹을 만한 물건들을 개발하라는 이유였잖아! 그런 물건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 왔다는 걸 모르겠나?!”

    “아, 알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윤리는 지켜야 할 것 아닙니까! 검은 비도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거치면서 부작용을 하나하나 잡아 내고 있는 마당에, 검은 비 살포기를 현장에서 바로 써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딴 건 관심 없어! 중요한 건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거라는 거야! 나도, 당신네들도 전부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라고! 이런 상황에도 아직까지 같잖은 윤리를 들먹이고 싶나?!”

    같잖은 윤리라니.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키는 모든 선구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중요시되는 건 창의성도 지성도 아니다. 바로 윤리다.

    윤리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기술력이라는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우기 위한 마지막 브레이크. 인간들은 그저 기술이 발전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윤리라는 최소한의 족쇄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오래전에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대충 핵전쟁이 터졌거나, 온갖 살인 바이러스에 의해 생물학적 재해가 발생했거나, 아니면 과도한 개발과 자원 낭비로 지구가 황폐화됐든가 했겠지.

    그걸 2030년까지 어떻게든 끌어온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한낱 윤리 덕분이었다.

    “보급형 엑소스켈레톤은 이제 막 부품 생산 단계에 들어갔으니 단기간에 조립 후 보급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검은 비 살포기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해야 해!”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회? 후회는 멍청하게도 흑야 사태 당일에 참모총장 그 새끼를 대신해서 육본에 근무하고 있던 과거의 자신만으로도 충분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그리고 그건 당신네들도 마찬가지야!”

    연구소장은 김선후 중장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이 공단에 묶인 수많은 사람들의 친인척. 더 넓게는 연인이나 친구, 한때 함께 했던 직장 동료들까지.

    김선후 중장은 자신이 끝나는 순간 그들 역시 함께 불타오를 거라며 대놓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까지 추악해질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는지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독한 탐욕.

    단순히 권력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손에 넣고자 했던 끝이 없는 탐욕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가진 자신이 그의 폭주를 멈춰야 할 때인가?

    안타깝게도 세상만사가 모두 선인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 윤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악인이 뉘우치고 반성하여 선인으로 거듭날 수 있듯, 선인 또한 의도치 않게 악인으로 전락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나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자신 같은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분부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그, 그래! 서두르라고! 놈들이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 같으니까!”

    검은 비 살포기를 준비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선 연구소장은 연구원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짐작했다.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들어 무기화에 크게 기여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참여자가 ‘이제 우린 빌어먹을 개새끼들이다’라고 자포자기한 것처럼 자기 비하를 했듯이, 자신 역시 검은 비 살포기를 무기화할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 앞에서 무력할 따름이었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지금껏 연구만 하느라 제대로 돌봐 주지도 못했던 가정을 이제 와서 아득바득 살리겠답시고, 좀 더 나은 가장이 되어 보이겠답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공관에서 배부르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을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멈춰야 하지만, 그렇기에 멈출 수 없다.

    사실 자신을 포함한 연구원들의 가족은 안전한 것이 아니라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니까.

    김선후 중장은 자신을 움직이게 할 수만 있다면 눈앞에서 어린 딸을 끌고 와 총살시킬 수도 있을 만큼 권력에 미친 놈이었다.

    세상 그 어떤 아버지가 이 상황에서 가족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정부가 매몰차게 버린 대한민국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그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내 잘못이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자신을 육본 참모차장이라 외치며 순식간에 군인과 민간인들을 규합하고 일시적이나마 평화를 가져왔던 남자였다.

    믿을 구석이라곤 없는 무능한 연구원이자 한 가정의 책임자인 남자가 어찌 그를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저 추악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속으로 울분을 삼키는 게 고작이다.

    그렇게 그는 모든 연구원들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두 책임을 지겠다는 거짓말로 소란을 일축시키고서 검은 비 살포기를 직접 가동시켰다.

    이 검은 비 살포기는 일반적으로 체내에 주사하는 검은 비 앰플과 다르게 농도를 극단적으로 낮춰서 수증기처럼 특정 지역에 대량 살포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머지않아 공장에서 일하게 될 수만, 수십만 명의 근로자들의 작업 효율을 효과적으로 증진시키려는 것이 개발 이유였으나, 막상 검은 비가 군인들의 작전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계획이 확 바뀌었다.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칠 때마다 특정 지역에서 검은 비 살포기를 가동시켜 전군의 전투 능력을 크게 끌어올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김선후 중장의 미친 발상.

    그것이 지금 막 현실화되려 하고 있었다.

    “제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은 압니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누구도 듣지 못할,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면서 연구소장은 공단 일대에 설치된 검은 비 살포기 프로토타입을 가동시켰다.

    *    *    *

    “이대로 굳히기에 들어간다. 전군은 부산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밀양과 양산까지 접수해. 갑작스러운 전쟁 때문에 놀랐을 민간인들을 진정시키고 지역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야.”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있어서 민간인들과 살을 부대끼는 대민지원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다들 여름이고 겨울이고 대민지원을 나가서 민간인들의 손발이 되어 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역 안정화 자체는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굳히기가 성공해서 부산 일대를 장악한다고 해도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마지막 발암덩어리인 김선후 중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박 씨는 어떻게 할 거요?”

    나는 공식적으로 계급과 소속을 밝히지 않은 데다 남들에 비하면 조금 어려 보였기에 다들 박 씨라고 불러 댔다.

    “나는 지금쯤 김해를 정리했을 중장갑보병대와 합류해서 마무리를 하겠다. 그 새끼가 사라져야만 비로소 경상도 일대가 안정화되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지금쯤이면 내가 안배해 둔 대로 서울에서도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을 터.

    이미 KTX를 통해 서울과 경상도를 연결해 두었으니 남은 것은 지역 안정화뿐이다. 식량, 식수, 전기, 가스, 원자재는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손에 넣기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전제되는 것이 바로 평화였다.

    평화가 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법. 분쟁만 가득한 땅을 힘들게 복구해 봤자 제2, 제3의 김선후 중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이 시대는 탐욕스러운 독재자가 아닌,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넘치는 유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난 존나 유능하지.’

    차마 그 말까지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어서, 남들이 보기엔 대의명분을 위해 움직이는 열사처럼 연기했다.

    실제로 몇몇 이들은 자신들을 구해 준 것도 모자라 가장 악질인 김선후 중장을 손수 끝장내겠다는 내 의지에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번 작전으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여기까지밖에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부끄러워하고 슬퍼하는 분위기였다.

    경상도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4개의 군벌들은 모두 업보만을 쌓았기에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했지만, 나는 빌드업을 쌓았기 때문에 반쯤 영웅처럼 대우받게 된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착하게 살면 당하고, 나쁘게 살아도 당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당하는 일이 없도록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

    부산으로 후퇴해 지역 안정화 및 피해 복구 작업에 들어간 군인들을 일일이 다독여 준 나는, 아쉬운 얼굴로 장비를 챙겨서 김해로 건너갔다.

    이 감동적인 광경을 김선후 중장이 봤더라면 굉장히 억울해하겠지.

    하지만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꼬우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유능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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