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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인사이드 아웃-149화 (149/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56)

    ‘저기 있군.’

    우회하느라 시간을 좀 잡아먹었다만, 느슨해진 경계망을 뚫고 어떻게든 포항의 빛이자 소금이라 할 수 있는 공장산업단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경상도에는 크게 4개의 공장단지가 있는데 창원, 김해, 울산 그리고 포항이 있다. 대구에도 하나 있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규모가 좀 작다.

    여기서 먼저 의문점 하나를 해소하자면 현재 울산은 포항과 달리 공장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 발 빠르게 움직여 지역을 안정화시키고 인재를 수급한 포항과 달리, 울산은 자신들의 기반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구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울산은 지역안정화보단 군인들의 시급한 정예화를 더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전문가는커녕 최소한의 민간인 인재조차 거두어들이지 못한 울산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최민환 소장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의 정예화 작업에만 힘쓴 거야.’

    그래야 힘 빠진 대구를 집어삼키든, 부산의 참모차장 밑으로 들어가 한자리 꿰차든 할 테니까. 그러니까 일시적 동맹을 맺고 있던 포항을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도록 준비한 건 다름 아닌 울산이었다.

    ‘내가 한 건 그저 울산의 배신을 예정 기일보다 훨씬 더 앞당긴 것 그리고 경상남도의 다음 패권을 노리는 포항 군벌을 자극한 것뿐이다.’

    같은 규모의 50보병사단과 31보병사단의 수준 차이는 이미 확인했다. 포항은 공산주의 국가처럼 민간인들을 철저하게 노동력으로 갈아 넣으며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기만전술을 펼쳐서 울산이 포항의 턱을 기습적으로 후려갈긴 양 연출했으니, 포항이 발끈해서 최소한의 경비 병력만 놔두고 출정한 것이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포항 공장산업단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정지! 정지!”

    게이트 앞에서 전술 지휘 차량을 막아선 것은 1개 분대 규모의 군인들이었다.

    평상시였다면 탈주 노예와 침입자들에 대비해 경비 병력이 좀 더 많았겠지만, 갑작스럽게 벌어진 울산과 포항의 단두대매치 때문에 이곳도 병력이 상당수 빠졌다.

    나는 50보병사단 소속의 어느 부사관에게서 군복과 베레모를 빌려 입은 상태였다. 물론 한 번도 포항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사람의 것으로.

    “아이, 씻팔!”

    일부러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차량에서 내린 나는 군인들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믄데!”

    “그, 그게……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현재 전군에 비상이 떨어진 상황이라 신원 확인은 필수불가결합니다.”

    “마, 됐고. 느그 공단 책임자 누군지 알제? 내가 지금 대구에서 막 왔는데 사람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나?”

    “처음 보시는 분이기도 하고…… 또 김현오 대령님께선 허가증이 없는 외부인은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 이거 말이 안 통하는 아네(놈이네)? 마! 뒤에 있는 아들도 퍼뜩 와 봐라!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알면 니들 깜짝 놀란다!”

    구수한 사투리를 적당히 사용해 가며 군인들을 끌어모은 나는 그들을 지휘 차량의 커다란 화물칸 앞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궤짝 하나를 꺼내서 그들 앞에 ‘쿵!’ 하고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예 보라는 듯이 궤짝 하나를 더 꺼내서 그 위에 쌓았다.

    “마, 뚜껑 까 봐라.”

    군인들도 분위기상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궤짝의 수동 잠금쇠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들 헉 하고 헛숨을 들이켜며 물러섰다.

    “이제 내가 누군지 좀 알겠나?”

    “시,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정기 납품일도 아니고 평소 오시던 분도 아니라 저희가 착각했습니다!”

    “운송 차량이 두 돈 반이 아닌 건 내가 대대장님 명령받고 직접 그분이 타고 다니는 차 끌고 와서 그런 긴데…… 여기 지휘 차량 번호판 보이제? 의심되면 조회 함 해 봐라.”

    조회 결과는 당연히 정상이겠지만 눈치 빠른 군인들은 굳이 내 앞에서 차량 번호를 조회하지 않았다.

    전술 지휘 차량은 문자 그대로 지휘관들만 태우고 다니는 특별한 차량이다. 그걸 젊은 중사 한 명이 비밀스러운 물자를 가득 채워서 혼자 끌고 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병사들이 궁금해해선 안 될, 애초에 관심조차 가지면 안 되는 종류의 뒷거래가 있다는 얘기다.

    나는 궤짝 안에 한가득 들어 있는 고급 양주와 안주, 다양한 먹거리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본래 대구에선 이런 식으로 포항 공단 책임자와 뒷거래를 해서 자신들이 확보한 원자재를 대량으로 맡겨 가공을 부탁했다고 한다.

    정식으로 의뢰하면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니까 적당히 공단 책임자와 짝짜꿍해서 가공 라인 하나를 몰래 썼다고 보는 게 맞겠지. 병사들이 기겁하는 것도 당연했다.

    “후, 그래도 동생 같은 아들이 고생하는 걸 보니 이 햄(형)이 마음이 아프다. 다들 적당히 챙기라. 남들 안 보는 데서 몰래 까 묵어라.”

    나는 일부러 술이나 안주를 콱콱 집어서 군인들의 품에 억지로 안겨 주었다.

    당연히 군인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을 고급 양주와 안줏거리는 이들의 충성심을 흔들기엔 충분했다.

    “이,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이거 다 대령님 앞으로 가야 하는 물건들인데…….”

    “마! 괜찮다! 여기 화물칸이나 운전석에 한가득 쌓여 있는 궤짝들 안 보이나?! 이 코딱지만 한 거 동생들한테 좀 나눠 줬다고 티도 안 난다!”

    일부러 배포가 큰 경상도 사나이를 연기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궤짝을 정리해 차량에 올랐다.

    내게 뇌물 아닌 뇌물을 받은 군인들은 얼떨결에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실제로 정기 납품을 명목으로 뒷거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고, 전술 지휘 차량을 타고 왔다는 이상한 부분만 제외하면 오히려 결과는 좋았다. 고작 병사들 주제에 술과 안주를 얻었으니까.

    ‘울산과 포항이 한창 싸우고 있는 와중이니 저것들도 다른 경비조를 불러서 술 파티를 하겠지. 다른 곳은 몰라도 공단만큼은 안전하다고 확신할 테니까.’

    나는 천천히 차량을 몰아 공단 내부에 진입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도 돌아가고 있는 주요 공장들을 방문했다.

    공장마다 일하는 노예들이 여자들로만 구성됐거나, 반대로 남자들로만 구성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단순 작업 위주인 공장은 대부분 여자들을 쓰고 있군. 좀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한 작업이 필요한 공장을 노려야겠는데.’

    후미진 곳에 차량을 주차시켜 둔 나는 주기적으로 공장 근처를 배회하는 소수의 경비 인원들을 피해 공장에 잠입했다.

    유독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크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 지게차나 화물 트럭이 오가는 공장은 예상대로 근무 인원이 모두 남자들이었다.

    “끄흑!”

    “음? 컥! 그르르륵……!”

    때마침 코너를 돌아 접근하던 두 명의 경비원 중 한 명에게 대검을 던져 목에 꽂아 버리고, 다른 한 명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으면서 목울대를 꽉 움켜쥐었다.

    뿌드드득! 퍽!

    목울대를 서슴없이 비틀어 버리고 주먹으로 내려치자 목이 부러지는 것과 동시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피거품만 게워 내고 있는 군인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놈의 뒤통수를 잡아 단숨에 지면에 내려찍으니 대검이 더욱 깊게 박히며 경추를 끊어 냈다.

    핏자국을 지우는 건 너무 귀찮아서 적당히 둘의 시체를 구석 소각장으로 끌고 가 숨겼다. 그 와중에 탄약 조끼와 수류탄, 소총을 챙길 수 있었다.

    ‘탄약 150발에 수류탄 2개, 소총 2정. 이 정도면 예비 반란군에게 도움이 되겠군.’

    경계근무 인원에게 배급하는 탄약은 통상 75발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이 정도의 화력도 봉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나는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청력 손실이 일어날 만큼 기계음이 시끄러운 공장에 몰래 숨어들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내부 근무자들은 모두 귀마개를 착용한 상태였는데, 그건 감시역을 맡은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가가가가가가각! 쿵! 쿵! 철커덩, 철커덩!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기계음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감시역들이 발 뻗고 쉬고 있을 공장 사무실을 향해 접근했다. 도중에 당연히 공장 작업자들과 마주쳤지만 모두 내가 총을 든 것을 보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비록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이상 31보병사단 소속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작업자 한 명을 붙잡아서 스마트폰 텍스트로 사무실 위치를 물으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없이 보내 주었다.

    ‘차후에 귀중한 인력이자 나를 지지해 줄 콘크리트층이 되어 줄 사람들인데 좋은 인상을 남겨야지.’

    그 좋은 인상의 첫 번째란 무엇인고 하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방음재를 부착한 탓에 굉장히 두꺼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나는 한창 포커를 치고 있던 당직 장교와 부사관들을 발견했다.

    “너 이 새끼, 누구……!”

    “아가리.”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뒷발차기로 사무실 문을 거칠게 닫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한 3점사 사격에 가장 먼저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놈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급하게 권총을 뽑으려는 또 다른 장교가 있었지만 이미 총구는 놈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이 천마데스건!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탄피가 옆으로 튀어 나갔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육체가 볼품없이 뒤틀리거나 무너져내리면서 사무실 내부는 금세 핏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장교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포커 패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라니. 죽기 전에 자기 운은 다 쓰고 죽었으니 유령이 되어서도 구천을 떠돌지는 않을 것이다.

    “어이, 셋 셀 때까지 나와라.”

    “히이이익!”

    사무실의 철제 책상 뒤에 숨어 있던 돼지 같은 놈이 기겁하며 튀어나왔다. 놈은 공장 야간근무를 총괄하는 현장감독관이었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대표적인 중간관리직으로 분류되는 현장감독관은 언제나 근무자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것만 빼면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다. 그런 주제에 갑질은 또 어찌나 잘하는지.

    “공장장은 어디 있지?”

    “고, 공장장님께선 숙소에서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공단 안에 있는 숙소인지 바깥에 있는 숙소인지를 말해야지, 빡대가리야.”

    “죄송…… 죄송합니다! 바깥에 있는 숙소입니다! 공단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그래, 그건 됐고. 공장 가동 중지시켜. 그리고 근무자들 집합시켜. 할 수 있지?”

    내가 총구를 들이밀자 놈은 덜덜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공장 내부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단말기에 다가가더니 공장 가동 중지 신호를 보냈다. 노란색 신호등이 번쩍거리면서 삐이, 삐이, 삐이 하는 소음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본인 말로는 보통 공장 내부에서 사고가 발생했거나 외적인 문제로 인해 공장 가동을 일시 중지할 때 내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몇 분 후, 근무자들이 안전 수칙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계들을 중지시키자 소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공장을 바쁘게 가동하느라 달아오른 열기만큼은 여전했지만.

    “훅훅!”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잡아 든 현장감독관은 내 지시에 근무자 전원을 구내식당으로 집합시켰다. 또한 외부에서 감시 중인 군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층부의 지시로 기기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이제 됐습니까?”

    “그래.”

    “그럼 저는…… 살려 주시는 겁니까?”

    “이 질문에 대답만 해 주면.”

    “뭐든 물어보십쇼! 제가 아는 한도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검은 비’가 내린 적이 있나?”

    검은 비라는 말에 현장감독관은 다른 의미로 안색이 시퍼래졌다.

    “경상도 일대에는 검은 비가 비교적 적게 내렸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부산 앞바다에 집중적인 호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도 단발성 호우는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지?”

    “저는 자세히 모릅니다만…… 군인들이 어떻게든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고맙다.”

    탕!

    현장감독관의 미간을 뚫어 버린 나는 미련 없이 사무실을 벗어났다. 약속은 원래 사람하고만 하는 거다.

    어떤 멍청이가 검은 머리 짐승과 약속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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