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47화 (147/211)

딥 인사이드 아웃 (154)

뛰는 놈 위에 내가 있다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던 류혜성 소장을 극적으로(?) 처리한 나는 항복한 군인들을 규합해 대구역으로 향했다.

류혜성 소장의 찌그러진 머리통과 군복 그리고 별빛으로 반짝이는 계급장을 확인한 군인들은 이윽고 절망적인 기색을 내비쳤다.

더 이상 자신들을 보호해 줄 거대한 울타리와 든든한 뒷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의든 타의든 민간인들을 핍박해 왔다는 과거 때문에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미래가 두려운 것이리라.

물론 나는 그들을 향해 ‘내가 적장의 목을 베었다!’라든가, ‘너네 거점은 망했어! 여긴 이제 박한성이 지배한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차량에 류혜성의 시신을 던져 넣고 그들에게 잘 따라오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내가 역에서 벗어나기 전에 몇 명이 탈주를 시도했던 것 같은데, 그 증거로 몸이나 머리통 일부가 사라진 군인 몇 명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저격수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지금, 그들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저항은 포기하고 순순히 내가 모는 차량의 뒤를 따라나섰다.

나는 각 팀에게 류혜성 소장을 사살했으며 그의 시신을 확보했다는 무전을 날렸다. 또한 모든 인원은 투항한 군인과 최대한 많은 민간인들을 이끌고 대구역으로 오라는 지시를 했다.

“슬슬 때가 됐군.”

피유우우우우, 펑!

내가 하늘 위로 신호탄을 쏴 올리자 대구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KTX가 대구 중심부로 재빨리 진입했다. 대구 내부는 이미 군인들이 정리해 두었기 때문에 나이트워커가 신호탄에 이끌려 올 걱정은 없었다.

지금까지 기도비닉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KTX가 밝은 불빛과 기동음을 내뱉으며 철도를 쌩쌩 내달리자, 지난 2개월 동안 전철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바깥에서 전철이 들어왔다는 것은 이곳보다 더 안전한, 혹은 여유가 생긴 거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예상했던 대로 대구역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미 대구 내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날까지는 군용 장비로 무장한 군인들이 절대적인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들마저도 손쉽게 짓밟는 중장갑보병들이 대구를 탈환했다.

항상 강자들의 눈치만 보며 음지에서 숨어 지내고 있던 민간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접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무작정 몰려들었다. 쉽게 말해서 중장갑보병들을 자신들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나는 대구역에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빽빽하게 모여든 수많은 인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들 중에 군복을 입은 자들은 절망을 품고 있었으며, 추레한 몰골을 한 자들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희비가 교차하는 묘한 공간 속에서 민간인들은 무장이 해제된 군인들을 상대로 욕을 내뱉거나 잡동사니를 내던지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적당히 흥분하는 민중을 통제했겠지만, 지난 2개월간 그들이 시달렸을 고통을 감안하고 잠시 내버려 두었다.

“너희들이 식량을 제대로 배급해 주지 않은 탓에 내 어린 아들이 죽었어! 이 살인마 새끼들!”

“그깟 감기약 하나 나눠 주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사람들을 끌고 가서 강제 노동을 시키다니!”

“내 딸 어딨어, 개새끼들아! 내 딸 데려와!”

민중의 분노는 지극히 합당하다.

저들은 정말 흑야 사태에 휩쓸렸을 뿐인 순수한 피해자들이었으니까.

정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노동자든 군인이든 기술자든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소중한 인력들이었는데, 류혜성 소장이 그들을 단순 노예 취급 한 탓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울분을 토해 내며 삿대질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많을 것이다. 아마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깊은 한이겠지.

나는 조용히 중장갑보병들의 도움을 받아 류혜성 소장의 시체를 대구역 건물 외벽에 박아 넣었다.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끔.

“그쯤 하면 됐습니다, 여러분들.”

때맞춰 내 손에 들어온 확성기를 이용해 말하자 일순간 성난 군중들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고,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들은 지금 화가 풀린 것이 아니라, 류혜성 소장을 처리한 내게 잠시 기회를 주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우선 여러분들께 깊은 사죄와 유감을 표합니다. 저희는 서울을 수복한 지 얼마 안 된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 파견대입니다. 제2의 수도인 부산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복구한 KTX를 타고 대구까지 내려왔건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줄 미처 몰랐기에 대처가 느렸습니다. 좀 더 빨리 서울을 수복하고 지방 도시로 내려왔으면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난관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서울을 수복했다는 말에 군중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희망의 색채가 더욱 진해지고, 이제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도 끝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저들에게 덧없기만 한 희망을 심어 주는 대신, 조금 더 현실을 직시시키기로 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세상에 짙은 어둠이 도래한 그날. 더 이상 태양이 뜨지 않고 지독한 추위가 이어지는 나날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여러분들의 삶을 침범하기 시작한 괴물들까지.”

나이트워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우선 군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동질감을 유발했다.

우리도 너희와 똑같다고. 너희가 피해자였듯이 우리 또한 피해자였다고. 이 승리는 수많은 희생을 딛고 간신히 쟁취한 희망의 등불이었다는 것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

“…….”

“…….”

나는 피와 화약의 냄새에 절어 있는 상태로 내 뒤에 도열한 중장갑보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내려올 수 있었겠습니까? 과거에 천만이 넘는 대인구가 살고 있던 수도를 되찾고, KTX를 복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 같습니까?”

여기서 지금 군인 실드를 치는 것은 자충수다. 그러니 적당하게 말을 꼬아야 한다.

“우리 중장갑’보병’들은 무능한 윗대가리들의 잘난 계획에 동원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을 쐈으며, 바로 옆의 전우가 괴물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 나라, 내 국민을 어서 빨리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싸웠습니다. 무능한 윗대가리들은 그저 강압적인 명령만 내렸을 뿐이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인 것은 바로 저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구는 서울과는 정반대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한곳에 모여 있는 수백, 수천 명의 군인들을 가리켰다. 저들 중에 장교는 없다. 스스로 항복한 병사와 부사관 계급의 군인들만 무장을 해제시켜 모아 두었다.

“저들에게 애국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악독한 윗대가리들이 그 애국심을 교묘하게 이용했지요. 병사들로 하여금 대구의 치안을 지키게 하면서 정작 장교들은 스스럼없이 술을 마시고, 여자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류혜성 소장은 저희의 대구 탈환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병사들조차 내버리고 혼자 도망치다 사살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대병원역에 매복해서 홀로 도망치던 그를 잡았지요.”

내가 혼자 류혜성의 시신을 질질 끌고 나온 것을 본 군인들이 필사적으로 맞다고 소리쳤다.

지금 이 상황에서 성난 군중에게 돌팔매질당하기 싫다면 자신들조차 윗대가리들에게 조종당했으며, 끝내 배신당했다는 주장을 밀어붙여야 했으니까.

저들이 잘했고 잘못했고는 잠시 제쳐 두고,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장교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저들은 꽤나 필사적이었다.

나 역시 군인들의 그런 반응을 원했기에 일단 잠자코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면 얼마나 알고, 또 윗대가리의 명령을 거스르고 대담하게 총구를 들이댈 용기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중에서 군필이신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아무리 군대가 ✕같아도 일개 병사가 반란을 주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이 일개 병사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반란을 주도할 수 있는 만만한 나라였다면 벌써 임오군란 시즌 2가 터지고도 한참을 터졌을 것이다.

하지만 2030년에 이르기까지 총기 난사나 탈영 같은 선에서 그쳤다. 누구도 군대가 ✕같다고 해서 윗대가리 다 쏴 죽이고 뒤엎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다들 사회인으로서 거대한 시스템에 복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 있으니까.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죽지 않고 퇴사한다, 퇴사한다 하면서도 사표를 내지 않는 수많은 사회인들이 이미 훌륭한 표본으로서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저들에게 죄가 있다면 무능하고 악독한 윗대가리들에게 어쩔 수 없이 복종한 죄. 그리고 자신이 총살당할 각오를 하고서 용감하게 들고일어나지 못한 죄뿐입니다.”

물론 작정하고 파헤치면 엄청난 죄들이 나오겠지.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나댔던 병사들이 정말 하나도 없을까? 아마 꽤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온갖 강력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죄자도 있겠지. 하여 나는 이곳을 용서의 장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심판의 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뭐,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자발적으로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던 놈들은 걸러내야겠지요. 그러니 이곳에 모여 주신 여러분들이 곧 배심원이자 증인이며 검사이고 재판장입니다. 악독한 짓을 저지른 군인들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사람의 한이라는 건 워낙 무서운 것이니 말입니다.”

그냥 윗대가리의 명령을 받아 사람들에게 노동을 시키고 쥐꼬리만 한 배급을 준 병사는 단순 부역자이니 용서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윗대가리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민간인에게 지독한 피해를 준 병사는 두말할 것도 없는 흉악범죄자. 당한 사람이 많고, 죄질이 나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을 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인민재판이지만,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나는 성난 군중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을 던졌다.

그러자 귀신같이 몇몇 이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쌓인 것이 많은 한 중년 사내가 어느 병사의 이름을 외치자 곧 그에게 호응하듯 다 같이 같은 이름을 외쳤다.

우리는 포로 중에 그러한 자가 있는지 확인했고, 있다면 끌어내서 군중 앞에 무릎 꿇렸다. 만약 포로들 사이에 없다면 우리와 교전 중에 죽은 것으로 일단 처리했다.

그렇게 수십 명의 흉악범죄자들이 심판대에 오르게 되자 군중들의 모든 분노는 오로지 그들을 향해서만 쏟아졌다.

‘이제 남은 병사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겠군.’

소를 내주고 대를 취한다.

내가 모든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니 다들 그 상황에 맞춰서 척척 움직여 주었다.

나는 호명되어 끌려 나온 범죄자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직접 증언과 자백을 받아 냈고, 일부러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처럼 과장된 언행으로 최종 결정을 군중들에게 떠넘겼다.

결과는 당연히 사형. 그것도 밋밋하게 권총으로 쏴 버리면 군중들의 화가 온전히 풀리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손을 더럽히기로 했다.

흉악범죄자 수십 명을 잔혹하게 처형시키는 것으로 수천 명의 병사들을 살려서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애초에 내 이득을 위해 손을 더럽히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우드득! 꽈득!

“으아아아아아!”

판결이 끝난 사형수의 뼈를 직접 부수고, 살점을 찢어발기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목숨을 끊어 내자 군중들이 열광했다. 유일한 오락거리라곤 범죄자의 처형 쇼가 전부였던 중세 유럽인들처럼.

그렇게 한 명, 두 명, 열 명, 마침내 마지막 범죄자까지.

모두 이 광기 어린 흐름에 올라탄 군중들의 요구와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직접 다양한 방법으로 처형했다.

나는 당신들의 피해를 무시하고 군인들을 무작정 용서해 주자고 종용하는 위선자가 아니다. 나 또한 당신들과 똑같이 분노하고 있다. 당신들을 대신하여 내가 직접 손을 더럽히겠다.

그런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보인 결과, 마지막 처형이 끝났을 때 대구역을 잠식하고 있던 광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반드시 죽여야만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던 범죄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 불쌍한 청년들에게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군중들에게 포위된 채 덜덜 떨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군중들의 시선이 향했으나, 광기와 분노는 생각보다 짙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과 같은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 저 젊은 친구들이 뭘 알겠어.”

“우리나라 군대가 어디 좀 병신인가? 저 어린 애들 데리고 악착같이 부려 먹으니 어떻게 버텨?”

“우리도 우리지만 저 친구들도 참 안됐어. 그 ✕같은 놈들에게 시달리며 하기도 싫은 일을 억지로 했을 것 아닌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이 있어 괘씸하기는 하다만, 이제 서울도 수복됐다고 하니 군 체계가 제대로 잡히겠지. 한 번만 더 믿어 주는 것 정도라면…….”

됐다.

내 나름대로 판을 짜기 위해 고생 좀 했는데 역시나 군중심리를 공략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는 내 몸에 묻은 핏자국을 말없이 털어 냈다.

“……괜찮으십니까?”

한 중장갑보병이 다가와 내게 보급용 물티슈를 건네주었다.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괜찮지. 딱히 내가 다친 것도 아니고 비난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일이 잘 풀렸으면 됐지. 안 그래?”

“…….”

내 대답에 중장갑보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 나는 열성적인 대구 지지자(시민)들과 대구에 존재하는 각종 기반 시설과 물자 그리고 내게 목숨을 빚진 50보병사단 병력 일부를 손에 넣었다.

이 쇼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KTX에서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1개 소대 중장갑보병들이 풍족한 물자를 들고 대구역에서 합류했다.

서울이 수복됐는지 안 됐는지 대구 시민들은 절대로 알 방법이 없지만, KTX에서 추가로 내린 중장갑보병들이 자신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눠 주는 광경을 봐 버린 이상 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곧 저들의 구원자이자 새로운 지도자인 셈이다.

‘내 ‘자유’가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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