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55화 (155/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62)

    “반갑소, 나는 USS 퍼니셔의 함장을 맡고 있는 존 H 해럴드 대령이오. 비공식 작전(블랙옵스) 중에는 편의성을 위해 일시적이나마 준장에 해당하는 의전을 받을 수 있지. 귀관이 이 선단을 이끄는 책임자요?”

    “박한성입니다. 공식적인 계급은 없고, 신분은 예비군입니다. 발음이 어렵다면 편하게 박(Park)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보급 및 협상을 위해 직접 구축함에 오른 나는 함장이 내민 악수를 받아들이며 통성명을 나눴다.

    “가만, 조금 전에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중장갑보병대 소속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계급이 없다니?”

    “제가 중장갑보병대를 이끄는 건 맞지만 정부의 명령을 따른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

    뒤늦게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존 함장은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을 뺐다.

    “그럼…… 대한민국 정부가 다시 지저 도시에서 나와 지상을 수복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거요?”

    “제 추측이 맞다면 그 어떤 나라도 지저 도시에서 빠져나와 지상을 수복하고 있지는 못할 겁니다.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을 가진 주제에 과할 정도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은 너무 넓죠.”

    하나같이 대한민국보다 인구가 많고 땅은 더럽게 넓은 나라들뿐이다.

    그 말인즉슨 나이트워커들의 피해가 더욱 극심하다는 것이고, 동시에 검은 비가 대지 전역을 촉촉하게 적셨다는 얘기다.

    한국은 나이트워커의 습격도, 검은 비로 인한 타르 덩어리들의 습격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유일무이한 국가였던 셈이다.

    “확실히 대한민국은 지리학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국가지. 육군 병력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고, 좁은 땅에 무려 5천만이 넘는 인구를 품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전국적으로 인프라 공급이 확실하지.”

    “오직 대한민국만이 가능한 기회였습니다. 저는 운 좋게 지저 도시에 입주한 사람이었지만, 지저 도시에 우리가 꿈꾸는 희망찬 미래 따윈 없다는 걸 알고 밖으로 나온 사람 중 하나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지저 도시는 굉장히 안전하고, 미래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들었네만.”

    존 함장이 눈썹을 치켜뜨며 그리 말하자 나는 작게 코웃음 쳤다.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을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었다.

    “확실히 지저 도시에는 인류의 미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각종 물자와 인프라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안정화까지는 못해도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인류가 끈덕지게 살아남기만 한다면 백 년, 이백 년이 걸리더라도 다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겠지요.”

    “그런데 희망찬 미래 따윈 없다니?”

    “지저 세계가 언제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합니까? 애초에 누구를 위해 존재했던 세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쪽 방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연구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고대 지저인들이 만든 세계인 줄 알고 있네.”

    “반대입니다.”

    “……?”

    나는 미래그룹이 확보한 그 영상을 봤기 때문에, 디그러쉬가 지저 도시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알아냈기 때문에, 나이트워커를 만든 하늘의 암흑 물질들이 ‘에너지’를 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지저인들을 피해 지저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각으로부터 12km나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있어야 할 초고열 마그마 따윈 온데간데없고, 차갑게 식어 버린 삭막한 지저 공동만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현대 인류사에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로 충격적인 대분화(화산 폭발)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겨우 이해했다.

    “정체를 알 순 없지만, 고대인들보다 훨씬 더 전에 지저 세계에 살고 있던 놈들이 에너지로 전부 써먹은 겁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열에너지는 지구 외핵까지 파고들면 차고 넘칠 정도로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래서야 지구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밖에 더 되겠습니까. 꿩 대신 닭으로 햇빛을 갈구하기 위해 지상으로 튀어나온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대단히 유감스럽네만,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이군. 아니, 망상이나 다름없어. 귀관이 말하는 대로라면 하늘을 뒤덮고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저것들이…… 전부 지저인이라는 뜻 아닌가?”

    “저는 그 증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믿을 수 없네.”

    선단에서 구축함으로 보급을 한창 진행하느라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함장실에서 독대를 이어 나갔다.

    “나는 태평양 7함대 소속으로서 일본 도쿄 아래에 건설 중이던 지저 도시에 들어간 적이 있네. 표면적으로는 미·일 동맹을 빛내는 정치 행사에 불과했지만, 그때는 저런 괴물들과 마주한 적이 없었네.”

    “단순히 운이 좋으셨거나, 우리의 선조 되시는 고대인들의 안배 덕분이었다고 봐야죠.”

    “그 ‘안배’라는 건 뭔가?”

    “지구의 핵에서부터 끓어 넘치는 지열 에너지나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광 에너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 동력 기관.”

    “헛소리!”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존 함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실제로 지저인들을 무한 동력 기관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무한에 가까운 시간의 감옥 속에 가둬 둔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테니까.

    고대인이 지저인이었던 게 아니다.

    고대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고대 문명이었다. 46억 년에 가까운 지구 역사상 ‘한 번쯤은’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초고도 문명.

    그들은 우리처럼 땅굴을 파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지저인들에게 기습을 당했고, 지저인들이 원하는 것이 에너지라는 걸 눈치챘으리라. 그다음은?

    어떤 원리인지, 어떤 소재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무한 동력 기관을 지저 공동 깊은 곳에 감옥과 함께 만들어 지저인들을 도로 가두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류 역사상 이런 사태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운석 충돌이나 대빙하기 같은 그럴듯한 멸종 시나리오는 있었을지언정, 땅을 뚫고 튀어나온 암흑 물질이 지구 전역을 뒤덮어 지구상의 생명체를 멸종시키는 시나리오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 인류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깊숙한 지하에 진실이 감춰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인류는 온 역사를 뒤져 봐도 12km 아래로 땅을 판 기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땅을 팔 이유도 없고, 그걸 가능케 해 줄 기술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한 번,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디그러쉬라는 정체 불명의 기술 기업의 등장과 함께 인류는 우주가 아니라 땅 아래로 개척의 발걸음을 돌렸다.

    지구가 모든 수명을 허비하고 완전히 죽은 별이 되기 전까지 절대로 밝혀질 일이 없었던 12km 아래의 비밀이, 다른 누구도 아닌 현대 인류에 의해 밝혀지고 세간에 공개된 것이다.

    까마득한 초고대와 현대가 시간의 뒤틀림을 무시하고 서로를 연결해 버렸다.

    “10년 전 갑작스럽게 등장한 디그러쉬, 수많은 국가들이 앞다투어 지저 도시 프로젝트를 활성화, 지구 각지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채굴에 의한 지각 변동 및 불안정화, 속출하는 싱크홀 사태. 그리고 흑야 사태 당일에 싱크홀을 뚫고 하늘로 치솟은 대량의 암흑 물질. 이래도 제가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함장님, 현재 보급 작업이 절차에 따라 끝났음을…….”

    “시급히 점검을 끝내고 활동이 가능한 수병들에게 전투 태세를 준비시키도록.”

    함장은 때마침 함장실에 노크하며 보급이 끝났음을 알리러 온 부관을 돌려보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자네의 말엔 두 가지 모순이 있네. 첫째, 정말로 무한 동력 기관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고대인은 지저인을 쓰러뜨리지 못했나? 그 정도로 대단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면 능히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집트 문명을 아실 겁니다. 이집트는 당대 모든 국가들 중 가장 발전되어 있었으며, 가장 풍족하고, 가장 강대했습니다. 수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싸움이 될 만한 적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막상 전쟁이 닥쳐왔을 때 너무나도 허무하게 패배했습니다. 수천 년간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전쟁을 대비할 필요가 없어서 당해 버린 겁니다.”

    “즉 초고도 문명을 이룩한 고대인들도 고대 이집트처럼 전쟁을 모르고 살았기에 기습을 허용해서 패배했다?”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인간은 나약해집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든 미개한 문명이든 똑같지요.”

    “좋아, 그 부분은 그렇게 넘어가자고. 두 번째 모순은 무한 동력 기관의 존재일세. 그게 사실이라면 지저인들은 바깥으로 빠져나올 게 아니라 오히려 지저에 처박혀 있어야 정상 아닌가?”

    “무한 동력 기관은 매우 제한적인 장소, 감옥에 존재했습니다. 모든 지저인들을 수감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지저인들을 감옥 주변으로 긁어모아 지저 세계에 가두게 하는 용도로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지상과 지저 세계를 연결하면서 에너지에 굶주린 지저인들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온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덧붙이며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열 에너지에 만족하지 못한 놈들이 다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작은 편린을 떼어 내서 만든 나이트워커들로 우리를 공격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진정한 에너지의 정수인 무한 동력 기관을 노리는 겁니다.”

    그 증거로 얼마 전에 검은 비가 내렸다.

    태양열 에너지로 충분했다면 검은 비는 영영 내리지 않고 놈들은 안락하게 지구 대기권을 덮은 채 일광욕이나 즐기고 있었겠지.

    하지만 결국 놈들은 무한 동력 기관을 원했다. 이미 성미가 급하고 욕심에 눈이 먼 놈들이 먼저 지상으로 검은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으니, 다음은 검은 폭우, 검은 폭설, 검은 우박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럼 더더욱 말이 안 되는군. 지저 도시에서 평생을 숨어 지내도 모자랄 판국에 어째서 지저 도시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죽음이 만연한 지상으로 나왔단 말인가?”

    “놈들이 다시 지저 세계로 내려갈 텐데 마지막까지 지저 도시에 남아 있는 게 더 미친 짓 아닙니까?”

    그 대단한 미래그룹이 어째서 나 같은 일개 밀수범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지금 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든 채 필사적으로 지저 도시를 부흥시켜도 모자라다.

    하지만 지저 도시를 부흥시키려는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미래그룹은 필요최저한의 자원과 인재만 사용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마치 나처럼.

    그날 지저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미래그룹과 일개 개인에 불과한 박한성의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의미다.

    “제가 지금 지상을 수복하고 안정화시키려는 이유가 그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언젠가…… 아니. 머지않아 닥쳐올 미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지상에 있든 지저에 있든.”

    그것은 바다 한복판에 둥둥 떠 있는 이 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배의 손상 정도나 수병들의 상태를 보건대 검은 비가 쏟아져 내린 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모양이다.

    그 공포를 알고 있는 존 함장이라면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겠지.

    “심증만으로는 귀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물증이 필요하네. 지저인의 근원이나, 놈들의 생태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네. 정말로 무한 동력 기관이 존재하는지, 지저인들이 그것에 다시 이끌려 지상으로 쏟아져 내릴지 확신할 수 있는 물증 말일세.”

    “저를 도와주시면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피곤하기는 엄청 피곤하고,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아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씀하고 싶어질 테지만요.”

    “상관없네. 모든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면 내 조국과 국민들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역시 애국심이 뼛속까지 새겨진 미군답다고 할까.

    나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자신의 신념을 완전히 꺾지 않는 형태로 아슬아슬하게 믿어 준 존 함장에게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했다.

    사실 그에게는 내가 중장갑수색대라는 사실 그리고 중장갑수색대인 우리가 가장 먼저 에너지를 갈구하는 지저인의 준동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얘기는 뺐다.

    북한 땅 아래에서 죽어 간 내 전우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자들은 따로 존재하니까. 그 문제는 온전히 나 스스로 직접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조금 알아보니 그동안 부산과 김해를 장악한 김선후 중장, 대한민국 육군사령부 참모차장에게 꽤나 당한 게 많으시더군요. 지금까지 쌓인 숙변을 속 시원하게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도 자네 계획에 동참해 달라는 뜻이군. 단순히 함께하는 것 이상으로 리스크를 나눠서 짊어져 달라고.”

    “거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럴 리가. 거시적으로 보면 내 조국과 국민들을 위한 일이기도 한데. 본 함에서 사용하는 전용 155mm 스마트포탄은 GPS의 도움 없이도 사거리 내, 착탄 범위에서 가장 가까운 적 장갑차량을 타격하게끔 설정되어 있네. 어차피 GPS가 먹통이 되면서 아군을 구분 짓는 연결망도 무력화되었으니 마음 놓고 타격할 수 있어.”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2개월이 넘도록 바다에만 계셨으니 슬슬 육지도 밟아 보셔야죠.”

    잠시 후 USS 퍼니셔의 보급과 작전 협의를 끝마친 우리는 해상의 어둠을 등에 업고 부산항으로 올곧게 나아갔다.

    우리가 놈들에게 발각당하기 직전, USS 퍼니셔에서 한발 앞서 발포한 스마트포탄이 항구에 배치된 포대와 기관포 진지를 박살 냈다.

    콰과광! 퍼엉!

    유폭이 일어나 불기둥이 치솟고, 칠흑 같은 어둠뿐인 해상 경계를 대충 하고 있던 군인들이 가장 먼저 화마에 휩싸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체인을 걸어 연결한 중소형 선박들이 닥치는 대로 부산항에 밀어닥쳤다.

    내게 빚을 갚아야 하는 군인들과 쌓인 게 많은 예비군 아재들이 저마다 총을 꼬나쥐고 상륙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장면을 미래의 교과서에 꼭 등재하기 위해 멋들어진 셀카 한 장을 찍고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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