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 인사이드 아웃-141화 (141/211)
  • 딥 인사이드 아웃 (148)

    “다들 모여. 회의 좀 하자.”

    역사 내부를 확실하게 처리한 나는 양아치들이 가지고 있던 군수물자를 노획한 뒤, 때마침 바리케이드 철거 작업을 끝낸 중장갑보병들을 불러 모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알파 소속 중장갑보병들은 기존의 기계화보병을 상회하는 엘리트 병과였기 때문에 다들 전술적 감각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순순히 나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안에 숨어 있던 잔챙이들 족치면서 뜻하지 않게 정보 하나를 입수했다. 우선 흑야 사태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군대와 경찰, 피난민 대다수가 한반도 남부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나는 스마트글라스 지도를 탁상 위에 넓게 펼쳐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일일이 손으로 짚으며 설명했다.

    “서울, 인천, 경기도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수천만 인구 중 약 절반 정도가 경상도로 몰려들었다더군. 나머지는 수도권 지역 곳곳에 흩어졌거나, 너희도 알다시피 인천항으로 몰려들었지. 하지만 그들 모두가 피난이나 생존에 성공했던 건 아니야. 나이트워커의 집요한 습격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물자와 생활 인프라 먹통 탓에 의도치 않은 사상자가 늘었겠지.”

    나는 최종적으로 경상도에 도달했을 타 지역 피난민 수가 500만을 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태 초기부터 누구보다 빠르게 자가용을 끌고 움직인 사람, 운 좋게 마지막 전철, 배를 탄 사람들만이 남부 지방으로 도망칠 수 있었겠지.

    차량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나 지방국도를 자력으로 뚫고 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바이크나 스쿠터, 자전거를 이용해 어떻게든 남하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약 10년 전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시행된 지저 도시 프로젝트 때문에 투기 붐, 지저 도시 드림 현상이 일면서 한국의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지.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롯한 남부 지방은 사태 초기만 해도 꽤 여유로웠을 거야.”

    내 추측이 맞다면 처음에는 군대와 경찰이 어떻게든 민심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질서를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 외부에서 대규모 피난민이 우르르 들이닥치고, 그와 더불어 나이트워커의 습격까지 이어지면서 상황이 역전된 것이 틀림없다.

    “그 말씀은, 지금 경상도의 내부 사정은 썩 여유롭지 않을 거라는 겁니까?”

    한 중장갑보병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난 2개월간 생활에 다소 불편함은 느꼈겠지만,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을 거야. 특히 몸으로 직접 뛰는 중장갑보병들은 보급이 항상 넉넉했겠지?”

    “그렇습니다.”

    “군대에서 병사들 밥 ✕같이 주는 악습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최진석 병장님께서 식사 추진과 물자 보급만큼은 확실히 해 주셨습니다.”

    “그래. 하지만 엄청난 피난민이 경상도에 유입되면서 물자난과 무질서라는 독이 퍼졌겠지. 그럼 이제 너희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간부나 장교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 봐.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무력입니다.”

    “정확히는 무력을 이용한 철저한 공포정치지. 내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현재 경상도에는 4개로 나뉜 군 사조직들이 경상도 일대를 다스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군사 조직’이 아니라 ‘군 사조직’이다.

    미친 똥별 놈들이 제멋대로 파벌을 만들고 군인들을 제 입맛에 맞게 배치해서 군벌로 성장한 것이다.

    롯데호텔을 점거하고 있던 여단장은 오히려 민간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면서 군대와 경찰 간의 협력 관계를 이끌어 낸 것에 비해, 이놈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소수집단인 경찰과 힘없는 민간인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있었다.

    “대구에 하나, 포항에 하나, 울산에 하나, 그리고 김해와 부산을 통째로 장악한 최대 규모의 군벌이 하나. 이렇게 해서 총 4개다. 물론 주목할 만한 인물도 4명이다.”

    나는 녹음기를 재생해서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전파했다.

    ―부산…… 육군본부 참모차장 김선후 중장, 울산…… 육군훈련소 훈련소장 최민환 소장, 포항…… 후방 31보병사단 사단장 이민세 소장, 대구 50보병사단 사단장 류혜성 소장……. (탕!)

    “들었다시피 부산과 김해를 장악한 건 참모총장한테 짬처리(뒤통수)당하고 계룡대에 버려진 육본 참모차장 3스타 틀딱, 그 외 2스타 꼰대들이다.”

    “마지막 총성은 뭡니까?”

    “정보료.”

    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그렇게 덧붙이니 질문을 던진 중장갑보병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장성들이 주요 지역을 장악하고 군벌로 성장했다면 더 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아닙니까? 화력부터 인원, 물자까지 차이 나는 게 한둘이 아닙니다.”

    “너흰 그래도 좀 배웠다는 놈들이 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너희가 지금 걸치고 있는 게 뭐야? 최신예 군용 엑소스켈레톤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럼 띵킹을 해, 띵킹을! 우리가 윗대가리 모가지만 쓱 쳐 버린 다음 서울 수복한 수방사 예하 중장갑보병이라고 언플하면 어떻게 되겠어?”

    “어…… 매우 높은 확률로 반격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모가지 날아간 놈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만큼 충성심 쩌는 놈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기형적인 형태의 군벌들은 대개 내부 조직도가 엉망이야.”

    “……잘 모르겠습니다.”

    “권력 맛을 본 틀딱 꼰대 똥별들이 과연 군벌 조직을 제대로 설계해 두긴 했을까? 자기 입맛 맞게 알랑방귀 잘 뀌는 놈, 더러운 일 잘해 주는 놈 위주로 감투 쥐여 주고 나머지는 짬처리시켰겠지?”

    이건 대한민국 군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반박 불가 ‘쌉팩트’였다.

    대한민국 군대는 북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굉장히 폐쇄적이면서, 그런 주제에 권력에 미친 놈들 투성이라 서로 밀어주고 당겨 주기를 너무 좋아한다. 거기에 학연, 지연, 흡연은 어찌나 그리 깐깐하게 따지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떠올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다들 국회를 떠올리겠지만, 군 생활 해 본 사람들은 군대야말로 진짜배기 똥통이라는 걸 안다.

    “하나회 이후 사조직 형성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던 현대까지도 은밀하게 저들끼리 밀어주고 당겨 주기를 하던 놈들인데 하필 고삐가 풀려 버렸네. 다음은 말 안 해도 알지?”

    그래도 배우고 겪은 게 있는지 중장갑보병들은 내 말의 의도를 빠르게 눈치챘다.

    “저런 건 궁극적으로 1인 독재 공산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극소수의 윗대가리들만 편하게 꿀 빨고 그 아랫것들은 자신보다 더 아래에 있는 놈들을 족치면서 고생하는 구조야. 그래서 충격요법이야말로 최고의 약이지.”

    이른바 충격과 공포. 번개처럼 들이닥쳐서 윗대가리 썰어 버리고 언플로 장악해 버리면 자연스레 아랫것들도 생각을 고쳐먹기 마련이다.

    자신이 제2의 독재자가 되기 위해 역으로 총 들고 덤벼들 거라고? 우리가 일반적인 군인이나 경찰이었다면 그러겠지.

    하지만 우린 일반적이지 않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뭣하지만, 알파 소속 중장갑보병 2개 소대는 그만한 저력이 있었다.

    “우선 KTX는 대구 외곽까지 들어간다. 단 놈들의 눈에 띄지 않게끔 후미진 곳에서 정차한 채 기도비닉 상태를 유지한다. 대구 와룡대교 인근 서재로 방면에 정차해 두면 될 거다.”

    “군벌들의 순찰에 걸릴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주변에 야트막한 산 하나가 전부인 후미진 곳이라 순찰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할 리가 없어. 우리가 상대했던 양아치 놈들도 자신들의 거점에 콕 틀어박힌 상태였잖아. 안 그래도 짬처리당해서 접경지 방위만 하고 있는 놈들인데 과연 순찰을 하기나 할까?”

    “안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절대 안 하지. 힘들게 순찰한다고 군벌 놈들이 뭐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지난 2개월간 전철이 운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간선은 더더욱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인간의 눈은 피할 수 있다 치고, 괴물…… 나이트워커들이 습격해 오면 어떡합니까?”

    “경상도 일대는 군벌들이 확실하게 정리했을 거다. 그래도 보험 없이 리스크를 감수할 순 없으니 작전 시에는 1개 소대가 KTX에 남는다.”

    나는 직접 몸이 날래고 전술 교리에 해박한 놈들을 뽑아서 새로운 1개 소대를 편성하고, 기장에게 전철을 움직일 것을 요청했다.

    “이 시점에서 너희에게 좋은 소식 하나와 안 좋은 소식을 하나씩 발표하겠다. 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은 사람은 손 들어라. 난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니까 다수결을 존중한다.”

    대다수의 인원들이 손을 들었다.

    “그래, 좋은 소식부터 알려 주자면, 너흰 나와 함께 장기간 작전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

    “…….”

    “…….”

    “이제 나쁜 소식으로 넘어가자면 우리의 계획이 경상도 일대를 장악한 생존자 단체와의 접선 및 교류가 아닌, 대대적인 똥별 소탕 작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쿠데타고, 나쁜 말로 프래깅이다.”

    난 이미 전역한 데다 예비군으로 등록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지만.

    최진석이 구상한 기존의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식에 중장갑보병들의 표정이 싹 굳었지만, 곧 신나는 프래깅 타임이라고 선언하자마자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러하듯, 나 역시 프래깅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프래깅을 해야겠다는 분노와 기억이 싹 사라져서 현역 시절에는 못 했을 뿐이지.

    “최종 목표는 민간인 생존자 집단 해방, 군 사조직 와해, 군벌 핵심 인물 사살 그리고 부산과 서울을 잇는 교두보 확립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민간인 학살을 제외한 모든 군사적 수단을 허용한다. 딱히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국제법 따위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지상에는 더 이상 UN도 없고 인권 단체도 없으니까.

    특히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게 인권 단체 아닐까?

    그렇게 우리를 태운 KTX는 다시 소음이라곤 거의 없이 한적한 대구 외곽에 진입했다. 예상대로 순찰은커녕 인근을 지키고 있는 방위 부대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와룡대교를 육안으로 확인해 보니 차량과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쌓아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둔 게 전부였다.

    “조금 더 들어가서 정차하고, 1개 소대는 나를 따라 대구 중구로 우회 진입한다.”

    “50보병사단이 위치한 북구가 아니라 중구 말입니까?”

    “놈들이 대구 중구의 풍부한 물자와 안락한 거점 그리고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수많은 민간인들을 내버려 두고 굳이 북구에 처박혀 있겠어?”

    “……실언이었습니다.”

    야간 작전을 개시하기 직전, 우리는 서로의 장비 상태를 점검해 주면서 미리 정해 둔 안전 수칙과 교전 수칙, 수신호를 한 번씩 더 확인했다.

    이들과 나는 그다지 합을 맞춰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험생이 문제집으로 복습하듯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줘야 했다. 내 분대원들이었다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했을 텐데.

    ‘생각난 김에 참모차장 족치면서 물어봐야겠군.’

    브라보가 수집해 온 북한의 땅굴 정보를 육본과 정부에선 대체 어떻게 처리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수집했는지.

    ‘그래야 정부와 협업한 디그러쉬가 정확히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또 어떤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철컥!

    경기관총과 소음기를 끼운 권총, 개량 버전 피스톨터렛을 챙겨 들자 익숙한 철과 기름 냄새가 나를 반겨 주었다.

    너의 홈그라운드(전장)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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