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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6화 (156/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3)

    백해무익한 담배 연기를 폐 깊숙한 곳까지 빨아들이던 김선후 중장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윽고 그의 두툼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시가렛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침공……당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보고드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현재 부산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규모 선단이 기습적인 포격과 동시에 강습 상륙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부산항에 배치되어 있었던 최소한의 해안경비대와 포대는 완전히 무력화되었으며…….”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의미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대한민국의 모든 군함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인천으로 올라가 버렸어! 그 일부도 지금은 김해 연안에서 정박 중인 상태 아닌가?!”

    순간적으로 대구와 포항, 울산을 장악한 신흥 세력이 뇌리를 스쳤지만, 김선후 중장은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김해·부산 군벌을 제외하면 다른 군벌은 해군이 없다. 하물며 포격이나 강습 상륙이 가능한 군함조차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포격과 함께 대규모 선단이 강습 상륙을 감행했다니?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서 석유가 터져 나왔다는 소리가 더 신빙성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고에 의하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부산항은 이미 적들에게 무력 점거되었으며, 적들은 신속하게 시가전을 펼치며 도심 곳곳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김해와 양산, 울산 접경지에 배치해 둔 외곽 주둔군을 서둘러 불러들여야 합니다!”

    “이게 놈들의 양동작전이라면?! 우리가 고작 부산항 하나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 배치해 둔 대규모 지상 병력을 안쪽으로 철수시킨다면, 그 틈을 노려서 또 다른 지상군이 김해와 부산으로 침투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하지만…… 시가전에 돌입한 이상 적들과 최소 동격, 혹은 그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적들을 쉽사리 밀어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또 뭔가!”

    “미 해군 USS 퍼니셔호가 우릴 배신했습니다. 아마도 적들로부터 보급을 받고 손을 잡았는지 부산항 인근에 바짝 붙어 포격과 기관포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분명 군함을 갖지 못했을 터인 놈들이 어떻게 전초 포격부터 하고 들어왔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그 진실이 설마 이런 식으로 다가올 줄이야.

    “그 양키 새끼들이 생명을 부지시켜 준 은혜도 모르고……!”

    “김해 연안에서 정박 중인 함정에 연락을 넣긴 했습니다만, 출항 준비를 끝마치고 부산항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쾅쾅! 오갈 곳 없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육중한 하체를 내려쳐 마룻바닥을 지근지근 밟은 그는 콧김을 쉬익쉬익 내뿜었다.

    “대규모 선단이라고 했지. 러시아나 일본에서 지원을 온 게 아니고서야 필시 포항과 울산에서 출발했겠군.”

    “그곳의 조선소와 항구는 흑야 사태 이후에도 어업이나 물자 운반을 위해 운용하고 있었으니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구를 꿀꺽한 그 얌체 같은 놈이 포항과 울산까지 집어삼키고 적당히 만족할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건가?”

    김선후 중장의 예측이 맞았다면 신흥 세력은 대구, 포항, 울산을 집어삼킨 뒤 월성 원전을 확보해서 한동안 공장만 주야장천 가동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몇 번이나 큰 혼란을 빚은 지역들을 안정화시키려면 당분간 몸을 사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 전쟁이란 건 단순히 승리만 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로스가 이미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김해와 양산, 울산 접경지에 대규모 지상 병력을 배치시켜 두면 최소한 몇 개월은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양측이 암묵적인 휴전 협정을 맺은 사이에 김선후 중장은 ‘검은 비’의 개발을 완벽하게 끝내고, 그동안 축적해 온 대량의 물자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상도를 일통할 생각이었다.

    경상도를 일통하고 나면 다음은 대한민국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는 전라도의 괴물 청소 및 세력 확장, 그렇게 남부 지방을 모두 집어삼키면 충청도에서 경기도, 마침내 서울까지 꿀꺽할 생각이었다.

    별것 없는 경상북도와 강원도는 잠시 제쳐 두고, 알짜배기 땅만 취득해서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군벌 왕이 되겠다던 그의 계획은 꽤 그럴싸했다.

    부산항에 기습적인 핵주먹을 얻어맞기 전까지는.

    김해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군함 몇 척과 해안경비대가 지키고 있으니 안심이었고, 지상에는 기갑 병력이 있다. 그리고 부산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USS 퍼니셔호라는 경비견을 풀어 둔 상태였는데…….

    그래서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던 가장 아픈 곳을 하필 이런 방식으로 공략당해 버린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우, 일단 치안 병력들에게 긴급 전투태세를 발령하고 저 반란군 놈들을 싹 쓸어버리라고 해. ‘검은 비’를 1인당 3회분까지 배급해서 내보내면 충분할 거야.”

    “적정 투여량은 1인당 1회입니다. 3회분씩이나 제공했다간 자칫 심각한 부작용이……!”

    “자네는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부산항을 점거당했다는 건, 놈들이 이 김해국제공항까지 금세 쳐들어올 수 있다는 거야!”

    그렇다. 김선후 중장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안전하면서 가장 안락한 장소를 꼽았고, 그 장소가 바로 최신 인프라가 깔려 있는 김해국제공항이었다.

    기본적으로 대교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쉽사리 침투할 수 없는 섬이기도 할뿐더러, 여차하면 헬기를 띄워서 ‘빛이 보이는’ 장소까지 단거리 피난을 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밖에도 공항에 별도로 존재하는 지하 대피소가 있으며, 이곳에 배치된 방위군만 해도 충분히 적들의 상륙을 막을 능력이 있었다.

    다만 그는 자신만의 안락한 궁전이 포탄과 화약으로 난무하는 일이 없기를 원했다.

    놈들이 부산항을 점거했다면 필시 자신이 있는 김해국제공항으로 쾌속 질주를 하고 있을 터, 피라미 목숨이나 다름없는 병사들의 부작용 따윈 알 바 아니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양산과 울산 접경지 주둔부대부터 불러들여! 부산 시내에 침투한 반란군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놈들이 가져온 선박을 모두 확보하라고 해. 그것만 있으면 우리도 뱃길을 따라 제주도나 수도권으로 올라갈 수 있…….”

    콰아아아앙!

    저 멀리서 치솟는 불기둥과 순간적으로 귀를 막게 만드는 폭음에 두 사람은 다급히 자세를 낮췄다.

    “방금 무슨…….”

    김선후 중장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김해공항의 비상 사이렌이 왜애애애애앵 하고 울려 퍼졌다.

    동시에 문을 박차고 들어온 병사 한 명이 다급한 어조로 상황 보고를 했다.

    “김해 연안에서 출항한 군함 1척이 가덕도를 지나쳐 사하구로 순항하던 중 USS 퍼니셔호로부터 포탄 1발을 피격, 유폭으로 인한 굉침을 확인했습니다!”

    “미친!”

    줌왈트급 구축함이 사용하는 전용 155mm 포탄이 대한민국 군함의 초라한 장갑을 뚫고 탄약고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어뢰에 피격당한 것보다 훨씬 더 높게 치솟은 불기둥과 물보라. 그리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폭음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공항과 연안은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앞바다에서 포격을 당했다는 건, 부산항에 있던 USS 퍼니셔호가 슬금슬금 가덕도 방향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음을 의미했으니까.

    심지어 놈들은 최신예 스마트포탄을 가졌기 때문에 GPS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포격하다 보면 대충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애초에 미군에서도 EMP나 통신 방해 공격에 대비해서 개발한 전용 포탄이었다고 했으니까.

    “USS 퍼니셔호의 포격을 우리 방공대가 막을 수 있겠나?”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차라리 미사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레이더부터 수많은 미사일 포대를 가진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겠습니다만, 지금은 GPS가 작동하지 않아 원시적인 방공만 형성한 상태입니다.”

    즉 눈으로 보이는 적기를 대충 방공포로 쏴서 격추하는 정도가 한계라는 의미다. 그럴 거면 저 멋들어진 미사일 포대는 대체 왜 설치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USS 퍼니셔호도 GPS의 도움 없이 공항을 정밀 타격할 수는 없다. 대충 가덕도 인근에 자리 잡고 무지성 포격을 갈기거나, 무력시위를 하는 선에서 그치겠지.

    ‘지금이라도 김해로 건너갈까? 아니면 공항 대피소에 마련해 둔 지휘통제실에 틀어박혀?’

    어느 쪽이든 일장일단이 있다.

    김해로 건너가면 부산 쪽 지휘 체계가 좀 더 복잡해지고 명령 하달과 보고가 늦어진다. 대신 자신의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반대로 김해공항에 남을 경우 지휘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황이 벌어지는 족족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단 USS 퍼니셔호와 부산항에 상륙한 반란군들이 김해공항에 집중포화를 가할 우려가 있다.

    “이미 접경지 주둔부대에 회군 명령이 하달되었으니 못해도 30분이면 지원군이 부산으로 진입할 겁니다! 이쪽의 압도적인 화력과 기동력을 살린다면 시가전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테니, 그 뒤에 USS 퍼니셔호와 교섭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려면 김해공항에 남아야 하잖나! 리스크가 너무 커!”

    “하지만 지금 김해로 대피하시면 지휘 체계가 중간에서 꼬일 우려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검은 비’를 사용한 군의 통제가 힘들어질 수도…….”

    “젠장!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저 멀리서 쿵쿵, 하고 크고 작은 폭음이 들려올 때마다 김선후 중장은 쥐새끼처럼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돼지 같은 몸을 가진 것 치곤 뱀 같은 혀와 새가슴을 가진 게 전부인 그에게 실제 전쟁이란 건 너무나도 큰 자극이었다.

    인맥과 정치질이 아니었다면 올곧은 군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육본 참모차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도 없는 인물이나, 비리와 악습으로 점철된 더러운 세상은 김선후 중장 같은 인물을 ‘인재’로 받아들였다.

    “쓰읍, 일단은 버틴다. 대신 여차하면 김해에서도 즉각 김해공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당 지역 주둔군도 강서구(부산시 강서구) 방면에 배치해.”

    “김해의 방비가 얕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그게 문제인가? 당장 주요 거점이 놈들에게 날아가게 생겼는데! 하다못해 보험은 들어 놔야 할 것 아닌가!”

    수틀리면 부산을 놈들에게 내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김해 주둔군의 비호를 받으며 김해로 물러날 작정이었다.

    그렇게 재정비를 하고 부산에 고립된 놈들을 다시 일거에 휘몰아쳐서 제압한다면 결국 승리하는 건 자신이라고 생각했기에.

    “검은 비는 충분하다. 놈들이 아무리 기습적으로 허를 찔렀다고 해도 전면전으로는 우릴 이길 수 없어.”

    비릿한 조소를 흘린 그는 땅에 떨어져 잘근잘근 짓밟힌 시가렛을 보고 못내 아쉬워했다. 아직 절반도 못 피운 것이었다.

    *    *    *

    “적 전차 선발대가 부산 북부에서 시내로 진입한 것을 확인!”

    “내가 처리하겠다! 일반 보병들은 최대한 서쪽으로 진군시켜! 이 전투의 핵심은 얼마나 빠르게 킹을 잡느냐다!”

    대구, 포항, 울산을 집어삼킬 때는 그들이 가진 군사력을 적당히 소모시키면서 대가리를 쳐 냈지만, 부산에서 작전을 감행하기에 앞서 교전 수칙에서 ‘투항 권고’를 빼 버렸다.

    저쪽도 경상도 최대 규모 군벌인 만큼 작정하고 달려들 것은 당연하고, 애초에 이쪽에서 투항을 권고한다고 한들 진짜 투항할 놈들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제외하고 부산 군벌에 소속된 모든 군인들과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격전을 벌였다.

    콰아아앙!

    “적 박격포다!”

    “건물 안으로 숨어!”

    “엄폐해, 씨발 놈아! 엄폐하라고!”

    대한민국에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될 내전이 펼쳐졌지만, 나는 이 또한 순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한 혈향과 화약연이 뒤섞여서 코가 마비된 상태로 거침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더 깊은 죽음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만다.

    그곳에 널브러진 것은 총탄과 폭탄 파편에 찢겨 나간 누군가의 시체이고, 각자가 자신들만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맞붙은 투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망해 버린 세상, 우리가 가진 힘으로 민간인들을 지켜 주면서 종처럼 부려 먹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잘못됐냐.

    어차피 망해 버린 세상이라면 더더욱 힘없는 민간인들을 지켜 주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 나갈 방법을 강구해야지,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하냐.

    개인의 이득과 쾌락이 더 중요한 이기적인 군벌.

    국가와 국민의 안녕이 더 중요한 이타적인 군벌.

    마치 6.25 전쟁 당시에 이념 대립으로 맞붙은 북한과 대한민국처럼 한민족인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폭탄을 터뜨렸다.

    나는 언제나 죽음의 중심부에 있었고, 최후에는 홀로 살아남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증인이 되었다.

    북한의 깊은 땅굴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아니.”

    건물 옥상을 타고 넘다가 좁은 도로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전차를 향해 뛰어내렸다.

    거치된 기관총을 잡고 있던 사수를 단숨에 집어던진 나는 전차 내부에 수류탄 한 발을 까 넣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전차가 나를 향해 기관총을 겨눈 순간, 건물 사이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뒤이어 수류탄이 터지는 폭음과 함께 앞서가던 전차가 멈추자 뒤따라오던 전차가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수십 톤짜리 금속 덩어리들이 일으킨 추돌 사고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필시 엔진에 문제가 생겼을 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해치를 닫고 들어가려던 사수의 손을 붙잡아 해치를 통째로 뜯어내 버렸다.

    강력한 외골격 파츠 덕분에 해치가 통째로 뜯겨 나가자 사수는 어버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곧 권총을 뽑아 들려 했다.

    이런 상황까지 되어서 항복이 아니라 싸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심의 여지가 없겠다 싶어 군홧발로 안면을 차서 차체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앞의 전차와 마찬가지로 수류탄 하나를 까 넣고 유유히 도로에서 이탈했다.

    “국민들을 지켜야 할 군인이 국민들 앞에 전차를 끌고 나오면 안 되지.”

    미안하지만 여긴 천안문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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