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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50화 (150/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57)

    공장 주변 정리는 끝났다.

    일시적인 휴식 시간인 것을 가장해 공장 외부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군인들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내는 한편, 바깥에 세워 두었던 전술 지휘 차량을 공장 안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100여 명의 건장한 남성들에게 권총과 소총, 탄약까지 두루두루 분배했다. 어디서 이런 것들을 가져왔느냐고? 당연히 전술 지휘 차량으로 가져왔지.

    50보병사단에 있던 물량을 궤짝이란 궤짝에 꾹꾹 눌러 담아서 전술 지휘 차량에 한가득 채운 다음, 페이크 뇌물로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을 속인 것이다.

    “저, 이건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저한테 존댓말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이 지역 군벌 소속이 아니거든요. 최근에 서울에서 내려온 수방사 예하 임시 파견대입니다.”

    나는 갑갑했던 베레모를 집어 던지고 조수석 아래에 숨겨 두었던 외골격 파츠를 꺼내서 장착했다.

    신소재 장갑을 덧댄 외골격 파츠는 주먹 한 방으로 사람을 터뜨리고, 람보처럼 반동 없이 한 손으로 총을 쏴 재낄 수도 있는 물건이라 금세 주목받았다.

    산업용 외골격 파츠야 공장이 즐비한 이곳 공단에서도 흔한 물건이지만, 군용 외골격 파츠는 엑소스켈레톤과 함께 민간인이 가질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업용 엑소스켈레톤 기사이신 분들은 합금강판 최대한 두꺼운 걸로 들어 주십시오. 방탄복이나 헬멧까지 준비할 수는 없어서 만일의 경우에 총탄을 막기 힘듭니다.”

    “자, 잠깐!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 줘요, 젊은 친구!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보면 알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이곳 군벌에게 평생 노예처럼 부려 먹히다 죽는 비참한 최후를 바꿔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다들 군대도 나오셨겠다, 지난날 동안 당한 것도 많겠다, 군벌 상대로 발악이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누군가는 옳다며 크게 동조하거나 함께 분노했고, 나머지 몇몇은 표정이 침울해졌다.

    표정이 침울해진 자들은 대부분 지켜야 할 뭔가가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라도 꺼질 위험이 있는 소중한 가정 같은 것들.

    “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시는지 이해합니다. 군벌 상대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시겠죠. 평상시라면 여러분 모두가 중무장을 했어도 반란 같은 건 금세 진압당했을 겁니다. 평상시라면 말이죠.”

    나는 사무실에서 군용 무전기 하나를 가져와 그들 앞에 놓고 주파수를 맞췄다. 곧 다급한 목소리로 상급자에게 보고나 명령 하달을 요구하는 어느 병사의 목소리나 총성이 크게 새어 나왔다.

    시끄럽고 외부 정보까지 통제당하는 공장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당연히 외부 사정을 모를 수밖에.

    나는 공장의 화물 전용 출입구를 개방해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폭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꽤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 같지만 사실 그리 멀지도 않다.

    포항과 울산의 중앙에 위치한 원전을 탈취하기 위해서 포항과 울산 군벌이 치열한 혈전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즉 지금은 포항의 주요 병력이 전방인 경주로 빠져나갔다는 뜻.

    반대로 말하면 후방에 남겨진 것은 최소한의 경비 병력과 명령질만 하는 군벌의 핵심 장교들뿐이라는 얘기다.

    “지금 포항은 울산과 혈전을 벌이느라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러분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또 다른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나아가서 여러분들의 손으로 포항을 안정화시켜 사람답게 살아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마지막 한마디가 기폭제가 되었던 것일까.

    머뭇거리고 있던 사람들도 이윽고 생기 없는 눈에 시뻘건 투지를 불태우며 총과 탄약을 받아 갔다. 산업용 엑소스켈레톤 면허증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부탁한 대로 총탄에도 뚫리지 않을 합금강판 방패를 즉석에서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 군대의 진짜 무서운 점은 파릇파릇한 20대보다 숙련된 30대가 진짜배기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시달리는 한 명의 사회인일 뿐이지만 일단 총을 잡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어지간한 폐급이 아니고서야 현역 A급 장병을 가볍게 상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괜히 조교들이 예비군들의 능구렁이 같은 말발과 실력에 허둥대는 게 아니다.

    나는 이들이 무장을 끝마치는 사이 스마트 글라스 지도를 펼쳐서 빠르게 쳐야 할 포인트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대치동 1타 강사조차 모독하는, 반란군 지휘관이다.

    “산업용 엑소스켈레톤과 소수의 병력이 저와 함께 움직여서 경비병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나머지 인원들이 무기고와 장비보관소를 점거합니다. 이후 각 공장을 순차적으로 해방시켜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무장시키는 한편, 싸울 수 없는 여자나 노약자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킵니다. 2차 무장 및 부대 편제가 끝나면 곧장 포항 시내로 진입해 군벌 핵심 장교들을 처리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놈들은 몇 개의 분산된 거점과 중앙 거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에게 장교들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특정 주기마다 분산 거점으로 각기 다른 장교를 파견한다더군요.”

    “즉 특정 거점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예. 포항 군벌은 여러분을 노예처럼 부려 먹으며 공장을 미친 듯이 돌려 댔는데, 그 이유는 경상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타 군벌과의 전쟁 준비였습니다. 당연히 대등한 적과 싸울 것을 상정해 두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기만 거점을 준비한 거죠.”

    이건 실제로 군대에서도 사용하는 전술이다. 최전방 같은 경우 실제로 근무하는 초소와 기만 초소가 따로 나뉘어 있을 정도니까.

    “기만 거점이라도 기본적인 경비병은 배치되어 있을 테니 1차로 투항을 요구하시고, 투항 거부 시 즉각 사살하셔도 무방합니다. 여러분이 당한 것이 많은 만큼 가능하면 즉각 사살을 권장해 드리고 싶지만, 그래도 뭣 모르고 윗대가리들의 농간에 놀아난 장병들에게 약간의 정상참작은 해 달라는 의미에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포항은 대구보다 더 악질적이다.

    대구야 윗대가리가 썩은 데다 범죄 조직과 연루되면서 애꿎은 병사들의 손만 더럽혀야 했지만, 포항 군벌은 철저하게 외부에서 들여온 민간인들을 노예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력 손실만큼은 최소화하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동정심을 유발하며 사정했다.

    “젊은 친구 말대로 바깥에 있는 저 병사들이 전부 때려죽여야 할 놈들이 아닌 건 맞아. 오히려 군벌 놈들과 붙어먹고 부역자 노릇 하던 놈들이 더 ✕같은 새끼들이지.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상황 따라 휙휙 바뀌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부분은 이해해 줘.”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는 입장인 만큼 감사해도 모자랄 판인데요. 어디까지나 피해자는 여러분들이니 쌓여 있던 것을 시원하게 풀어내셔도 됩니다.”

    “아니, 우리야말로 고맙지.”

    철컥!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줬으니까.”

    *    *    *

    “현재 전황은?”

    “월성 원전은 완벽하게 확보했으나, 울산 군벌에서 추가 병력을 보낸 탓에 방어선을 굳히지 않으면 자칫 원전에도 피해가 갈 우려가 있습니다.”

    “원전에는 불똥 튀는 일 없도록 방어선을 단단하게 굳혀. 여기, 그리고 여기에 1개 중대씩 별동대로 보내서 옆구리 찌른 다음 적들이 반응하면 본대가 확 밀어 버리라고.”

    이민세 소장의 실시간 지휘에 그와 함께 있던 참모장과 작전장교가 적극적으로 지도 위의 말을 옮기며, 전장에서 터져 나올 각종 변수와 적들의 향후 공세를 예측해 나갔다.

    그렇게 합당한 명령이 떨어지면 오퍼레이터들이 분산된 거점에 설치한 중계기를 이용해 전장으로 무전을 보냈다. 대구의 50보병사단이나 신병훈련소나 다를 바 없는 울산 군벌과는 궤를 달리하는 지휘 체계가 잡혀 있었다.

    “쯧, GPS가 여전히 먹통인 게 아쉽군. 포병을 대대적으로 운용할 수만 있었어도 저 떨거지들은 진즉에 소탕했을 텐데.”

    “하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지난 2개월간 민간 차량을 징발해서 전술 차량으로 개조해 두었고, 또 전방 부대에 비해서 규모가 작지만 전차나 장갑차도 운용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놈들을 상대로 너무 큰 칼을 쓰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참모장의 격한 아부에도 이민세 소장은 턱을 문지르며 차례차례 들어오는 전황 보고를 받았다.

    본래 그는 대구와 울산을 쓸어버리는 건 내년 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흑야 사태가 처음 발발했을 당시에 영문도 모르고 기이한 괴물들과 교전을 벌인 데다, 경상도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전라도에서 목숨을 건 탈출 작전을 감행하느라 부대 일부를 손실하기도 했다.

    때문에 인력과 화력의 손실분을 메꾸기 전까지는 거북이처럼 등껍질 안에 콕 박혀 있을 생각이었건만, 어처구니없게도 비슷한 규모의 50보병사단이 아닌, 훈련소장이 이끄는 오합지졸부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그것도 중립 구역으로 정해 둔 경주 시내 한복판에서 자신의 부대원들을 참수하거나, 수풀로 가득한 국립공원을 오가며 기습적인 테러까지 감행했다고 한다.

    워낙 근본도 없는 부대라 지금까지는 힘의 격차가 확실해도 봐주고 있었는데, 적이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이상 부대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전쟁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31보병사단은 아직 온전한 상태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 싸워 주고 있다. 저 오합지졸 부대를 처리하고 나면 내친김에 경상도 북부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구도 쓸어버릴까 고민 중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 한편을 쿡쿡 쑤시는 묘한 불안감이 그의 과감한 선택을 막고 있었다.

    ‘뭐지? 대체 어떤 요소가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거지?’

    혹시 울산과 대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 동맹을 맺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쯤 대구의 50보병사단이 자신들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포항과 대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 있다. 포항이 공장을 돌려서 물건을 납품해 주면 대구는 그에 걸맞은 물자나 사람을 납품해 준다. 서로가 공생하는 관계라 고작 2개월 만에 배신할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럼 울산과 부산이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은?

    ‘그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다. 부산에 자리 잡은 그 참모차장이 우리의 진격을 뻔히 알면서도 병력을 내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어.’

    참모차장이 누구인가? 참모총장이 부득이한 이유로 부재 시에 그를 대신해서 육본을 맡는 실질적인 2인자 아닌가? 그런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이런 뻔한 계획을 세웠을 리가 없다.

    차라리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포항을 이용해 울산을 죽이려 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겠다마는, 그 또한 부산 입장에서 메리트가 없었다.

    대구, 포항, 울산, 김해는 경상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대 세력이나 괴물들로부터 부산을 지켜 주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그 방파제를 미치지 않고서야 급히 치워 낼 이유가 없다.

    당장 1개월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해안선을 타고 남하하던 기괴한 사이비 종교 집단을 포항과 대구가 연합해서 막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으로 이어진다.

    최민환 소장이 미쳤거나, 아니면 최민환 소장의 아랫것들 중 누군가가 일부러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거나.

    ‘어느 쪽이든 현실성은 없지만 합리적이긴 하군.’

    어차피 31보병사단이 질 이유는 없다. 이대로 울산을 쓸어버리고 최민환 아래에 있던 군인들을 흡수해 몸집을 키운다면 뒤이어 대구까지도 노려봄 직하다.

    대구와 울산을 집어삼킨 포항이라면 충분히 부산과 자웅을 겨뤄 볼 수 있을 터.

    뜻하지 않은 상황에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이민세 소장이 다음 계획을 구상하는 사이, 오퍼레이터가 노크도 하지 않고 작전실로 달려 들어왔다.

    “급전입니다! 현재 신원 미상의 무장 단체 다수가 공단을 무력 점거하고 시내로 진입 중입니다!”

    “무슨 개소리야!”

    이민세를 대신해 참모장이 책상을 쾅 내려치며 다그쳤으나 오퍼레이터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현장 경비병의 보고였다’는 말만 내뱉었다.

    “참모장, 적대 세력이 공단으로 우회 침투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나?”

    “아무리 울산과 부산이 포항과 가까워도 바다가 그 모양 그 꼴인 이상 해상 침투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 미친 날씨에 헬기나 수송기를 사용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럼 결국 육로로 침투했다는 것 아닌가? 시기를 따져 보면 우리 부대가 남하할 때 적대 세력이 공단에 침투했다는 얘기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거지!”

    “그것이…….”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만, 혹시 공단의 노동자들이 경비병들을 해치고 자체 무장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닐지…….”

    작전장교가 옆에서 거들어 주자 참모장의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이상했다. 마치 우리에 갇힌 가축들처럼 외부와 단절된 채 공장에서 일만 하던 노예들이 대체 어떻게 병력이 빠져나간 걸 알아챘으며, 또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공단을 점거하고 자체 무장을 했단 말인가.

    “외부 조력자가 있겠군. 울산 아니면 부산이겠어.”

    “대구일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겁니까?”

    “그쪽과 우리의 관계를 보면 대구는 절대 아니야. 아마 울산의 떨거지들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외부 조력자를 공단에 침투시킨 모양인데…… 난감하게 됐군. 일단 시내에 풀어 둔 모든 경비 병력을 이곳에 집중시키도록.”

    “분산 거점에 파견된 일선 장교와 병사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대비를 하는 동안 그들이 총알받이 역할을 해 줘야지. 경비 병력이 집결하는 대로 임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장에 있는 부대 일부를 회군시킨다.”

    이민세 소장은 노예들이 반란 좀 일으켰다고 해서 거점을 버리고 도망치는 미련한 짓을 저지르진 않았다.

    이대로 대구로 몸을 빼서 50보병사단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겠지만, 그만큼 자신의 위신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쓸데없는 빚까지 지게 된다.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말 안 듣는 노예들은 물갈이 한번 싹 하고, 울산에서 새로운 노예들을 공급받자고.”

    담배에 불을 붙인 이민세 소장은 이 작은 해프닝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란군의 지휘관이 중장갑수색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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