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153)
한 번의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별 볼 일 없는 초소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군인들의 몸이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장갑차나 두꺼운 방탄유리조차 단박에 꿰뚫을 목적으로 개발된 100% 국내산 K-대물저격총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여기는 오버로드 2, 중앙로역에서 적들의 추가 병력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예상대로군. 최대한 놈들의 발목을 붙잡아라. 놈들의 이목이 그곳으로 집중되게끔 크게 소란을 피워.”
―앞으로 10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혹시 안 되겠다 싶으면 즉시 빠져.”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무전기 너머의 오버로드 2가 중앙로역 인근 빌딩 옥상에 자리 잡아 적들의 머리통을 수확하는 사이, 나는 오버로드 1의 엄호사격을 등에 업고 경대병원역으로 접근했다.
덧붙여서 오버로드 3은 절반으로 쪼갠 2개 분대 병력과 함께 신남역을 두들기고 있었다.
대구국제공항으로 도망칠 수 있는 북쪽 루트는 위협적인 저격수를 배치하는 것으로 신경 쓰이게 만들고, 서쪽의 신남역으로는 저격수 한 명과 2개 분대 병력을 보냈다.
그럼 어째서 나는 저격수 한 명과 단독으로 동쪽에 해당하는 경대병원역을 두들기고 있느냐 하면, 상대로 하여금 선택지를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반월당역의 남쪽에 위치한 명덕역에는 나머지 2개 분대를 잠복시켜 두었다. 류혜성이 그나마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최측근과 호위 부대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하겠지.’
본래는 1개 소대가 사단급 병력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우리는 놈들의 수뇌부 대부분을 처리한 지 오래였다.
류혜성 소장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명령을 아랫것들에게 하달해 줄 중간관리자(영관급)를 잃어버린 탓에 제대로 된 지시도 못 내리고 있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위관급 장교와 부사관들을 동원해서 급하게 병력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50보병사단은 대구의 꼬라지만큼이나 내부 조직 체계도 엉망이었다.
민간인의 고혈을 직접 짜내서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장교나 부사관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소수의 장교들과 병사들만 닦달한다고 전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나는 일부러 단거리 무선 채널을 공개 채널로 돌려 꾸준하게 투항을 요구했다. 우리는 서울을 이미 수복한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 선발대라는 것을 강조하며, 지금도 KTX를 통해 후발대가 오고 있다는 공갈을 쳤다.
일반적인 후방 부대가 중장갑수색대와 중장갑타격대를 모를 수는 있어도, 중장갑보병 그 자체를 모를 수는 없기 때문에 적들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내가 터미네이터처럼 한 손으로 경기관총을 들고 난사하면서, 한편으로는 평온한 어조로 투항을 요구하자 엄폐물에 몸을 숨긴 병사들의 정신이 빠르게 무너졌다.
무전기에서 기계음처럼 반복되는 웬 미친놈의 투항 요구, 경기관총에서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고속철갑탄과 간간이 엄폐물을 꿰뚫어 버리는 대물저격탄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어느 멍청이들이 병사들을 선동하며 어쭙잖게 총을 들거나, 장갑차에 탑승하려 하면 얄짤없이 탄환 세례가 휩쓸고 지나갔다. 저항하는 놈에겐 철저한 죽음을, 투항하는 놈에겐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암묵적인 무력시위였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동쪽은 벌써 항복을 받아 냈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중장갑보병들이 닭장 속의 닭처럼 우왕좌왕하는 적들의 한복판으로 과감하게 뛰어 들어가 난전을 벌였다고 한다. 지난 2개월 동안 나이트워커는커녕 제대로 된 군인과도 싸워 보지 못했을 저들에겐 악몽 그 자체였으리라.
결국 어느 병사가 항복을 외치며 양팔을 들고 일어섰다. 군중심리에 따라 다른 병사들도 하나둘씩 총을 버리며 항복을 외쳤다.
애초에 병사들 대다수는 윗대가리들이 집에 보내 주지도 않고 반강제로 부려 먹었기 때문에, 대구 한복판에서 행해진 무수한 범죄를 직접 저질렀다기보단 방관과 동조를 한 것에 가까웠다.
저들은 대구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군인이었으나, 정작 군인들 사이에선 가장 힘없고 나약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항복한 자들은 장갑차나 차량에 자신의 무기를 실어 두고 무장해제 상태로 대로 한복판에 모여 서 있어라. 혹시라도 현장에서 도주하려 들거나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면 너희를 감시 중인 저격수가 직접 처리할 거다.”
내가 시키는 대로 무장을 해제한 군인들은 길 한복판에 오리 떼처럼 모여 서서 덜덜 떨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순간 그 끔찍한 저격탄이 날아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탈주는 꿈도 못 꿀 것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포로가 된 수십 명을 지나치고, 다시 마주친 수십 명을 투항시키고, 또 그들을 지나치기를 반복해서 역 내부에 들어왔다.
“역시 여긴 전기가 들어오는군. 유사시엔 지하철을 이용해서 도망치겠다 이거지?”
나는 역 바깥에서 연신 울려 퍼지는 총성과 비명에 덜덜 떨고 있는 민간인 기관사를 붙잡아 심문했다.
“대구를 중심으로 지하철 꽤나 몰아 봤을 것 같은데, 현재 지하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운용될 수 있지?”
“저,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만 월성 원전을 공동관리하고 있는 포항과 울산 군벌 측에서 대구에 전력을 공급해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종착까지라면 선로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충분히 가능할…….”
“그럼 무지성으로 대구를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종점이나 다름없는 영남대역으로 쭉 내달릴 수도 있다는 거겠네?”
“반월당역에서 대구를 빠져나가고자 한다면 십중팔구 영남대역으로 향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든 선로에 직접 C4 폭탄을 설치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류혜성 소장의 도주 루트는 남쪽의 명덕역으로 정해져 있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당신도 여기 있던 놈들과 붙어먹으면서 부역자 노릇을 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따로 책임은 묻지 않겠어. 바깥에 모여 있는 군인들과 함께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히익!”
역 내부에는 기관사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민간인 부역자들이 있었다.
주로 잡다한 일을 대신 해 주는 노동자나, 기관사처럼 50보병사단에게 특정 기술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인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까지 모두 역을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플랫폼의 전광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실시간으로 몇 호선 전철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와 특정 역 도착 시간까지 표시되는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아직까지 반월당역에서 전철이 출발하지는 않았다.
‘당황스럽겠지.’
현재 류혜성 소장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감도 못 잡고 있을 거다.
평소처럼 힘없고 나약한 자들을 지배하는 폭군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영관급 장교들과 연락이 두절되질 않나, 최전방에 있어야 할 중장갑보병들이 대구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질 않나.
게다가 무선 공개 채널에선 자신들을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 선발대라고 자칭하는 지휘관(나)이 뻔뻔하게도 투항 요구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마저 죄다 뽑힐 지경일 테지.
그러니 남쪽으로 도망쳐라, 류혜성.
너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사단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무능할지언정 정치질로 소장 계급장씩이나 달았으면 그 정도 눈치는 있겠지.
나는 반월당역에서 고뇌하고, 곧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놈의 행적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다. 마치 내가 류혜성 본인이 된 것처럼.
‘우선 귀중한 물자를 전철에 싣는다. 자신의 명령이라면 껌뻑 죽는 최측근과 더러운 일에 발을 너무 깊이 담근 친위대(병사)들이 함께해 줄 테니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전철에 물자와 호위 병력을 한가득 실은 그는 기관사에게 최대한 빨리 명덕역으로 향하라고 윽박지를 것이다.
왜 대곡역이 아니라 명덕역이냐면, 명덕역에서 환승을 통해 도주 루트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명덕역에 주둔하고 있을(아직은 교전을 벌이지 않은) 남쪽 주둔부대와 합류하여 역습을 계획할 수도 있다.
이성적이고, 조금이라도 작전 계획 능력이 있는 사단장씩이나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
‘남쪽 주둔부대와 합류하여 잠시 혼잡해진 군의 통신망과 체계를 재확립하고, 대구 한복판에서 난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규모를 파악한다. 그다음 소대와 중대 단위로 병력을 최대한 쪼개서 영관급 장교들의 공백을 막는 거지.’
짬 좀 찬 대위에게 1개 중대, 혹은 대대급에 준하는 부대를 맡겨서 시가전에 돌입한다면 우리를 제압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사단이 사단 단위의 전투를 벌이고 있지 못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명색이 사단인 만큼 보유하고 있는 병력이나 장비, 물자에서부터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류혜성 소장일 테니, 그는 틀림없이 남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남쪽 주둔부대와 합류하여 반격을 가하기 전에, 내가 매복시켜 둔 중장갑보병 2개 분대에 의해 암살당할 예정이다.
전술·전략적으로 완벽하게 정답인 선택지지만, 그 정답을 고르는 순간 자동적으로 체크메이트를 당하는 불합리한 미래가 놈을 기다리고 있다.
―반월당역 > 경대병원역 (도착 예정 시간 약 2분 뒤)
‘……이 새끼가?’
나는 발파기를 든 채 얼빠진 표정으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네 똘마니가 이미 너에 대해 다 불었다고. 여차한 상황이 터지면 타 군벌에 의탁하기 위해 우선 남쪽으로 도주하고, 은닉처에 숨겨 둔 물자와 남쪽 주둔부대를 이끌고 김해까지 후퇴할 것이라고.
그런데 왜 동쪽으로 오는 것이지?
뭐지? 자기과시?
“이 새끼 설마 은닉처의 물자든, 남쪽 주둔부대든 진짜 다 내팽개치고 경주로 도망치려는 건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자신을 믿고 따르던, 혹은 자신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던 병사들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의 것만 챙겨서 도주한다는 거지?
별 2개 소장이? 사단장이?
“진짜 헬조선 군대는 상상을 초월하네.”
대체 누가 이 나라 군대를 보고 감히 당나라 군대에 비유한단 말인가? 오히려 당나라 군대가 자신들을 가리키며 ‘완전 헬조선 군대가 따로 없구만, 쯧쯧.’ 하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철의 소음과 진동에 말없이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먼저 터져 나온 폭압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각 선로를 집어삼켰다.
천장과 바닥이 무너지고, 선로부터 플랫폼까지 폭발에 휩쓸려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연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던 전철은 뒤늦게 그 참사를 목격하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끼이이이이이이!
하지만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관성의 법칙 같은 대충 이과 위인들이 정립한 과학적 사실에 의해, 이미 속도가 올라간 전철은 쉽게 멈춰지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콰광! 콰가가가가가!
그 결과, 끊어진 선로와 통로 한복판을 가로막은 온갖 잔해와 맞부딪친 전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스펙터클한 지하철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류혜성 소장이 남쪽으로 향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그는 나 같은 희대의 천재가 예상했던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추하고 무능한 놈이었다.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저놈이 너무 못난 탓에 나의 완벽한 계획이 이렇게 처참한 꼴로 마무리된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런 용두사미가 또 어디 있을까.
“내 살다 살다 온갖 병신들을 봐 왔지만…… 너는 내가 진짜 인정한다, 류혜성.”
그는 내가 선별한 TOP 5 병신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남자였다.
만약 ‘노벨병신상’이 존재했다면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상을 타 왔을지도 모르는 국보급 인재가 이곳에서 허무하게 눈을 감은 것은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뒤처리를 위해 무너져 내린 플랫폼의 잔해를 들어내고 류혜성의 유해를 찾았다.
흉하게 찌그러진 그의 머리부터, 반짝거리는 투스타 계급장과 뱃살에 터질 듯한 군복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게끔 잔해 속에서 꺼냈다.
민중을 선동하려면 그에 걸맞은 재료가 필요한 법. 괜히 옛날부터 윗대가리들이 흉악범죄자나 반동 놈들의 머리를 저잣거리 한복판에 효수했던 게 아니다.
보고 계십니까, 조상님들.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이 낡아 빠진 유교 사상에서 유의미한 무언가를 또 하나 배웠습니다.
‘대구를 먹고 나면 다음은 포항과 울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