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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7화 (157/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4)

    “전차다! 엄폐해!”

    씨이이이이이이익! 꽈아아앙!

    음속을 돌파한 포탄이 건물 벽을 통째로 날려 버리면서 잔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때마침 그 아래를 지나가고 있던 군인들 중 일부가 낙석에 깔리거나 파편에 피해를 입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 방탄복이나 헬멧이 ‘방탄’ 기능은 없어도 파편을 막아 주는 성능은 있다는 것이다.

    “쿨럭, 쿨럭! 생존자 집…… 집결!”

    “여기 팔 꼈어! 누가 좀 도와…… 악!”

    “가망 없는 사람은 내버려 둬!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해!”

    “저 새끼들 민간인 거주 지역인데도 태연하게 포탄을 쏘고 있어! 미친 새끼들!”

    부산항에 무사히 상륙해 서북 방향인 사상구로 진격하고 있던 연합 군벌은 동래구 방면에서 밀고 내려온 기갑 전력에 측면을 노출하고 말았다.

    중간중간 피해를 입은 건지, 아니면 낙오된 건지, 모습을 드러낸 전차는 기껏해야 서넛 정도였지만, 알보병들에겐 전차 서넛조차 거대한 산처럼 높고 강대한 존재였다.

    “계속 들어가! 김해공항으로 진입하는 것에만 집중해!”

    전장 한복판에 선 나는 연막탄을 여럿 까서 보병들의 진행 경로 측면에 던졌다. 전차의 열상 감지 장비만으로는 연막 너머에 있는 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래구에서 사상구로 들어오는 길은 굉장히 좁은 데다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아군을 피난시키는 것도, 전차의 진격을 저지시키는 것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적들에게서 노획한 크레모아를 깔아서 터뜨렸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십수 미터가 넘는 범위가 파편에 의해 휩쓸리며 잔해가 흩뿌려졌다. 이 또한 전차의 시야를 잠시나마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대전차무기나 대전차지뢰라도 있으면 써먹어 보겠지만,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아군을 최대한 많이 살려서 김해공항을 점거하고, 그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 김선후 중장을 바깥으로 끌어내야 한다. 놈이 안에 틀어박히지 않도록 미친 듯이 몰아치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훅! 훅! 훅!”

    자욱하게 깔린 먼지 커튼을 돌파해, 수많은 잔해와 구조물을 뛰어넘어 육상 선수처럼 뛰었다. 넓은 대로에서 건물 잔해를 짓뭉개며 접근하고 있는 전차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도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타!

    기관총 탄환이 내 근처를 훑고 지나가자 따끔따끔한 긴장감이 전신을 옭아매는 듯했다. 이 공포를 이겨 내는 사람은 살아남고, 겁에 질려 패닉에 빠지는 사람은 죽는다.

    전쟁이란 건 의외로 그렇게나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흐읍!”

    덜덜 떨리는 다리가 잠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몸을 앞으로 던져서 강제로 덤블링을 시도하면 된다. 그러면 본능적으로 낙법을 취하고 다시 박차 일어서기 위해 다리에 힘이 돌아온다.

    기이이이이이잉.

    흐릿한 시계 속에서도 전차의 포탑링이 돌아가는 기동음이 들린다. 나를 향해 포수가 동축기관총을 발포할 생각이겠지.

    애초에 동축기관총은 전차를 향해 특공으로 달려드는 보병을 사살하기 위한 대보병무기니까. 그럼에도 육중한 금속 덩어리가 지닌 무게의 한계만큼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최대 단점이다.

    “늦었어!”

    우악스러운 손길로 전차의 측면 장갑을 꽉 잡고 기어오른 나는 굳게 닫혀 있는 해치를 주먹으로 쾅쾅 내려쳤다.

    전차에서 가장 약한 장갑은 공통적으로 차체 하부, 포탑 상부에 해당한다. 현대화된 전차일수록 측면과 후면에도 추가 장갑으로 방호력을 보강하기 때문에 지금은 위 아니면 아래만 정답이다.

    고릴라도 씹어 먹는 외골격 파츠의 주먹질에 조금씩 우그러진 해치는 안쪽으로 튕겨 나갈 듯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콱 하고 걸렸다. 내부 잠금장치에 걸린 것이다.

    물론 굳게 닫혀 있는 전차의 해치를 통째로 뜯어내거나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지금의 나는 아드레날린이 핑핑 돌 만큼 급했다.

    안쪽으로 찌그러진 해치 위에 C4로 만든 급조 접착 폭약을 붙이고 지상에 몸을 던지면서 격발기 스위치를 당겼다.

    까아아아앙!

    폭압에 의해 해치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폭발과 열기가 삽시간에 승무원들을 피륙으로 만들어 버렸다. 해치 구멍 위로 불길이 화악 치솟는 광경을 본 뒤에야 나는 다음 전차를 향해 기듯이 움직였다.

    ‘선두 전차가 당하는 걸 봤으니 날 잡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움직임을 멈출 거다.’

    조금 과장해서 집채만 한 전차가 상대라면 기동 사격을 해도 상관없겠지만, 쥐방울만 한 인간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면 보통 포탄보다는 기관총으로 잡으려 한다.

    자연히 기동 사격을 해 봤자 탄이 이리저리 튈 뿐이니, 뒤따르던 전차들이 일시적으로 급제동을 걸고 나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기갑차량은 전장에서 멈추는 순간 죽는 거라고!’

    보병은 살기 위해 벙커나 참호 속에 멈춰 서지만 기갑차량은 개방된 장소에서 멈추는 순간 미사일, 포탄, 기관포가 미친 듯이 날아든다.

    덩치도 산만 한 놈이 멍청하게 서 있으면 때리기 좋은 표적 말고 뭐가 더 되겠나.

    ‘궤도, 궤도를 보자! 궤도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야. 발만 묶으려는 거지.

    기관총구가 불을 뿜기 직전, 나는 나란히 멈춰 선 전차들 사이로 슬라이딩을 해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 양손에는 각각 급조 접착 폭약이 들려 있었다.

    동작을 멈춘 무한궤도 사이에 폭약을 박아 넣고서 그대로 전차를 통과, 전차들의 포탑이 후방으로 회전하기 전에 모든 폭약을 격발시켰다.

    콰아아앙! 까아앙! 가르르르륵, 착!

    무한궤도 안쪽에서 발생한 폭압 때문에 현가장치 내구도가 버티지 못해 무한궤도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8륜 구동 장갑차에 비해 전차는 확실히 튼튼하긴 하다.

    하지만 튼튼하다는 의미는 반대로 말하면 발을 묶기가 너무나도 쉽다는 것이다. 온갖 다양한 지형에서 움직일 수 있기 위해 제작된 무한궤도가 역으로 튼튼함이라는 요소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무한궤도는 구멍 난 타이어를 예비 타이어로 갈아 끼우는 것과 다르게 공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부서진 부품을 처리하고 다시 연결시켜야 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연결이 불가능할 만큼 박살 나 버리면 해당 전차는 구난전차가 오기 전까지 전장에 홀로 남겨져야 한다. 그 압박감을 전차에 탑승한 승무원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무한궤도를 수리하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오면 총 맞을 거다. 하지만 다리 병신이 된 전차 안에 있으면 일단 안전하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신념을 위해서라면 민간인 거주 구역에도 전차를 밀고 들어오는 놈들이니, 아마 절대로 전차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전으로 중거리 사격에 능한 군인 몇 명을 전차 근처에 매복시키게끔 명령한 뒤, 다시 사상구 서쪽을 향해 달렸다.

    고작 얼어붙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사상구와 김해공항은 이미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놈들이 낙동대교 못 건드리게 해! 노획한 장갑차량을 엄폐물 삼아서 밀고 나가! 여기서 물러나면 어차피 다 죽어!”

    “저격수! 적 박격포부터 처리해! 씨발, 아까부터 자꾸 포탄 날아오잖아!”

    “USS 퍼니셔호에 추가 포격 지원 요청해! 정밀 타격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쏘라고 하면 되잖아!”

    두껍게 얼어붙은 강 위를 향해 내달리는 무수한 노획 차량들, 낙동대교에서 대놓고 밀고 들어가기 위해 노획한 장갑차를 앞세워 밀고 들어가는 보병들.

    노련한 저격수들은 강둑이나 근처 건물 옥상에 자리 잡고 강 건너 부산군을 저격해 나갔다. 처음에 일제 포격처럼 떨어지던 박격포도 지금은 간간이 한두 번씩 떨어질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낙동대교 너머 맥도생태공원에는 고지대가 없어 평탄했기 때문에, 역으로 건물이 많은 사상구 쪽이 고지대에서 내려보는 형국이었다.

    설마 우리가 부산항에서 이렇게나 빨리 치고 들어올 것이라곤 적들도 예상 못 했는지, 적들은 제대로 된 방어 진지도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즉 지금이 놈들을 일거에 밀어낼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

    나는 때마침 출발하려던 지프 한 대에 뛰어 들어가 차량 지붕에 거치된 기관총을 잡았다.

    “밟아!”

    “V8!”

    두꺼운 빙판 위를 내달리기 시작한 지프는 조금이라도 방향을 틀지 않고 올곧게 앞만 보고 나아갔다.

    애초에 빙판 위에서 타이어에 체인도 걸지 않은 차량이 운전대를 휙휙 꺾었다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들 눈먼 총알에 맞을 걸 알면서도 무지성 돌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쌓인 게 너무 많았으니까.

    온갖 강력 범죄에 시달리며 소중한 것을 잃은 대한민국 가장, 아들, 형제들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군벌 세력을 죄다 끝장내 버리고, 암흑으로 물든 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되찾고 싶을 뿐이다.

    절대로 양립하지 않을 것 같은 복수와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는 전쟁기계(예비군)들이 거침없이 애송이 현역들을 밀어붙였다.

    “흑흑, 오늘 저녁밥은 맛있었다!”

    “그럼 야식은 지옥에서 먹는다!”

    타타타타타타타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차량 창문에 몸을 내뺀 채 총을 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차량에 거치한 기관총을 잡고 괴성을 내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수많은 차량들이 부산 사상구를 넘어 빙판을 질주하는 장관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적들의 화력도 분산되었다. 특정 장소만 틀어막자니 화력이 너무 부족하고, 강을 넘어오는 적들은 개미 떼처럼 많았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낙동대교는 장갑차를 앞세운 본대가 조금씩 전진하면서 대놓고 압박을 가하는 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날아든 저격이 동료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나, 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김해공항으로 후퇴해! 거기라면 안전할 거야!”

    “잠깐, 차라리 강서구 쪽으로 도망가자! 그쪽에 김해 지원군이 와 있다고 들었어!”

    “왜 그 새끼들은 진즉에 안 오고 거기서 죽치고 있는데?!”

    “도망치려면 체력이 필요하니까 다들 그걸 사용해!”

    누군가가 겁에 질리자 전염병처럼 패닉이 퍼져 나갔다.

    기관총과 박격포를 잡고 있던 군인들은 결국 나 몰라라 하고 탈영을 시도했다. 군인들 사이에서 탈영이 한 번 시작되면 어지간히 카리스마가 있는 장교조차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그 증거로 현장 지휘관도 글렀다 싶었는지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우리는 굳이 탈영병을 잡지 않는 대신, 김해공항으로 곧장 향했다.

    “슬슬 때가 됐군.”

    나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하늘 위로 조명탄을 쏘아 올려 중장갑타격대를 김해로 끌어들이려던 찰나, 갑자기 도주하던 적들의 모습이 이상해지는 것을 포착했다.

    “무슨……?”

    까득까드득, 우득!

    작은 일회용 주사기 같은 것을 내던진 적군 중 한 명이 간질 환자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곧 전신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뒤틀리고 날카로워진 뼈가 피부를 찢고 나오자 고름이 터지듯 검은 진물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몸에서 붉은 피가 아니라 검은 진물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우리 모두 굳어 버렸다.

    하나, 열, 백, 어쩌면 그 이상.

    어둠 속에서 검은 진물을 뚝뚝 흘리는 기괴한 존재들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자신들의 뒤를 쫓던 우리와 마주한 놈들이 근육을 크게 부풀렸다.

    마치 총소리만 울려 퍼지면 곧장 뛰쳐나가려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그르르르륵…….”

    피유우우우우우우우, 펑!

    기어이 신호탄을 쏴 올린 나는 밝은 빛으로 놈들의 이목을 한데 집중시켰다. 원래 이런 용도로 사용하려던 신호탄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먹혔으니 상관없다.

    “쏴!”

    우리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순간, 놈들 역시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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