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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8화 (158/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5)

    피의 대가

    “어딜, 개새끼가!”

    드다다다다다!

    차량을 향해 무지성으로 돌격하는 놈에게 매콤한 기관총 세례를 먹여 주고 재빨리 다음 타깃을 찾았다.

    하지만 놈들의 움직임이 워낙 빠른 탓에 이미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뒤섞였기 때문에 함부로 탄환을 흩뿌릴 수 없었다. 결국 일일이 근접전으로 붙어서 총을 쏘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차량 운전자는 부상자 태워서 후방으로 빠져!”

    “그럼 김해공항은 어떻게 공격합니까?!”

    “우리가 여기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났어!”

    낙동대교를 넘었고, 적군의 지상 병력을 사실상 무력화했으며, 신호탄을 쏴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심 김해공항까지 쳐들어가서 김선후 중장을 직접 능욕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아군을 최대한 살리고 이 이상 사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저것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최소 3인 1조로 대응해라! 머리를 한 방에 터뜨릴 자신 없으면 사지를 꺾어서라도 무력화시켜!”

    혼전 속에서도 무전을 통해 명령을 하달한 나는 권총을 뽑아 들고 맞섰다.

    이걸 나이트워커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변종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봤던 흑연교나 미래테크 연구소에서 발생했던 기괴한 변종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것들은 좀 더 직관적으로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를 닮았는데, 이놈들은…… 서울역에서 봤던 그 타르 덩어리를 뒤집어쓴 인간들처럼 보였다.

    분명 인간의 형상은 유지하고 있지만 체내에서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진액은 연기처럼 변하지 않고 주변에 아무렇게나 튀었다. 그러다 갑자기 전신이 뒤틀리더니 신체 일부가 흉측한 몰골로 변하기까지 한다.

    마치 검은 타르 덩어리 같은 것에 실시간으로 잠식당하는 것처럼.

    ‘수 초 단위로 DNA가 변하고 이지를 상실하며, 몸의 통제권을 잃게 된다. 그리고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대상이 인간이라면 매우 호전적으로 바뀌는 모습까지. 영락없이 그놈들과 닮았군.’

    문어처럼 다리가 엄청나게 늘어난 놈이 빨빨거리며 달려들어 와 강력한 스트레이트 펀치로 머리통을 가격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두개골이었다면 퍼석 하는 가벼운 느낌과 함께 수박처럼 터졌을 텐데.

    까앙!

    ‘실시간으로 변이해 진화와 퇴화가 짬뽕처럼 뒤섞인 육체를 가지는군.’

    단단한 금속을 두들긴 것처럼 적의 머리통 일부가 함몰되었을 뿐,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일은 없었다. 대신 충격이 컸는지 비틀거리기에 권총을 몇 방 쏴 갈겼다.

    몸에 구멍을 내서 일부러 출혈을 유도하자 검은 진액이 한층 더 격하게 쏟아져 나왔다. 저런 모습이 되기 전에 체내에 주사한 약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의 혈액이 타르 덩어리처럼 변했다면 일단 쏟아 내게 해야 한다.

    “그억…… 커허어어어어어!”

    인간 한 명이 몸에 담고 있는 피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막상 과다 출혈을 유도하면 엄청난 피바다를 만들 수 있다.

    그 증거로 권총을 쏴서 복부나 가슴에 구멍을 뚫거나, 대검으로 사지 동맥을 깊게 베어 내니 끈적한 타르 덩어리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쏟아 낼 타르 덩어리가 없어졌을 때, 적은 언제 흉포하게 날뛰었냐는 듯 침묵했다.

    머리를 박살 내거나 완전히 태워서 죽여야 했던 나이트워커와는 다르게, 굉장히 기괴한 죽음이었다. 체내에 있는 동력원(에너지)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야 전원이 꺼지는 기계처럼 죽는 것이었으니까.

    “지독하군.”

    여유가 있었다면 샘플이라도 채취했으련만, 적아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이 괴물들까지 날뛰고 있는 통에 잠시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머리를 박살 낼 자신이 없으면 제압 사격을 하라고, 등신 새끼들아! 최대한 출혈을 유도해서 못 움직이게 해!”

    하필 예비군 비율이 높은 탓에 이런 종류의 적들에 대한 대응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야 나이트워커나 나이트워치, 검은 비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타르 덩어리들은 대부분 군벌들이 처리했을 테니까.

    전투 경험은커녕 목격 경험조차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전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구난방이었다.

    열심히 무전을 쳐도 제대로 듣는 놈이 없고, 당황해서 쓸데없이 탄환을 낭비한 탓에 금방 화력을 상실한 분대가 넘쳐 났다.

    기껏 차량을 끌고 왔던 운전자들에겐 다시 부상자나 화력 상실자들을 태우고 후방으로 가라고 지시해 돌려보냈다. 후방에 자리 잡고 있는 보급대와 저격수들에게 맡겨 두면 당분간 안전하겠지.

    탕! 탕탕!

    기괴할 정도로 비대해진 팔을 휘두르며 고릴라처럼 돌진해 온 놈의 안면에 권총을 쏴 갈겼다.

    무언가가 퍽퍽 터져 나가는 파열음을 듣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놈의 돌진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순수한 질량 대 질량으로 승부하면 외골격 파츠를 장착했을 뿐인 내가 불리하다.

    “작업 1반! 이 새끼한테 붙어!”

    공장에서 운용하던 공업용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 예비군 아재 둘이 철컹철컹 달려왔다.

    콰아아아아앙!

    두 거체의 숨 막히는 질량과 파워 싸움에 나는 넌더리를 느끼면서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새끼 꽉 붙들고 있어!”

    공업용 엑소스켈레톤이 끼익끼익 불안한 소리를 낼 정도로 무지성 돌격에 취해 있는 놈은 흡사 코끼리를 보는 듯했다.

    그대로 공업용 엑소스켈레톤을 발판처럼 밟고 뛰어 올라 놈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이제 빠져!”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놈을 붙잡고 있던 공업용 엑소스켈레톤이 빠지고, 놈은 지금까지 속박되어 있었던 만큼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쿵쿵 달려 나갔다.

    하지만 본디 드넓은 사바나의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것은 생태계의 정점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유감스럽게도 생태계의 정점은 여전히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정점은 바로 나고!

    콰악!

    “육질이…… 존나게…… 질기네!”

    놈의 목덜미에 대검을 깊이 박아 넣어 외골격 파츠의 힘으로 살점을 반쯤 파내듯이 썰었다.

    서걱서걱, 츠으으읏!

    자상이 커질수록 출혈 부위도 커지고, 쏟아져 나오는 검은 타르의 양도 많아진다. 언젠가는 이 무식한 코끼리가 멈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기어이 놈의 목과 머리를 분리했다.

    비대한 팔과 다르게 초라한 크기를 자랑하는 놈의 목을 들고 지면에 착지하자, 곧 ‘쿵!’ 하고 놈의 거체가 낙동대교 앞에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을, 씨발…… 실험체로 쓰고 지랄이야. ✕같은 윗대가리 새끼.”

    나는 바닥에 흩뿌려진 작은 앰플 중, 아직 멀쩡한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적들이 가지고 있다가 미처 사용하지 못해 제압당하면서 바닥에 떨군 것들이었다.

    검은 앰플 속 내용물은 흑연교가 나이트워커의 몸에서 뽑아낸 체액, 그러니까 ‘정수’와 굉장히 흡사했다.

    ‘병사들이 자신들의 몸에 이런 정체도 모를 앰플을 놓는 걸 주저하지 않았어. 즉 이런 앰플을 한두 번 주사했던 게 아니라는 거야. 특히 저렇게 괴물처럼 변한 놈들은 부작용이 생길 만큼 앰플을 주사했다는 뜻이겠지.’

    뽕쟁이들처럼 기분 꿀꿀하거나 심심할 때, 혹은 활력감이나 쾌감을 느끼고 싶을 때 보급용으로 나온 이 앰플을 주사했을 게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이런 부작용이 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지급한 윗대가리나,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주사하며 즐긴 놈들이 김해·부산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할 따름이다.

    앰플과 1회용 주사기를 품속에 챙긴 나는 괴물들이 거의 다 제압되어 가는 광경을 보고 한시름 덜었다.

    그만큼 많은 피가 흐른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    *    *

    “Remember. No Seoul.”

    신호탄을 보고 김해에 진입한 KTX의 모든 객차 문이 열리자마자 중장갑보병들이 경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난사하며 김해 외곽 접경지 주둔군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뭐야…… 악!”

    “왜, 씨발, 열차가 들어오는데 밀양에서 보고가 안 들어온……!”

    “외곽 경계 최소 인원으로 돌린다고 했었…… 아아악! 내 팔!”

    “씨발! 애초에 본대 새끼들이 왜 강서구로 내려간 건데?!”

    “김선후 중장님 명령으로 김해공항 지원 간다고…… 히익! 엎드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콰앙! 콰앙!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무혈입성한 KTX가 쏟아 낸 중장갑보병 2개 소대의 화력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하필 김해 외곽 접경지에 주둔하고 있던 기갑 병력이 김선후 중장의 명령으로 강서구까지 내려간 상태라 당장 주둔지를 지킬 병력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병력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주둔지 최소 인원으로 구성된 대기조나 보급 부대와 통신 부대가 전부였다. 일단 김해 시가지에 배치된 소수의 포병도 있지만 GPS가 먹통인 지금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괜히 주둔지로 좌표 찍고 데인저 클로즈 규정 싹 무시하고 포격해 봤자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차라리 명령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도망가는 게 최선이었다.

    “후퇴! 후퇴해!”

    “서, 서류는 안 태웁니까?!”

    “그걸, 씨발, 태울 여유가 어디 있어! 그냥 튀어!”

    “괜히 차에 타지 마! 그냥 산이든 숲이든 뛰어서 도망쳐! 차에 타면 표적만 된다!”

    퉁, 퉁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40mm 유탄이 막사를 두들길 때마다 폭발과 함께 파편이 비산했다.

    집요할 정도로 쏟아지는 경기관총의 탄환 세례에 굳이 차량까지 기어가는 미친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괜히 차 시동 걸다 유탄이라도 한 방 맞으면 그대로 폭사 엔딩 아닌가.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후방 부대원들은 총이고 장비고 다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뛰거나 기어서 도망쳤다.

    정작 알파 대원들은 보급 부대가 사용하는 두 돈 반 트럭이나 수송 장갑차를 건드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일부러 군인들이 막사나 건물에서 뛰쳐나와 도망치기 쉽도록 탄환으로 유도한 것도, 유탄으로 엄폐물만 골라서 처리한 것도 차량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KTX로 이동할 수 있는 건 김해 외곽 접경지까지였기 때문에 경계가 느슨해진 이곳을 급습해서 이동 수단을 확보하고 김해로 진입한다는 게 박한성이 세운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김선후 중장이 기갑부대를 빼 버리는 희대의 트롤링과 부산항 상륙군의 격렬한 전투가 겹치고, 적절한 시기에 신호탄까지 쏘아 올려지면서 작전이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맥이 빠질 정도로 쉽게.

    “이대로 차량을 타고 김해에 진입해서 민간인들을 해방하고, 김선후 중장을 제압한다.”

    “적 기갑부대가 격렬하게 응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시가전으로 진입하면 우리가 유리해. 보병의 지원 없는 전차만큼 잡아먹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수색, 정찰, 잠입, 공작이 작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브라보와 다르게 알파는 처음부터 개개인이 소대 단위의 화력을 보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부대였다.

    경기관총에 유탄발사기, 대물저격총, 거기에 출력과 방호력이 과할 정도로 높은 엑소스켈레톤까지. 그런 알파 대원이 무려 2개 소대나 김해 시내에 진입한다는 건, 시가전에서 져 주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놈들이 버리고 간 주둔지에서 소량이지만 대전차무기를 챙길 수 있었다.

    “이 전쟁을 끝내러 간다.”

    전임 기수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브라보가 초석을 다지고 알파가 마무리를 하는 구도였다.

    실제 전장에 나서는 건 첫 경험이지만 전임 기수들이 만끽했던 이 구도를 자신들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알파 대원들은 크게 들뜬 상태였다.

    무엇보다 김선후 중장, 전 육본 참모차장을 조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가장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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