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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1화 (15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58)

    “자, 고생하시는 방패수 분들을 위해서 영혼 보내기 합시다! 영! 차! 영! 차!”

    “영!”

    “차!”

    “영!”

    “차!”

    “영차고 지랄이고, 우리 다 ✕된 것 같습니다만…….”

    어느 예비군 아재의 한탄 섞인 말에 나는 웃으며 경기관총을 들어 올렸다.

    타탕! 피잉! 쒸이이이익, 깡!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합금강판 방패를 들고 있는 산업용 엑소스켈레톤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길을 열고 있고, 적들은 필사적으로 화력을 쏟아부어 우리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놈들이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나온다는 건 궁지에 몰렸다는 뜻입니다. 주요 병력을 죄다 전방으로 보낸 탓에 복귀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병력이 회군하기 전까지 우리 발목을 붙잡아 두려는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렇게 방어선을 구축해서 틀어박혀 버리면 뚫기 어렵지 않습니까. 우린 폭탄이나 전차도 없는데…….”

    “대신 제가 있잖아요.”

    “……?”

    “제가 설마 반란을 주도해 놓고 무책임하게 여러분들을 고기 방패로 쓰려 했겠습니까? 당연히 반란을 주도한 제가 뒷일을 책임져야 합당하죠.”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가릴 만한 합금강판 하나를 든 채 측면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산업용 엑소스켈레톤들이 세운 이동식 방벽 대열에서 불시에 뛰쳐나온 내가 신경 쓰였는지 탄환 수십 발이 우수수 쏟아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산발적인 견제사격이었을 뿐, 실제로 내 몸에 닿은 탄환은 한 발도 없었다. 간혹 지면과 부딪친 도비탄이 합금강판을 두들겼으나 마찬가지로 피해는 전무했다.

    ‘우리를 지휘관이 없는 오합지졸 반란군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어쩌다 공장 노예들이 기회를 잡아 공단을 점거하고 무장해서 우르르 뛰쳐나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두더지처럼 임시 바리케이드나 건물 속에 처박혀서 방어만 할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 내가 이민세 소장이었다면 반란군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는 즉시 별동대를 꾸려서 도심 곳곳에 매복시켰을 것이다. 시가지 특성상 사람이 숨을 곳이 차고 넘치는데, 병력을 한 곳에만 집중시켜 방어에 들어가는 건 너무 미련한 짓이다.

    하지만 이민세 소장은 자신의 안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에 도심에 흩어져 있던 경비 병력을 긁어모아 ‘니가 들어와’ 식의 무한 방어에 나섰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안전한 도심 내부라고 방심하면 안 되지.”

    가장 먼저 놈들이 최중요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롯데백화점 포항점은 건물 외형이 굉장히 독특한 구조였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1~2층에 집중된 데다, 그 외의 창문은 건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일자형 구조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

    해서, 놈들은 1층과 입구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집중적으로 쌓아서 철통 방어 굳히기에 들어갔는데, 이는 서울에 있는 롯데호텔과 다르게 매우 치명적인 구조였다.

    ‘방어자 입장에서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점, 고지대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방어해야 할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 모든 게 패착뿐이군.’

    이 정도면 아예 패배하고 싶어서 백화점에 기어 들어갔다는 게 학계 정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물론 나는 놈들의 멍청함에 그리고 꽤 유능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안위만 챙기느라 두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이민세 소장의 이기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콰직! 콰직!

    놈들의 방비가 허술해진 특정 구역을 돌파한 다음 1층이나 2층으로 진입하지 않고 곧장 외벽에 달려들어 양 주먹을 박아 넣었다.

    무식할 정도로 강력한 악력과 근력 증강 효과를 보이는 외골격 파츠 덕분에 나는 거미처럼 건물 외벽을 오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한 점 없이 움직이고 있던 내가 무식하게 합금강판을 내세우며 총포화에 휩쓸리자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애초에 놈들은 건물 밖으로 나올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내가 건물 외벽에 들러붙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할 수 없었지만.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소음도 총성이나 비명 소리에 비하면 개미가 기어가는 것보다 작은 소음이었다.

    그렇게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른 내가 무엇을 했는고 하니,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해 주는 투명한 강화통유리로 구성된 구름다리에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와장창!

    어느 고명한 공학자가 설계한 매우 튼튼한 구름다리도 외골격 파츠를 이용한 공중 내려찍기는 버틸 수 없었는지 결국 부서져 내렸다.

    커다란 구멍을 뚫고 내부에 진입한 나는 유리 조각을 탁탁 털어 냈다. 원래 내 미래는 평범한 경비업체 직원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스턴트맨 노릇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저쪽이다!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어!”

    “몇 명 따라와! 내부에 침입자를 들이지 말라는 사단장님 지시가 있으셨다!”

    “지원 병력 도착까지 얼마 안 남았어!”

    그래도 역시 이번 건은 좀 요란했는지 몇몇 군인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백화점 내부는 놈들이 쉽게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전기를 끊어 버린 상태였다. 외부에서 안쪽에 숨어 있는 자신들을 노리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꾀를 낸 것이다.

    하지만 이왕 은밀성을 유지할 거라면 좀 더 조용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움직였어야지. 기도비닉의 기본도 안 된 놈들 같으니.

    나는 익숙하게 패션 매장으로 기어 들어가 마네킹 사이에 몸을 숨기고 경기관총의 삼각대를 펼쳐서 거치했다.

    일단은 신원 불명의 침입자를 포위해서 말살하겠다는 뛰어난(?) 계획이라도 세웠던 것일까? 각각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 출입구가 열리며 몇 명의 군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곳은 외부 창문이 없기 때문에 놈들도 안심하고 손전등 불빛을 휙휙 비추며 침입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코디가 끝난 마네킹 사이에서 숨죽인 채 놈들을 사선에 넣고 있었다.

    적을 발견했다고 냅다 방아쇠부터 당기는 건 삼류나 하는 짓이다. 적들의 의도를 파악한 다음 방아쇠를 당기는 건 이류나 하는 짓이고.

    진정한 일류라면 적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고 자신이 가진 무기로 완벽한 살상이 가능한지, 혹은 도주가 가능한지의 여부를 계산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법이다.

    필연적으로 위험한 적지에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저격수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인내심인 것처럼.

    나는 경기관총의 방아쇠에 아직 검지를 걸지도 않았다. 몸이 조금만 움찔거려도 실수로 방아쇠를 당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젠장! 벌써 다른 곳으로 몸을 뺐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우리와 마주치지 않고서 몸을 빼려면 반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반대로 이동한 흔적이 없어!”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 어느 장교가 흩뿌려진 유리 조각과 발자국을 추적해 본답시고 자세를 낮춘 순간.

    나는 천천히 발자국의 위치가 패션 매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장교의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저쪽에 숨어 있을……!”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장교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잠시 한자리에 모인 놈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탄환 세례가 쏟아지고, 한국군 특유의 병신 같은 방탄복과 헬멧은 착용자를 조금도 보호해 주지 못했다.

    탄피가 하나 튀어 오를 때마다 누군가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으며, 새된 비명조차 지옥의 행진곡 같은 총성에 파묻혀 버렸다.

    매끄러운 매장 바닥에는 치명적인 기습을 허용해 버린 멍청이들의 잔해만 남았다.

    군인 개개인이 직접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환경과 지휘 체계를 구성했다면 이것보단 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 새끼 오리 떼처럼 장교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특유의 지휘 체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안 좋은 결말로 이어졌을 뿐이다.

    자주, 자립 그리고 자유.

    낡고 망가진 시스템이 조직 전체를 경직시킨다는 것도 모르고 매번 문제를 뒤로 미룬 탓에 벌어진 참사다.

    “정예 강군을 목표로 훈련시킬 거라면 제대로 훈련을 시켰어야지.”

    이곳에서도 드러나는 윗대가리들의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 에스컬레이터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총성이 내부에서 울려 퍼진 이상 백화점 1층과 2층에서 주로 방어하고 있던 놈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을 터. 나는 번개처럼 움직여서 돌풍처럼 휘몰아치기 위해 거침없이 움직였다.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으악! 뒤에서 왜……!”

    “침입자를 잡으러 간 생포조가 당한 거야!”

    “건물 내부에 적이 침투했다! 반복한다! 건물 내부에 적이 침투했다!”

    “야! 화력 집중시켜! 저놈들이 밀고 들어오잖아!”

    “소총이나 경기관총으로는 저 합금강판을 못 뚫는단 말입니다! 수류탄도 진즉에 다 써서 더 이상 수량이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쏴! 밖에 있는 저 폭도들까지 침입을 허용하면 그땐 진짜 다 끝장나는 거라고!”

    “지하에 계신 사단장님께 보고해! 이대로 가면…… 컥!”

    어디선가 날아든 눈먼 탄환에 그대로 머리통이 휙 젖혀진 부사관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대신 그 옆에 있던 통신병이 유선망을 이용해 지하 벙커에 자리 잡고 있는 사단장 일행에게 보고를 넣었다.

    “여기는 1차 방어선! 현재 적의 포화가 거세고 적 일부가 건물 내부에 침투했음을 확인! 일부 병력 지원 요망!”

    사실상 의미 없는 요청이었지만 지하에 있는 군인들까지 다 같이 총 들고 나와서 함께 싸워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막 던진 통신병이었다.

    곧 그조차도 통신 장비를 꿰뚫어 버린 탄환이 가슴에 박혀 절명해 버렸지만.

    “저 새끼 뭐야! 막아!”

    “어떤 미친 새끼가 경기관총을 저따위로…… 씨발, 쉴 틈을 안 주네!”

    타타타타타타!

    나는 한 손으로 경기관총을 든 채 정신없이 매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탄환을 미친 듯이 흩뿌렸다.

    그 모습이 꼭 헤어드라이어 크기의 작은 기관단총을 들고 난사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작 들고 있는 건 경기관총이라 제압력이 차원이 달랐다.

    9mm 탄환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5.56mm 고속철갑탄 200발 드럼탄창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신소재 합금이 적용된 특수 총열이라 다소의 과열 정도는 버틸 수 있었기에 가능한 미친 짓이기도 했다.

    뒷광고를 할 필요가 없는 우월한 성능에 일본과 중국은 경악! 미국은 노심초사! 2030년 마지막을 장식하는 K-경기관총의 우수성이 세계 무대에서 입증되다!

    ‘미래테크 주식 무지성 풀매수 간다!’

    지금이 발목인 거 모르는 개미는 차도식파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 총이 복사가 된다고!

    “마, 막아야…… 끄흑!”

    “폭도들이 1층 입구에 접근! 산업용 엑소스켈레톤으로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진입 시도 중입니다!”

    “왜 지원을 안 해 주는데, 씨발!”

    “항복! 그냥 항복해!”

    내가 내부에서부터 혼란을 야기하자 철통같았던 방어는 어느새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그 사이에서 패닉에 빠진 군인들이 제멋대로 위치를 이탈하거나 양손을 들어 올리고 항복을 외쳐 댔다.

    하지만 이미 전장 특유의 투지와 분노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뭣 모르고 튀어나간 군인들은 그대로 사살, 항복을 외치던 군인의 목소리도 총성에 묻혀 함께 사살될 뿐이었다.

    인신매매로 팔려 오거나, 기존에 포항에서 숨어 지내던 민간인들 대부분이 공장이나 군대에 징집되어 노예 취급을 받아 왔으니, 그들의 오갈 곳 없는 광기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건 당연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기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마침내 소수의 포로만 확보하여 백화점 지하로 향했다.

    지원군이 와도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나는 사로잡은 포로들을 벙커 입구까지 내세웠다.

    본래 아파트나 지하철, 학교처럼 대형 마트나 백화점도 지하층을 임시 대피소 형태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31보병사단은 추가 공사를 해서 아예 지하 벙커로 개조한 듯했다.

    나는 지하층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향해 커다란 도화지 한 장을 펼쳐서 손전등 불빛으로 비춰 주었다.

    ―브라보는 항상 알파보다 앞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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