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52화 (152/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59)

    순수한 악의

    “브라보는 항상 알파보다 앞서 나간다…… 저 구호는 설마!”

    “뭔가 알고 계십니까, 사단장님?”

    참모장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민세 소장은 CCTV 화면을 바라보다 말고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나 자신만만해하던 역전 노장의 기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곳에 남은 것은 다가올 죽음을 예견하고 지레 겁을 먹은 한 명의 겁쟁이에 불과했다.

    사나운 들개가 순식간에 꼬리를 내린 것 같은 모습에 주변의 장교나 병사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이곳에서 저 구호를 아는 건 이민세 소장뿐이었으니까.

    그래도 명색이 투스타라 육본 출신이기도 하고, 급이 맞는 장성들과 함께 단톡방을 파서 구역질 나는 사교의 장을 가지기도 했던 그다.

    그렇게 서로 추켜세워 주고, 또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는 늙다리 장성들 사이에서도 종종 엠바고가 걸린 위험한 정보들이 오가곤 했다.

    예를 들어 군부대 인근의 땅굴을 조사하겠답시고 불법 침입을 해서 한바탕 소요 사태를 일으킨 이상한 종교단체라던가, 사실 중장갑보병의 프로토타입으로 추정되는 유령부대가 있다던가, 그 유령부대를 가리키는 은밀한 호칭이 ‘알파’와 ‘브라보’라던가.

    개중에서도 당연히 인기 있는 주제는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이 기를 쓰고 정체를 밝혀내려 했던 어느 유령부대의 이야기였다.

    극소수의 최정예 특수부대와 훈련을 할 때 잠깐 교류하는 것 빼면 내외로 일체 정보를 흘리지 않는 이상한 부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국정원처럼 대통령의 직속부대라 일반적인 군대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나마 공개된 정보들은 그들과 교류한 특수부대원들의 증언을 통해 알아낸 것이 전부였다.

    1. 전 부대원이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한다.

    2. 모든 부대원은 병사 계급이며 그들을 지휘하는 부사관과 장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3. 그들의 육체 능력은 일반적인 특전사 수준이지만 정신력은 어지간한 해외 공작원보다 강하다.

    4. 알파는 중장갑타격대를 지칭하는 은어이며, 그들은 과할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5. 브라보는 중장갑수색대를 지칭하는 은어이며, 그들은 과할 정도로 독기를 품고 작전에 임한다.

    6. 브라보는 항상 알파보다 앞서나간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도 하며, 브라보의 유일한 구호이기도 하다.

    믿어지는가? 군대의 톱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기를 쓰고 밝혀낸 정보가 고작 저것들뿐이라는 사실이?

    대통령과 국정원이 나서서 완벽하게 정보를 차단했다고 한들, 그들의 정확한 행적이나 소속부대원들의 신상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장성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말뼈다귀 같은 놈이 대뜸 노예들을 집결시켜 반란을 주도하고, 당당하게 그들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화면 너머로 그 구호를 내뱉고 있다.

    ‘화면상으로 잠깐 보인 외모의 액면가는 잘 쳐줘도 20대 후반, 아마 20대 중반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군용 엑소스켈레톤의 일부 파츠만 떼어 내서 착용하고 있어.’

    군용 엑소스켈레톤이 보급된 부대는 매우 적다. 우선 수방사와 몇몇 최전방 부대 그리고 예의 알파와 브라보가 전부다.

    후방 31보병사단의 장을 맡고 있는 이민세 소장은 대규모 국군훈련 및 군용 엑소스켈레톤 시연회를 제외하면 실제로 군용 엑소스켈레톤을 본 적도 별로 없다.

    그 시점에서 이민세 소장은 확신했다. 지금 벙커 입구 앞에 서 있는 놈은 틀림없이 그 유령부대 출신이라고.

    그 유령부대의 악명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상황이 기이할 정도로 완벽하게 설명되는 게 유머라면 유머다. 증거나 증인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이 상황만으로도 납득을 해 버리는 것이다.

    “……지원 병력이 회군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마지막 보고는 2분 전이었으며……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다는 보고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현재 통신 두절 상태입니다.”

    “글렀군. 완전히 당했어.”

    상대가 냅다 벙커를 부수지 않고 저렇게 느긋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쪽에서 본대 일부를 회군시켜 자신들을 쌈 싸 먹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매복으로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포항은 도시이고, 도심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시가전이다. 그리고 시가전은 보병 대 보병 싸움일 경우 무조건 방어자가 유리하다. 수많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새에 소수 병력만 배치시켜도 치명적인 기습이 가능하니까.

    ‘내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었다. 경비 병력을 이곳으로 집중시킬 게 아니라 분산 거점과 경비 병력을 총동원해서 시가지 게릴라전을 걸었어야 했어.’

    오만했기 때문에 오판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이민세 소장은 맥빠진 얼굴로 탁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하고 전 재산을 올인했다가 한 끗 차이로 허무하게 져 버린 도박 중독자처럼 보였다.

    “사단장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곳이라면 안전합니다. 본대가 회군하기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명령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간청에 이민세 소장은 쓰디쓴 소주를 들이켠 것처럼 냉소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포기해라.”

    “…….”

    “…….”

    “…….”

    삽시간에 벙커 내부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고 장교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도 상황을 모르는 병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민세 소장의 생각이 바뀔 일은 없었다.

    “밖에 서 있는 저놈, 처음부터 우리와 대등하게 싸울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철저하게 능욕하고 고통만을 주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짠 놈이다. 북한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바깥에 있는 저놈이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입니까?”

    “대단하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참모장은 군인과 군대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군인은 개인이고 군대는 집단이니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결국 집단의 힘에 휩쓸려 사라지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저놈은 개인의 힘으로 집단을 와해시킬 능력이 있는 놈이야. 단순한 무력이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걸 가능케 할 수 있는 머리와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배짱, 그걸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의지까지 있다는 거야.”

    참모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민세 소장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이민세 소장도 주워들은 얘기가 전부이니 전부 사실이라고 우길 수는 없었지만, 진짜 중요한 부분은 놈이 ‘브라보’ 소속으로 추정된다는 점이었다.

    군 장성들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브라보가 언급된 것은 굉장히 최근의 일이었다. 그 브라보가 정부 주도하에 완전히 해체된 것과 동시에 부대원 모두 ‘처리’되었다고 했으니까.

    그런 소식이 퍼진 지 불과 수개월 만에 흑야 사태가 발발했고 끝내 알파에 대한 정보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브라보가 이 세상에서 먼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유령부대가 사라졌다면 대체 그 유령부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가 어떻게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구천을 떠돌던 유령이 망령으로 거듭나기라도 했다는 건가?

    “……어차피 우린 죽은 목숨이다. 벙커를 개방해라.”

    지금 벙커를 개방하지 않으면 상대는 더 악랄한 수단으로 자신들이 벙커 문을 개방할 수밖에 없게끔 압박하겠지.

    예를 들어 환풍구를 통해 치명적인 유해 가스를 역류시킨다든가, 무식하게 견인포를 끌고 와서 냅다 발포해 버린다든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반드시 말려 죽이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러니까 포기한다.

    평범한 인간은 저 순수한 악의의 결정체에 대항할 수 없으니까.

    *    *    *

    내가 이민세 소장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벙커가 서서히 개방되었다.

    나는 포로들을 고기 방패로 앞세운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방이 기습적으로 총을 갈기거나 수류탄을 내던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저항할 의도였다면 처음부터 벙커를 개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예상대로 개방된 벙커 내부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환한 조명 아래에서 전원 무장을 해제하고 양팔을 들어 올린 이민세 소장 패거리였다.

    “대구나 울산 대가리들에 비하면 좀 더 유능한 인물이라 생각보다 오래 버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항복하는군.”

    “그 멍청이들과 비교하면 섭하지. 이래 봬도 포항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이곳을 거점화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민세 소장은 이미 진이 다 빠진 얼굴로 체념한 상태였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벙커를 개방하고 무장을 해제한 것이다.

    “그 부분은 인정해.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온 타 지역 부대임에도 가장 먼저 포항 공단을 돌려서 미래를 대비한 건 당신이 최초였을 테니까. 아마 참모차장이 부산과 김해 일대를 장악하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울산을 먹고 부산까지 내려갈 생각이었겠지?”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 그 말과 이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구는 벌써 처리한 모양이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는 길목의 제1 관문이 대구였으니까. 무엇보다 거긴 민간인 취급을 워낙 개같이 해서 시급히 처리했지.”

    이민세 소장은 한심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말을 하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포항은 대구에서 들여온 민간인들을 노동자로 취급하는 대신 대우만큼은 섭섭지 않게 했다. 이 미쳐 버린 세계에서 안전한 쉼터와 최소한의 식사는 보장했다는 뜻이지.”

    “하지만 거기에 인간적인 대우는 없었잖아.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했던 대구나, 사람을 기계 부품으로 취급했던 너희나 별반 다를 것 없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해야 할 군인의 의무를 가장 먼저,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저버린 건 다름 아닌 당신네들이라고.”

    “국가와 국민의 수호? 의무? 그딴 건 정부가 국민 대다수를 버리고 지저 도시로 도망쳤을 때부터 의미를 상실했다. 우린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야.”

    “아니, ‘너희만’ 살고 싶었을 뿐이겠지. 실제로 민간인들이 추위와 배고픔, 고된 노동으로 죽어 나가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잖아? 내 뒤에 서 있는 노동자들이 모두 증인인데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한정된 자원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무능함을 그런 식으로 미화하진 말자고. 네놈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제한적인 자원을 가지고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버티며 조화와 단결을 이끌어 낸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까.”

    나이트워커가 차고 넘치는 서울 한복판에서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민간인 수천 명을 챙기고, 군인과 경찰의 협력 관계를 이끌어 내서 미래를 도모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또한 눈앞의 탐욕과 오만에 젖은 한 남자처럼 자랑스러운 별을 가슴팍에 달고 있는 남자였으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직접 책임질 줄 아는 이 시대의 진정한 사나이였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은 점만큼은 칭찬해 주지. 만약 벙커 안에 처박혀서 결사 항전을 외쳤다면 이 백화점의 주요 기둥과 지반을 폭파시켜서 네놈들을 생매장시킬 생각이었거든.”

    “……!”

    “설령 벙커가 건물 붕괴로부터 너희를 보호해 줬다고 한들,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하 감옥 속에서 점점 줄어 가는 식량과 산소를 느끼며 서서히 말라 죽었을 테지. 한편으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도 해.”

    내가 손짓을 하자 뒤쪽에서 흉흉한 시선을 보내고 있던 예비군 아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서 노끈으로 그들을 포박했다.

    “이 사람들은 너희 때문에 세금을 낸 보람도 없이 고통받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야 했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죽여 준다는 것에 동의해 줬으니 고마워하라고.”

    나는 포항 시내에 진입하기 전부터 이민세 소장 패거리가 항복하지 않고 결사 항전을 외치면 망설임 없이 ‘학살’과 ‘고문’을 해도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깔끔하게 항복하고 순순히 포항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면 공개 처형으로 만족하자는 말도 했었다. 다행히 그들은 반란의 단초를 마련해 준 나를 존중해 어떻게든 합의해 주었다.

    “윗대가리는 전부 끌고 나가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공개 처형 하시고, 병사들은 약속했던 대로 제가 모두 포로로 삼겠습니다.”

    이로써 대구와 포항이 내 손에 떨어졌고, 울산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31보병사단에 의해 자동적으로 멸망. 이제 남은 것은 김해·부산을 통합한 최대 규모의 군벌인 참모차장 하나뿐이었다.

    ‘부산과 교류하고 남부 지방의 정보를 알아내는 게 당초의 목적이었는데, 어느새 부산까지 점령해서 남부 지방을 통합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뀔 줄이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10초 앞 미래는 알 수 없다더니.

    삼천포로 빠져도 한참은 빠진 내 행보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이 기세라면 남부 지방 통합은 어떻게든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