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인사이드 아웃 (150)
역사적으로 증명된 팩트가 하나 있다면, 보통 윗대가리들은 배우는 게 없다는 거다.
아랫것들은 자기 실수로 뒷산에서 따 온 독버섯 먹고 뒈지면 ‘헤헤, 다음부턴 조심해야지.’ 하고 학습하는데, 윗대가리들은 수많은 국민들의 쿠데타와 혁명을 겪고도 ‘헤헤, 다음부턴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을 못 한다.
아니, 안 한다고 보는 게 맞나?
나는 총구 앞에 양손을 들고 무릎 꿇은 군인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리가 장갑차와 두 돈 반 트럭을 탈취해서 이동하던 도중에 조우한 50보병사단 소속 순찰대였다.
병사 다섯에 부사관 둘 그리고 장교 하나. 총 8명으로 구성된 심플하면서 그 목적성이 뚜렷해 보이는 순찰대. 나는 놈들을 사로잡아 무장을 해제시킨 뒤 다짜고짜 심문부터 했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심문이라고 해 봤자 장교의 얼굴에 칼집을 몇 번 낸 뒤 거칠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에 걸레처럼 문질러 대는 게 전부였다.
다만 병사와 부사관들은 장교가 목이 터지도록 울부짖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어야 했고, 다음은 자신이 저런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실금한 녀석도 있었다.
“그래서, 이 새끼들 군장에서 뭐 좀 나오더냐?”
“예. 도저히 시가지 순찰대의 소지품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생활 필수 물자가 한가득 들어 있습니다.”
행군 군장을 ‘가라’치는 건 만국 공통 어느 군인이나 다 그러고 싶은 법이니까 이해하는데, 시가지 순찰이라는 한가한 임무를 부여받은 놈들이 군장에 물자를 한가득 쟁여 두고 다니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너희가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하지? 순찰 돌 때 적당히 씹을 간식이나 수통만 들어 있어도 충분한 군장이 저렇게나 빵빵하다는 사실이.”
몇몇 병사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함부로 입을 털자니 바로 옆에 직속 상관들이 있어서 두렵고, 그렇다고 입 닥치고 있자니 바로 앞에 도열한 중장갑보병들도 두려운 상황.
어떡하면 좋냐고 부사관들을 말없이 바라보지만, 부사관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원래 나쁜 짓이라는 건 뒷일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저지르는 법이니까.
설마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대구, 그것도 시가지 한복판에서 아군인 줄 알았던 차량에서 중장갑보병들이 우르르 내리고, 순식간에 자신들을 제압해서 압박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어차피 소동이 터졌으니까 곧 사단 전체가 동원돼서 우릴 조질 거라고 생각하지? 아닌 척해도 소용없어, 새끼들아. 눈깔 굴러가는 것만 봐도 알겠구만.”
“끄아아아아아아악!”
꾸욱꾸욱.
중위 계급씩이나 달고 있으면서 불법을 서슴없이 주도하고 있는 놈의 면상으로 좀 더 성심성의껏 바닥을 닦았다. 붉은 락스가 알아서 흘러나오는 차세대 일체형 청소 도구가 이렇게나 편하다.
“결론부터 말하지. 너흰 다 ✕됐다. 수방사가 서울을 수복하고 남부 지방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우릴 파견했어. 만약 우리가 정기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강력한 최전방 부대가 경상도를 싹 쓸어버릴 예정이지.”
실제로 중장갑보병은 수방사와 최전방 부대의 트레이드마크였기 때문에 이들은 의심하는 대신 두려움에 떨었다.
이들 입장에서 중장갑보병들이 대구까지 내려왔다는 건 정말로 수도권 일대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언제 대규모 진압군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병사와 부사관까지 항복을 받아 주고 있다. 마음 같아선 부사관도 싹 잡아 족치고 싶지만, 부사관이 없으면 병사들이 통제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대신 장교와 장성은 예외 없이 전부 죽는다.”
이제 선택할 차례야.
안면이 반쯤 갈려 나간 이름 모를 중위의 머리채를 잡아 올려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1번, 항복하고 얌전히 수방사 예하에 임시 편성되고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받는다, 2번, 다 같이 사이 좋게 지옥에서 저녁을 먹는다.”
“1번! 무조건 1번으로 하겠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십쇼!”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군인들의 주요 활동 구역에 민간인들이 없어서 망정이지, 나는 추할 정도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들러붙는 놈들을 간신히 떼어 냈다.
“그럼 증명해 봐.”
내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중위를 적당히 그들 앞에 내던졌다. 그들은 잠시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권총을 들이밀며 턱짓하자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섰다.
“이 개새끼!”
“우린 그딴 일 하고 싶지도 않았어!”
“어떻게 죄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같은 새끼야!”
“죽어! 너 같은 말종은 죽어야 해!”
퍽퍽! 빠직! 우드득!
7명이 거의 동시에 달려들어 중위를 마구 짓밟고 두들기자 사람 하나가 곤죽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원래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자의가 맞든 아니든 프래깅에 성공한 병사와 부사관들은 다소 과할 정도로 흥분했다. 나는 피에 절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쳐 주며 면죄부를 선사해 주었다.
“그래, 너흰 지금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억지로 강요당하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했던 것뿐이야. 다 썩어 빠진 윗대가리들 때문이지.”
이러고 있으니 꼭 무지몽매한 민중들을 선동하는 빨갱이가 된 것 같다. 소련이 이렇게 탄생했던 것일까.
“이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으니 행동으로 회개할 일만 남았군.”
“회개……라고 하신다면?”
“’너희처럼’ 억압과 강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윗대가리들의 수작질에 놀아난 전우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불쌍한 전우들은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들에게 싹 쓸려 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비겁하게 자기들만 살아남겠다는 거야?”
“그,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도 전우, 둘째도 전우, 셋째도 전우입니다!”
“전우애야말로 진정한 인류애 아니겠습니까?!”
“뭐든 시켜만 주십쇼! 전우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보라,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간들의 추악한 면모를. 내가 이래서 남들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나만의 고고한 아이덴티티와 에고를 대놓고 자랑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누군가가 나의 자유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그러지 못하면 지금 여기서 짐승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친 놈들처럼 도덕성과 인간성 그리고 자아를 잃어버릴 테니까.
쉽게 말해서 주변 환경에 잡아먹힌다는 얘기다.
“좋아. 얘기가 빠르니 다행이네. 그럼 이제 이 물자들을 어디로 유통시키려 했던 건지 말해 봐.”
“예, 근방 호텔에 자리 잡은 민간인 감찰 조직이 운영하는 영업장에 공급하려던 정기 물자입니다.”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들어서 수상한 놈 보이면 바로 너희한테 보고하고, 그 대신 지원받는 양아치 새끼들?”
“맞습니다. 민간인 통제나, 정보 수집을 맡겨 두고 있습니다.”
“다시 군장들 메고 거기로 안내해. 단 너희들의 무장은 잠시 우리가 압수한다. 불만은 없겠지?”
중장갑보병 1개 소대를 앞에 두고 불만을 그대로 표출할 미친놈은 없었다. 지금도 내 뒤에서 주먹이 근질거린다는 듯 몇몇 타격대원들이 스팀을 화악 뿜으면서 위압을 가하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을 눈치챈 이들은 재빨리 중위의 시신을 골목에 대충 던져 두고 군장을 짊어졌다.
우리는 다시 차량에 탑승해 거북이 같은 속도로 놈들의 뒤를 따라 갔다. 그 과정에서 종종 다른 순찰대와 마주쳤지만 우리는 움직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친 순찰대는 각기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우리가 앞장세우고 있는 놈들처럼 물자만 운반하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을 노끈으로 묶어서 노예처럼 끌고 가기도 했다.
무심코 차량에서 뛰쳐나가려는 타격대원들을 내가 제지해야 했을 만큼 대구 시가지에선 개막장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타격대원들의 분노가 가장 극심했던 건 우리가 앞세운 놈들의 당초 목적지였던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호텔 앞에는 마치 일제시대나 6.25 전쟁 당시를 연상케 하는 역겨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은 민간인들의 시신에 말도 안 되는 죄목이 적힌 팻말을 붙여 둔 뒤, 호텔 입구에 철근을 세워서 ‘용접’시켜 놓았다. 추위에 딱딱하게 얼어붙은 미라 같은 시신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유일하게 엑소스켈레톤을 착용하지 않은 내가 천막으로 가려둔 두 돈 반 트럭 화물칸에서 먼저 내려 병사들과 합류했다.
때마침 그들은 물자가 가득 들어 있는 군장을 양아치들에게 보여 주며 검문받고 있었다.
“거, 빨리빨리 좀 합시다. 오늘 큰 거 들어온다고 연락 못 받으셨나?!”
“뭐야, 씨발. 처음 보는 인간인데…… 어느 부대에서 오셨지?”
“사단장님 명령받고 직접 나온 수송관인데, 이거 오늘 중으로 배달해 놓으라고 한 소리 들었수다. 배달 늦으면 그쪽이나 나나 둘 다 ✕될 텐데, 어떻게…… 내가 지금 그냥 보고 올릴까?”
일반적인 군인과는 확연히 다른, 외골격 파츠를 착용한 내가 무전기를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양아치들이 주춤했다.
“쯧, 얼마나 대단한 거 가져왔는지 한번 보기나 합시다.”
“이거 중요한 화물이라서 확인하려면 따까리가 아니라 대가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쪽이 여기 대가리요?”
“아니, 씨발, 아까부터 말을 ✕같게…… 아, 됐고! 그냥 들어가! 통과!”
따까리가 압박을 못 이기고 통과를 외치자 중장비 기사 한 명이 크레인을 조작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호텔 입구가 개방되자마자 우리는 한시가 급한 군인을 연기하며 후다닥 진입했다.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호텔 입구에서 우회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 우리는 물자를 직접 넘겨받는 양아치들과 마주했다.
놈들은 이런 식으로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군인들이 오면 물자만 받고 다시 돌려보낸다는 모양이다. 가끔 류혜성의 중요한 안건을 전달할 일이 있으면 장교만 따로 호텔에 들여보냈다고 한다.
“오라이, 오라이! 오늘은 뭐 이렇게 많이 들어왔어?”
“이야…… 오늘 군부대에서 접대받겠다고 온 놈들도 많았는데, 이건 또 뭐야? 두 돈 반 트럭에 장갑차까지 몇 대씩 온 걸 보니 어디서 얼굴 반반한 년들이라도 데려온 건가?”
“하긴, 요즘 영업장 수질이 좀 떨어진 것 같다고 클레임 들어오니까 형님도 좀 빡치신 것 같더라.”
“염병할, 접대는 존나게 받으면서 이런 걸로 생색은 또 오지게 내요. 하여간 군바리 새끼들…… 쯧!”
양아치들이 군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도 상실하고 껄렁대며 차량에 접근한 순간,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중장갑보병들이 서슬 퍼런 안광과 스팀을 흩뿌리며 번개처럼 놈들을 덮쳤다.
“어, 어어억?!”
“뭐야, 씨발!”
“야! 빨리 위에 알려…… 컥!”
총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차량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군침을 질질 흘리며 섣불리 접근한 놈들은 모두 중장갑보병들의 손에 잡혀 목이 부러지거나 머리통이 박살 났다. 개중에는 곰도 한 방에 때려 죽이는 펀치를 맞고 그대로 심장이 터져 즉사한 놈도 있었다.
중장갑보병들이 손속을 두지 않고 양아치들을 학살하는 모습에 병사와 부사관들은 덜덜 떨면서 구석으로 물러났다. 아무리 항복을 했다지만 역시 이런 식으로 계속 충격을 줘야 딴생각을 못 한다.
“이놈들이 너희 돈 떼먹은 것도 모자라서 여자친구까지 빼앗은 금태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져라. 몸속의 뼈를 수천 개 단위로 조각내고, 아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짓뭉개 놓으란 말이야!”
나 역시 가장 앞에서 껄렁대던 놈의 멱살을 붙잡아 유도 기술로 지면에 메다꽂은 뒤, 그대로 파운딩을 걸어 안면이 빈대떡이 될 때까지 뭉개 놓았다.
거기서 살려 달라는 처절한 애원이나 구차한 변명 따위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애초에 그런 헛소리를 들어 줄 생각이 없었기에 다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저격수들은 바깥의 경비들을 족치고 위치 잡아서 내부에서 탈출하려는 놈들, 혹은 외부에서 접근하는 놈들을 처리해라.”
저격수 세 명이 중장갑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 내고, 대구경 저격총을 든 채 지하 주차장을 걸어 나갔다.
“너희는 이곳에 남아서 차량을 지킨다. 혹시 모르니 미리 경고해 두는데, 너희가 딴생각을 품어도 소용없다. 모든 차량의 송수신기는 죄다 박살 내 놨고, 바깥에는 저격수들을 배치해 뒀으니까.”
“저,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여기서 쥐 죽은 듯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면 됐고.”
잔뜩 겁을 먹어 물러난 놈들을 비웃듯이 지나친 우리는 비상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향했다.
오늘 이곳에서 죄 있는 자는 살아 나갈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